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코로나19 시대의 병원입원 투병기(1)

필자는 지난 5월 31일부터 Los Angeles 한인타운에 위치한 헐리웃장로병원(Hollywood Presbyterian Hospital)에 입원하여 11일 만인 지난 6월 10일 오후에 퇴원 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늘 생각은 해왔었지만 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이번 병상 경험을 통하여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나의 몸이지만 아픈 나의 몸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자기 몸의 주인이 자신이라면 세상에 아플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주인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기에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이 다가올지 모르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하기 4-5일 전부터 고열이 나기 시작하면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타이레놀을 반복해서 복용하면서 열과 통증을 달래보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응급실에 갈까 말까에 대하여 여러 번 망설였습니다. 이유는 주일예배 때문이었습니다. 갑자기 다른 분에게 설교를 부탁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를 지나고 나면 월요일에 담당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으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주일 아침에는 더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집사님에게 설교하기 위하여 강단에 오르기 한 시간 전 카톡으로 몸의 상태를 설명 드리고 내일까지 기다려도 문제가 없을지에 대하여 문의 드렸습니다.

카톡을 보내자마자 곧바로 간호사 집사님의 답장이 왔습니다.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곧바로 응급실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자마자 응급실로 향한 것입니다. 응급실에 도착하고서 놀란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환자들을 모시고 드나들던 응급실이 이전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뀐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환자 외에는 가족 누구도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응급실만이 아니라 일반 병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로인하여 병원에 입원해 있는 11일 동안 가족 중 누구도 병실을 방문할 수가 없었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검사를 마친 후 곧 바로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그 밤에 응급실에서 여러 가지 검사 중 Covid19 test를 했습니다. 내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입원하는 환자에게 의무적으로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검사 결과 Negative로 나왔습니다. 입에서 하나님을 향한 첫 번째 감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사실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계속되는 고열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코로나19에 대한 일반 상식은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 부문에 대해선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습니다. 코로나 19 환자의 경우 기침과 설사를 하는데 반하여 나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코로나 검사를 정상으로 받은 다음날도 두 번째 코로나 검사를 했습니다. 다음 날 역시 정상으로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필자에 대한 치료가 공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화요일에는 MRI를 촬영했습니다. 10여 년 전 고속도로(Freeway)에서 다중충돌 교통사고가 났을 때 MRI를 촬영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기억으로는 3-4분 정도 한 것으로 알았는데 이번 촬영은 달랐습니다. 팔에 방사선 동위원소 주사를 놓은 후 복부 촬영시간만 어림잡아 30분 이상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이상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방사선동위원소 주사를 맞고 촬영을 하는 것은 암 환자들이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입니다. 필자의 형님이 10여 년 전에 담도 암으로 고생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암에 걸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 MRI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몸에 고열이 나는 것은 몸 안에 돌이 있어서 그것이 움직이면서 상처를 내 염증을 반복적으로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돌이 있는 곳은 담도 관과 담낭주머니(쓸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선 두 번의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1차로 위장내과 의사가 위를 통하여 담도 관에 있는 돌을 제거한 후 이어서 외과의사가 담낭 제거 수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선 먼저 심장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심장이 약하면 수술실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곧 바로 심장 검사를 받은 다음날 수술해도 좋다는 심장의사의 설명이 있은 후 수술 일자가 금요일로 잡혔습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2020년 6 월 10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567

오늘은 교회 마당에서 살구를 따는 날

가정의 달 5월의 네 번째 주일은 메모리얼데이 연휴가 있는 주일입니다. 코로나19로 예배가 중단된 지 10번째 주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 기간에도 주일 예배 촬영을 위하여 영상 팀들이 참석하여 유튜브 TV녹화와 페이스 북으로 설교를 송출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인원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 년 전 지금의 교회당으로 예배처소를 이전하고서 성전 이전을 기념하면서 20여 구루의 과실 수를 사다가 성전 둘레에 심었었습니다. 그 중 두 구루의 살구나무가 일 년 만에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보기에 좋고 아름다운 색으로 탐스럽게 익어 수확을 위해 두 분의 권사님이 교회에 오셨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늘 가져오던 점심 식사는 생략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성도의 교제도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에 참석한 소수의 인원이 마당으로 나아가 살구를 땄습니다. 지금이 살구를 추수하는 시기입니다. 한두 주일 더 기다릴 수도 있지만 다람쥐의 출현으로 앞당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살구만 아니라 매실과 체리 그리고 블루베리도 수확의 계절입니다. 교회 화단에 같은 시기에 두 구루씩 체리와 블루베리도 심었지만 이들은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꽃이 피긴 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살구는 우리가 기대하지 아니했는데도 많은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지난 해 과실 수를 심으면서 수년은 지나야 열매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 했었는데 그런 기대와 다르게 빠른 시간에 수확의 기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봄이 되면서 나뭇잎이 하나 둘 솟아 오른 것도 신기했습니다. 그러더니 예쁜 꽃을 피울 때는 너무 보기에 좋아서 보는 우리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가 얼마나 놀라운 지 같은 땅에 심기어졌음에도 나무의 종류에 따라 모양도 다르고 꽃의 모양과 색깔도 다르며 향도 달랐습니다. 물론 열매의 종류도 다릅니다. 오늘 수확한 것은 살구만이 아니었습니다. 고추가 너무 실하게 달려 두 분 권사님이 큰 웃음으로 행복해 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오늘은 살구와 고추를 수확했지만 가을이면 대추와 감 그리고 사과와 레몬 오렌지를 수확하게 될 것입니다. 감나무는 4구루가 열매를 키워가고 있으며 2구루의 대추도 부지런히 열매를 키우고 있고, 3구루의 사과와 그리고 여름을 목표로 3구루의 복숭아나무가 열심히 열매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의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리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는 교회 뜰에 심긴 여러 종류의 나무와 채소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추수의 감격과 기쁨을 느끼며 일상의 삶을 통하여 행복해 하는 것은 지난 해 심는 수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심지 아니 했으면 거둘 것만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기쁨과 감동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항하여 심는 수고를 아끼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심어도 아무거나 심어선 아니 됩니다. 죄를 심으면 죄의 열매가 맺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심어야 할 것에 대하여 썩어질 것을 심을 것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의 열매를 얻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귀한 것은 영생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얻을 영생은 세상에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는 영광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귀한 것은 우리를 천국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시 116편 5-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는 말씀의 복을 흘려버리지 마시고내가, 우리가 심고,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는 주인공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26551&section=section3&section2=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의 장례식 집례기

