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사 120여년에서 우리에게 가장 슬프고 큰 아픔을 당해야 했던 4·29폭동 29주년을 맞는 주간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은데도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1991년 4월 29일 오후 5시부터 흑인 밀집 지역에서 시작된 방화와 약탈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업소들은 불행하게도 우리 한인들이었습니다.
당시 폭도들에 의하여 피해를 본 전체 업소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0여개의 업소가 한인 소유였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집사님이 운영하던 대형 마켓이 흑인 지역에 있었는데 한인 업소로는 제일먼저 폭도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피해로 아직도 그 때의 상처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 살아가고 계십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법과 질서가 제일 잘 지켜지는 나라로 알고 살아왔습니만 4·29폭동을 당하면서 우리가 사는 미국이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었던 미국의 법과 공권력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안녕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미국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게 되었습니다.
폭동이 지나고 나서 한두 해 후 교회 인근에 있는 Glendale city college 한인 학생회에서 필자에게 4·29폭동의 회고와 전망에 대한 주제로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당시 교회에 출석하는 학생 중 김은경이라고 하는 여학생이 그 대학의 한인 학생회 회장으로 두 명의 여동생 봉경이와 주연이도 교회를 출석했었습니다.
30여 명이 모인 강연회 장에는 백인 교수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강연했던 내용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미국이 현존하는 한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경제적인 것도 아니고 군사적인 것도 아닌 인종간의 문제로서 흑인과 백인간의 갈등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흑인이 오게 된 것은 우리와 같이 자유의사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웃나라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36년 동안 자유를 박탈당한 채 억압과 고통의 삶을 살아온 것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흑인들은 저들이 살던 곳에서 짐승처럼 결박을 당하고 노예로 이 땅에 끌려와서 대대로 고통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들의 가슴에 백인들을 향한 증오와 미움은 우리가 일본인들의 만행을 미워하는 것 이상으로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이 백인을 향한 분노와 울분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택한 것이 이민제도를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흑인과 백인간의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민자들은 자기의 나라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잘 살기 위해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민자들이 그 나라에서 정착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따릅니다. 그러는 사이에 가난한 이민자들이 이웃에 사는 흑인들과 잦은 충돌이 발생합니다.
그러다보면 백인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줄어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4·29폭동이 일어난 그 장소에서 29년 전에 유대인들이 폭동을 당했습니다. 폭동을 당한 유대인들이 다시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듯이 우리 한국인들도 다시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공간에 어느 민족이 들어가야 합니까? 지구상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유대인들이 당했던 그 장소에 들어갈 민족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 그 자리에 들어간 것도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작은 돈으로 가게를 차릴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생활비용이 적게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 들어가면 힘들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명을 담보하면서까지 살기 위해서 그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폭동 피해당하신 분들은 부자들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이민 올 때 큰돈을 가지고 오신 분들은 안전한 곳에서 사업을 할 수 있어서 폭동의 피해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강연을 마치면서 결론으로 한 말은 이러했습니다. 이제 폭동이 일어난 그 지역에 들어갈 수 있는 민족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사람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 만일 미국이 북한에 이민 문호를 개방한다면 가장 빠르게 그 지역으로 가난한 북한인들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강연에 참석한 백인 교수가 중간 중간 통역하는 한인 학생의 말을 듣고서 연실 고개를 끄덕이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진짜 목사님이십니다. 이 말은 필자가 지난 화요일인(4 월 13일) 어느 모임에서 친구 목사에게 한 말입니다. 그냥 지나는 말로 하는 말이 아니고 진심으로 존중하며 존경하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필자에게는 정기적으로 만나서 모임을 갖으며 오랫동안 교제를 이어오는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그 모임에 참석하시는 목사님 중에 특별한 목사님이 한분 계십니다. 특별하다고 말을 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입니다. 모임에 참석하시는 목사님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으시며 목회 경력이 다른 목사님들보다 월등히 많으시고 이미 오래전에 큰 박수를 받으시고 명예롭게 은퇴하신 K 목사님이십니다.
