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참 좋으시겠습니다. 살 맛 나시겠습니다. 감축 드립니다.” 위의 내용은 지난 주간에 동역자 친구 목사님이 필자에게 보내온 카톡 내용입니다. 매 주 화요일은 친구 목사 세 부부가 등산을 하는 날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건강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어 모두가 결심하고 건강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건강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저절로 주어지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됩니다. 원한다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특별히 주변에서 가까운 동역자들이 쓰러져 가는 것을 보면서 더욱 건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간해선 등산하는 그 날의 모임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일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을 할 수 없기에 그 이유를 카톡으로 전했습니다. 알라스카에 사는 둘째 딸 가족(다섯 식구가)이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딸 가족이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외손자 Ryan은 초등학교 5년입니다. 가을에 6학년이 됩니다. 손자가 그 학교의 축구 선수입니다. 그런데 2018년 알래스카 주에서 초등학교 대항 축구 시합에서 손자가 다니는 학교가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로인하여 금년 봄에는 시애틀에 초청 받아 그곳 지역 챔피언 학교와 시합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남가주 코로나 시에서 미 50개 주 전국 초등학교 대항 축구시합이 있어 지역의 명예를 가지고 선수와 부모들이 함께 오는 것입니다. 딸의 가족만 기뻐하고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사는 가족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일가친척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기뻐하지만 필자도 다르지 않습니다.
근처에 사는 손자들은 자주 볼 수 있지만 멀리 있어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월 11일부터 한 주간동안 이어지는 경기가 기다려지는 것입니다. 달려가서 모처럼 큰 소리로 응원도 할 것입니다.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 축구선수 주장을 해본 경험이 있어 그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처럼 기쁨이 벅차오릅니다.
오늘은 김밥 집을 들러 화요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되는 경기를 위하여 알래스카에서 오는 손자 학교 축구 선수들과 부모들이 함께 먹을 깁밥과 떡을 기쁨으로 넉넉하게 주문했습니다. 음료수는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큰 딸 가족이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기쁨은 손주를 가지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제게 “감축 한다며 살 맛 나시겠습니다”고 카톡을 보내온 친구 목사님은 당신도 필자와 같이 6명의 손 자녀들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 기쁨과 감동을 아시는 것입니다. 손 자녀들을 통하여 더욱 감사한 것은 다음 주 목요일에 큰 딸의 손녀가 중학교를 졸업을 합니다. 큰 손녀가 다니는 학교는 매그닛 학교입니다.
우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인데 그 학교에서 MVP 상을 받고 졸업을 하게 됩니다. 지난 2년 동안 학업성적이 All A를 받았고 특별활동에서도 크게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자랑과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도 감사 할 일인데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인 것을 알기에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손 자녀들을 축복하시는 것을 보면서 더 주님을 깊이 생각하게 되고 더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여야 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는 것은 시편 37편 25-26절의 말씀대로 자손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6월의 둘째 주일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손자들의 자랑스러운 일로 분주하고도 기쁨이 넘치는 한 주간이 될 것입니다.
수일 전 같은 교단을 섬기는 후배 목사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는 부탁의 내용이었습니다. 20 여 년 동안 교제 해 오면서 기도 요청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필자보다는 젊고 건강한 목사였으며 누구보다도 주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신실한 목회자로 인정받는 목사였습니다.
평소에 정직하고 경건한 목사였기에 기도를 부탁할 정도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심각한 문제로 본인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가 큰 시련에 처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 이식을 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받는 순간 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까운 주변 사람이 그런 일 당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마치 나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니 본인과 가정은 얼마나 큰 충격을 당하셨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것도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에게!
