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목양칼럼 # 251 5년 된 직장 상사 분의 묘지를 방문한 어느 부부!

얼마 전 장례식이 있어서 교회 묘지가 있는 로즈힐공원 채플에서 예배를 마치고 장지에서 하관식을 하는데 어느 중년의 부부가 하관식이 마치기까지 한 시간 정도 뜨거운 날씨 임에도 불구하고 기다렸다가 어느 분의 비석 앞에 엎드려 큰 절을 하면서 준비해온 정성된 음식과 잔에 부은 것을 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곳에 뭍인 고인의 유가족을 알고 있는데 두 분의 경우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고인과는 어떤 관계이십니까? 라고 물으면서 나의 신분도 밝혔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인이 5년 전 카탈리나섬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 7 명과 함께 낚시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고인이 된 사장님을 비롯하여 몇 분이 명을 달리했을 때 자신도 그 현장에 함께 있다가 특별한 은혜로 살아남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사고 소식은 미 전국의 뉴스로 크게 보도 되었습니다. 기일이 되어 5 년이 지났지만 찾아뵙고 예를 갖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부에게 사진을 찍어도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유는 고인의 부인이 권사님으로 필자와 교제가 이어지고 있기에 두 분의 사진과 함께 묘지를 다녀가신 것을 알려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받고서 곧 바로 부인 권사님에게 전화를 하면서 사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부인 권사님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 박영준 사장님이 실패한 삶을 살지 않으셨습니다.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에서 옛 직원이 상사의 묘지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번은 올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5 년 동안 반복해서 그 날을 기억하면서 일상을 멈추고 장지에 달려와 정성을 다한 예를 갖추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만일 고인이 잘못 사셨다면 그런 인사와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가족도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의 직원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풀고 감동을 주는 삶을 사셨으면 5년이 지났음에도 기일을 기억할 뿐 아니라 바쁜 생활 속에서 시간을 내어 묘지까지 달려올 수 있습니까?

더구나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엎드려 큰 절을 하는 것은 정말로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켜보는 필자에게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고 박영준 집사님은 멋진 삶을 사셨습니다라고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듣고 부인은 예를 표하는 직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묘지만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기일이 되면 옛 상사의 집을 찾아와 부인 권사님에게 위로의 말씀과 함께 봉투를 건네주고 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사람마다 행한 대로 받는 다고 말을 합니다.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 박영준집사님을 생각하면서 나의 삶도 이웃에게 유익이 되고 감동을 주는 사랑과 섬김의 사람으로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나도 언젠가 부르심을 받을 터인데 과연 누가 얼마나 기억해 주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 잘 갔지, 하면서 나 까닭에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이 없어야 겠습니다.

집사님이 사고를 당했을 때 걱정한 것이 있었습니다. 잘 나가던 사업이 위기를 맞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남은 회사 직원들이 한 마음이 되어 회사를 더 크게 성장케 했습니다. 시 37편 25-26절은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말씀하신대로 고인의 아들과 딸이 넘치는 은혜와 복을 받고 있습니다. 집사님은 가셨어도 믿음 안에서 성실한 사업가로 사셨던 아름다운 삶의 자취가 우리에게 표상이 되어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함을 알려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2021년 7월 2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50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다저스 야구장!

지난 6 월 28일 월요일 저녁에 큰 딸 가족이 아버지의 날 선물로 다저스 야구장으로 초대해오랫만에 무더운 더운 날씨를 피하여 한 여름 밤의 시원함과 스릴 넘치는 멋 진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날의 야구경기가 특별했던 것은 1년 4개월 여 동안 팬데믹으로 경기장에서 관람이 허락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4만 5 천여 명이 모인 야구장에서 큰 딸의 세 손녀, 초 중 고등학생들과 옆 자리에 앉아서 경기를 관람하면서 세월이 빠르게 흘러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마냥 어린 줄로만 알았던 손녀들이 이제는 내가 도움을 주기보다는 도리어 기대고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훌쩍 커버린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날의 경기는 다저스의 앙숙이라고 할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자이언트 이었습니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다저스의 1 번 타자가 첫 번 친 것이 홈런이 되었고 이어서 2 번 타자도 담장을 넘어가는 연속 홈런을 날렸습니다. 오래전에 어느 분이 말하길 야구장에 가서 홈런을 하나만 보아도 티켓 값을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경기에서는 다저스가 3 개의 홈런을 날렸고 자이언트도 2 개의 홈런을 날려 총 5 개의 홈런을 보았으니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특별히 다저스가 일회에 두 개의 홈런을 연속으로 친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기까지 3대 2 로 한 점차 우위를 아슬아슬하게 지켰습니다.

자이언트가 점수를 낼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위기를 잘 극복해 정말로 근래에 보기 드문 타이트한 경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실시간으로 친구 목사님에게 카톡으로 중계를 했더니 요즘 다저스가 자이언트에 밀려 죽을 쑤더니 이 목사가 경기장에 등장하니 이겼다고 말을 해서 함께 웃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집에서 TV로 보는 것과 경기장에서 보는 것의 차이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순간순간 경기 흐름에 따라 하늘을 치솟는 뜨거운 함성과 부르짖음, 어디에서도 느낄 수없고 맛 볼 수 없는 박진감 넘치는 감동과 감격이었습니다. 손녀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일어서서 박수하며 함성을 외쳤습니다.

