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목양칼럼 # 231 코비드–19 백신 2차 접종을 받았습니다.

지난 금요일(2월 26일) 오후 집에서 20 마일 떨어진 곳에서 코로나 백신 2 차 접종을 받았습니다. 일차 접종을 받은 지 30일 만이었습니다. 2 차 접종은 일차 접종 장소와 다른 곳에서 받았습니다. 일차 때는 대학교 넓은 주차장의 간이 텐트에서 주사를 맞았는데 이번에는 대형 마켓안의 약국에서 맞았습니다.

일차 접종 때 주사하는 간호사님이 3 주일 후 전화로 2 차 예약을 통보할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주변에서 접종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전화로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을 통하여 2차 접종 일자를 받습니다만 필자에게 접종 주사를 해준 곳의 간호사님은 전화로 통보가 갈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간호사님이 말한 대로 정확히 3 주일 째 되는 날 전화로 2차 예약 장소와 일자 시간을 받았습니다. 일차 접종 후 3 주간이 지나는 동안 약속대로 전화로 통보 받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의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3 주후 전화로 연락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담당 간호사님이 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4 주 까지 기다렸다가 그래도 연락이 가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전화로 알려 달라고 했었습니다. 계획한 대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백신을 관장하는 행사 요원들에게 신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염병에서 한 사람이라도 구하기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에 대해서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연일 보도되는 백신 뉴스에 의하면 아직도 주변에 많은 어르신들이 1차 백신도 맞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2 차 접종에 필요한 백신 공급이 원활치 못하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한 일자와 장소에서 예정대로 2차 접종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려움 없이 2차 접종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일차 접종 때와 같이 백신을 맞기 전 집에서 출발하면서 있을지도 모를 후유증을 대비하여 의사들이 추천해 주는 타이레놀 500mg을 가지고 갔습니다. 2차 접종을 받으신 분들이 일차 때와 달리 더 심한 통증이 있었다고 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1차 때와 달리 2 차 접종 후에 필자도 약간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정하고 다음 날 집에서 온 종일 쉬면서 타이레놀을 시간에 맞춰 먹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통증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아픔 자체가 몸 안에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백신을 맞는 다음 날 온 종일 피곤함을 느껴서 두 번에 걸쳐서 타이레놀을 2 알씩 4 알을 먹고 잠이 오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잠에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3 일째 되는 주일 날 아침은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큰 어려움 당하지 아니하고 회복케 해 주신 은혜를 주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백신을 원하는데도 자신의 차례가 되지 않거나 백신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서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19의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속히 모든 분들에게도 충분한 백신이 공급되어 모두가 빠르게 동참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크게 수고하는 이름 모를 모든 의료진들에게 큰 박수와 함께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뿐만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위정자들에게도 같은 마음을 전합니다. 코로나 사태를 당하면서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백신 접종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미국은 부자라고 먼저 맞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력자라고 앞서 맞을 수 있지도 않습니다. 힘 있는 자라고 먼저 맞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도 큰 애를 쓰지 않고도 쉽게 맞을 수 있었습니다.

백신을 관장하는 담당자들이 정한 절차에 따라 무상으로 누구나 코로나 예방 주사를 맞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하늘의 은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항상 우리를 도우시길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코로나의 위기로부터 모두가 벗어나 다시 밝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복된 날을 기대합니다.

2021년 3월 1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30 목사님은 행복한 목사님이십니다!

40년 동안 동일한 지역에서 같은 교단에 속한 동역자로 교제를 이어가고 있는 절친한 친구 목사님이 계십니다. 오랫동안 한결 같은 마음으로 변하지 아니하고 지금까지 교제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목회 연수도 비슷하고 나이도 같고 자녀들의 숫자(일남이녀)도 같으며 손자녀들의 숫자도 같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목회 정보를 교환하며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함께 가벼운 운동을 하기도 합니다. 지난주는 세 목사님 부부가 가까운 산을 오르기도 했습니다. 구슬땀을 흘리며 언덕진 산등성이를 돌다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서 나무 그늘에 서서 쉬고 있을 때였습니다.

친구 목사님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우리 중 행복한 목사님이십니다” 그것을 아십니까? 갑작스런 질문을 받고 아멘이라고 입으로 말하며 머리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왜 그런 장소에서 그 말을 하시는 의도가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 말이 뇌리에서 사라지지가 않았습니다.

하산 하는 동안에도 그 말이 반복해서 울림으로 들려지는 것입니다. 그 밤에 깊은 잠에서 깨어났는데 다시 “목사님은 우리 중 가장 행복한 목사님이십니다“는 말이 잔잔하게 귓가에 메아리치고 있었습니다. 친구 목사님은 왜 필자가 행복한 목사인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고 있으셨습니다.

