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세 번째 방문하는 알라스카 여행기

4년 만에 둘째 딸 가족이 살고 있는 알라스카를 방문했습니다. 처음과 두 번째는 Long Beach 공항에서 출발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LAX에서 지난 11일 밤 7시 밤에 출발하여 5 시간 만에 알라스카의 앵커리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간으로는 깊은 밤이지만 알라스카의 밤은 지역적 특성상 말 그래도 백야로 밤이 없는 날 이 되어 새벽 두세 시에도 비 오는 날처럼 먼 사방을 볼 수 있습니다. 10월부터는 반대로 극야가 되어 어둠속에 살아야 합니다. 공항에는 딸 가족 다섯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지난 1 월에 이곳에 사는 딸이 비행기 표를 보내왔습니다.

이번에도 한 주일만 지나고 가려고 했는데 이곳에 사는 손 자녀들이 더 오래 머물기를 원해서 2 주일을 머물기로 했습니다. 4년 전에는 알라스카의 북부를 여행 했었는데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착한 날 이른 아침에 2박 3 일의 일정으로 현지 한인 관광회사의 도움으로 알라스카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발데즈 항으로 떠났습니다.

앵커리지에서 300마일 이상 떨어진 발데즈는 차로 6-7시간 높고 험한 굽은 산길을 달려서 가는 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여행을 해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다녀본 곳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었습니다. 유럽의 알프스 산도 넘어 보았지만 그 때의 감동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신비롭고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오고 가는 오랜 시간 동안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만년설로 덮인 끊임없이 이어지는 드높은 산과 봉우리들 그리고 수많은 빙하를 만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빙하가 3 종류가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육지 빙하, 높은 산에 머무는 빙하, 그리고 바다 빙하인 것입니다.

그 세 가지 빙하를 다 볼 수 있었습니다. 긴 시간 여행에서 만난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 해변의 그림 같은 아름다움은 감탄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름 모를 여러 가지의 아름다운 자연의 꽃들이 여행하는 사람들을 반가이 맞아주어 긴 여행의 피로를 잊게 했을 뿐 아니라 큰 감동과 행복을 느끼게 했습니다.

발데즈 항구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 날 현존하는 빙하 중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 빙하인 콜롬비아 빙하를 보기 위하여 배를 타고 왕복 6시간 반 동안 오고 가는 동안 대 자연의 신비를 품은 콜롬비아만의 경치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가는 동안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고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개들의 서식지도 보았습니다. 빙하가 쉬지 않고 깨어져 여러 조각들이 바다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서 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만 수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빙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큰 덩어리에서 떨어져 굉음과 함께 바다로 녹아 사라지는 것이 생명을 다한 사람과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발데즈 항구에서 2 박을 한 후 앵커리지로 돌아오는 길에 육지 빙하를 체험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현존하는 육지 빙하중 세계에서 제일 큰 마타누스카 빙하를 3-40분 걷고 손으로 만져보는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조심스럽고 위험한 길이었지만 특별한 체험이기에 거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렇게 다양하고 아름다운데 이런 것을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 채 살아온 삶이 후회가 될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계는 너무 아름답고 귀한 곳이라는 것을 새롭게 느끼고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세상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천국은 얼마나 더 신비로울까?

그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일까를 생각한 것입니다. 잠시 사는 세상도 이렇게 큰 감동과 기쁨을 주는데 주님의 나라는 이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며 영원한 감동과 기쁨 행복을 주는 곳임을 깨달아지게 했습니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는 날 그 영광의 나라에서 누릴 완전한 기쁨과 행복을 깊이 생각하며 더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살아 있기에 이 아름다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세상에 오지 않았으면 천국도 없는 것이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얼마나 존귀하신 분이심을 다시 확인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가장 잘하는 일이 있다면 주님을 만나는 것이며 주님을 예배하는 삶인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363

14살 외동 딸 다은이 엄마의 큰 아픔

지난 주간 교회 사무실에 머무는 동안에 평소 알지 못하는 분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기의 발달로 요즘은 전화가 울림과 동시에 상대방의 전화번화가 나타나기에 알지 못하는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대부분 광고전화나 사기성 전화가 흔하기 때문입니다.

그 날도 망설임 끝에 통화를 거절 했지만 반복해서 오기에 마지못해서 받았습니다. 전화기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가냘픈 여성의 목소리였습니다. 그것도 한국인이었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저를 찾는 전화였습니다. 전화를 하는 곳은 제가 사는 곳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거리인 샌디에고에 사시는 분의 전화였습니다.