K 목사님이 특별하신 이유는 모임에 참석하는 목사님들과 교단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필자와 모임에 참석하는 목사님들 모두 같은 교단에 속한 장로교 목사님이지만 K 목사님은 감리교단에 속한 목사님이십니다. 지금까지 목사로서 살아오면서 다른 교단 목사님과 함께 오랫동안 교제를 이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K 목사님의 경우 수년 동안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말에나 행동에 실수가 있으시거나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는 것이 없으셨다면 지금처럼 우리의 관계는 오래 동안 지속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난 모임은 K 목사님 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목사님의 자녀들이 집을 구입해 부모님께 선물해 지난 달 입주하고서 처음으로 이사 감사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뜨겁게 감사예배를 마치고 나서 준비하신 애찬을 나누며 서로간의 대화가 무르익어 갈 때에 한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사모님! 저희 부부가 정부에서 주는 1400불씩 받았습니다”
그 기념으로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000 식당에서 여러분 모두에게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모임을 가질 때마다 헤어질 때는 식당에서 식사 후 헤어집니다. 우리가 모여서 식사를 할 때는 늘 정해진 식단이 있습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닐 때는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 식사를 대접하시겠다고 하신 목사님은 우리 모두가 원하면서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밖에 가지 못하는 곳으로 초대하시겠다고 해서 모두가 박수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목사님만 1400불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함께한 모두가 다 같은 액수의 돈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필자를 포함한 다른 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다른 목사님이 말을 하셨습니다. 저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돈을 내가 쓰지 않았습니다. 저와 집 사람이 받은 2800불에다 200불을 더하여 3 천불을 만들어 P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의 권사님 중 한 분에게 그 돈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 권사님은 70이 넘으신 권사님으로 오랫동안 교회를 섬겨오셨습니다. 한 때는 부족함 없이 주변으로부터 부러움을 받으며 사시던 때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편을 앞세우시고 홀로 살아오시면서 가정 형편이 기울어 힘들게 살아가고 계십니다. 권사님이 사용하시는 차는 18년 동안 타시는 것입니다.
오래된 차로 보기에도 아름답지 못할 뿐 아니라 잦은 고장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 어떤 어려움을 당하실지 모를 정도로 불안하게 운전하고 계신 것입니다. 권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늘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지만 도울 방법이 없으셨습니다. 권사님의 실력으로는 새 차를 구입하실 수없는 것을 아시기에 목사님과 사모님이 결단하신 것입니다.
목사님도 훌륭하시지만 그에 동조하신 사모님의 결정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결정이 아닌 것은 목사님의 가정도 넉넉하지 못하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기쁜 마음으로 권사님께 전했습니다. 권사님! 이 돈으로 새 차를 사는데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권사님이 그 돈을 받으시고 물으셨습니다.
목사님도 넉넉지 못하신데 어떡케 이 돈을 준비하셨습니까? 이번에 정부에서 우리 부부에게 1400불씩 주는 돈에 200불을 더한 것입니다. 라고 말을 했을 때 권사님은 그 돈을 받으셨다가 다시 목사님께 돌려 드렸습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돌려 드리는 돈을 받지 아니하시면 교회를 떠나겠습니다.
그 말에 목사님과 권사님은 서로 부둥켜 앉고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데 나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는 친구목사님의 손을 잡으며 “목사님은 진짜 목사시며 그 권사님은 진짜 권사님 이십니다”라고 힘주어 말을 한 것입니다.
지난 화요일 오전 11시 필자가 소속한 노회 제 93회 정기 봄 노회가 covid 19 때문에 대면으로 모이지 못하고 줌을 통한 화상회의로 마쳤습니다. 지난 두 회기 동안 정기회의를 갖지 못하다가 1 년 여 만에 대면으로 만나지는 못하지만 화면으로 궁금해 하던 동역 자들의 얼굴을 뵙게 되어 너무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험하고 무서웠던 고난의 긴 터널을 큰 어려움 없이 건강하게 지나오신 모든 동역자 목사님들과 장로님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위로 드리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되는 주님의 위로와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정기노회를 화상으로 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지켜오던 성 노회가 얼마나 큰 은혜와 축복의 시간이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예배도 그렇고 회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 대면으로 만나는 예배와 화상 회의로는 함께하는 서로에게 기대한 것처럼 만족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화상 회의에서 불편을 느껴야 했던 것은 찬송가를 부를 때였습니다. 회의에 참가한 노회원 목사 장로님들이 사역하시는 지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참여하시고 멕시코에서도 참석하시며 미국 안에서도 여러 지역에서 참석을 하시다보니 찬송을 부르게 될 때에 찬양이 하나가 되지 아니했습니다.
