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교회를 설립하고서 첫 주일 예배를 드린 곳은 다저스 야구장이 있는 엘리시안 공원 이었습니다. 1981년 1월의 첫 주일이었습니다. 당시 공원은 싸늘한 겨울 날씨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한산했습니다. 개척을 하는 교회마다 예배 처소 구하기가 지금도 쉽지 않지만 당시도 그러했습니다.
예배처소를 구하기까지 2달 동안 공원 예배가 계속되었습니다. 11시 예배 후 같은 장소에서 점심을 나눈 후 곧 바로 오후 예배까지 드렸습니다. 어느 주일에는 비가 내린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당시의 교인들이 비를 피해가면서 공원 예배드리는 것에 대하여 불평하거나 불만을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두 달 만인 3월 첫 주일에 예배 처소로 허락받은 곳은 침례교회에 속한 흑인 교회당이었습니다. 예배 시간은 주일 오후 1 시 30분이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주일 저녁 7시와 수요일 밤 7시, 그리고 매일 새벽기도까지 허락을 받았습니다. 예배 당 사용 시간으로 보면 흑인 교회보다 우리가 더 많이 사용한 것입니다.
5년 2개월 동안 그 교회를 사용하고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교회당 건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 건물을 주시기 위해서 기도를 하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부산 수영로교회를 담임하시는 정필도 목사님 때문이었습니다. 정 목사님이 저희교회 처음 외부 강사로 오셔서 한 시간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부산에서 수영로교회를 개척하고서 교회 건물을 주시기 위해서 기도한대로 하나님이 주신 응답에 대한 간증이었습니다. 그 간증을 듣기 전까지는 교회당을 달라고 기도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형편이 너무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신 분이시고 크신 분이십니다.
곧 바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영로교회의 기도를 들으시고 축복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예배당을 주시옵소서! 공적인 예배 시간마다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매 주일 새벽 기도회가 끝나면 기도회에 참석한 교우들이 흑인 교회당 건물을 한 바퀴 돌고서 기도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4년 여 동안 기도를 해 오던 중 어느 날 흑인 교회 교인들이 새벽에 교회당을 도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긴 것입니다. 흑인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이 정중하게 묻었습니다. “주일 새벽 기도를 마친 후 목사님이 앞에 서서 교인들을 인솔하고 교회당을 한 바퀴 도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회당 건물을 우리에게 주시길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특별한 반응이 없이 듣고 마는 줄 알았습니다. 3-4개월이 지난 후 어느 날 흑인교회 목사님이 정말로 이 교회당을 인수 받기를 원하느냐고 질문을 해 왔습니다. 이 건물을 팔고 흑인이 많이 사는 곳으로 이사를 가려는 계획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수하기로 하고 가격 흥정에 들어갔습니다. 132만 불에서 출발한 가격이 몇 달 동안의 흥정으로 920,5000불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건축위원회를 구성하고 미국교회와 매매 계약 서류에 싸인을 했습니다. 당시 계약금으로 2000불을 지불했지만 은행에는 잔고가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3 개월 후 다운페이먼트로 20만 불을 지불을 해야만 하기에 교회 앞에 그 간의 사정을 알리고 특별 헌금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 건축위원회 위원이며 피택장로였던 P 집사님이 반기를 든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강도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돈을 가진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3개월 이내에 20만 불의 돈을 만들어 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이 교회를 더 이상 나오지 않겠다고 여러 교인들 앞에서 선포하고 교회당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자신이 낸 2000불의 건축헌금도 돌려달라고 해서 당회의 결의로 되돌려 주었습니다.
