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친구의 권유로 자살직전에서 다시 사는 고난의 삶

지난 달 친구 목사님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가 설교자로 초청 받은 S 목사님의 간증을 통하여 들은 내용입니다. S 목사님은 한 때 잘 나가는 엘리트 목사님이셨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실력과 자랑스러운 학문의 배경을 소유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역을 감당하실 때에 늘 자신 감에 차 있으셨습니다.

큰 꿈을 품고 주의 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사역의 길이 생각처럼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목회는 실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S 목사님이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은 사랑하는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하나 뿐인 아들에게 일어나리라곤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성장하던 청소년 시절에 장래가 기대되던 하나뿐인 아들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자신의 삶만 망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인생, 가족 모두의 삶과 특히 아버지 목사님의 목회 사역 그리고 가정을 혼돈의 구덩이에 빠지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되리라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점점 더 깊어만 갔습니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우울증으로 인해 방탕한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수렁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S 목사님은 두 손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힘으로도 아니 되고 주위의 도움으로도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부르짖어 기도해도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는가? 하나님도 아들의 문제를 도우실 수가 없으신건가?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수년 동안 반복되는 아들의 심각한 문제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삶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목사로서 이런 나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도 덕을 끼치지 못하게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임한 고난은 끝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댈 언덕도 없고 내일에 대한 희망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 아픔을 언제까지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러고도 자신이 부름 받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생을 스스로 끝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결국 긴 어둠의 터널에서 헤어나는 길은 죽음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힘이들면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까요? 그러한 자신의 결정을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고하고 작별의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신앙의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때 친구가 그에게 이렇게 권면을 했답니다.

이대로 너의 생을 끝내면 너무 억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오늘의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남들이 할 수 없는 높은 학문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오랜 시간 어렵게 공부한 것이 너무 허무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던 너의 삶이 아깝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친구의 권면을 받고 자살직전에서 다시 살기를 결심하고 16년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아직도 아들의 문제로 어려움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는 주님을 향하여 고난 중에도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끝이 없어 보이던 아들의 문제도 희망이 보이길 시작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계속적인 큰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은 고난을 통하여 주시는 특별한 은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전에는 목사이면서도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이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지만 지금은 불러 주시는 교회 강단에 서서 고난을 통하여 주시는 은혜를 간증할 수 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S 목사님! 귀한 간증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모든 고난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하여 받은 은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시고 속한 시일에 목사님이 다시 이전 영광을 회복하시어 목회에 대성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365

여호와의 집에 심겨 늙어도 결실하며 빛이 청청한 노 권사님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시 92편 13-14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느 노 권사님이 생각 되었습니다. 그 권사님은 105세의 김순녀 권사님이십니다. 친구 목사님의 교회를 25년 째 섬기고 계십니다.

이 분이 특별한 이유는 지난 25년 동안 친구 목사님의 교회에 출석하시면서 한 번도 주일 예배를 빠지지 아니하셨습니다. 98세 까지는 매일 새벽 기도를 하셨고, 신구약성경 전체를 필사하셨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성경을 매일 써오고 계십니다. 김순녀 권사님이 특별하신 이유가 또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을 최고의 정성으로 바치시는 겁니다. 권사님이 매 주일 바치는 헌금은 다섯 가지입니다. 십일조와 선교헌금, 감사헌금, 주일헌금, 건축헌금입니다. 누가 강요해서 바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원해서 감사함으로 바치시는 겁니다. 그 연세에도 불구하시고 교회 밴에 남의 도움 없이 오르고 내리십니다.

더 놀라운 것은 82세 되는 딸 권사님과 함께 지난 15년 동안 교회를 위해서 특별하게 하시는 것이 있으십니다. 빈 물병이나 빈 캔을 수거하기 위해 매일 여러 곳을 바쁘게 다니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판매한 대금으로 매월 200불을 건축헌금으로 바치고 있습니다.

빈 병이나 캔을 모아서 월 200불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젊은 사람도 월 200불의 리싸이클을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년 전에 산 새 차는 그 일로 헌차가 된지 오래입니다. 리싸이클을 하기 위해선 매일 모아오는 빈 병이나 빈 캔을 그냥 팔수가 없습니다. 그 중에는 더럽혀진 것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0세가 넘으신 어머니 권사님과 딸은 수거된 빈 병과 캔을 구별하여 손질 하는 일로 매일을 보내고 계신 겁니다.

기도와 성경 필사하는 것을 마치고 나면 남은 시간은 자기를 위하여 쉬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빈 병이나 캔을 모으기 위해 밖으로 나아가 냄새나는 쓰레기통을 뒤지며 미친 듯이 여러 곳을 다니길 반복해서 해오고 계십니다.