줌을 통한 화상회의에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성찬을 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기노회시마다 개회예배가 마치면 회무에 들어가기전 곧 바로 성찬식에 참여하게 됩니다. 교회의 예식 중 거룩한 예식은 두 가지입니다. 세례와 성찬입니다. 세례는 일생에 한번만 받지만 성찬은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 번 받습니다.
성찬은 회계하고 받으면 축복이기 때문에 많이 받을수록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노회는 화상회의로 하게 되어 성찬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회가 생긴 이래 93번째 지나오는 동안 성찬식이 없는 노회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처럼 성찬식이 없는 노회를 마치게 되니 서운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성찬식이 귀한 것은 지난 회기 동안 주님과의 관계에서 불충하고 불의했던 것을 고백하고 용서 받으며 새 힘을 받는 은혜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화상회의에선 성령님의 내재하심과 감동을 받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화상 회의가 불편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회의 때마다 나누던 커피와 다과 애찬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잔치 집에 참석했다가 잔치 음식을 대접 받지 못하고 나오는 것 같은 허전함을 달래야 했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잔치 음식을 나무며 지난 회기 동안 지나온 서로간의 받은 은혜와 축복을 나누는 정겨운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우리 모두를 두렵고 불편하게 해왔던 Covid 19이 과학의 발달과 힘으로 그 세가 잡혀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에 다시는 이런 비대면 화상 회의가 없기를 기대해 봅니다. 지금의 돌아가는 분위기로는 금년 가을 정기회의는 모두가 얼굴을 대하며 기쁨으로 손을 마주 잡고 회의 할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목양칼럼 # 239 4·29 폭동 29주년을 생각하면서!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한인 이민사 120여년에서 우리에게 가장 슬프고 큰 아픔을 당해야 했던 4·29폭동 29주년을 맞는 주간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은데도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1991년 4월 29일 오후 5시부터 흑인 밀집 지역에서 시작된 방화와 약탈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업소들은 불행하게도 우리 한인들이었습니다.
당시 폭도들에 의하여 피해를 본 전체 업소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0여개의 업소가 한인 소유였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집사님이 운영하던 대형 마켓이 흑인 지역에 있었는데 한인 업소로는 제일먼저 폭도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피해로 아직도 그 때의 상처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 살아가고 계십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법과 질서가 제일 잘 지켜지는 나라로 알고 살아왔습니만 4·29폭동을 당하면서 우리가 사는 미국이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었던 미국의 법과 공권력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안녕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미국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게 되었습니다.
폭동이 지나고 나서 한두 해 후 교회 인근에 있는 Glendale city college 한인 학생회에서 필자에게 4·29폭동의 회고와 전망에 대한 주제로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당시 교회에 출석하는 학생 중 김은경이라고 하는 여학생이 그 대학의 한인 학생회 회장으로 두 명의 여동생 봉경이와 주연이도 교회를 출석했었습니다.
30여 명이 모인 강연회 장에는 백인 교수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강연했던 내용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미국이 현존하는 한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경제적인 것도 아니고 군사적인 것도 아닌 인종간의 문제로서 흑인과 백인간의 갈등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흑인이 오게 된 것은 우리와 같이 자유의사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웃나라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36년 동안 자유를 박탈당한 채 억압과 고통의 삶을 살아온 것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흑인들은 저들이 살던 곳에서 짐승처럼 결박을 당하고 노예로 이 땅에 끌려와서 대대로 고통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들의 가슴에 백인들을 향한 증오와 미움은 우리가 일본인들의 만행을 미워하는 것 이상으로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이 백인을 향한 분노와 울분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택한 것이 이민제도를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흑인과 백인간의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민자들은 자기의 나라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잘 살기 위해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민자들이 그 나라에서 정착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따릅니다. 그러는 사이에 가난한 이민자들이 이웃에 사는 흑인들과 잦은 충돌이 발생합니다.
