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에 생각지 못한 아름다운 메일을 한통 받았습니다. 큰 딸의 세 손녀들이 사랑의 메시지를 담아 보내온 카드였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너무 너무 사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카드를 읽고 나서 달력을 보았더니 지난 13일 주일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기리는 날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매년 이맘때면 비슷한 내용의 카드를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딸이 카드를 준비하고 손녀들이 카드 모퉁이에 간단하게 사랑의 내용을 적은 것을 보내왔습니다. 이번에는 아닙니다. 딸과는 상의하지 아니하고 어린 세 손녀들이 의논하여 마음을 모으고 정성으로 준비해서 카드를 보내온 것입니다.
카드 안에는 세 손녀들이 작은 고사리 손으로 직접 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내용의 글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세 손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의 빠름을 느끼며 변해 가는 모습에 때마다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엄마(딸)도 아이들이 할아버지에게 카드를 보낸 사실을 모르고 있었나봅니다. 그래서 보내온 예쁜 카드를 사진에 담아 잘 받았다는 뜻으로 딸에게 카톡 메시지로 보냈습니다. 잠시 후 딸에게서 이런 내용의 답신이 왔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세 손녀 중 나이가 가장 어린 막내딸의 방에 들어갔다가 놀랬다는 것입니다.
자기 방에서 혼자서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울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우느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어린 나이 이기에 홀로 울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싸워서 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니들과 싸우고 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엄마의 다그치는 물음에 손녀는 말을 하지 못하고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종이에 자신이 우는 이유를 이렇게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I was missing sweet 할머니” 할머니 생각에 울고 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명을 달리한지가 벌써 3 년이 지났습니다. 아이들에게 3 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다른 두 손녀들은 할머니의 기억을 잊어가고 있었는데 어린 막내는 아직도 할머니와의 길지 않는 추억 속의 사랑을 잊지 못해서 홀로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없는 할머니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을 엄마에게 조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자기 방에서 홀로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는 이유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서가 아니며 누구와 싸워서 우는 것도 아니고 오직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랑하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엄마도 그 글을 읽고서 어린 딸을 부둥켜 앉고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하였을 뿐 아니라 며칠 후 이를 듣는 필자의 가슴을 먹먹케 했습니다.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비록 명을 달리하여 세상에서 다시 볼 수는 없지만 하늘에 먼저 가 있는 할머니에 대한 어린 손주들의 마음에 그리움으로 인한 눈물을 흘리게 한 삶을 살았다면 할머니의 삶은 후회 없는 삶을 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작은 딸의 가족은 알라스카에 살고 있지만 큰 딸의 가족은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딸의 가족은 자주 만나는 편입니다. 9월 하순에 만나기로 했는데 어린 손녀는 이 말을 엄마로부터 전해 듣고 카드 말미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I can not wait till I see You again”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시128편 1 – 3 절의 말씀입니다. 젊어서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하늘의 복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가정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귀하고 복된 것은 자손이 잘 되어가는 것을 보는 기쁨으로 이는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받는 것이라고 시편의 기자는 자신의 체험을 간증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2020년 9월 15일 오후 1시
이상기 목사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9-16 14:48:082021-01-06 13:14:40목양칼럼 # 207 할아버지 할머니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9 월 8일 오후 6시에 16살 다은이 엄마의 다급한 소식을 카톡으로 전달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지난 일주일의 시간이 마치 지옥인가 싶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은이의 폐가 너무 갑자기 나빠졌다면서 또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데 참 드문 케이스라고 말하니까 저도 숨도 못 쉴 만큼 무섭고 힘들었습니다.
