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로 새 성전을 허락 받은 지 세 주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33년 동안 사용해 오더 교회 건물을 매각하고 새 성전을 물색할 때에 지난 3 개월 동안 20여 곳의 건물을 부동산 중개인의 안내로 방문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예배 처소를 준비하지 못해 약간의 어려움을 당해야 했습니다.
주일 오후 1시 반 예배를 빌려 주기로 한 이웃 교회에서 갑자기 보험 증서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일 오후 예배를 사용하기로 한 곳은 오랜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수개월 이내 새 건물을 찾을 줄 알아서 수개월만 사용키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수개월 동안 보험을 들어주는 곳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단 기간 동안 보험을 드는 것도 쉽지 않지만 보험을 들려면 적어도 한두 주일은 샤핑을 하고 계약을 해야 하는데 당장 증서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결국 빌려 사용키로 한 교회와의 구두 계약은 취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필자의 집 리빙룸에서 불편하지만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예배드린 지 3개월 만에 South Pasadena 중심에 위치한 지금의 교회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마음에 드는 건물이 3-4곳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한다고 매매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판매자가 원하는 조건과 우리가 원하는 조건이 일치하는 것이 생각대로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 중 한 곳은 양자의 조건이 일치하여 순조롭게 건물을 이양 받는 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건물을 팔길 원했던 미국교회 교인들이 매입자가 결정이 되었다는 말에 환영하는 교인들도 있었지만, 일부 교인들은 반대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계속되는 회의 결과로 팔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에 낙심이 되는 듯 했습니다.
3개월 동안 쉬지 않고 기도해 왔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교회당을 매입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 의지, 계획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방법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러 이러한 건물과 어떤 지역의 건물을 주시길 위해서 기도하던 내용을 중단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도우심을 받겠습니다. 주님이 일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주님이 결정하시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꼭 성사 될 줄 알았던 교회 건물이 최종적으로 거부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두 시간 동안 맥이 풀린 상태로 지쳐 있을 때 지금의 교회 건물에 대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25분 동안 운전을 하고서 생각 없이 달려갔습니다. 도착하고서 교회당 안을 들러보고 나서 놀라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아름다운 교회건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매입 금액도 그 동안 우리가 보아온 건물에 비하면 너무 좋은 값에 나왔습니다.
지체하지 아니하고 즉시 매입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판매가 보다 더 많은 돈을 더해서 오파를 넣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10일 만에 에스크로스가 오픈 되었고, 그로부터 18일 만에 모든 절차를 마치고 열쇠를 받았습니다. 통상적으로는 에스크로 기간이 40여일 이상 걸리는데 반하여 속히 끝날 수 있었던 것은 매입대금을 전액 현찰로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교회 건물 페이먼트가 없는 교회를 하나님께 선물 받은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하여 분명하게 안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길을 예비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 처소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지금의 성전을 우리가 받게 된 것이 사람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서 계획하시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겁니다. 우리 중 누구도 이 교회당을 살 생각도 꿈도 계획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주님이 그 일을 지도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우리가 한 것은 순종뿐이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주님에 대한 신뢰가 더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고 지금도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보다 앞서 가시어 일하시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이 우리 예배를 얼마나 기쁘게 받으실 뿐 아니라 매 시간 기다리심을 느낄 수 있어, 교회를 향하는 마음이 즐겁고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지난 화요일 세 번째 산에 올랐다. 