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 월에 2 주간의 일정으로 네 번째 아마존 선교여행을 했을 때였습니다. 양승만, 양혜란 선교사님의 사역을 돕기 위하여 전문 의료인들을 모시고 방문한 것입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곳은 아마존의 하류에 속하는 브라질, 페루, 콜롬비아 국경이 만나는 지점이었습니다. 아마존에는 길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길이 없다는 말은 자동차나 기차가 다닐 수 있는 운송 수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마존의 길은 오직 물 위로 떠다니는 배 뿐인 것입니다. 강 본류는 물살이 세고 깊어 큰 배가 다니지만 인디오들이 사는 마을로 연결 되는 작은 강은 수심이 낮아 상업용 배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작 10여 명 미만이 탈 수 있는 작은 나무배에 모터 엔진을 달고서 이 마을 저 마을을 방문 하는 것입니다.
아마존의 인디오 마을들은 우리가 사는 도시처럼 가까운 거리에 붙어 있지 않습니다. 2-3 일을 달려야 만나는 마을도 있으며 먼 곳은 배로 한 두 주일을 가야 만날 수 있는 마을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존의 인디오들은 지금도 자기가 사는 마을에서 밖으로 나오기를 주저하며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아마존의 하루는 우리가 사는 24시간의 하루가 아니라 5- 60시간의 하루처럼 길고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곳에는 문화 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소리 외에는 들을 것이 없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강과 푸른 나무 숲 그리고 높고 맑은 하늘 외에는 달리 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직장에 출근할 필요도 없고 학교에 갈 일도 없으며 전화를 걸 일도 없으며 신문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의 시간이 저절로 길어지는 것입니다.
낮에는 마을을 방문해서 병든 자를 치료해 주는데 놀라운 것은 저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의 예방 주사도 맞아 보지 못했고 단 한 개의 비타민도 먹어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인디오들의 대부분이 외지인들 만나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인디오들의 평균 수명이 30 여살 밖에 되지 않습니다. 선교 여행에 참여하신 전문 의료인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으셨던 여자 의사분이 계셨습니다. 남가주에서 40여년 가까이 의사로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어느 날 필자에게 평생 마음에 담아둔 고백을 하겠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하신 것입니다.
의과대학에 다니던 때 다른 학교 의과대학에 다니던 분을 만나 뜨거운 사랑을 하다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꿀 같은 삶이 이어져 딸과 아들을 얻었습니다.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부부사이가 언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타인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남편과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젊은 간호사와 가까운 사이가 된 것입니다.
남편은 주위의 시선을 견디다 못해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됩니다. 미국으로 출발하는 전 날 밤 부인은 남편이 잠든 시간에 남편의 서류 가방을 열어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기어진 누런 색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냅니다. 그 봉투 안에는 남편이 일할 병원에서 함께 취업 신청을 하는 간호사의 서류가 들어 있었습니다.
남편이 한국을 떠나고 이틀 후 간호사에게 전화를 합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당신에게 전해 달라는 것이 있습니다” 약속한 장소에서 아무 일도 모르고 아무 일도 없었듯이 만나서 서류봉투만 전해 주고 곧 바로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두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이 있는 미국에 들어왔습니다. 부부로 미국에서 40여년을 살아오면서 부인도 남편에게 그 때의 일을 묻지 않았고 남편도 부인에게 그 때의 일을 묻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남편이 부인을 향하여“여보! 내가 당신에게 고백해야 할 것이 있어요, 오늘 교회에 가면 장로로 임직을 받게 되는데 당신에게 용서받지 않고는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정말로 당신에게 잘못했어요! 진작 용서를 빌지 못해서 미안해요 나를 용서해 줘요”
진심어린 남편의 고백을 듣는 순간 평생 부부로 살아오면서 가슴에 담고 지내온 무거운 짐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또 10여년의 세월이 지나 가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갔지만 아직도 마음에 남은 절반의 앙금은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인이민자들을 위해 내 몸을 던져 행복의 길, 구원의 길을 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열망으로 끓어 오릅니다
필자는 청소년 시절에 치료되지 않는 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문턱을 여러번 넘나 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일명 재생불능성빈혈이라고 하고, 재생불량성빈혈이라고도 불리는 병으로 몸에서 피를 만드는 기관이 폐쇄되어 1년 여간 남의 피를 수혈 받으며 생명을 연장받아야 했습니다.