문제는 P 집사님 한분으로 그치고 만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의 뒤를 따라 여러 가정이 교회를 떠난 것입니다. 건축헌금을 할 수 있는 분으로 믿었던 분들이 떠나간 것입니다. 다음 주일이었습니다. 예배 당 안은 썰렁했습니다. 남은 교인들의 숫자보다 나간 교인들의 숫자가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서 처음으로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너무 낙심이 되어서 할 말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 때 K 장로님이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목사님! 우리 다시 개척하는 겁니다. 다시 시작하십니다.” 그 때 장로님의 그 말씀이 아니었으면 다시 일어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아모스 5 장 4 절과 8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좋아하는 이유는 죽음의 그림자가 왔을 때 나를 살리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삶에 대한 희망이 없었습니다. 자고 나면 생각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만나는 의료인들이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남은 생명이 몇 개월 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밤에 죽으면 흰 천에 덮여 차가운 시체실로 들어가야 합니다.
영구차에 실려 고향 땅 선산에 묻히게 될 때 나의 몸을 부둥켜 앉고 통곡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질 듯 했었고, 친구 중 산까지 올라와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하면 한 밤 중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앉고 일어서는 것도 힘이 들었고 조금만 언덕진 길을 걸어도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했습니다.
온 몸은 피멍으로 얼룩져 있었고 몸에서 한 번 피가 흐리기 시작하면 멈추질 않아 응급실로 시도 때도 없이 달려가야만 했습니다. 피의 응고작용을 하는 혈소판이 정상치의 수백분의 일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몸에서 피를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에 반복해서 수혈을 하지 아니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유롭지 못한 가정 형편상 더 이상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상황에서 어머님과 남은 가족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선한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정 형편도 돕고 반복되는 두려움과 견디기 어려운 아픔도 끝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단이 서자 즉시 실행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받은 약이 있습니다. 엽산인데 세병을 땅 바닥에 쏟아 모으고 입으로 집어넣었습니다. 맨 입에 잘 넘어가지 않았지만 600알 정도의 알약을 여러 번에 걸쳐서 삼켰습니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음 날 깨어난 것입니다. 약으로 실패한 후 다시는 약으로 죽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두 번째 방법이었습니다. 집에서 40-50미터 떨어진 곳에 국도가 있었습니다. 큰 차들이 오고 가는 곳입니다. 큰 차에 달려들면 쉽게 죽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버스나 대형 트럭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마주 오는 차를 향하여 눈을 감은 채 몸을 던진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를 않았습니다. 며칠 그런 시도를 하다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운수업을 하는 분들과 운전하시는 분에게 큰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생각한 것이 물에 빠져 죽자는 것이었습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몸에 상처하나 입지 아니하고 죽었습니다. 집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호수가 있습니다. 긴 호수 제방 뚝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물속을 내려다봅니다. 이제 여기가 나의 삶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결단하고 몇 미터만 내려가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죽어야만 하는가? 이렇게 살고 싶은데! 누가 날 살려 주세요! 나는 살고 싶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큰 소리로 반복해서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오길 시작합니다. 이 제방의 둑이 만들어져 큰물이 모인 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들었던 분들을 보지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이전 어르신들이 만드신 것입니다. 저 눈 앞에 보이는 도로 양편에 즐비하게 늘어선 가로수들도 저절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심어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늘의 해와 달 별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디자인 하시고 자리를 지키게 하시며 운행하시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 능력으로 나를 살려 주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절대자가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의학이나 병원이 할 수 없는 것도 그 분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그 능력으로 나를 살려달라고 온 힘을 다하여 부르짖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 때 나의 몸이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하면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길 시작합니다. 그렇게 많은 눈물을 지금까지도 흘려보지 못했습니다. 긴 시간이 지나간 후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마음의 평안이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의 문전에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만져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47년이 지났지만 수혈을 받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당시 세브란스병원의 한지숙 박사님이 변화된 나의 건강 상태를 가지고 일본 혈액학회에 가서 보고했지만 치료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지 못한 것은 이전에 그런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지 알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보이지 않은 손에 이끌려 미국에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UCLA 의과대학 혈액학 주임교수이신 Nicolas Costea 박사님께 인도 되었고 미국에 온지 8-9개월 만에 완치 지단을 받은 것입니다. 그 때 박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너의 병이 어떻게 나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의학적으로 완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고 낮과 밤을 바꾸시는 그 이름이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지 아니했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러하셨듯이 앞으로 계속 동행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2-13 14:51:002020-02-13 14:51:00세 번의 자살 시도 후 부르짖은 아모스의 기도
팜데일 기도원은 미국인이 운영하는 기도원이지만 당시만 해도 한인이 운영하는 기도원이 없어서 한인들도 그곳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필자가 그곳에서 기도할 때 몇 분이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크리스찬투데이 발행인이신 서종천 목사님과 다우니 지역에서(특수사역) 장의사를 운영하시는 정영목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두 분은 일주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당시 기도하시던 분 가운데 나에게 큰 은혜를 주신 분은 박대희 목사님 이셨습니다. 박대희 목사님은 80년대 초 한인 이민사회에서 손꼽히는 대형교회중 하나인 나성한인감리교회를 담임하고 계셨습니다. 장년 교인이 400여명이나 되는 큰 교회를 섬기고 계셨습니다.