주변의 동역자 중에서 한 교회를 40년 이상 섬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교회가 빚이 없이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가정의 복, 자손의 복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Lip service로 여길 수도 있지만 존경하는 친구의 말이기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잠에서 깨어서 친구 목사님의 말을 조용히 음미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회 초년 시절엔 지금처럼 Long run을 하리라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난 40년 동안 부족한 종을 도우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제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내가 특별해서도 아닙니다.

목회 성공의 비결은 좋은 교인을 만나는 것입니다. 목사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좋은 성도를 만나지 못하면 성공적인 목회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게 하나님을 크게 사랑하시며 하나님께 사랑을 크게 받는 성도님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지금도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는 30년 이상 되신 분들이 계십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아들 같은 젊은 목사로 목회 경험이 전혀 없는 안수 받은 지 2달 밖에 되지 아니한 저를 설립 당시부터 36년 동안 변함없이 충성스럽게 섬겨주시다가 주님의 나라에 가신 고 김시철 장로님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장로님은 36년 동안 한 번도 공적 예배에 빠진 적이 없으셨습니다.

다음으로 행복한 목사인 이유는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빚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팬데믹으로 교회마다 재정적으로 어려움 당하지 아니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교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움 당하면 크게 걱정하는 사람은 교회 재정을 집행하는 재정부장 장로님과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이십니다.

30여 년 동안 교회 건물 페이먼트로 어려움 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의도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재정이 어려워도 건물 페이먼트는 미룰 수 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사님께 지불되는 목회비도 여러 달씩 건너뛰어야 하는 때도 있었으며 때로는 목회비의 작은 일부를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받지 못한 것 자손들에게 갚아주시되 복리에 복리를 계산하고 더하시어 자녀들에게 주시길 수십 년 동안 반복해서 기도해 왔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시고 자녀들에게 복에 복을 더하시는 것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축복하셨습니다.

이를 아는 친구 목사님은 기도하실 때마다 이 목사님의 받은 교회의 복과 가정의 복과 자손의 복 주시길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행복한 목회를 받고도 자랑이나 교만으로 비쳐질까 말하지 못해온 필자에게 “목사님은 우리 중 가장 행복한 목사입니다”라고 말해 준 친구 목사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1년 2월 17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29 살아가면서 배우는 삶의 지혜!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교회 마당의 과실 수들을 보면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 간절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해 이른 봄에 교회 당 주위에 심은 여려 종류의 과실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푸르른 잎들을 머지않아 돋아나게 할 것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바람은 나만이 아닙니다.

교인들 중 지난 해 과실 수 심는 것에 동참하지 못하신 어르신들이 자신들의 이름으로 남은 공터에 과실 수를 심으면 좋겠다고 자원하셔서 지난 주간에 부목사님과 함께 3그루의 과실 수를 사다가 심었습니다. 지난 해 심은 20여 그루의 과실 수 중 다른 것은 다 잘 자라서 첫 열매의 수확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두 구루 블루베리는 실패했습니다. 같은 정성과 수고로 살폈지만 다른 나무들은 잘 자란데 반하여 블루베리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번에 화원을 방문해서 블루베리가 죽은 이유가 토양 때문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무가 살고 죽는 것도 우리의 수고에 달린 것이 아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 자리에 라임나무를 심었고 다른 곳에는 석류나무와 열매가 작은 오렌지나무를 심었습니다. 필자는 그 동안 매주 두세 번 과실 수에 물을 주어 왔습니다. 자주 많이 주면 좋은 줄 알고 나름대로 정성으로 돌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나무들에도 물을 주는 때와 방법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감나무나 다른 겨울잠을 자는 나무들에게 잠을 자는 동안 물을 반복해서 주면 안 되는 것을 몰랐습니다. 많이 주면 잘 자라는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나무가 잠을 자는 수면기 동안에 물을 주면 나무가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어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며 성장하는데 지장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잔디나 과일나무들에 물을 줄 때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에 생각의 기준, 판단의 기준이 자기중심적인 것을 이번에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하는 일이라고 열심하는 일들이 도리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주님이 정하신 원리와 법대로 하는 것이 바른 수고이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큰 지위를 가지고 권세를 행하며 하나님을 위한 열심히 가장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과 종교인들을 향하여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내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굴로 만들지 말라시며 요한복음 3장 5절에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말은 죽인다는 말이 아닙니다.
심판의 주재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신다면 그 말이 정말로 두렵고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유는 우리의 생이 다하고 나면 우리의 선택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길 가운데 하나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가고 싶다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가기 싫다고 안 갈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강하는 곳은 영원한 위로와 안식이 없는 곳이기에 두렵고 겁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의 상류사회를 이끌어가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믿음의 사람 된 우리 각 사람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큰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하여 ‘살전 5장 16-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세상살이가 힘들고 고단해도 인생의 끝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앞에 예비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시련과 고통은 우리를 낙심케 하고 절망케 하지만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이 동행하심을 인하여 기도하라 십니다. 너희가 받지 아니함은 구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삶이 우리의 원대로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나의 편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2021년 2월 14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