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10여 년 동안 사용해 오던 약국을 금년 초부터 건강 보험 회사를 바꾸면서 약국도 바꾸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약국을 바꾸게 된 것은 필자의 담당 의사가 사용하는 진료소와 같은 건물 내에 있는 약국이기에 약을 얻기 위하여 먼 곳을 오고가는 불편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수년전부터 지금의 약국으로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해오면서도 쉽게 결단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미루어 오게 된 것은 십여 년간 쌓아온 인간관계를 끊는 것이 쉽지 않아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필자를 도와온 약사님이 너무 존경스럽고 만날 때마다 사랑과 정성으로 늘 섬겨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주 중에 금년 들어 세 번째 새 약국을 방문했습니다. 3 개월에 한번 담당 의사를 만나면 3 개월 치 약 처방을 받기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3개월에 한 번씩 약국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 새로 옮긴 약국은 이전 다니던 약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컷습니다. 약사도 4분이나 계셨습니다.
일하는 종업원의 숫자까지 합하면 직원이 10명 가까이 되는 약국이기에 항상 대기실에는 10여명의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타운에서 환자가 많기로 손꼽히는 약국입니다. 먼저 다니던 약국은 규모가 작기에 방문 때마다 약사님과 대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약국에 직원의 숫자가 많아서 창구에서 약사님과 대면하는 일이 적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방문 시 약국의 대표 약사님이 중년의 여성분이셨는데 필자에게 다가와 이런 말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할 때 목사인 것 같아보였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시죠? 목사님의 냄새가 나십니다.
그 말을 듣고 당황하게 된 것은 필자가 병원에 가는 날은 정장을 하지 않습니다. 되도록 편하게 입고 갑니다. 그래서 평소에 입지 아니하던 의복, 다시 말해서 목사 같지 않는 복장으로 변장 아닌 변장을 하고서 외출을 하는데 그런 나의 모습이 상대방에게 들키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나의 신분을 말하기도 전에 알아준 약사님에게 신뢰와 함께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필자를 향하여 약사님이 말하는 목사의 냄새는 과연 무엇일까? 좋은 의미의 냄새도 있을 것이고 나쁜 의미의 냄새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어느 권사님이 겪으셨던 일이 생각이 됩니다.
주변의 소개로 목사님이라고 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믿고 일을 맡기셨는데 일이 잘 처리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일로 마음에 상처를 당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차라리 일반 사람이라면 욕이라도 하고 화라도 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런 목사님도 있느냐고 필자에게 화를 내신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필자도 화가 나서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화를 내시면서도 그 분의 이름을 말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금방이라도 실망케 한 분의 이름을 말해 줄 것 같았는데 끝까지 숨기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 이것이 진짜 믿음 있는 권사님의 진정한 모습이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화가 났지만 그 일로 당신만 당하고 마는 것으로 그쳐야지 주님의 이름까지 더럽힘 당할까 염려하는 모습이 귀하게 보인 것입니다. 나의 모습 어디에서 목사의 냄새가 나게 한 것일까? 말하는 행동일까? 앉고 일어섬일까? 걷는 모습일까? 얼굴 표정? 어느 곳도 내가 목사라는 것을 알리려고 하지 않았는데!