경기장이 아니면 그런 광경을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 경기장에 가면서 만일을 대비해 마스크를 가지고 갔습니다. 다른 사람이 마스크를 썼으면 쓰려고 한 것입니다. 경기장에 입장할 때 마스크를 쓰라고 누가 말을 하든지 아니면 마이크를 통하여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서 마스크를 쓰라고 하면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마스크를 쓰라고 권하는 사람도 없었고, 방송 안내를 통하여 마스크를 쓰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를 보면서 팬데믹에서 해방 받은 것이 확실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안 것이 있습니다. 이제는 경기장에서 현찰이 사용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차를 주차하는 것도 현찰이 통용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사전에 모바일을 통하여 결재하고 받은 영수증을 셀 폰으로 보여주면 됩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먹고 마시는 것을 살 때에도 현찰이 아닌 크레딧카드로만 지불이 됩니다. 이전에 생각지 못한 참으로 신기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큰 손녀가 질문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궁금했는가 봅니다. 이 경기장에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왔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손녀가 생각하기에 한두 번 경기에 온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 모양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보니 다저스 구장을 다시 찾은 것이 20년이 넘었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있었을 때니까 그리 된 것입니다. 그랬더니 왜 그 동안 오지 못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17년 동안 아프셨고 우리 곁을 떠난 지 4 년이 되었다고 했더니 고객을 끄덕이며 말하길 가까운 시일에 다시 방문하자고 했습니다.  1년 후 손녀가 대학을 가게 되면 이런 기회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한 동안 잊고 살았던 삶의 또 다른 활력과 기쁨을 통하여 오늘도 건강한 삶을 꿈꾸게 하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2021년 6월 29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49 목회자로서 힘들어 했던 장례식 경험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에게 사역을 하는 동안 감동과 감격의 순간이 있었는가하면 반대로 고통과 아픔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한 교회만을 섬겨오면서 경험한 감동과 감격의 때는 충성스러운 교인이 어려움 당하여 해결의 방법이 없다가 극적으로 주님의 도우 심을 받았을 때입니다.

최근에는 어느 집사님이 몸에 이상증세를 느껴 병원을 방문해서 CT 촬영을 하였는데 암이 발견되어 더 정확을 기하기 위해 MRI 촬영을 했습니다. 역시 양쪽 유방에 암이 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암이 얼마나 무서운 것임을 아는 경험자들과 가족들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무서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면 순종하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왜 나에게 암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하면서 자신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족과 주님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MRI 촬영결과를 받자마자 조직 검사 일자가 잡혔습니다.

집사님께 사랑과 은혜를 받았던 가족과 친지들과 교우들은 마음을 모아서 기도하길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필자도 초조한 마음으로 애를 태워야 했습니다.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집사님의 전화번호가 찍혔습니다.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를 해야 좋을까?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목사님, 감사합니다. 아니 이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수술 날짜를 통보 받았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어쩌면 좋아요, 어떻게 하지요! 그런 소리를 하실 줄 알았는데 전화기로 들려지는 집사님의 소리는 맑고 고운 그리고 감사의 기쁨 소식이었습니다.

암이 아니랍니다. 물혹이 있었답니다. CT와 MRI에서 암으로 판명이 된 것이 조직 검사결과 물혹으로 나온 것은 처음 들어본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극적인 감동과 감격을 받은 것입니다. 본인과 가족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런가하면 목사로서 가장 절망적이고 힘들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특별히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아픔을 느껴야 했었던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는 40이 넘어서 낳은 아들의 죽음이었습니다. 20살에 미국에 유학 와 2 년 만에 운전하던 차가 사고로 동승자 가운데 독자만 명을 달리했습니다.

장례식을 위해서 한국에서 날아온 부모님들의 울부짖음이 30년이 지나간 지금도 귓가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12살 된 아들이 1200만 명에 한명 걸린다는 희귀 병으로 수년 동안 병원과 집을 오가며 투병 생활을 하다가 명을 달리했을 때입니다. 그러한 일을 당하면 부모님을 위로할 말이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지난 6 월 30일에 있었던 장례식이었습니다. 운명하신 날은 5 월이었지만 팬데믹으로 장례 일정이 잡히지 않아 37일 만에 장례식을 했습니다. 한 달여 동안 장례식을 기다리는 동안 고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마음에 답답함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고인이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을 때 몇 차례 방문하여 기도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우편 강도가 임종 순간에 주님을 믿고 극적으로 구원 받아 천국에 동행 했던 것처럼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구원의 기회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고인은 누구보다도 세상 적으로는 열심히 사셨습니다. 가정을 위하고 사업을 이루는 일에는 혼신의 힘과 정성으로 부족함이 없는 가정과 사업을 이루셨습니다. 주변으로부터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부러움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세를 위하여 준비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인생은 세상이 다가 아닌 것을 모르셨습니다. 구원 받은 분들의 장례식을 준비할 때는 성령이 주시는 위로가 있습니다. 하늘의 기쁨이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한 분들의 장례식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며 다른 사람에게도 위로와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2021년 6월 30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