간을 이식할 정도라면 건강이 대단히 중한 상태입니다. 다른 치료 방법으로는 회복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치료지만 과정이 쉽지가 않습니다. 물론 현대 의학이 놀라우리만치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필자도 청소년 시절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주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났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가족 중 하나가 어려운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병과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고난이 당시는 힘들고 어려워 보여도 그것을 극복을 하고나면 복이 되지만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나기까지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하는데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병은 혼자서 싸워 이길 수 없는 병입니다. 가족이 하나가 되어야 하고, 주변이 한 마음이 되어야 하며, 교회가 하나가 되어서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간 이식은 단 기간에 치료가 끝나는 병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림과 투쟁이 필요합니다. 자기와의 끝임 없는 싸움에서 이기고 또 이겨야만 합니다. 절대로 초조해 하거나 조급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K 목사님, 반드시 병과 싸워 이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것처럼 가까운 시일에 다시 우리를 놀라게 해 주시길 요청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의 기도로 이렇게 어려운 병과 싸워 이겼습니다”라고 간증하는 날을 보게 해 주시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욥기 23장 10절의 말씀이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이 말씀이 목사님의 고백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지금까지 목사님의 가는 길을 지도하시고 이끌어 주셨던 주님이 그 날에도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존경하는 K 목사님! 두려워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주님이 곁에 계시잖아요! 사모님! 염려하지 마세요! 두 아들도 근심하지 마세요! K 목사님의 아버지 장로님과 어머니 권사님도 힘내세요! 주님이 기도하심 같이 우리도 기도 하고 교회도 기도하니까요! 우리가 고난을 당하지만 낙심하지 아니하는 것은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1 장 10절의 말씀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으로 목사님이 반드시 병과 싸워 크게 이기실 것을 믿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교회에 나와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은 예배 처소가 없어서 집에서 교회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9년 동안 한 교회를 섬겨오면서 지금까지 그런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달 교회가 새 장소로 이사 하므로 다시 사무실이 생겼습니다.
새 교회에서 필자가 사용하는 사무실은 창가에 있는 작은 방입니다. 33년 동안 교회로 사용했던 건물은 큰 대로변에 있었고 극장 건물이었기에 사무실로 사용하는 방에도 창문이 없어 항상 어둡고 답답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허락받은 공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조용하고 한가한 주택가 길 가에 있어 다른 느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창가로 오가는 차량은 물론이요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만 걷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개를 앞세우고 한가롭게 시간을 즐기며 걷는 사람들도 자주 봅니다. 교회가 위치한 길가는 차량이 많은 분주한 도로가 아닙니다. 주택가 도로이기에 비교적 한산하고 오가는 사람들도 많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창가 도로 변에 차들이 2-30분씩 쉬어가는 것이 자주 목격이 되고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차에서 내릴 때 그냥 내리지 않고 작은 가방들을 한 두 개씩 들고 내리는 것입니다. 돌아올 때는 빈 가방에 무언가를 채워가지고 돌아갑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반복해서 그런 광경을 보게 되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먼발치에서 차에서 내려 작은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의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 분들이 교회 옆 한가한 길에 차를 세우고 가는 곳은 마켓이었습니다.
Trader Joe’s 일명 유기농 제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마켓입니다. 필자도 걸어서 5 분 거리에 있는 그 마켓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놀란 것은 규모가 크지 않은데 반하여 손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대형 한인 마켓의 1/4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파킹장도 그리 넓지가 않아 손님들 중에는 주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생각이 되는 것은 마켓 근처에도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불락 약 300여 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우리 교회 앞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갈 때는 그렇다지만 물건을 사가지고 올 때는 무거운 것을 들고 옵니다. 나의 시선으로 바라 볼 때에 그런 미국인들의 일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바쁜 시간에 왜 저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은 어깨에 가방을 메고 양손에 무거운 것을 들고 힘들게 걷는 모습을 보면서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필자가 Trader Joe’s를 방문해 보니 주차장이 좁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 기다리면 차를 얼마든지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지 아니하고 먼 거리를 힘겹게 걷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 주변에 사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여유로움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처럼 시간에 쫓겨 사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즐기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여유로움을 통하여 생활에 필요한 물건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오고 가면서 건강도 챙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는 그런 여유로움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항상 분주하게 살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행동하려 했습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늘 쫓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마켓을 갈 때도 할 수 있다면 가장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주차 공간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먼저 세우려 했습니다. 속된 말로 빨리 빨리 그리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잘 사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서 세상을 사는 방법을 보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심을 합니다. 주일 교회에 와서도 좋은 자리, 가까운 자리에 주차하는 것이 당연한 나의 권리로만 생각하던 것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다리에 힘이 있을 때 그렇지 못한 어르신들을 위하여 좋은 자리를 배려하겠다는 것입니다.