한 달 반전에도 폐에 이상이 없었는데 폐에 물이 차서 숨을 쉴 수가 없어 병원에 입원을 해서 4 일전 폐에서 4 리터가 넘게 물을 빼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지금도 계속해서 폐에 물이 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일주일 동안 방독면 같은 특수 산소 호흡기를 쓰고 있어 일주일 동안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외동딸이 이렇게 되니까 엄마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미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필자가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다은이를 알게 된 것은 벌써 2 년 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다은이나 그의 부모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은이를 위해서 계속 기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은이가 앓고 있는 병이 50년 전 필자가 알던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위중한 카톡을 받고서 기도 후 잠 잠자리에 들었다가 밤 11시 반에 잠에서 깨어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차로 30분을 달려서 불 꺼진 교회로 나와 다은이를 위하여 기도한 후 이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나를 살려주신 주님! 다은이도 살려주세요, 나와 동행하신 주님, 다은이도 동행해 주시어 지금까지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게 하신 주님, 다은이의 생애를 축복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빛나는 여종으로 사용해 주시길 원합니다. 다은이를 위해서 기도를 시작한 것이 벌써 2 년 반이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교인은 아니지만 매일 다은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다은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8년 4 월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 뿐인 외동딸을 죽음에서 구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수소문 하던 중 우연하게 인터넷에 실린 필자의 투병기(재생불량성빈혈)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카톡으로 소식과 안부를 주고받다가도 다은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어머니는 전화로 딸의 상태를 알리곤 하는 것입니다.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다은이와 같은 병에서 살아나는 길은 골수 이식을 하는 것 외에는 달리 치료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골수 이식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다은이의 골수와 일치하는 기증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살기 위해선 기증자를 만나야 하기에 다은이 부모와 주변의 많은 분들이 다은이를 살려줄 기증자를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해 왔었습니다.
골수 이식을 하는 절차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수술을 받고도 두서너 달은 무균실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격리된 병실에서 힘든 과정을 지나야 합니다. 1 년 전 다은이와 일치하는 골수 기증자가 나타나 수술을 받았을 때 이제는 살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의 좌절과 절망은 너무 컸습니다.
더 이상 다은이를 그대로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특단의 조치를 위했습니다. 딸을 위해서 자신의 골수를 주기로 한 것입니다. 본래 이식에 필요한 골수는 건강한 골수, 젊은 사람의 골수래야 하는데 달리 방법이 없어서 의료진에게 강청하여 아버지의 골수로 4-5개월 전에 그 힘든 2 차 이식 수술을 하였던 것입니다.
다행이 수술 결과가 좋아 골수에서 피를 생산해 내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뜻하지 않는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다은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너무 흥분하고 아파하며 계속되는 모르핀주사로 지난 4 일 동안의 일을 기억을 못하고 계속 며칠인지 인지도 못해서 청천벽력이 이런 건가 싶다고 하시는 겁니다.
일주일 동안 밥을 먹지 못하다가 어제 저녁 처음으로 밥을 먹으면서 너무 행복해 하는 딸을 보면서 어머니의 가슴이 찢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힘든 투병중에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환실에서도 에이 프러스를 받아야 한다며 공부하는 것을 처음 본다고 의료진들까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은이에 대한 칼럼을 세 번째 쓰고 있습니다. 같은 이름으로 세 번 칼럼을 써보기는 처음입니다. 이 칼럼을 대하는 존경하는 기도의 용사님들께 정중하게 요청 드립니다. 큰 위기에 처한 16살 다은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반드시 살아서 주의 나라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 받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3개월 전인 지난 6월 5일 열병으로 입원한지 6일 만에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입원 이틀 만에 열병의 원인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쓸개를 제거해야 하는데 곧 바로 수술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2년 전 심장 혈관 한 개가 막혀서 스텐트를 삽입하고 Blood thinner를 매일 복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장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했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 동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2 틀 동안 세밀한 심장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 결과에 합격하지 못하면 수술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환자가 되지 아니하는 것도 은혜이지만, 환자가 되어도 다 수술을 받고 회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술을 받을 수 없는 경우의 환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프지 않은 것도 축복이지만 아파도 좋은 의사와 병원을 잘 만나 수술 받는 것도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려면 먼저 병실에서 수술실까지 이동을 해야 합니다. 입원실은 9층이었는데 수술실은 지하 1층에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곳을 방문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수술실은 금방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도착하면 순서를 기다려야 합니다. 큰 병원이기에 수술 환자가 여럿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담당 마취의사가 수술 진행 사항을 설명을 하고 나서 수술실 담당자가 준비 되었다고 하면 들어가게 됩니다.