정말로 귀하고 이 시대 보기 힘든 충성스러운 종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은혜와 감동을 받은 교인들이 100세 생일부터 생신 상을 차려 드리고 있습니다. 수년 전에 친구 목사님이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김 권사님이 오래 사셔야 하는데 나이가 너무 많으셔서 걱정이라고 하셨습니다.

권사님이 여러모로 교회의 본이 되고 있다고 하시며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이민 교회에 한 분의 성도가 귀하고 힘이 되지만 그 중에 권사님이 바치시는 헌금이 작은 교회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 권사님과 딸 권사님이 매월 바치는 헌금이 교회 운영에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하셨습니다. 105세 되신 권사님이 그렇게 건강하시고 아직도 정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잠시도 쉬지 아니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며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이시어 앉으나 서나 주님을 생각하고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님께 드리길 힘쓰며 사시는 것을 귀하게 보시고 축복하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05세 권사님의 건강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그 연세의 어르신들이 병원신세를 지거나 거동이 불편하여 제한된 공간에서 자신의 기억을 잃어가며 부르심의 날 만을 기다리고 살아가는데 반하여 105세 김순녀 권사님은 오늘도 찬송하고 기도하시며 성경을 필사하시므로 정신 건강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 육체의 건강 영혼의 건강을 풍성하게 누리고 계신 겁니다.

김순녀 권사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삶의 방향과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마다 건강하길 원하지만 나의 건강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여호와의 집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는 복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341

오늘도 성전 수리하시는 목사님이 부럽습니다!

친구 목사님이 보내온 카톡의 내용입니다. 4주 째 교회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아는 친구 목사가 공사 현장을 감독하기 위해서 애쓰는 필자를 위로하는 뜻에서 보내온 카톡의 내용 중 말미에 “목사님이 부럽습니다”라는 말이 뇌리에 반복해서 울림이 되어 하루 동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친구 목사님도 이미 많은 복을 받으셨습니다. 특별히 가정의 복을 받으셨습니다. 시 128편에 기록된 말씀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가정의 복을 받으셨습니다. 자손의 복을 받으셨습니다. 교회의 복도 받으셨습니다. 36년 째 개척하신 이민교회를 섬겨오고 계십니다.

어떤 면에서 나보다 더 많은 복을 받으시어 도리어 친구 목사님을 부러워해야 할 정도인데 그 말을 받고서 받은 복을 세어보게 되었습니다. 친구 목사님이 부럽다고 하신 것은 목회자로서 교회를 섬기는 동안 주님이 허락하신 성전을 수리하는 것이 부럽다는 말이었습니다. 친구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도 공사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1년 여 전부터 지붕공사를 위해서 건축헌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지붕공사를 마쳐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왜 나는 나를 알지 못했을까요? 나를 가까이서 잘 아는 목사님도 부러워하는 복을 받았다고 하시는데 왜 나는 그것을 감사하지 못했을까요?

나의 나 됨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을 모르던 때에 친히 나의 곁으로 찾아 주시어 구원의 주되심을 믿게 하시고 나의 지나 온 삶을 전적으로 디자인 하셔서 내가 꿈꾸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축복과 영광의 길로 이끄시어 오늘의 이 자리까지 오게 하신 것이 주님의 인도하심이셨습니다.

20살 전에 죽을 수밖에 없는 어려운 병에서 회복 시켜 주신 건만도 감사할 일인데 육체의 구원만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에 더하여 주님의 일하는 일군으로 불러주시고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주님의 몸 되신 교회를 맡겨주셨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주변에 많은 실력 있는 사명자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랑할 것 없는 너무나 부족하고 우둔하며 미련하여 미말에 처한 종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축복하셔서 지난 40년 동안 한 교회를 섬기도록 허락하실 뿐 아니라 페이먼트 없는 교회 건물을 10개월 전에 선물로 주시고 지금은 아름답게 성전을 수리할 수 있도록 좋은 일군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나 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지금 내가 누리는 모든 복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내가 잘나서 나의 수고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으로 말미암았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크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금년보다 내년이 더 크게 하실 겁니다.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것보다 다음 세상에서 누릴 은혜와 축복이 넘쳐날 것을 믿습니다. 특별히 받은 복 중 진심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게 하셨습니다.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게 하셨습니다. 주님에 대한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세상에 육체의 몸을 가지고 동정녀의 몸으로 오신 것을 믿어지게 하셨습니다. 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을 믿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승천과 재림을 믿게 하셨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믿어지게 하셨습니다.

내가 받은 복 중에 가장 귀한 것은 물질의 복이 아닙니다. 믿음의 복입니다. 금보다 귀한 이 믿음을 주신 주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며 세세토록 감사할 것입니다. 땅 위에서 나의 호흡이 다하는 날 까지 주님이 가신 길을 감사하며 따라 가겠습니다. 아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2020년 2 월 1 일 토요일 새벽에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