“참 좋으시겠습니다, 살 맛 나시겠습니다”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목사님! 참 좋으시겠습니다. 살 맛 나시겠습니다. 감축 드립니다.” 위의 내용은 지난 주간에 동역자 친구 목사님이 필자에게 보내온 카톡 내용입니다. 매 주 화요일은 친구 목사 세 부부가 등산을 하는 날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건강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어 모두가 결심하고 건강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건강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저절로 주어지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됩니다. 원한다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특별히 주변에서 가까운 동역자들이 쓰러져 가는 것을 보면서 더욱 건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간해선 등산하는 그 날의 모임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일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을 할 수 없기에 그 이유를 카톡으로 전했습니다. 알라스카에 사는 둘째 딸 가족(다섯 식구가)이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딸 가족이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외손자 Ryan은 초등학교 5년입니다. 가을에 6학년이 됩니다. 손자가 그 학교의 축구 선수입니다. 그런데 2018년 알래스카 주에서 초등학교 대항 축구 시합에서 손자가 다니는 학교가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로인하여 금년 봄에는 시애틀에 초청 받아 그곳 지역 챔피언 학교와 시합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남가주 코로나 시에서 미 50개 주 전국 초등학교 대항 축구시합이 있어 지역의 명예를 가지고 선수와 부모들이 함께 오는 것입니다. 딸의 가족만 기뻐하고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사는 가족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일가친척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기뻐하지만 필자도 다르지 않습니다.
근처에 사는 손자들은 자주 볼 수 있지만 멀리 있어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월 11일부터 한 주간동안 이어지는 경기가 기다려지는 것입니다. 달려가서 모처럼 큰 소리로 응원도 할 것입니다.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 축구선수 주장을 해본 경험이 있어 그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처럼 기쁨이 벅차오릅니다.
오늘은 김밥 집을 들러 화요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되는 경기를 위하여 알래스카에서 오는 손자 학교 축구 선수들과 부모들이 함께 먹을 깁밥과 떡을 기쁨으로 넉넉하게 주문했습니다. 음료수는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큰 딸 가족이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기쁨은 손주를 가지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제게 “감축 한다며 살 맛 나시겠습니다”고 카톡을 보내온 친구 목사님은 당신도 필자와 같이 6명의 손 자녀들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 기쁨과 감동을 아시는 것입니다. 손 자녀들을 통하여 더욱 감사한 것은 다음 주 목요일에 큰 딸의 손녀가 중학교를 졸업을 합니다. 큰 손녀가 다니는 학교는 매그닛 학교입니다.
우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인데 그 학교에서 MVP 상을 받고 졸업을 하게 됩니다. 지난 2년 동안 학업성적이 All A를 받았고 특별활동에서도 크게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자랑과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도 감사 할 일인데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인 것을 알기에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손 자녀들을 축복하시는 것을 보면서 더 주님을 깊이 생각하게 되고 더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여야 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는 것은 시편 37편 25-26절의 말씀대로 자손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6월의 둘째 주일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손자들의 자랑스러운 일로 분주하고도 기쁨이 넘치는 한 주간이 될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런 은혜와 복을 주셔서!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971
간 이식을 기다리는 목회자의 아픔을 보면서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수일 전 같은 교단을 섬기는 후배 목사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는 부탁의 내용이었습니다. 20 여 년 동안 교제 해 오면서 기도 요청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필자보다는 젊고 건강한 목사였으며 누구보다도 주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신실한 목회자로 인정받는 목사였습니다.
평소에 정직하고 경건한 목사였기에 기도를 부탁할 정도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심각한 문제로 본인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가 큰 시련에 처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 이식을 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받는 순간 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까운 주변 사람이 그런 일 당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마치 나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니 본인과 가정은 얼마나 큰 충격을 당하셨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것도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에게!