심할 때는 헤모그라빈의 수치가 2-3까지 내려갔었던 적이 있었고 혈소판의 수치가 수백의 단위로 떨어지면서 온 몸의 피가 오관을 통하여 밖으로 분출이 되었으며 한번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 2-3주씩 지혈이 되지 않아 큰 어려움에 처하곤 했습니다. 혈압이 60/25까지 떨어질 때는 온 몸이 장작처럼 굳어갔으며 심하게 저려 오는 고통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맥박이 300까지 뛰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손목에서 맥박의 진동을 잡을 수가 없어 심장이 있는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맥박의 수를 측정해야 했습니다.
서울의 세브란스 병원에만 4번 입원했으며 그 중 한번은 40일 동안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 성모병원에서도 15일을, 수원의 성빈센트병원에도 여러번 입원했습니다. 필자의 한국에서의 주치의는 당시 한국 혈액학회 부회장이었던 세브란스 병원의 내과 과장 채응석 박사님과 한지숙 박사님이셨으며 미국에서는 UCLA 혈액학 주임교수이셨던 Nicolas Costa 박사님이셨습니다.
필자가 미국에 오게 된 것도 한국에서 병을 치료할 수가 없어서 미국 선교기관의 초청으로 1973년 11월에 미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을 출발할 때는 미네소타 주에 있는 해군 병원인 Mayo 병원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미국에 도착하고서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치료 방법이 없어서 UCLA병원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8개월 간의 반복되는 정밀검사를 통하여 어느 날 Costa 박사는 중대한 말을 하셨습니다. 필자의 병이 고침받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왜 나았는지 무엇때문에 나았는지 모르지만 의학적으로 완전한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이 병으로 병원에 올 필요도 없으며 이제부터 원하는 일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미국에서 특별하게 치료받은 것은 없습니다. 오직 반복되는 골수검사와 주기적인 검진을 했을 뿐입니다. 특별한 약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병이 나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필자는 죽어야 할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이 나았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못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치료를 위한 심리적 요법으로 그렇게 말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2년의 세월이 지나기까지 죽음의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나음 받은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반복 수혈을 받아야 하는 필자가 어느때부터 수혈을 받지 않아도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40년 동안 수혈을 받지 않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오면서 가정을 이루고 세 자녀의 부모로서 현재 6명의 손자까지 축복받았습니다.
필자의 아내는 말기 암 환자로 힘든 투병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 병원 입원기간 동안 담당 의사와 우연한 대화를 하던 중 필자가 재생불량성빈혈 환자였다는 사실을 말한 것입니다. 그때 혈액 마침 암 전문의사인 집사람의 주치의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오진이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 병은 치료약이 없어 고쳐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다시 감사하게 되었으며 만일 그 때 구원받지 못했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뿐 아니라 천국의 상속자로 영생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필자에게 있어서 병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축복이 되었습니다. 병을 통하여 어린나이에 죽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아니하는 죽음 다음의 세계를 알게 하셨습니다. 환경상 예수를 믿을 수 없는 처지였으며 병을 통하여 나를 꺽으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셨으며 오늘의 내가 소유한 모든 복은 병을 말미암은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나의 삶에 있어서 병은 상상할 수 없는 하늘의 복으로 인도하는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19-12-25 02:07:332019-12-25 02:08:31잊고 살았던 하나님의 은혜
레바논의 백향목은 살아서만 수천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수천년간 자리를 지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백향목이 사용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난 여름 레바논 대학에서 교수하셨던 이재훈 박사님 가족이 오만과 시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오면서 필자에게 두 가지 선물을 주셨습니다. 유향과 물레방아가 힘차게 돌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필자도 두 번의 성지 여행을 했지만 유향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유향을 읽을 때마다 어떤 모양일까 늘 생각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면서 손으로 만져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너무 귀한 것이기에 친구 동역자들이 모이는 장소에 나갈 때 유향을 조금씩 나누며 기쁨을 함께 했습니다. 유향은 마치 송진과 같은 것으로 중동지역에서는 오만에서나 구할 수 있습니다.