수술실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 1호실, # 2호실, # 3 호실까지 제 눈에 보였습니다. 그 다음 얼마까지 더 있는 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 마취의사가 곁에 동행했고 수술 담당 의사도 함께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수술대 위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영화에서 보던 장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세 분의 간호사님들도 보였습니다. 마취의사가 하나 둘 세어 보라고 해서 세기를 시작하는데 6-7 까지 세기도 전에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22시간 후인중환자실이었습니다. 11일 동안 입원해 있는 동안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때는 수술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수술 후 깨어났을 때였습니다. 당시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매 순간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로부터 서너 시간 후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을 때 비로소 다시 살았다는 것을 확인하며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주님께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삶을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나의 수고와 노력으로 살지 아니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과 축복으로 살았고 맡기신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 자리에서 잠시 후 주님이 불러주셔도 조금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르심으로 주님의 영원한 품에 안기는 것을 감사드리겠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믿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죽음이 저주가 아니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광의 문인 것을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 기도를 드리고 나니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수술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졌습니다.
주님의 명을 따라 나를 위하여 수고하는 의료진들의 노고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의 건강을 위해서 준비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주님은 나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다 예비하셨습니다. 좋은 의료진들을 오랫동안 훈련시키시고 좋은 기계들을 발명케 하시며 좋은 치료약과 시설들을 도처에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신 그 사랑으로 세상 나라를 허락하시고 지금도 우리의 생존과 미래를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심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다시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새 삶을 사는 동안 주님께 간절히 원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계속 은혜 주시길 원하는 것입니다.
목양칼럼 # 207 할아버지 할머니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지난 월요일에 생각지 못한 아름다운 메일을 한통 받았습니다. 큰 딸의 세 손녀들이 사랑의 메시지를 담아 보내온 카드였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너무 너무 사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카드를 읽고 나서 달력을 보았더니 지난 13일 주일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기리는 날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매년 이맘때면 비슷한 내용의 카드를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딸이 카드를 준비하고 손녀들이 카드 모퉁이에 간단하게 사랑의 내용을 적은 것을 보내왔습니다. 이번에는 아닙니다. 딸과는 상의하지 아니하고 어린 세 손녀들이 의논하여 마음을 모으고 정성으로 준비해서 카드를 보내온 것입니다.
카드 안에는 세 손녀들이 작은 고사리 손으로 직접 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내용의 글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세 손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의 빠름을 느끼며 변해 가는 모습에 때마다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엄마(딸)도 아이들이 할아버지에게 카드를 보낸 사실을 모르고 있었나봅니다. 그래서 보내온 예쁜 카드를 사진에 담아 잘 받았다는 뜻으로 딸에게 카톡 메시지로 보냈습니다. 잠시 후 딸에게서 이런 내용의 답신이 왔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세 손녀 중 나이가 가장 어린 막내딸의 방에 들어갔다가 놀랬다는 것입니다.