오후 3시에 약속한 장소에 동역자 3 목사님 부부가 모여서 함께 등산을 한 것이다. 두 분의 목사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부부가 오래전부터 등산을 통하여 약해진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면서 제게도 동참할 것을 여러 차례 권하여 마지못해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산에 오르는 횟수가 더하여 가면서 왜 이렇게 좋은 것을 지금까지 몰랐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목사님은 오래전부터 산을 오르셨기에 크게 힘들어 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처음 경험하는 나는 앞서가는 두 분을 따라가는 것이 힘에 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올라가서 내려오는 시간을 합하면 3 – 4 시간이 소요 되는 것은 몇 번 쉬어 가기 때문인데 그래도 온 몸에 구슬땀이 촉촉이 흘러내리는 것이다. 올라가다 보면 중단하고 싶은 때도 있고 돌아가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인내하면서 끝까지 산행을 마치고 나면 몸과 마음이 그렇게 가볍고 상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등산을 하고 온 다음 날 아침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신선함과 그동안 자고 나도 몸이 무겁고 무기력했던 것이 사라지는 기쁨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음 번 산행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우리가 택한 등산길은 로스앤젤레스 한 복판에 위치한 그리피스공원 동쪽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LA에서 50년 가까이 살기에 나름대로 LA에 대해서 제법 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산에 오르면서 인생이 지렁이와 같다는 이사야 성경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렁이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흙을 다 먹지 못하고 죽는 것처럼 우리도 아무리 오래 살아도 세상을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도 가보지 아니한 길이 셀 수 없이 많으며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 오르면 다운타운의 건물들이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이며 멀리 서부 해안의 아름다운 바닷물이 햇살에 은빛으로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눈을 뒤로 돌리면 Glendale 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산에 올라서 오랫동안 잊었던 45년 전의 기억이 되 살아나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할 수 있었다. 미국에 온 것은 한국에서 치료할 수 없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나의 병을 치료할 병원은 없었다. 한국을 떠날 때에는 미네소타 주에 있는 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그런데 계획대로 되지 못했다. 나중에 안 것은 그 곳 병원에서도 치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를 초청해준 미 선교본부가 UCLA 의과대학으로 보낸 것이다. 이곳에 머문 지 6-7개원 만에 혼자 시내버스를 타고 걸으며 처음 그리피스 공원 천문대에 올라서 광활하게 펼쳐진 LA 시를 내려다보게 된 것이다.
그 때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첫째는 저렇게 많은 집들 가운데 내가 들어갈 집이 없다는 생각이 서글프게 다가온 것이다. 두 번째는 사방으로 곧게 뻗은 차로를 따라 빠르게 달려가는 여러 가지 모양과 색깔의 크고 작은 많은 자동차들 가운데 나의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살아생전에 나도 자동차를 운전할 수는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나의 삶이 촌각에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평생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이 46년을 이곳에서 살아오면서 그 때 꿈꾸던 것 이상으로 모든 것을 이루게 하셨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어떻게 이 자리까지 인도하셨는가?
나는 나의 노력으로, 나의 실력으로, 나의 수고로 지금 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축복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나도 나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있었고, 누구도 나의 운명을 바꾸게 할 사람이 없을 것으로 생각을 했었다. 그런 나를 고치시고 살리셨다.
그리고 가정을 주시고 자녀를 주시고 차도 주시고 집도 주시고 주의 종으로 세우시며 섬길 교회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주님을 무한 신뢰하며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100% 믿게 되는 것이다. 나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마다 주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느끼며 감사하는 것이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2-18 14:59:012020-02-18 15:08:51산에 오르고 나서 느끼는 상쾌한 기쁨!