유향도 귀한 것이지만 필자에게 큰 감동을 준 것은 물레방아 사진이었습니다. 한국의 물레방아보다는 7-8배 정도 컸습니다. 마치 2층까지 집 크기라고 할까요. 그런데 물레방아의 크기때문이 아니라 그 물레방아의 나이가 1천년이 되었다는 사실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천년이 되었는데도 어떻게 물레방아가 썩지 않았을까? 더 놀라운 것은 그 물레방아의 수명이 앞으로도 1천년 이상은 더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물레방아에 사용된 나무는 보통의 것이 아니라 레바논에서 나는 백향목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0여년 전 로마를 방문했을 때 필자가 감동 받은 곳이 있습니다. 로마의 많은 성당 중 스칼라산타 성당이 있습니다. 스칼라산타 성당이 유명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는 재판을 할 때 성 금요일 이른 새벽에 총독 집무실로 끌려 오르고 내려오신 28개의 나무 계단을 옮겨다가 놓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칼라산타 성당은 다른 말로 성 계단 성당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나무 계단을 과연 누가 옮겨놓았을까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주후 326년에 예루살렘에서 이 나무들을 옮겨다가 교회 건물을 지었습니다. 교황청에서 이 성 계단이 있는 곳을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지정했습니다. 지금도 그 성당 안에는 교황만이 사용하는 소 예배당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면죄부 판매가 처음으로 그곳에서 시작되었으며, 주후 850년에 교황 에로 4세가 산타스칼라 성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사람의 죄를 사하는 의식을 시작하면서, 지금도 죄 씻음을 원하는 사람들이 무릎으로 그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한 계단을 무릎으로 오를 때마다 9년 동안 지은 죄의 속죄를 보증 받는다고 전해져,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도 죄 씻음을 받기 위해 이 성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다가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인 “복음에는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성 28개 계단에서 일어나 걸어서 내려와 종교 개혁의 불을 피웠습니다.
28개의 나무계단은 2천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필자도 계단을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포기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올라가는 사람들의 뒤에서 성 계단에 두발을 잠시 올려보고 나무 계단을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무릎으로 올라가는 곳마다 깊은 자국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스칼라산타 성당의 28개의 나무계단이 이토록 오랫동안 보존되는 이유는 바로, 이 나무들이 레바논의 백향목이기 때문입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살아서만 수천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수천년 동안 자리를 지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백향목이 사용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편 92장 12에서 13절 말씀을 되새겨보면서 글을 마칩니다.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며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황하리로다”
어느 여의사의 고백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당신에게 전해 달라는 것이 있습니다”
1997년 8 월에 2 주간의 일정으로 네 번째 아마존 선교여행을 했을 때였습니다. 양승만, 양혜란 선교사님의 사역을 돕기 위하여 전문 의료인들을 모시고 방문한 것입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곳은 아마존의 하류에 속하는 브라질, 페루, 콜롬비아 국경이 만나는 지점이었습니다. 아마존에는 길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길이 없다는 말은 자동차나 기차가 다닐 수 있는 운송 수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마존의 길은 오직 물 위로 떠다니는 배 뿐인 것입니다. 강 본류는 물살이 세고 깊어 큰 배가 다니지만 인디오들이 사는 마을로 연결 되는 작은 강은 수심이 낮아 상업용 배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작 10여 명 미만이 탈 수 있는 작은 나무배에 모터 엔진을 달고서 이 마을 저 마을을 방문 하는 것입니다.
아마존의 인디오 마을들은 우리가 사는 도시처럼 가까운 거리에 붙어 있지 않습니다. 2-3 일을 달려야 만나는 마을도 있으며 먼 곳은 배로 한 두 주일을 가야 만날 수 있는 마을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존의 인디오들은 지금도 자기가 사는 마을에서 밖으로 나오기를 주저하며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아마존의 하루는 우리가 사는 24시간의 하루가 아니라 5- 60시간의 하루처럼 길고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곳에는 문화 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소리 외에는 들을 것이 없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강과 푸른 나무 숲 그리고 높고 맑은 하늘 외에는 달리 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직장에 출근할 필요도 없고 학교에 갈 일도 없으며 전화를 걸 일도 없으며 신문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의 시간이 저절로 길어지는 것입니다.
낮에는 마을을 방문해서 병든 자를 치료해 주는데 놀라운 것은 저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의 예방 주사도 맞아 보지 못했고 단 한 개의 비타민도 먹어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인디오들의 대부분이 외지인들 만나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인디오들의 평균 수명이 30 여살 밖에 되지 않습니다. 선교 여행에 참여하신 전문 의료인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으셨던 여자 의사분이 계셨습니다. 남가주에서 40여년 가까이 의사로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어느 날 필자에게 평생 마음에 담아둔 고백을 하겠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하신 것입니다.