자기 방에서 혼자서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울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우느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어린 나이 이기에 홀로 울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싸워서 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니들과 싸우고 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엄마의 다그치는 물음에 손녀는 말을 하지 못하고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종이에 자신이 우는 이유를 이렇게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I was missing sweet 할머니” 할머니 생각에 울고 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명을 달리한지가 벌써 3 년이 지났습니다. 아이들에게 3 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다른 두 손녀들은 할머니의 기억을 잊어가고 있었는데 어린 막내는 아직도 할머니와의 길지 않는 추억 속의 사랑을 잊지 못해서 홀로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없는 할머니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을 엄마에게 조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자기 방에서 홀로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는 이유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서가 아니며 누구와 싸워서 우는 것도 아니고 오직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랑하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엄마도 그 글을 읽고서 어린 딸을 부둥켜 앉고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하였을 뿐 아니라 며칠 후 이를 듣는 필자의 가슴을 먹먹케 했습니다.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비록 명을 달리하여 세상에서 다시 볼 수는 없지만 하늘에 먼저 가 있는 할머니에 대한 어린 손주들의 마음에 그리움으로 인한 눈물을 흘리게 한 삶을 살았다면 할머니의 삶은 후회 없는 삶을 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작은 딸의 가족은 알라스카에 살고 있지만 큰 딸의 가족은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딸의 가족은 자주 만나는 편입니다. 9월 하순에 만나기로 했는데 어린 손녀는 이 말을 엄마로부터 전해 듣고 카드 말미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I can not wait till I see You again”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시128편 1 – 3 절의 말씀입니다. 젊어서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하늘의 복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가정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귀하고 복된 것은 자손이 잘 되어가는 것을 보는 기쁨으로 이는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받는 것이라고 시편의 기자는 자신의 체험을 간증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2020년 9월 15일 오후 1시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06 목사님! 이곳이 마치 지옥인가 싶어요, 어떡하죠!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9 월 8일 오후 6시에 16살 다은이 엄마의 다급한 소식을 카톡으로 전달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지난 일주일의 시간이 마치 지옥인가 싶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은이의 폐가 너무 갑자기 나빠졌다면서 또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데 참 드문 케이스라고 말하니까 저도 숨도 못 쉴 만큼 무섭고 힘들었습니다.
한 달 반전에도 폐에 이상이 없었는데 폐에 물이 차서 숨을 쉴 수가 없어 병원에 입원을 해서 4 일전 폐에서 4 리터가 넘게 물을 빼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지금도 계속해서 폐에 물이 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일주일 동안 방독면 같은 특수 산소 호흡기를 쓰고 있어 일주일 동안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외동딸이 이렇게 되니까 엄마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미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필자가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다은이를 알게 된 것은 벌써 2 년 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다은이나 그의 부모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은이를 위해서 계속 기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은이가 앓고 있는 병이 50년 전 필자가 알던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위중한 카톡을 받고서 기도 후 잠 잠자리에 들었다가 밤 11시 반에 잠에서 깨어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차로 30분을 달려서 불 꺼진 교회로 나와 다은이를 위하여 기도한 후 이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나를 살려주신 주님! 다은이도 살려주세요, 나와 동행하신 주님, 다은이도 동행해 주시어 지금까지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게 하신 주님, 다은이의 생애를 축복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빛나는 여종으로 사용해 주시길 원합니다. 다은이를 위해서 기도를 시작한 것이 벌써 2 년 반이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교인은 아니지만 매일 다은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다은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8년 4 월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 뿐인 외동딸을 죽음에서 구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수소문 하던 중 우연하게 인터넷에 실린 필자의 투병기(재생불량성빈혈)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카톡으로 소식과 안부를 주고받다가도 다은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어머니는 전화로 딸의 상태를 알리곤 하는 것입니다.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다은이와 같은 병에서 살아나는 길은 골수 이식을 하는 것 외에는 달리 치료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골수 이식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다은이의 골수와 일치하는 기증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살기 위해선 기증자를 만나야 하기에 다은이 부모와 주변의 많은 분들이 다은이를 살려줄 기증자를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해 왔었습니다.
골수 이식을 하는 절차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수술을 받고도 두서너 달은 무균실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격리된 병실에서 힘든 과정을 지나야 합니다. 1 년 전 다은이와 일치하는 골수 기증자가 나타나 수술을 받았을 때 이제는 살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의 좌절과 절망은 너무 컸습니다.
더 이상 다은이를 그대로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특단의 조치를 위했습니다. 딸을 위해서 자신의 골수를 주기로 한 것입니다. 본래 이식에 필요한 골수는 건강한 골수, 젊은 사람의 골수래야 하는데 달리 방법이 없어서 의료진에게 강청하여 아버지의 골수로 4-5개월 전에 그 힘든 2 차 이식 수술을 하였던 것입니다.