그러다보면 백인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줄어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4·29폭동이 일어난 그 장소에서 29년 전에 유대인들이 폭동을 당했습니다. 폭동을 당한 유대인들이 다시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듯이 우리 한국인들도 다시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공간에 어느 민족이 들어가야 합니까? 지구상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유대인들이 당했던 그 장소에 들어갈 민족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 그 자리에 들어간 것도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작은 돈으로 가게를 차릴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생활비용이 적게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 들어가면 힘들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명을 담보하면서까지 살기 위해서 그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폭동 피해당하신 분들은 부자들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이민 올 때 큰돈을 가지고 오신 분들은 안전한 곳에서 사업을 할 수 있어서 폭동의 피해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강연을 마치면서 결론으로 한 말은 이러했습니다. 이제 폭동이 일어난 그 지역에 들어갈 수 있는 민족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사람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 만일 미국이 북한에 이민 문호를 개방한다면 가장 빠르게 그 지역으로 가난한 북한인들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강연에 참석한 백인 교수가 중간 중간 통역하는 한인 학생의 말을 듣고서 연실 고개를 끄덕이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2021년 4 월 24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38 “목사님은 진짜 목사님이십니다”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목사님은 진짜 목사님이십니다. 이 말은 필자가 지난 화요일인(4 월 13일) 어느 모임에서 친구 목사에게 한 말입니다. 그냥 지나는 말로 하는 말이 아니고 진심으로 존중하며 존경하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필자에게는 정기적으로 만나서 모임을 갖으며 오랫동안 교제를 이어오는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그 모임에 참석하시는 목사님 중에 특별한 목사님이 한분 계십니다. 특별하다고 말을 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입니다. 모임에 참석하시는 목사님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으시며 목회 경력이 다른 목사님들보다 월등히 많으시고 이미 오래전에 큰 박수를 받으시고 명예롭게 은퇴하신 K 목사님이십니다.
K 목사님이 특별하신 이유는 모임에 참석하는 목사님들과 교단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필자와 모임에 참석하는 목사님들 모두 같은 교단에 속한 장로교 목사님이지만 K 목사님은 감리교단에 속한 목사님이십니다. 지금까지 목사로서 살아오면서 다른 교단 목사님과 함께 오랫동안 교제를 이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K 목사님의 경우 수년 동안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말에나 행동에 실수가 있으시거나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는 것이 없으셨다면 지금처럼 우리의 관계는 오래 동안 지속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난 모임은 K 목사님 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목사님의 자녀들이 집을 구입해 부모님께 선물해 지난 달 입주하고서 처음으로 이사 감사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뜨겁게 감사예배를 마치고 나서 준비하신 애찬을 나누며 서로간의 대화가 무르익어 갈 때에 한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사모님! 저희 부부가 정부에서 주는 1400불씩 받았습니다”
그 기념으로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000 식당에서 여러분 모두에게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모임을 가질 때마다 헤어질 때는 식당에서 식사 후 헤어집니다. 우리가 모여서 식사를 할 때는 늘 정해진 식단이 있습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닐 때는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 식사를 대접하시겠다고 하신 목사님은 우리 모두가 원하면서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밖에 가지 못하는 곳으로 초대하시겠다고 해서 모두가 박수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목사님만 1400불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함께한 모두가 다 같은 액수의 돈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필자를 포함한 다른 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다른 목사님이 말을 하셨습니다. 저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돈을 내가 쓰지 않았습니다. 저와 집 사람이 받은 2800불에다 200불을 더하여 3 천불을 만들어 P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의 권사님 중 한 분에게 그 돈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 권사님은 70이 넘으신 권사님으로 오랫동안 교회를 섬겨오셨습니다. 한 때는 부족함 없이 주변으로부터 부러움을 받으며 사시던 때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편을 앞세우시고 홀로 살아오시면서 가정 형편이 기울어 힘들게 살아가고 계십니다. 권사님이 사용하시는 차는 18년 동안 타시는 것입니다.
오래된 차로 보기에도 아름답지 못할 뿐 아니라 잦은 고장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 어떤 어려움을 당하실지 모를 정도로 불안하게 운전하고 계신 것입니다. 권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늘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지만 도울 방법이 없으셨습니다. 권사님의 실력으로는 새 차를 구입하실 수없는 것을 아시기에 목사님과 사모님이 결단하신 것입니다.