의과대학에 다니던 때 다른 학교 의과대학에 다니던 분을 만나 뜨거운 사랑을 하다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꿀 같은 삶이 이어져 딸과 아들을 얻었습니다.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부부사이가 언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타인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남편과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젊은 간호사와 가까운 사이가 된 것입니다.
남편은 주위의 시선을 견디다 못해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됩니다. 미국으로 출발하는 전 날 밤 부인은 남편이 잠든 시간에 남편의 서류 가방을 열어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기어진 누런 색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냅니다. 그 봉투 안에는 남편이 일할 병원에서 함께 취업 신청을 하는 간호사의 서류가 들어 있었습니다.
남편이 한국을 떠나고 이틀 후 간호사에게 전화를 합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당신에게 전해 달라는 것이 있습니다” 약속한 장소에서 아무 일도 모르고 아무 일도 없었듯이 만나서 서류봉투만 전해 주고 곧 바로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두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이 있는 미국에 들어왔습니다. 부부로 미국에서 40여년을 살아오면서 부인도 남편에게 그 때의 일을 묻지 않았고 남편도 부인에게 그 때의 일을 묻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남편이 부인을 향하여“여보! 내가 당신에게 고백해야 할 것이 있어요, 오늘 교회에 가면 장로로 임직을 받게 되는데 당신에게 용서받지 않고는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정말로 당신에게 잘못했어요! 진작 용서를 빌지 못해서 미안해요 나를 용서해 줘요”
진심어린 남편의 고백을 듣는 순간 평생 부부로 살아오면서 가슴에 담고 지내온 무거운 짐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또 10여년의 세월이 지나 가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갔지만 아직도 마음에 남은 절반의 앙금은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0121
잊고 살았던 하나님의 은혜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힘들고 어렵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인이민자들을 위해 내 몸을 던져 행복의 길, 구원의 길을 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열망으로 끓어 오릅니다
필자는 청소년 시절에 치료되지 않는 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문턱을 여러번 넘나 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일명 재생불능성빈혈이라고 하고, 재생불량성빈혈이라고도 불리는 병으로 몸에서 피를 만드는 기관이 폐쇄되어 1년 여간 남의 피를 수혈 받으며 생명을 연장받아야 했습니다.
심할 때는 헤모그라빈의 수치가 2-3까지 내려갔었던 적이 있었고 혈소판의 수치가 수백의 단위로 떨어지면서 온 몸의 피가 오관을 통하여 밖으로 분출이 되었으며 한번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 2-3주씩 지혈이 되지 않아 큰 어려움에 처하곤 했습니다. 혈압이 60/25까지 떨어질 때는 온 몸이 장작처럼 굳어갔으며 심하게 저려 오는 고통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맥박이 300까지 뛰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손목에서 맥박의 진동을 잡을 수가 없어 심장이 있는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맥박의 수를 측정해야 했습니다.
서울의 세브란스 병원에만 4번 입원했으며 그 중 한번은 40일 동안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 성모병원에서도 15일을, 수원의 성빈센트병원에도 여러번 입원했습니다. 필자의 한국에서의 주치의는 당시 한국 혈액학회 부회장이었던 세브란스 병원의 내과 과장 채응석 박사님과 한지숙 박사님이셨으며 미국에서는 UCLA 혈액학 주임교수이셨던 Nicolas Costa 박사님이셨습니다.
필자가 미국에 오게 된 것도 한국에서 병을 치료할 수가 없어서 미국 선교기관의 초청으로 1973년 11월에 미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을 출발할 때는 미네소타 주에 있는 해군 병원인 Mayo 병원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미국에 도착하고서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치료 방법이 없어서 UCLA병원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8개월 간의 반복되는 정밀검사를 통하여 어느 날 Costa 박사는 중대한 말을 하셨습니다. 필자의 병이 고침받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왜 나았는지 무엇때문에 나았는지 모르지만 의학적으로 완전한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이 병으로 병원에 올 필요도 없으며 이제부터 원하는 일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미국에서 특별하게 치료받은 것은 없습니다. 오직 반복되는 골수검사와 주기적인 검진을 했을 뿐입니다. 특별한 약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병이 나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필자는 죽어야 할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이 나았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못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치료를 위한 심리적 요법으로 그렇게 말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2년의 세월이 지나기까지 죽음의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나음 받은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반복 수혈을 받아야 하는 필자가 어느때부터 수혈을 받지 않아도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40년 동안 수혈을 받지 않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오면서 가정을 이루고 세 자녀의 부모로서 현재 6명의 손자까지 축복받았습니다.
