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적게 주고 크게 받는 선물의 감동

지난주 집 뜰에 있는 대추나무에 올라 땀 흘려 수확을 해 교회에 가지고 가서 교우님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남은 것 중 일부를 몇 분의 지인들에게 작은 비밀 봉지에 담아서 가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인사를 받자고 드린 것은 아닌데 너무 고마워 하셨습니다. 그 중 한 분이 답례로 큰 선물을 보내오셨습니다.

산삼녹용대보탕 한재를 보내온 것입니다. 필자와 같은 서민은 돈을 주고 사 먹을 수 없는 고가의 보약입니다. 아직도 그런 보약이 있는 줄도 몰랐고, 알아도 값을 주고 사 먹을 수 없는 귀한 보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정성스럽게 구별하여 많이 드릴 것을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물을 받고나서 들은 말입니다. 한국에 사시는 어머님이 L A에서 10년 째 한의원을 운영하는 외동딸의 건강을 위해서 어렵게 구한 진귀한 고가의 산삼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에도 산삼이 있지만 한국에서 어머니가 보내온 산삼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먹기 위해서 만든 보약이기에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일로 선물을 주신 분에게 미안함 마음도 있고 황송한 마음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속담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런 경우는 작은 것을 드리고 은금보화를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물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생각이 드는 것은 이것을 내가 먹기엔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야 앞으로도 이런 보약을 먹을 기회가 얼마든지 있지만 나이 드신 연로하신 집안의 어른은 누가 선물하기 전에는 스스로 사서 먹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안의 가장 높으신 어른에게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시 받은 선물을 곱게 포장하여 선물을 하기로 했습니다.

받는 기쁨도 크고 좋지만 소중한 것을 사랑하는 이웃에게 나누는 기쁨도 귀한 것은 그런 행동을 통하여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분에 넘치는 선물을 하신 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하게 만나서 10여 년 동안 교제를 이어오는 동안 받은 사랑을 세어보니 너무 크고 많았습니다.

한 교회를 섬기는 교인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만나지 않았습니다. 섬기는 교회는 다르지만 특별한 인연으로 교회 밖에서 만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의 사람을 친구로 가진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같은 하늘아래 동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의 충분한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 중에는 만날수록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시간이 갈수록 더 깊이를 더하는 만남도 있습니다. 만나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소망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게 큰 선물을 하신 분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내게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한결 같은 사랑을 베푸시므로 주변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을 통하여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어떻게 사는 것이 소금과 빛처럼 사는 것인지를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한 때는 한국에서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높은 학문과 권세, 부귀와 명성을 누리시던 귀족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자녀들을 위해서 미국에 이민을 오신 후 갖은 시련과 고통으로 눈물로 사셔야 했습니다. 그래도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두 아들이 동부 명문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큰 아들은 의사가 되었고, 작은 아들은 아직 대학원에서 학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민의 고된 삶에서 주님을 만나 새 삶을 사시는 집사님의 신앙 연륜이 깊지는 않지만 그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는 신실한 믿음의 본을 보이시며 등불 같은 삶을 사시는 모습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계십니다.

집사님!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훌륭하십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처럼 평생 동안 집안 대대로 교회를 모르고 살아오셨지만 주님을 만나고 나서 뿌리 깊었던 종교와의 과감한 단절을 하고 주변과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만 아니라 영생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품에 안착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094

8월 하순은 대추를 수확하는 날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여름의 끝자락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필자의 집 뜰에는 대추나무가 한 구루 있습니다. 27년 전 집을 사고 이사를 했을 때 교회 권사님 한분이 기념수를 선물하셨습니다. 당시는 그것이 그렇게 고마운 선물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대추나무를 선물하신 권사님의 사랑이 커가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과실수를 통한 수확의 기쁨을 알기에 4개월 전 교회당을 새로 구입하고 나서 교회 건물 주변에 20여개의 여러 종류의 과실 수를 심었습니다. 수년이 지나면 수확의 기쁨을 온 교우들이 함께 느껴 볼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대추나무를 심고 수년이 지난 후부터 여름마다 결실하기 시작했습니다.

20여년을 자란 작은 나무가 지금은 2층 지붕을 넘어 무성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나무가 커 가면서 해 마다 수확의 양도 불어갑니다. 금년에도 대추나무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가지가 휘어지고 꺾어질 정도로 많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8월 하순이면 대추를 수확해서 교회에 가지고 갑니다.

대추를 딸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추나무에는 크고 작은 가시가 많기 때문입니다. 조심을 한다고 하는데도 일을 마치고 나면 이곳저곳에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기 때문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대추를 따기 위해선 두 개의 사다리가 필요합니다. A 형 사다리와 긴 사다리가 필요합니다.

전에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것에 겁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몸이 둔해져서 인지 이제는 겁이 납니다. 그래서 오늘도 사다리에 오르기 전 주님께 먼저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려움 당하지 아니하고 대추를 딸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은혜로큰 상처 없이 일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긴 사다리를 장소를 이리 저리 옮기며 대추를 따는 동안 이마엔 구슬 같은 땀이 안경으로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이것을 받아 들고 기뻐하실 교우님들을 생각하면 절로 기쁨이 더합니다. 그러면서 작은 걱정이 되는 것은 행여나 대추를 나누는 과정에서 소외를 느끼는 분이 없기를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은 교회 여전도회 회장 권사님이 다른 것도 잘 하시지만 몫을 각 사람별로 나누는 것을 특별히 잘 하시기 때문에 나누는 것을 권사님께 맡기면 되기 때문입니다. 대추는 먹는 기쁨보다 보는 기쁨이 더 크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작은 봉지에 하나씩 담아 드리면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수확의 기쁨도 즐겁지만 나누는 기쁨 또한 기쁨이 배가 됩니다. 대추가 영글기 위해선 9 월 중순은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8월 하순에 수확을 하는 것은 수확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 익은 대추를 빼앗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 빼앗기느냐고요? 참세보다 더 작은 새들이 먹습니다.