기도원에 올라오는 사람마다 특별한 기도의 제목으로 금식을 하지만 박대희 목사님은 우리들과 같은 내용의 기도를 하시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이미 박대희 목사님은 모든 것을 다 이루신 분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저녁에 기도원에 오신 이유에 대해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휴가차 기도원에 쉬러 오신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의 박 목사님은 은퇴를 몇 년 앞두고 계셨습니다. 평생 목회를 해 오시면서 늘 마음에 소원을 가진 것이 있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처럼 신유의 은사 받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방언의 은사도 받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설교의 능력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강단에서 설교할 때마다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 받는 능력을 사모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도를 가질 수 없을 것 같아 생애 마지막으로 능력 목회를 하고 싶어 사모님과 처음으로 일주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응답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이제 날이 밝으면 하산을 해야 하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필자의 곁을 떠나실 때 크게 실망하신 얼굴을 보이셨습니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조용하시고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던 박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 새벽은 평소의 박 목사님이 아니셨습니다. 기도원에는 나 말고도 다른 외국인들도 있었는데 상관치 아니하시고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제 방 앞에서 외치고 계셨습니다. “이 전도사! 나 기도 응답 받았어요,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어서 문을 열어요!” 하시면서 문을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문을 열자 박 목사님은 방금 전 주님을 만나셨다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일주일동안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으셨던 주님이 하산하기 전 박 목사님 방에 갑자기 나타나시어 말씀하시며 네가 그토록 오랫동안 원하던 것이니 받으라고 하시어 두 손을 펴 공손이 주신 것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신 것을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공사판에서 쓰다가 버린 못대가리도 없고 녹이 슬고 휘어진 서너 개의 쓸모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박 목사님이 예수님께 조용하게 항의를 하셨습니다.
“예수님! 제가 원하던 것은 이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신유의 능력을 원했습니다. 설교의 권능을 원했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원했습니다. 기도하면 귀신이 물러가는 은사를 원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이 박 목사님에게 말씀하시길 “네가 구한 모든 것들은 지금까지 네가 강단을 지켜온 것에 비하면 다 이런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즉시 자신의 기도가 잘못된 것임을 깨달으셨습니다.
구한 것보다 이미 더 크고 비교할 수 없는 큰 은혜와 능력 받은 것을 알게 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하실 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하산했을 때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듯이 예수님을 만나신 박 목사님의 얼굴은 붉게 흥분되어 계셨고 떨리셨던 박 목사님의 말씀은 내 가슴에 화살처럼 박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나의 기도의 방향이 은사와 능력주시길 위해서 기도하던 것이 말씀의 은사 받기를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박 목사님의 응받 받으신 것을 듣기 전에는 최복규 목사님, 이천석 목사님, 강달희 목사님 같은 부흥사가 되기를 기도했었습니다. 그 기도를 즉시 중단하고 말씀목회를 할 수 있게 기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2-12 16:01:292020-02-12 16:01:29기도 중 받은 특별한 은혜(2)
이것은 무엇을 위하는 행동입니까(1)?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평강교회를 설립하고서 첫 주일 예배를 드린 곳은 다저스 야구장이 있는 엘리시안 공원 이었습니다. 1981년 1월의 첫 주일이었습니다. 당시 공원은 싸늘한 겨울 날씨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한산했습니다. 개척을 하는 교회마다 예배 처소 구하기가 지금도 쉽지 않지만 당시도 그러했습니다.