목사님도 훌륭하시지만 그에 동조하신 사모님의 결정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결정이 아닌 것은 목사님의 가정도 넉넉하지 못하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기쁜 마음으로 권사님께 전했습니다. 권사님! 이 돈으로 새 차를 사는데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권사님이 그 돈을 받으시고 물으셨습니다.
목사님도 넉넉지 못하신데 어떡케 이 돈을 준비하셨습니까? 이번에 정부에서 우리 부부에게 1400불씩 주는 돈에 200불을 더한 것입니다. 라고 말을 했을 때 권사님은 그 돈을 받으셨다가 다시 목사님께 돌려 드렸습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돌려 드리는 돈을 받지 아니하시면 교회를 떠나겠습니다.
그 말에 목사님과 권사님은 서로 부둥켜 앉고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데 나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는 친구목사님의 손을 잡으며 “목사님은 진짜 목사시며 그 권사님은 진짜 권사님 이십니다”라고 힘주어 말을 한 것입니다.
2021년 4월 14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37 줌을 통한 정기노회 화상회의를 경험하고서!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지난 화요일 오전 11시 필자가 소속한 노회 제 93회 정기 봄 노회가 covid 19 때문에 대면으로 모이지 못하고 줌을 통한 화상회의로 마쳤습니다. 지난 두 회기 동안 정기회의를 갖지 못하다가 1 년 여 만에 대면으로 만나지는 못하지만 화면으로 궁금해 하던 동역 자들의 얼굴을 뵙게 되어 너무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험하고 무서웠던 고난의 긴 터널을 큰 어려움 없이 건강하게 지나오신 모든 동역자 목사님들과 장로님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위로 드리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되는 주님의 위로와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정기노회를 화상으로 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지켜오던 성 노회가 얼마나 큰 은혜와 축복의 시간이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예배도 그렇고 회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 대면으로 만나는 예배와 화상 회의로는 함께하는 서로에게 기대한 것처럼 만족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화상 회의에서 불편을 느껴야 했던 것은 찬송가를 부를 때였습니다. 회의에 참가한 노회원 목사 장로님들이 사역하시는 지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참여하시고 멕시코에서도 참석하시며 미국 안에서도 여러 지역에서 참석을 하시다보니 찬송을 부르게 될 때에 찬양이 하나가 되지 아니했습니다.
줌을 통한 화상회의에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성찬을 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기노회시마다 개회예배가 마치면 회무에 들어가기전 곧 바로 성찬식에 참여하게 됩니다. 교회의 예식 중 거룩한 예식은 두 가지입니다. 세례와 성찬입니다. 세례는 일생에 한번만 받지만 성찬은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 번 받습니다.
성찬은 회계하고 받으면 축복이기 때문에 많이 받을수록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노회는 화상회의로 하게 되어 성찬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회가 생긴 이래 93번째 지나오는 동안 성찬식이 없는 노회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처럼 성찬식이 없는 노회를 마치게 되니 서운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성찬식이 귀한 것은 지난 회기 동안 주님과의 관계에서 불충하고 불의했던 것을 고백하고 용서 받으며 새 힘을 받는 은혜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화상회의에선 성령님의 내재하심과 감동을 받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화상 회의가 불편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회의 때마다 나누던 커피와 다과 애찬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잔치 집에 참석했다가 잔치 음식을 대접 받지 못하고 나오는 것 같은 허전함을 달래야 했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잔치 음식을 나무며 지난 회기 동안 지나온 서로간의 받은 은혜와 축복을 나누는 정겨운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우리 모두를 두렵고 불편하게 해왔던 Covid 19이 과학의 발달과 힘으로 그 세가 잡혀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에 다시는 이런 비대면 화상 회의가 없기를 기대해 봅니다. 지금의 돌아가는 분위기로는 금년 가을 정기회의는 모두가 얼굴을 대하며 기쁨으로 손을 마주 잡고 회의 할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다시 만날 그 때까지 주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모두에게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2021년 4 월 6일
줌을 통한 화상회의로 정기노회를 마치면서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