그것도 잘 익은 부분만을 먹고 버립니다. 그럴 때면 마음이 상합니다. 이른 봄부터 거름을 주고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럽게 물을 뿌리며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반복되는 많은 수고를 햇것만 저들은 도적과 같아서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때가되면 날아와서 주인의 허락 없이 농사를 망처 버리기 때문입니다.

새뿐이 아닙니다. 다람쥐도 먹습니다. 어떻게 알고 어디에서 오는지 평소에는 눈에 뜨이지 아니하던 다람쥐가 대추가 익으면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그 외에도 덩치 큰 풍뎅이들이 날아와 대추나무를 점령합니다. 그래서 저들에게 한 해 농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덜 익은 대추지만 무르익기 전에 수확을 하는 것입니다.

대추나무를 통하여 농부의 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수확의 기쁨을 알게 하셨습니다. 나누는 기쁨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또 다른 수확의 기쁨을 기대하게 하셨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열매의 법칙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이 땅에서 뿌린 희생의 씨앗이 하늘에서 큰 결실로 되돌아 올 것을 기대하게 하셨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076

정우선 집사님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면서

얼마 전 Los Angeles 시 한 중간을 자동차로 운전을 하고 지나다가 7가와 8가 사이의 Beacon Ave에 위치한 붉은 색 높은 아파트를 발견하고서 차를 멈추어 세워야만 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에서 가장 어둡고 절망적이었던 때가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74년 7 월 UCLA 의과대학의 혈액학 주임교수 Nicola Costea 박사로부터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미국에 온지 9 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두 달 동안 병에 대한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비자를 발급해준 미 영사관 담당 영사님께 편지를 올렸습니다.

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미국을 방문해서 치료를 담당해준 병원 의사에게 더 치료의 경과를 지켜보게 해 달라는 간청이었습니다. 편지에 대한 회답이 2 주일 만에 왔습니다. 즉시 그 편지를 들고 비자 신청을 해서 당시로는 받기 어려운 Multiple Visa를 받고 미국에 왔습니다.

그러나 처음 미국을 방문할 때와는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처음 미국을 방문할 때는 초청해준 미국의 선교본부에서 병원치료비를 포함하여 일체의 체제 경비를 지불해 주었지만 두 번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비자를 받고나서 미 선교본부 한국 책임자에게 감사 인사차 방문을 했습니다.

서소문에 사무소를 둔 십자군연맹의 책임자는 내무부차관을 지낸 김득황 장로님이셨습니다. 다시 미국을 간다는 말에 어떻게 어려운 비자를 받았느냐고 물으면서 여권을 보자고 하셔서 여권을 드렸습니다. 김 장로님은 비자 상태를 확인한 후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고서 나의 여권을 그곳에 넣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권은 압수한다고 하시며 미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유를 묻자 “네가 미국에 다시 가면 한국에 지원되는 선교헌금의 내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고 하셨습니다. 1970년대 여권법은 외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면 공항에서 여권을 회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의 여권은 회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 영사님께 편지 할 때 여권도 함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의 여권은 일반 여권으로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여권이었습니다. 비자를 받고나서 김포공항으로 달려가 담당자에게 출국을 문의 했더니 이 여권으로는 미국을 갈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자는 살았지만 여권은 죽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시 가까운 우체국을 찾아가 청와대 육영수여사님께 그간의 내용을 기록한 속달 편지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수원 집으로 3 시간에 걸쳐서 완행버스를 타고 왔더니 청와대로부터 전보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일 아침 8시 반까지 외무부 제2 여권과장을 만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중앙청을 방문했습니다. 문 앞에는 여권과 여자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즉시 여권과장님께 인도되었고 나의 죽은 여권을 달라고 하시더니 아무런 질문도 없이 여권 두 번째 페이지에 4 각 도장을 찍어 주었습니다. 도장의 내용은 ‘이 여권은 유효함’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여권과장님은 미국을 잘 다녀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여권을 압수하고 미국에 갈 수 없다고 하신 김득황 장로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을 들이신 김 장로님이 제게 여권을 돌려주시면서 한 가지 약속을 해 주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지켜야 할 약속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이번에 미국에 들어가면 처음 초청해준 미 선교본부에 연락을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도착하고서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 선교본부에는 나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미국에 오고부터는 자력의 힘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 때 큰 도움을 주셨던 고마운 분이 계셨습니다. 당시 같은 교회에 출석하셨던 정우선 집사님이십니다. 그 분이 사시던 방은 Single Room이었는데 저에게 업혀 살 기회를 제공하신 겁니다. 당시의 제게는 희망이 없을 때입니다. 직장도 돈도 기댈 언덕도 없었던 가장 암울하고 힘들었던 때였습니다.

먹여주시고 재워주시고 머물게 해 주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당시의 내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뻔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청소도 할 줄 몰랐습니다. 고맙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나놓고 생각하니 정말로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정말로 머리 숙여 늦었지만 큰 감사를 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