얼마 전 한국기독교 TV 방송국에서 방영한 “암치료를 거부한 이어령 교수님의 간증” 1편과 2편을 관심 있게 보고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되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당하는 시련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이 죽음의 그림자라고 생각을 하는 것은 필자도 청소년 시절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이유는 세상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것으로 죽음을 통하여 그 나라에 준비된 자가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죽어도 자신은 죽지 않을 것 같은 착각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죽음이 다가오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싸워 이길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를 향하여 무섭게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 도망가지 못합니다. 나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죽음과 싸워 이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을 이기시고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심은 천지창조에 버금가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놀라운 것은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미리 말씀하신 겁니다. 세상 어느 위대한 인물도 자신이 세상에 태어날 것을 수천 년부터 말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언한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 이루고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 때와 장소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던 대로 사셨고 말씀하신 대로 죽으셨으며 말씀하신대로 죽은 지 3일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기독교가 세상 종교와 다른 것이 이것입니다. 기독교가 모든 종교보다 뛰어난 것은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이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축복인 것은 우리가 부활한 이후 다시 죽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죽지 않을까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제한된 우리의 생명이 하늘의 천사들처럼 영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서 오라비의 죽음으로 크게 낙심하고 슬퍼하는 마르다의 집을 방문하시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말씀은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게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물으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크게 감사드리는 것은 이 말씀을 믿어지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나의 지혜로 믿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상주하시어 이 말씀이 믿어지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로 성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믿습니다. 천국을 장소적으로 믿습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을 나는 다 믿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의 간증이 내가 믿는 주님에 대한 고백이기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간증을 들으면서 마음에 작은 아쉬움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이어령 교수님이 암을 극복하고 우리 곁에 오래도록 살아 계시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혼탁한 이 시대의 어두운 밤을 비추는 등대와 같은 삶으로 살아 오셨습니다. 87세의 나이면 살만큼 사셨다고 하셨지만 그렇다고 오는 죽음을 그대로 기다릴 수는 없으십니다.
이 교수님의 삶은 혼자만의 삶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수님에게 많은 지혜와 지식을 주시고 지금까지 올곧은 삶을 살게 하신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더 큰 일을 하시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주변에 이어령 교수님과 같은 고령의 나이에 죽음과 힘들게 싸우고 계시는 많은 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시기 바랍니다.
병원을 방문하여 한번 치료 받는 시간이 6-7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차라리 그 시간에 못 다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일반 사람은 생각지 못하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교수님을 바라보는 많은 분들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의 건강을 도울 지혜로운 의료인들과 시설을 예비하셨습니다.
나의 몸이 나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성전이기에 건강을 지키는 것도 주의 일입니다.
새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의 감동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하나님의 은혜로 새 성전을 허락 받은 지 세 주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33년 동안 사용해 오더 교회 건물을 매각하고 새 성전을 물색할 때에 지난 3 개월 동안 20여 곳의 건물을 부동산 중개인의 안내로 방문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예배 처소를 준비하지 못해 약간의 어려움을 당해야 했습니다.
주일 오후 1시 반 예배를 빌려 주기로 한 이웃 교회에서 갑자기 보험 증서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일 오후 예배를 사용하기로 한 곳은 오랜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수개월 이내 새 건물을 찾을 줄 알아서 수개월만 사용키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수개월 동안 보험을 들어주는 곳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단 기간 동안 보험을 드는 것도 쉽지 않지만 보험을 들려면 적어도 한두 주일은 샤핑을 하고 계약을 해야 하는데 당장 증서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결국 빌려 사용키로 한 교회와의 구두 계약은 취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필자의 집 리빙룸에서 불편하지만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예배드린 지 3개월 만에 South Pasadena 중심에 위치한 지금의 교회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마음에 드는 건물이 3-4곳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한다고 매매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판매자가 원하는 조건과 우리가 원하는 조건이 일치하는 것이 생각대로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 중 한 곳은 양자의 조건이 일치하여 순조롭게 건물을 이양 받는 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건물을 팔길 원했던 미국교회 교인들이 매입자가 결정이 되었다는 말에 환영하는 교인들도 있었지만, 일부 교인들은 반대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계속되는 회의 결과로 팔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에 낙심이 되는 듯 했습니다.
3개월 동안 쉬지 않고 기도해 왔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교회당을 매입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 의지, 계획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방법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러 이러한 건물과 어떤 지역의 건물을 주시길 위해서 기도하던 내용을 중단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도우심을 받겠습니다. 주님이 일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주님이 결정하시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꼭 성사 될 줄 알았던 교회 건물이 최종적으로 거부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두 시간 동안 맥이 풀린 상태로 지쳐 있을 때 지금의 교회 건물에 대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25분 동안 운전을 하고서 생각 없이 달려갔습니다. 도착하고서 교회당 안을 들러보고 나서 놀라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아름다운 교회건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매입 금액도 그 동안 우리가 보아온 건물에 비하면 너무 좋은 값에 나왔습니다.