약사님은 어떻게 나에게서 목사의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일까? 고전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신 말씀처럼 구원 받은 사람으로서 입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주님의 이름이 증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5 월 5 일은 화요일이었습니다. 당일 오후 3 시에 Hollywood Forest Lawn에서 필자와 같은 노회를 섬기는 멕시코 한인교회 담임 Ahn 목사님의 어머니가 89세로 세상을 떠나시어 장지에서 행하는 하관식에 참석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많은 동역자들이 장례식장에 참석해서 유가족을 위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장례식장에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의사에서 장례식장에 참석하는 인원수를 10명 이내로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침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관할 시의 강력한 행정명령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Ahn 목사님의 가족도 숫적인 제한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지내던 동역자 중 누구도 장례식장에 참석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필자도 장례식장에 갈 수가 없어서 시신을 매장하는 장지로 가서 하관식 만이라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슬픔 당한 유가족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목회자로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수많은 장례식을 집례도 하고 참석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쓸쓸하고 외로운 장례식을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 가운데 가장 슬프고 힘든 때는 사랑하는 가족을 죽음으로 잃게 되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장례식은 어떤 예식보다도 평소 가까이 지내오던 주변의 많은 이웃의 위로가 절실하게 필요한 예식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가족을 읽고 큰 슬픔에 처한 유가족들이 슬픔을 극복하는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19가 슬픔당한 가족들까지 큰 고통에 빠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이러한 외롭고 쓸쓸한 장례식을 바라보는 교회의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이 있습니다.
코로나 19 기간 동안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타주에 사는 자녀들이 부모님의 장례식에 참석지 못하므로 평생 동안 큰 슬픔을 가지고 살아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필자가 오늘 하관식을 멀리서나마 참석하여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장지인 Rose Hills 공원묘지에선 하관식에 참여하는 가족의 숫자를 2 사람으로 제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예전처럼 하관하는 절차를 유가족들이 지켜볼 수도 없게 하고 있지만 Hollywood Forest 공원묘지는 유가족들이 하관하기 까지 지켜볼 수 있게 허락되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코로나 19의 위력이 전 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갈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경계를 얼마나 어디까지 변하게 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의 말이 기억이 됩니다. 미국의 최강의 무기와 핵보다 더 무서운 것이 코로나 19의 위력이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장례식에서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는 마지막 시간은 모든 예식을 마친 후 식당에서 예식에 참석한 이웃들과의 애찬을 통한 위로와 교제의 시간인데 이러한 모임까지도 코로나 19가 빼앗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로인하여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주위로부터 위로 받지 못하는 아픔을 더하게 하는 것입니다.
금번 코로나 19로 인하여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아니하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나의 삶, 우리의 삶에서 가정 우선해야 할 것은 성공도 아니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이 주신 건강과 가정을 지키는 것임을 알게 했습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반을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이나 명예는 있다가도 없으며, 없다가도 있을 수 있으나 나의 건강, 우리의 건강은 있을 때 잘 유지하고 지키지 아니하면 잃은 후 다시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담당 의사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외출을 삼가시고 방콕 하시어 이번 위기를 반드시 극복하셔야 합니다. 나의 건강은 남이 지켜주지 아니합니다. 나의 건강, 가족의 건강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의 코로나 19 위기를 인내와 지혜로 잘 극복하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5-09 02:26:462020-05-09 02:26:46코로나 19가 바꾸어 놓은 장례문화
지난 토요일 오전에 지인으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한 시간 후에 진행될 어느 분의 임종예배를 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필자도 아는 L 목사님 사모님이 오랜 시간 동안 어려운 병으로 투병을 해 오시다가 병원에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의사의 권유로 임종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요즘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병원 중환자실에서 진행되는 임종예배는 남편 한 사람만 병실에 머무는 것이 허용되어 타주에 사는 자녀들이 임종을 지키기 위해서 왔지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필자도 어려움 당한 목사님 부부와 오랫동안 교제를 나누어 왔기에 참석해서 가족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Zoom 화상을 통하여 임종예배를 마치고 나서 두 시간여 만에 L 사모님은 길고 깊은 고난의 터널을 벗어나 다시는 아픔과 눈물이 없는 주님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필자가 L 목사님 부부와 인연을 맺은 것은 남가주목사장로부부찬양단을 통해서였습니다. 남편 되시는 L 목사님은 지휘를 맡으셨고 사모님은 반주를 하셨습니다.