예배처소를 구하기까지 2달 동안 공원 예배가 계속되었습니다. 11시 예배 후 같은 장소에서 점심을 나눈 후 곧 바로 오후 예배까지 드렸습니다. 어느 주일에는 비가 내린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당시의 교인들이 비를 피해가면서 공원 예배드리는 것에 대하여 불평하거나 불만을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두 달 만인 3월 첫 주일에 예배 처소로 허락받은 곳은 침례교회에 속한 흑인 교회당이었습니다. 예배 시간은 주일 오후 1 시 30분이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주일 저녁 7시와 수요일 밤 7시, 그리고 매일 새벽기도까지 허락을 받았습니다. 예배 당 사용 시간으로 보면 흑인 교회보다 우리가 더 많이 사용한 것입니다.
5년 2개월 동안 그 교회를 사용하고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교회당 건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 건물을 주시기 위해서 기도를 하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부산 수영로교회를 담임하시는 정필도 목사님 때문이었습니다. 정 목사님이 저희교회 처음 외부 강사로 오셔서 한 시간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부산에서 수영로교회를 개척하고서 교회 건물을 주시기 위해서 기도한대로 하나님이 주신 응답에 대한 간증이었습니다. 그 간증을 듣기 전까지는 교회당을 달라고 기도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형편이 너무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신 분이시고 크신 분이십니다.
곧 바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영로교회의 기도를 들으시고 축복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예배당을 주시옵소서! 공적인 예배 시간마다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매 주일 새벽 기도회가 끝나면 기도회에 참석한 교우들이 흑인 교회당 건물을 한 바퀴 돌고서 기도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4년 여 동안 기도를 해 오던 중 어느 날 흑인 교회 교인들이 새벽에 교회당을 도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긴 것입니다. 흑인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이 정중하게 묻었습니다. “주일 새벽 기도를 마친 후 목사님이 앞에 서서 교인들을 인솔하고 교회당을 한 바퀴 도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회당 건물을 우리에게 주시길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특별한 반응이 없이 듣고 마는 줄 알았습니다. 3-4개월이 지난 후 어느 날 흑인교회 목사님이 정말로 이 교회당을 인수 받기를 원하느냐고 질문을 해 왔습니다. 이 건물을 팔고 흑인이 많이 사는 곳으로 이사를 가려는 계획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수하기로 하고 가격 흥정에 들어갔습니다. 132만 불에서 출발한 가격이 몇 달 동안의 흥정으로 920,5000불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건축위원회를 구성하고 미국교회와 매매 계약 서류에 싸인을 했습니다. 당시 계약금으로 2000불을 지불했지만 은행에는 잔고가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3 개월 후 다운페이먼트로 20만 불을 지불을 해야만 하기에 교회 앞에 그 간의 사정을 알리고 특별 헌금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 건축위원회 위원이며 피택장로였던 P 집사님이 반기를 든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강도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돈을 가진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3개월 이내에 20만 불의 돈을 만들어 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이 교회를 더 이상 나오지 않겠다고 여러 교인들 앞에서 선포하고 교회당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자신이 낸 2000불의 건축헌금도 돌려달라고 해서 당회의 결의로 되돌려 주었습니다.