지체하지 아니하고 즉시 매입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판매가 보다 더 많은 돈을 더해서 오파를 넣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10일 만에 에스크로스가 오픈 되었고, 그로부터 18일 만에 모든 절차를 마치고 열쇠를 받았습니다. 통상적으로는 에스크로 기간이 40여일 이상 걸리는데 반하여 속히 끝날 수 있었던 것은 매입대금을 전액 현찰로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교회 건물 페이먼트가 없는 교회를 하나님께 선물 받은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하여 분명하게 안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길을 예비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 처소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지금의 성전을 우리가 받게 된 것이 사람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서 계획하시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겁니다. 우리 중 누구도 이 교회당을 살 생각도 꿈도 계획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주님이 그 일을 지도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우리가 한 것은 순종뿐이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주님에 대한 신뢰가 더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고 지금도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보다 앞서 가시어 일하시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이 우리 예배를 얼마나 기쁘게 받으실 뿐 아니라 매 시간 기다리심을 느낄 수 있어, 교회를 향하는 마음이 즐겁고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927
산에 오르고 나서 느끼는 상쾌한 기쁨!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지난 화요일 세 번째 산에 올랐다. 오후 3시에 약속한 장소에 동역자 3 목사님 부부가 모여서 함께 등산을 한 것이다. 두 분의 목사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부부가 오래전부터 등산을 통하여 약해진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면서 제게도 동참할 것을 여러 차례 권하여 마지못해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산에 오르는 횟수가 더하여 가면서 왜 이렇게 좋은 것을 지금까지 몰랐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목사님은 오래전부터 산을 오르셨기에 크게 힘들어 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처음 경험하는 나는 앞서가는 두 분을 따라가는 것이 힘에 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올라가서 내려오는 시간을 합하면 3 – 4 시간이 소요 되는 것은 몇 번 쉬어 가기 때문인데 그래도 온 몸에 구슬땀이 촉촉이 흘러내리는 것이다. 올라가다 보면 중단하고 싶은 때도 있고 돌아가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인내하면서 끝까지 산행을 마치고 나면 몸과 마음이 그렇게 가볍고 상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등산을 하고 온 다음 날 아침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신선함과 그동안 자고 나도 몸이 무겁고 무기력했던 것이 사라지는 기쁨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음 번 산행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우리가 택한 등산길은 로스앤젤레스 한 복판에 위치한 그리피스공원 동쪽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LA에서 50년 가까이 살기에 나름대로 LA에 대해서 제법 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산에 오르면서 인생이 지렁이와 같다는 이사야 성경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렁이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흙을 다 먹지 못하고 죽는 것처럼 우리도 아무리 오래 살아도 세상을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도 가보지 아니한 길이 셀 수 없이 많으며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 오르면 다운타운의 건물들이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이며 멀리 서부 해안의 아름다운 바닷물이 햇살에 은빛으로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눈을 뒤로 돌리면 Glendale 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산에 올라서 오랫동안 잊었던 45년 전의 기억이 되 살아나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할 수 있었다. 미국에 온 것은 한국에서 치료할 수 없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나의 병을 치료할 병원은 없었다. 한국을 떠날 때에는 미네소타 주에 있는 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그런데 계획대로 되지 못했다. 나중에 안 것은 그 곳 병원에서도 치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를 초청해준 미 선교본부가 UCLA 의과대학으로 보낸 것이다. 이곳에 머문 지 6-7개원 만에 혼자 시내버스를 타고 걸으며 처음 그리피스 공원 천문대에 올라서 광활하게 펼쳐진 LA 시를 내려다보게 된 것이다.