반주를 하셨을 때도 병이 중한 상태셨지만 그 힘든 몸으로 주변 누구에게도 힘들다 말하지 않으시고 늘 화사하게 웃는 얼굴로 정성을 다하여 기쁘게 섬겨 주셔서 단원 모두가 큰 은혜를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사모님이 그렇게 중환 환자인 것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L 사모님을 필자가 귀하게 여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그 정도의 몸이면 사명을 포기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L 사모님은 자신에게 임한 질병이 현대 의학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난치병임을 아시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시거나 무서워하지 않으시는 것 같으셨기 때문입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하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죽으면 죽으리다는 각오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필자가 L 목사님과 사모님께 각별한 관심을 가진 것은 동병상련이라는 말처럼 필자의 아내도 오랜 세월동안 어려운 병상을 지켜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L 사모님과 곁에서 내조하시는 목사님을 순간순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아프신 사모님도 힘드시고 자녀들도 힘들지만 그 중에서도 곁에서 내조하시는 목사님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아픔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L 사모님이 위기를 당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접하여 왔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동역자들이 위해서 기도를 이어오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입원한 병원 의사들이 더 이상 의학의 힘으로는 환자에게 도움을 줄 것이 없다는 판단 하에 임종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Zoom 화상을 통하여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서 보내온 Zoom ID 번호와 패스워드 번호를 받고서 임종예배를 시작하는 시간에 연결하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컴퓨터 화면을 통하여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지키시는 남편 목사님과 사모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배를 주관하시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함께 예배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우리 시대 과학이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지 놀랍기만 합니다. 존경하는 L 목사님! 그동안 사모님을 위하여 수고하신 모든 것을 주님이 받으신 줄 믿습니다. 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주의 일은 복음 전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어려움 당할 때 온 힘과 정성으로 가족의 아품에 참여하는 것도 주의 일인 것입니다.
주님이 맡겨 주신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시고 잘 인내하시어 사모님을 천국으로 입성케하신 수고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목사님과 자녀들에게 큰 위로로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목사님께 다시 한 번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5-05 14:25:502020-05-05 14:25:50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화상으로 참여한 어느 임종예배
목사님 냄새가 나는데! 목사님 아니신가요?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필자가 10여 년 동안 사용해 오던 약국을 금년 초부터 건강 보험 회사를 바꾸면서 약국도 바꾸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약국을 바꾸게 된 것은 필자의 담당 의사가 사용하는 진료소와 같은 건물 내에 있는 약국이기에 약을 얻기 위하여 먼 곳을 오고가는 불편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수년전부터 지금의 약국으로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해오면서도 쉽게 결단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미루어 오게 된 것은 십여 년간 쌓아온 인간관계를 끊는 것이 쉽지 않아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필자를 도와온 약사님이 너무 존경스럽고 만날 때마다 사랑과 정성으로 늘 섬겨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주 중에 금년 들어 세 번째 새 약국을 방문했습니다. 3 개월에 한번 담당 의사를 만나면 3 개월 치 약 처방을 받기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3개월에 한 번씩 약국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 새로 옮긴 약국은 이전 다니던 약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컷습니다. 약사도 4분이나 계셨습니다.
일하는 종업원의 숫자까지 합하면 직원이 10명 가까이 되는 약국이기에 항상 대기실에는 10여명의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타운에서 환자가 많기로 손꼽히는 약국입니다. 먼저 다니던 약국은 규모가 작기에 방문 때마다 약사님과 대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약국에 직원의 숫자가 많아서 창구에서 약사님과 대면하는 일이 적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방문 시 약국의 대표 약사님이 중년의 여성분이셨는데 필자에게 다가와 이런 말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할 때 목사인 것 같아보였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시죠? 목사님의 냄새가 나십니다.
그 말을 듣고 당황하게 된 것은 필자가 병원에 가는 날은 정장을 하지 않습니다. 되도록 편하게 입고 갑니다. 그래서 평소에 입지 아니하던 의복, 다시 말해서 목사 같지 않는 복장으로 변장 아닌 변장을 하고서 외출을 하는데 그런 나의 모습이 상대방에게 들키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나의 신분을 말하기도 전에 알아준 약사님에게 신뢰와 함께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필자를 향하여 약사님이 말하는 목사의 냄새는 과연 무엇일까? 좋은 의미의 냄새도 있을 것이고 나쁜 의미의 냄새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어느 권사님이 겪으셨던 일이 생각이 됩니다.