간을 이식할 정도라면 건강이 대단히 중한 상태입니다. 다른 치료 방법으로는 회복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치료지만 과정이 쉽지가 않습니다. 물론 현대 의학이 놀라우리만치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필자도 청소년 시절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주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났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가족 중 하나가 어려운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병과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고난이 당시는 힘들고 어려워 보여도 그것을 극복을 하고나면 복이 되지만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나기까지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하는데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병은 혼자서 싸워 이길 수 없는 병입니다. 가족이 하나가 되어야 하고, 주변이 한 마음이 되어야 하며, 교회가 하나가 되어서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간 이식은 단 기간에 치료가 끝나는 병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림과 투쟁이 필요합니다. 자기와의 끝임 없는 싸움에서 이기고 또 이겨야만 합니다. 절대로 초조해 하거나 조급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K 목사님, 반드시 병과 싸워 이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것처럼 가까운 시일에 다시 우리를 놀라게 해 주시길 요청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의 기도로 이렇게 어려운 병과 싸워 이겼습니다”라고 간증하는 날을 보게 해 주시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욥기 23장 10절의 말씀이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이 말씀이 목사님의 고백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지금까지 목사님의 가는 길을 지도하시고 이끌어 주셨던 주님이 그 날에도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존경하는 K 목사님! 두려워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주님이 곁에 계시잖아요! 사모님! 염려하지 마세요! 두 아들도 근심하지 마세요! K 목사님의 아버지 장로님과 어머니 권사님도 힘내세요! 주님이 기도하심 같이 우리도 기도 하고 교회도 기도하니까요! 우리가 고난을 당하지만 낙심하지 아니하는 것은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1 장 10절의 말씀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으로 목사님이 반드시 병과 싸워 크게 이기실 것을 믿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951
보통 미국인들의 생활의 여유로움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특별한 일이 없는 한 교회에 나와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은 예배 처소가 없어서 집에서 교회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9년 동안 한 교회를 섬겨오면서 지금까지 그런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달 교회가 새 장소로 이사 하므로 다시 사무실이 생겼습니다.
새 교회에서 필자가 사용하는 사무실은 창가에 있는 작은 방입니다. 33년 동안 교회로 사용했던 건물은 큰 대로변에 있었고 극장 건물이었기에 사무실로 사용하는 방에도 창문이 없어 항상 어둡고 답답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허락받은 공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조용하고 한가한 주택가 길 가에 있어 다른 느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창가로 오가는 차량은 물론이요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만 걷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개를 앞세우고 한가롭게 시간을 즐기며 걷는 사람들도 자주 봅니다. 교회가 위치한 길가는 차량이 많은 분주한 도로가 아닙니다. 주택가 도로이기에 비교적 한산하고 오가는 사람들도 많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창가 도로 변에 차들이 2-30분씩 쉬어가는 것이 자주 목격이 되고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차에서 내릴 때 그냥 내리지 않고 작은 가방들을 한 두 개씩 들고 내리는 것입니다. 돌아올 때는 빈 가방에 무언가를 채워가지고 돌아갑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반복해서 그런 광경을 보게 되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먼발치에서 차에서 내려 작은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의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 분들이 교회 옆 한가한 길에 차를 세우고 가는 곳은 마켓이었습니다.
Trader Joe’s 일명 유기농 제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마켓입니다. 필자도 걸어서 5 분 거리에 있는 그 마켓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놀란 것은 규모가 크지 않은데 반하여 손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대형 한인 마켓의 1/4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파킹장도 그리 넓지가 않아 손님들 중에는 주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생각이 되는 것은 마켓 근처에도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불락 약 300여 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우리 교회 앞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갈 때는 그렇다지만 물건을 사가지고 올 때는 무거운 것을 들고 옵니다. 나의 시선으로 바라 볼 때에 그런 미국인들의 일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바쁜 시간에 왜 저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은 어깨에 가방을 메고 양손에 무거운 것을 들고 힘들게 걷는 모습을 보면서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필자가 Trader Joe’s를 방문해 보니 주차장이 좁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 기다리면 차를 얼마든지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지 아니하고 먼 거리를 힘겹게 걷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 주변에 사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여유로움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처럼 시간에 쫓겨 사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즐기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여유로움을 통하여 생활에 필요한 물건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오고 가면서 건강도 챙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는 그런 여유로움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항상 분주하게 살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행동하려 했습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늘 쫓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마켓을 갈 때도 할 수 있다면 가장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주차 공간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먼저 세우려 했습니다. 속된 말로 빨리 빨리 그리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잘 사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서 세상을 사는 방법을 보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심을 합니다. 주일 교회에 와서도 좋은 자리, 가까운 자리에 주차하는 것이 당연한 나의 권리로만 생각하던 것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다리에 힘이 있을 때 그렇지 못한 어르신들을 위하여 좋은 자리를 배려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