문제는 P 집사님 한분으로 그치고 만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의 뒤를 따라 여러 가정이 교회를 떠난 것입니다. 건축헌금을 할 수 있는 분으로 믿었던 분들이 떠나간 것입니다. 다음 주일이었습니다. 예배 당 안은 썰렁했습니다. 남은 교인들의 숫자보다 나간 교인들의 숫자가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서 처음으로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너무 낙심이 되어서 할 말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 때 K 장로님이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목사님! 우리 다시 개척하는 겁니다. 다시 시작하십니다.” 그 때 장로님의 그 말씀이 아니었으면 다시 일어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790
세 번의 자살 시도 후 부르짖은 아모스의 기도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아모스 5 장 4 절과 8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좋아하는 이유는 죽음의 그림자가 왔을 때 나를 살리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삶에 대한 희망이 없었습니다. 자고 나면 생각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만나는 의료인들이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남은 생명이 몇 개월 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밤에 죽으면 흰 천에 덮여 차가운 시체실로 들어가야 합니다.
영구차에 실려 고향 땅 선산에 묻히게 될 때 나의 몸을 부둥켜 앉고 통곡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질 듯 했었고, 친구 중 산까지 올라와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하면 한 밤 중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앉고 일어서는 것도 힘이 들었고 조금만 언덕진 길을 걸어도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했습니다.
온 몸은 피멍으로 얼룩져 있었고 몸에서 한 번 피가 흐리기 시작하면 멈추질 않아 응급실로 시도 때도 없이 달려가야만 했습니다. 피의 응고작용을 하는 혈소판이 정상치의 수백분의 일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몸에서 피를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에 반복해서 수혈을 하지 아니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유롭지 못한 가정 형편상 더 이상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상황에서 어머님과 남은 가족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선한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정 형편도 돕고 반복되는 두려움과 견디기 어려운 아픔도 끝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단이 서자 즉시 실행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받은 약이 있습니다. 엽산인데 세병을 땅 바닥에 쏟아 모으고 입으로 집어넣었습니다. 맨 입에 잘 넘어가지 않았지만 600알 정도의 알약을 여러 번에 걸쳐서 삼켰습니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음 날 깨어난 것입니다. 약으로 실패한 후 다시는 약으로 죽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두 번째 방법이었습니다. 집에서 40-50미터 떨어진 곳에 국도가 있었습니다. 큰 차들이 오고 가는 곳입니다. 큰 차에 달려들면 쉽게 죽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버스나 대형 트럭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마주 오는 차를 향하여 눈을 감은 채 몸을 던진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를 않았습니다. 며칠 그런 시도를 하다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운수업을 하는 분들과 운전하시는 분에게 큰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생각한 것이 물에 빠져 죽자는 것이었습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몸에 상처하나 입지 아니하고 죽었습니다. 집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호수가 있습니다. 긴 호수 제방 뚝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물속을 내려다봅니다. 이제 여기가 나의 삶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결단하고 몇 미터만 내려가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죽어야만 하는가? 이렇게 살고 싶은데! 누가 날 살려 주세요! 나는 살고 싶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큰 소리로 반복해서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오길 시작합니다. 이 제방의 둑이 만들어져 큰물이 모인 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들었던 분들을 보지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이전 어르신들이 만드신 것입니다. 저 눈 앞에 보이는 도로 양편에 즐비하게 늘어선 가로수들도 저절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심어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늘의 해와 달 별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디자인 하시고 자리를 지키게 하시며 운행하시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 능력으로 나를 살려 주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절대자가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의학이나 병원이 할 수 없는 것도 그 분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그 능력으로 나를 살려달라고 온 힘을 다하여 부르짖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 때 나의 몸이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하면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길 시작합니다. 그렇게 많은 눈물을 지금까지도 흘려보지 못했습니다. 긴 시간이 지나간 후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마음의 평안이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의 문전에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만져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47년이 지났지만 수혈을 받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당시 세브란스병원의 한지숙 박사님이 변화된 나의 건강 상태를 가지고 일본 혈액학회에 가서 보고했지만 치료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지 못한 것은 이전에 그런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지 알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보이지 않은 손에 이끌려 미국에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UCLA 의과대학 혈액학 주임교수이신 Nicolas Costea 박사님께 인도 되었고 미국에 온지 8-9개월 만에 완치 지단을 받은 것입니다. 그 때 박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너의 병이 어떻게 나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의학적으로 완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고 낮과 밤을 바꾸시는 그 이름이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지 아니했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러하셨듯이 앞으로 계속 동행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779
기도 중 받은 특별한 은혜(2)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팜데일 기도원은 미국인이 운영하는 기도원이지만 당시만 해도 한인이 운영하는 기도원이 없어서 한인들도 그곳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필자가 그곳에서 기도할 때 몇 분이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크리스찬투데이 발행인이신 서종천 목사님과 다우니 지역에서(특수사역) 장의사를 운영하시는 정영목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두 분은 일주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당시 기도하시던 분 가운데 나에게 큰 은혜를 주신 분은 박대희 목사님 이셨습니다. 박대희 목사님은 80년대 초 한인 이민사회에서 손꼽히는 대형교회중 하나인 나성한인감리교회를 담임하고 계셨습니다. 장년 교인이 400여명이나 되는 큰 교회를 섬기고 계셨습니다.