전화의 내용은 자신의 14살 난 외동딸이 2 년 전부터 재생불량성빈혈로 투병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치료를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인터넷을 통하여 자신의 딸과 같은 병명에서 완전한 치료를 받은 필자의 기사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게 여러 경로를 통하여 전화번호를 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화를 받는 순간 잃었던 지난날의 암흑과 같은 시절, 죽음의 긴 터널에서 헤맸던 절망의 수많았던 날들이 기억에서 살아나면서 다은이 엄마와 어린 다은이가 당했을 고통과 앞으로 겪어야만 할 많은 시련과 역경을 생각하면서 그 일들이 남의 일로만 느껴지지 아니하여 매일 기도하는 기도 제목에 다은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전에 필자가 그러했듯이 아직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죽음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어린 다은이가 자신 앞에 성큼 다가오고 있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한다는 것은 정말로 슬프고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주님의 도우심뿐임을 알기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살리신 주님! 늘 주님께 감사하며 산다고 했지만 다은이를 생각하니 주님께 더 감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은이를 살려 주세요!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저를 주의 종으로 살게 하신 주님! 다은이 에게도 동일한 은혜와 복을 주셔서 가정과 이웃을 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쓰임 받는 종이 되게 해 주세요”

4년 전인 어느 날 오랫동안 집 사람의 주치의였던 Dr. Han 암전문의사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지금도 재생불량성빈혈 환자가 있느냐고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환자 중에도 몇 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병에서 나음을 받았다고 했더니 그럴리가 없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4 년 전이긴 하지만 그 때 까지도 치료 방법이나 약이 없다고 말을 하면서 아마도 내가 앓았다는 병은 오진이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나의 주치의는 세브란스의과대학병원의 내과 과장이셨던 채응석 교수님이셨고, 미국에서의 주치의는 UCLA의과대학의 혈액과 주임교수인 DR. Nicolas Costea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Dr. Han은 그래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의아해 하셨습니다. 다은이 엄마와 긴 시간 통화를 하지 못했지만 지난 2 년 동안 온 가족이 당했을 절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린 딸이 당하는 아픔을 보면서 대신 아파주지도 못하고 부모로서 치료할 병원과 의사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정말로 큰 슬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라리 어린 딸을 대신해서 대신 아파 줄 수 있다면 백번 천 번 그리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화로 대화를 나누던 중에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딸과 같은 어려운 병명에서 치료 받고 지금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은이 엄마와 다은이 에게는 희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은이와 다은이 어머니를 한 번도 만나 본 일이 없지만 타인처럼 느껴지지 아니하고 오랫 동안 교제를 나누어 오던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은 저들을 통하여 잃었던 지난날의 나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며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회복하고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치료의 은사가 다은이 에게도 속히 나타나시길 축복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338

아빠! 아들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7 년 전으로 기억이 됩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큰 딸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하였을 때 필자에게 기도를 요청했었습니다. 세 번째 낳을 아기는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2 살 아래의 여동생도 두 명의 딸과 아들 하나를 가졌기에 자신도 아들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딸이 목회자인 아빠에게 아들 얻기를 위하여 기도를 요청하는 것은 기도의 응답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매간에 균형을 위해서 큰 딸의 가정도 아들이 하나 있어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기도를 해 오던 중이었습니다. 큰 딸 가정에 주실 손자를 위해서 반복적으로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매일 쉬지 않고 기도를 이어갔던 것입니다. 기도한대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수도 없이 체험했기에 이번에도 구한대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주실 줄 믿고 감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다른 어느 기도보다 많은 정성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주실 것이란 믿음이 더해갔습니다. 그런 믿음은 나만이 아니었습니다. 딸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태어날 아기를 위한 의복도 남자 아이의 것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기다리던 해산의 날이 되어 드디어 병원에 갔습니다. 손자를 볼 생각으로 기대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남자 아이가 아니고 여아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나에게 그 말을 전해 주는 사람이 반대로 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농담으로 나를 웃기려고 하는 말인 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받은 선물이 손자가 아니고 손녀라는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나만 실망한 것이 아닙니다. 딸도 실망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반드시 아들을 주실 것으로 딸도 믿었고 나도 믿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한 대로 손자를 주시지 아니하고 손녀를 주신 것입니다. 그 때 전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기도한 것은 손자가 아닙니까? 이번에도 손녀를 주시면 어떡하십니까?

이미 둘이나 있는데 또 손녀입니까? 아들을 주실 줄 믿었던 딸은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6장 23-24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 그 말씀 믿고 기도했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그렇게 많을 날, 오랫동안 수도 없이 반복해서 구한 기도가 왜 응답이 되지 않은 겁니까? 아빠 목사의 기도를 믿어왔던 딸이 이번 일로 실망했을 것을 무엇으로 보상하시겠습니까? 구한대로 주시지 아니한 응답에 대해서 항의하는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알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원하는 것을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원대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우리가 구한 것 보다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섭리와 계획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하나님이 손자가 아니고 세 번째 손녀를 큰 딸의 가정에 왜 주셨는지 알게 하셨습니다. 더 큰 위로와 행복 기쁨을 딸의 가정에 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고 하신 시편 127편 3 절의 말씀이 생각되는 5월 가정의 달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