다행이 수술 결과가 좋아 골수에서 피를 생산해 내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뜻하지 않는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다은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너무 흥분하고 아파하며 계속되는 모르핀주사로 지난 4 일 동안의 일을 기억을 못하고 계속 며칠인지 인지도 못해서 청천벽력이 이런 건가 싶다고 하시는 겁니다.
일주일 동안 밥을 먹지 못하다가 어제 저녁 처음으로 밥을 먹으면서 너무 행복해 하는 딸을 보면서 어머니의 가슴이 찢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힘든 투병중에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환실에서도 에이 프러스를 받아야 한다며 공부하는 것을 처음 본다고 의료진들까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은이에 대한 칼럼을 세 번째 쓰고 있습니다. 같은 이름으로 세 번 칼럼을 써보기는 처음입니다. 이 칼럼을 대하는 존경하는 기도의 용사님들께 정중하게 요청 드립니다. 큰 위기에 처한 16살 다은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반드시 살아서 주의 나라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 받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0년 9 월 9일 새벽 1 시 목양실에서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205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주님께 드린 감사의 기도!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3개월 전인 지난 6월 5일 열병으로 입원한지 6일 만에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입원 이틀 만에 열병의 원인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쓸개를 제거해야 하는데 곧 바로 수술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2년 전 심장 혈관 한 개가 막혀서 스텐트를 삽입하고 Blood thinner를 매일 복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장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했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 동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2 틀 동안 세밀한 심장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 결과에 합격하지 못하면 수술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환자가 되지 아니하는 것도 은혜이지만, 환자가 되어도 다 수술을 받고 회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술을 받을 수 없는 경우의 환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프지 않은 것도 축복이지만 아파도 좋은 의사와 병원을 잘 만나 수술 받는 것도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려면 먼저 병실에서 수술실까지 이동을 해야 합니다. 입원실은 9층이었는데 수술실은 지하 1층에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곳을 방문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수술실은 금방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도착하면 순서를 기다려야 합니다. 큰 병원이기에 수술 환자가 여럿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담당 마취의사가 수술 진행 사항을 설명을 하고 나서 수술실 담당자가 준비 되었다고 하면 들어가게 됩니다.
수술실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 1호실, # 2호실, # 3 호실까지 제 눈에 보였습니다. 그 다음 얼마까지 더 있는 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 마취의사가 곁에 동행했고 수술 담당 의사도 함께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수술대 위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영화에서 보던 장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세 분의 간호사님들도 보였습니다. 마취의사가 하나 둘 세어 보라고 해서 세기를 시작하는데 6-7 까지 세기도 전에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22시간 후인중환자실이었습니다. 11일 동안 입원해 있는 동안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때는 수술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수술 후 깨어났을 때였습니다. 당시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매 순간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로부터 서너 시간 후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을 때 비로소 다시 살았다는 것을 확인하며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주님께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삶을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나의 수고와 노력으로 살지 아니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과 축복으로 살았고 맡기신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 자리에서 잠시 후 주님이 불러주셔도 조금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르심으로 주님의 영원한 품에 안기는 것을 감사드리겠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믿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죽음이 저주가 아니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광의 문인 것을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 기도를 드리고 나니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수술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졌습니다.
주님의 명을 따라 나를 위하여 수고하는 의료진들의 노고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의 건강을 위해서 준비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주님은 나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다 예비하셨습니다. 좋은 의료진들을 오랫동안 훈련시키시고 좋은 기계들을 발명케 하시며 좋은 치료약과 시설들을 도처에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신 그 사랑으로 세상 나라를 허락하시고 지금도 우리의 생존과 미래를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심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다시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새 삶을 사는 동안 주님께 간절히 원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계속 은혜 주시길 원하는 것입니다.
9 월 1 일 20년
이상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