기도원에 올라오는 사람마다 특별한 기도의 제목으로 금식을 하지만 박대희 목사님은 우리들과 같은 내용의 기도를 하시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이미 박대희 목사님은 모든 것을 다 이루신 분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저녁에 기도원에 오신 이유에 대해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휴가차 기도원에 쉬러 오신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의 박 목사님은 은퇴를 몇 년 앞두고 계셨습니다. 평생 목회를 해 오시면서 늘 마음에 소원을 가진 것이 있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처럼 신유의 은사 받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방언의 은사도 받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설교의 능력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강단에서 설교할 때마다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 받는 능력을 사모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도를 가질 수 없을 것 같아 생애 마지막으로 능력 목회를 하고 싶어 사모님과 처음으로 일주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응답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이제 날이 밝으면 하산을 해야 하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필자의 곁을 떠나실 때 크게 실망하신 얼굴을 보이셨습니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조용하시고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던 박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 새벽은 평소의 박 목사님이 아니셨습니다. 기도원에는 나 말고도 다른 외국인들도 있었는데 상관치 아니하시고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제 방 앞에서 외치고 계셨습니다. “이 전도사! 나 기도 응답 받았어요,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어서 문을 열어요!” 하시면서 문을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문을 열자 박 목사님은 방금 전 주님을 만나셨다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일주일동안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으셨던 주님이 하산하기 전 박 목사님 방에 갑자기 나타나시어 말씀하시며 네가 그토록 오랫동안 원하던 것이니 받으라고 하시어 두 손을 펴 공손이 주신 것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신 것을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공사판에서 쓰다가 버린 못대가리도 없고 녹이 슬고 휘어진 서너 개의 쓸모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박 목사님이 예수님께 조용하게 항의를 하셨습니다.
“예수님! 제가 원하던 것은 이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신유의 능력을 원했습니다. 설교의 권능을 원했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원했습니다. 기도하면 귀신이 물러가는 은사를 원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이 박 목사님에게 말씀하시길 “네가 구한 모든 것들은 지금까지 네가 강단을 지켜온 것에 비하면 다 이런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즉시 자신의 기도가 잘못된 것임을 깨달으셨습니다.
구한 것보다 이미 더 크고 비교할 수 없는 큰 은혜와 능력 받은 것을 알게 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하실 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하산했을 때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듯이 예수님을 만나신 박 목사님의 얼굴은 붉게 흥분되어 계셨고 떨리셨던 박 목사님의 말씀은 내 가슴에 화살처럼 박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나의 기도의 방향이 은사와 능력주시길 위해서 기도하던 것이 말씀의 은사 받기를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박 목사님의 응받 받으신 것을 듣기 전에는 최복규 목사님, 이천석 목사님, 강달희 목사님 같은 부흥사가 되기를 기도했었습니다. 그 기도를 즉시 중단하고 말씀목회를 할 수 있게 기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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