그 때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첫째는 저렇게 많은 집들 가운데 내가 들어갈 집이 없다는 생각이 서글프게 다가온 것이다. 두 번째는 사방으로 곧게 뻗은 차로를 따라 빠르게 달려가는 여러 가지 모양과 색깔의 크고 작은 많은 자동차들 가운데 나의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살아생전에 나도 자동차를 운전할 수는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나의 삶이 촌각에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평생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이 46년을 이곳에서 살아오면서 그 때 꿈꾸던 것 이상으로 모든 것을 이루게 하셨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어떻게 이 자리까지 인도하셨는가?
나는 나의 노력으로, 나의 실력으로, 나의 수고로 지금 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축복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나도 나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있었고, 누구도 나의 운명을 바꾸게 할 사람이 없을 것으로 생각을 했었다. 그런 나를 고치시고 살리셨다.
그리고 가정을 주시고 자녀를 주시고 차도 주시고 집도 주시고 주의 종으로 세우시며 섬길 교회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주님을 무한 신뢰하며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100% 믿게 되는 것이다. 나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마다 주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느끼며 감사하는 것이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917
암 치료를 거부한 이어령 교수님의 간증을 듣고서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얼마 전 한국기독교 TV 방송국에서 방영한 “암치료를 거부한 이어령 교수님의 간증” 1편과 2편을 관심 있게 보고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되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당하는 시련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이 죽음의 그림자라고 생각을 하는 것은 필자도 청소년 시절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이유는 세상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것으로 죽음을 통하여 그 나라에 준비된 자가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죽어도 자신은 죽지 않을 것 같은 착각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죽음이 다가오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싸워 이길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를 향하여 무섭게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 도망가지 못합니다. 나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죽음과 싸워 이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을 이기시고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심은 천지창조에 버금가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놀라운 것은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미리 말씀하신 겁니다. 세상 어느 위대한 인물도 자신이 세상에 태어날 것을 수천 년부터 말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언한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 이루고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 때와 장소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던 대로 사셨고 말씀하신 대로 죽으셨으며 말씀하신대로 죽은 지 3일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기독교가 세상 종교와 다른 것이 이것입니다. 기독교가 모든 종교보다 뛰어난 것은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이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축복인 것은 우리가 부활한 이후 다시 죽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죽지 않을까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제한된 우리의 생명이 하늘의 천사들처럼 영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서 오라비의 죽음으로 크게 낙심하고 슬퍼하는 마르다의 집을 방문하시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말씀은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게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물으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크게 감사드리는 것은 이 말씀을 믿어지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나의 지혜로 믿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상주하시어 이 말씀이 믿어지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로 성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믿습니다. 천국을 장소적으로 믿습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을 나는 다 믿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의 간증이 내가 믿는 주님에 대한 고백이기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간증을 들으면서 마음에 작은 아쉬움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이어령 교수님이 암을 극복하고 우리 곁에 오래도록 살아 계시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혼탁한 이 시대의 어두운 밤을 비추는 등대와 같은 삶으로 살아 오셨습니다. 87세의 나이면 살만큼 사셨다고 하셨지만 그렇다고 오는 죽음을 그대로 기다릴 수는 없으십니다.
이 교수님의 삶은 혼자만의 삶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수님에게 많은 지혜와 지식을 주시고 지금까지 올곧은 삶을 살게 하신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더 큰 일을 하시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주변에 이어령 교수님과 같은 고령의 나이에 죽음과 힘들게 싸우고 계시는 많은 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시기 바랍니다.
병원을 방문하여 한번 치료 받는 시간이 6-7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차라리 그 시간에 못 다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일반 사람은 생각지 못하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교수님을 바라보는 많은 분들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의 건강을 도울 지혜로운 의료인들과 시설을 예비하셨습니다.
나의 몸이 나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성전이기에 건강을 지키는 것도 주의 일입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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