필자의 아내는 말기 암 환자로 힘든 투병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 병원 입원기간 동안 담당 의사와 우연한 대화를 하던 중 필자가 재생불량성빈혈 환자였다는 사실을 말한 것입니다. 그때 혈액 마침 암 전문의사인 집사람의 주치의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오진이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 병은 치료약이 없어 고쳐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다시 감사하게 되었으며 만일 그 때 구원받지 못했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뿐 아니라 천국의 상속자로 영생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필자에게 있어서 병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축복이 되었습니다. 병을 통하여 어린나이에 죽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아니하는 죽음 다음의 세계를 알게 하셨습니다. 환경상 예수를 믿을 수 없는 처지였으며 병을 통하여 나를 꺽으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셨으며 오늘의 내가 소유한 모든 복은 병을 말미암은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나의 삶에 있어서 병은 상상할 수 없는 하늘의 복으로 인도하는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0001
레바론의 백향목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레바논의 백향목은 살아서만 수천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수천년간 자리를 지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백향목이 사용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난 여름 레바논 대학에서 교수하셨던 이재훈 박사님 가족이 오만과 시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오면서 필자에게 두 가지 선물을 주셨습니다. 유향과 물레방아가 힘차게 돌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필자도 두 번의 성지 여행을 했지만 유향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유향을 읽을 때마다 어떤 모양일까 늘 생각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면서 손으로 만져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너무 귀한 것이기에 친구 동역자들이 모이는 장소에 나갈 때 유향을 조금씩 나누며 기쁨을 함께 했습니다. 유향은 마치 송진과 같은 것으로 중동지역에서는 오만에서나 구할 수 있습니다.
유향도 귀한 것이지만 필자에게 큰 감동을 준 것은 물레방아 사진이었습니다. 한국의 물레방아보다는 7-8배 정도 컸습니다. 마치 2층까지 집 크기라고 할까요. 그런데 물레방아의 크기때문이 아니라 그 물레방아의 나이가 1천년이 되었다는 사실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천년이 되었는데도 어떻게 물레방아가 썩지 않았을까? 더 놀라운 것은 그 물레방아의 수명이 앞으로도 1천년 이상은 더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물레방아에 사용된 나무는 보통의 것이 아니라 레바논에서 나는 백향목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0여년 전 로마를 방문했을 때 필자가 감동 받은 곳이 있습니다. 로마의 많은 성당 중 스칼라산타 성당이 있습니다. 스칼라산타 성당이 유명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는 재판을 할 때 성 금요일 이른 새벽에 총독 집무실로 끌려 오르고 내려오신 28개의 나무 계단을 옮겨다가 놓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칼라산타 성당은 다른 말로 성 계단 성당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나무 계단을 과연 누가 옮겨놓았을까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주후 326년에 예루살렘에서 이 나무들을 옮겨다가 교회 건물을 지었습니다. 교황청에서 이 성 계단이 있는 곳을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지정했습니다. 지금도 그 성당 안에는 교황만이 사용하는 소 예배당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면죄부 판매가 처음으로 그곳에서 시작되었으며, 주후 850년에 교황 에로 4세가 산타스칼라 성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사람의 죄를 사하는 의식을 시작하면서, 지금도 죄 씻음을 원하는 사람들이 무릎으로 그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한 계단을 무릎으로 오를 때마다 9년 동안 지은 죄의 속죄를 보증 받는다고 전해져,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도 죄 씻음을 받기 위해 이 성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다가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인 “복음에는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성 28개 계단에서 일어나 걸어서 내려와 종교 개혁의 불을 피웠습니다.
28개의 나무계단은 2천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필자도 계단을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포기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올라가는 사람들의 뒤에서 성 계단에 두발을 잠시 올려보고 나무 계단을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무릎으로 올라가는 곳마다 깊은 자국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스칼라산타 성당의 28개의 나무계단이 이토록 오랫동안 보존되는 이유는 바로, 이 나무들이 레바논의 백향목이기 때문입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살아서만 수천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수천년 동안 자리를 지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백향목이 사용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편 92장 12에서 13절 말씀을 되새겨보면서 글을 마칩니다.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며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황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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