주변의 소개로 목사님이라고 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믿고 일을 맡기셨는데 일이 잘 처리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일로 마음에 상처를 당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차라리 일반 사람이라면 욕이라도 하고 화라도 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런 목사님도 있느냐고 필자에게 화를 내신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필자도 화가 나서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화를 내시면서도 그 분의 이름을 말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금방이라도 실망케 한 분의 이름을 말해 줄 것 같았는데 끝까지 숨기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 이것이 진짜 믿음 있는 권사님의 진정한 모습이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화가 났지만 그 일로 당신만 당하고 마는 것으로 그쳐야지 주님의 이름까지 더럽힘 당할까 염려하는 모습이 귀하게 보인 것입니다. 나의 모습 어디에서 목사의 냄새가 나게 한 것일까? 말하는 행동일까? 앉고 일어섬일까? 걷는 모습일까? 얼굴 표정? 어느 곳도 내가 목사라는 것을 알리려고 하지 않았는데!
약사님은 어떻게 나에게서 목사의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일까? 고전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신 말씀처럼 구원 받은 사람으로서 입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주님의 이름이 증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빛 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527
코로나 19가 바꾸어 놓은 장례문화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지난 5 월 5 일은 화요일이었습니다. 당일 오후 3 시에 Hollywood Forest Lawn에서 필자와 같은 노회를 섬기는 멕시코 한인교회 담임 Ahn 목사님의 어머니가 89세로 세상을 떠나시어 장지에서 행하는 하관식에 참석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많은 동역자들이 장례식장에 참석해서 유가족을 위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장례식장에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의사에서 장례식장에 참석하는 인원수를 10명 이내로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침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관할 시의 강력한 행정명령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Ahn 목사님의 가족도 숫적인 제한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지내던 동역자 중 누구도 장례식장에 참석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필자도 장례식장에 갈 수가 없어서 시신을 매장하는 장지로 가서 하관식 만이라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슬픔 당한 유가족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목회자로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수많은 장례식을 집례도 하고 참석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쓸쓸하고 외로운 장례식을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 가운데 가장 슬프고 힘든 때는 사랑하는 가족을 죽음으로 잃게 되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장례식은 어떤 예식보다도 평소 가까이 지내오던 주변의 많은 이웃의 위로가 절실하게 필요한 예식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가족을 읽고 큰 슬픔에 처한 유가족들이 슬픔을 극복하는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19가 슬픔당한 가족들까지 큰 고통에 빠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이러한 외롭고 쓸쓸한 장례식을 바라보는 교회의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이 있습니다.
코로나 19 기간 동안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타주에 사는 자녀들이 부모님의 장례식에 참석지 못하므로 평생 동안 큰 슬픔을 가지고 살아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필자가 오늘 하관식을 멀리서나마 참석하여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장지인 Rose Hills 공원묘지에선 하관식에 참여하는 가족의 숫자를 2 사람으로 제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예전처럼 하관하는 절차를 유가족들이 지켜볼 수도 없게 하고 있지만 Hollywood Forest 공원묘지는 유가족들이 하관하기 까지 지켜볼 수 있게 허락되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코로나 19의 위력이 전 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갈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경계를 얼마나 어디까지 변하게 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의 말이 기억이 됩니다. 미국의 최강의 무기와 핵보다 더 무서운 것이 코로나 19의 위력이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장례식에서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는 마지막 시간은 모든 예식을 마친 후 식당에서 예식에 참석한 이웃들과의 애찬을 통한 위로와 교제의 시간인데 이러한 모임까지도 코로나 19가 빼앗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로인하여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주위로부터 위로 받지 못하는 아픔을 더하게 하는 것입니다.