지난 수요일에 어느 장례식을 집례 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성도님이 일주일 전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소천하신지 일주일 만에 장례식을 가지게 된 것은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장례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의 숫자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 2 주일에서 길게는 20일 이상 기다려야만 장례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장례식의 주인이신 고인은 오랫동안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힘든 투병 생활을 해 오셨기에 본인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요즘의 장례식은 이전과 다르게 예식을 집례 하게 됩니다. 전과 같으면 많은 조객들이 참석하여 여러 가지 색깔의 향내 나는 조화 속에 가시는 고인이 길을 아름답게 해 드렸을 터인데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참석하는 조객의 숫자도 적지만 그 흔하던 조화도 요즘 장례식장에서는 쉽게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시에서 명하는 강력한 행정명령으로 장례식에 참석하는 숫자를 10 명 미만으로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족 중에도 이 숫자의 제한을 받아 다 참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교인들도 이 명령 때문에 필자를 제외하곤 한 사람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주변의 이웃들이 고인의 소천 소식을 듣고도 많은 유가족의 친지들이 가시는 길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슬픔 당한 유가족들의 마음만 아픈 것이 아니라 평소 고인과 유가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친지들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동참하지 못함으로 안쓰러워하며 미안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중에도 이번 장례식 예배가 그 어느 때보다도 다행스럽고 유가족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은 예배의 특별함 때문이었습니다. 고인의 남편은 지역사회에서 존경 받으시는 원로 목사님이시며 아들도 목사님 이셨기 때문입니다. 딸은 피아노를 전공한 전문 음악인이며 사위는 색소폰 연주가 이십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런 상황에서의 장례식은 그렇지 않아도 힘들 수밖에 없는데 오늘의 장례식예배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쓸쓸할 수밖에 없는 장례식 예배가 가족들의 참여로 그 어느 장례식보다 아름다운 예배가 될 수 있었기에 필자도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받았을 뿐 아니라 고인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집례와 위로의 말씀은 필자가 전했지만 기도는 아들 목사님이 담당하셨고, 고인의 약력보고도 아들 목사님이 하셨으며, 조사는 손자가 했고, 조가는 섹스폰 연주가인 사위가 맡았으며, 오르간 반주는 딸이 했고 예배 말미인 축도는 남편 목사님이 맡으셨습니다. 참석한 가족 모두가 순서를 맡은 것입니다.

장례식 전 날 유가족이 카톡으로 필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장례식 날 드레스코드는 검은 정장과 검은 색 넥타이를 안 하기로 가족회의서 결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인이 생전에 밝은 색을 좋아하셔서 평상시 입은 깨끗한 복장을 입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도 가족의 결정에 따랐습니다.

장의사에서 장례예식을 마친 후 곧 바로 장지로 자동차로 30분을 이동해서 하관식을 거행했습니다.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Hollywood Forest Lawn 공원묘지의 드넓은 자연에서 베풀어진 하관식이 특별했던 것은 축도 전 예식을 마치는 노래로 찬송가가 아닌 “아 목동이여[Oh, Danny Boy]”를 합창할 때였습니다.

지금까지 한 교회를 40년 동안 섬겨오면서 수많은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늘 마음의 무거운 짐을 받아 왔었는데 이번 장례식에선 그런 부담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 노래가 슬프던 모두의 마음을 가사를 통하여 위로 받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저 목장에는 여름철은 가고        산골짝마다 눈이 덮여도

나 항상 여기 살리라                    아 목동아 아 목동아 내 사랑아

 

그 고운 꽃은 떨어져서 죽고       나 또한 죽어 땅에 묻히면

나 자는 곳을 돌아보아 주며      거룩하다고 불러 주어요

네 고운 목소리를 들으면           내 묻힌 무덤 따뜻하리라

너 항상 나를 사랑하여 주면      네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잘 자리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26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