금번 코로나 19로 인하여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아니하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나의 삶, 우리의 삶에서 가정 우선해야 할 것은 성공도 아니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이 주신 건강과 가정을 지키는 것임을 알게 했습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반을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이나 명예는 있다가도 없으며, 없다가도 있을 수 있으나 나의 건강, 우리의 건강은 있을 때 잘 유지하고 지키지 아니하면 잃은 후 다시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담당 의사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외출을 삼가시고 방콕 하시어 이번 위기를 반드시 극복하셔야 합니다. 나의 건강은 남이 지켜주지 아니합니다. 나의 건강, 가족의 건강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의 코로나 19 위기를 인내와 지혜로 잘 극복하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26519§ion=section3§ion2=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화상으로 참여한 어느 임종예배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지난 토요일 오전에 지인으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한 시간 후에 진행될 어느 분의 임종예배를 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필자도 아는 L 목사님 사모님이 오랜 시간 동안 어려운 병으로 투병을 해 오시다가 병원에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의사의 권유로 임종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요즘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병원 중환자실에서 진행되는 임종예배는 남편 한 사람만 병실에 머무는 것이 허용되어 타주에 사는 자녀들이 임종을 지키기 위해서 왔지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필자도 어려움 당한 목사님 부부와 오랫동안 교제를 나누어 왔기에 참석해서 가족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Zoom 화상을 통하여 임종예배를 마치고 나서 두 시간여 만에 L 사모님은 길고 깊은 고난의 터널을 벗어나 다시는 아픔과 눈물이 없는 주님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필자가 L 목사님 부부와 인연을 맺은 것은 남가주목사장로부부찬양단을 통해서였습니다. 남편 되시는 L 목사님은 지휘를 맡으셨고 사모님은 반주를 하셨습니다.
반주를 하셨을 때도 병이 중한 상태셨지만 그 힘든 몸으로 주변 누구에게도 힘들다 말하지 않으시고 늘 화사하게 웃는 얼굴로 정성을 다하여 기쁘게 섬겨 주셔서 단원 모두가 큰 은혜를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사모님이 그렇게 중환 환자인 것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L 사모님을 필자가 귀하게 여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그 정도의 몸이면 사명을 포기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L 사모님은 자신에게 임한 질병이 현대 의학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난치병임을 아시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시거나 무서워하지 않으시는 것 같으셨기 때문입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하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죽으면 죽으리다는 각오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필자가 L 목사님과 사모님께 각별한 관심을 가진 것은 동병상련이라는 말처럼 필자의 아내도 오랜 세월동안 어려운 병상을 지켜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L 사모님과 곁에서 내조하시는 목사님을 순간순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아프신 사모님도 힘드시고 자녀들도 힘들지만 그 중에서도 곁에서 내조하시는 목사님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아픔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L 사모님이 위기를 당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접하여 왔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동역자들이 위해서 기도를 이어오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입원한 병원 의사들이 더 이상 의학의 힘으로는 환자에게 도움을 줄 것이 없다는 판단 하에 임종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Zoom 화상을 통하여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서 보내온 Zoom ID 번호와 패스워드 번호를 받고서 임종예배를 시작하는 시간에 연결하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컴퓨터 화면을 통하여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지키시는 남편 목사님과 사모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배를 주관하시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함께 예배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우리 시대 과학이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지 놀랍기만 합니다. 존경하는 L 목사님! 그동안 사모님을 위하여 수고하신 모든 것을 주님이 받으신 줄 믿습니다. 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주의 일은 복음 전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어려움 당할 때 온 힘과 정성으로 가족의 아품에 참여하는 것도 주의 일인 것입니다.
주님이 맡겨 주신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시고 잘 인내하시어 사모님을 천국으로 입성케하신 수고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목사님과 자녀들에게 큰 위로로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목사님께 다시 한 번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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