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수십 년 째 이어지는 성탄에 드리는 어느 특별헌금

30여 년 가까이 매년 성탄이 되면 500불의 헌금을 우편으로 보내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표에는 이름과 주소 그리고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는 데 그 분의 수표에는 이름은 있지만 주소와 전화번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헌금을 받아도 보낸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필자가 섬기는 교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어머니 권사님 때문입니다. 그 분의 어머니는 우리 교회를 통하여 세례를 받으시고 집사와 권사 임직을 받으셨습니다. 그 분이 특별한 것은 어머니 생전에는 교회를 출석하셨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한 번도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출석을 하실 때에도 교인들과 교제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필자하고도 악수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축도를 마치면 곧 바로 누구와도 인사하지 아니하고 속히 교회당을 떠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그 분이 어머니와 함께 앉으시는 자리는 늘 같은 자리로 맨 뒤 자석이었습니다.

교회에 출석을 하지 않으면서도 매년 성탄이면 헌금을 보내오셨는데 필자가 섬기던 교회가 33 년 동안 사용하던 건물을 매각하고 8 개월 전에 새 장소로 이사를 하고 나서 교회가 이사한 사실을 알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성탄이 되어도 그 분의 헌금을 받지 못하리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수일 전 새로 이전한 교회 주소로 헌금을 보내온 것입니다. 이 분이 특별한 것은 40여 년 전 부자들이 사는 베벌리힐스에 저택을 구입하셨습니다. 당시에 들려지는 소문으로는 비벌리힐스에 한인이 거주하는 집이 한두 채 밖에 없을 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 권사님에게 아들 집을 구경 시켜 달라고 몇 번 부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분의 집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랑하고 싶어서라도 이웃을 초청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이 타고 다니는 차는 오래된 고물 자동차입니다. 한 번도 새 차나 명품차를 타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만날 때마다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십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례식 때만 넥타이 맨 것을 보았지 그 외에는 수십 년 동안 양복 입은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15-6년 전에 우연히 맥도널드 식당을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홀로 조촐한 아침 식사하는 것을 목격하고서 함께 자리 했었습니다. 그 때 그 분에게 평소 긍굼해 하던 것을 용기 내어 물어보았습니다.

사장님은 사업에 크게 성공하시어 큰 부자로 알고 있는데 어찌하여 늘 허름한 옷에 헌차만 타고 다니십니까? 그 물음에 그 분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을 하시었습니다. “목사님! 저에게 이 옷과 똑 같은 옷이 10벌 있습니다. 늘 같은 옷을 입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일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인과 같은 그 분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부자이지만 부자가 아닌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려고 변장을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사업상 항상 몸에 큰돈을 지니고 다니셔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에는 비록 소유한 것이 넉넉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과시하기 위하여 명품으로 치장을 하며 분에 넘치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정 반대의 삶을 살고 계시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소망하는 부와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그것을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아니하고 조용하게 살아가시는 모습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2019년 성탄을 보내면서 그 분의 섬김과 삶을 생각하면서 큰 부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노력의 결과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교회 출석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수십 년 째 성탄 헌금으로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245

위로와 기쁨이 된 어느 특별한 식사 초대

지난 12월 11일 필자가 소속해 있는 노회 서기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동일한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어느 교회가 노회원들을 점심식사 자리에 초대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그 모임에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에 대해여 생각을 거듭하다가 초대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반복해서 하게 된 것은 연말을 앞두고 바쁜 시간에 밥 한 끼 먹기 위해 모임을 가지는 것이 부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초대 받은 노회원 가운데는 3시간을 운전을 해서 참석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특별한 모임을 통하여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큰 위로와 기쁨의 선물을 크게 받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모임에 참석한 회원은 부부 동반해 4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필자가 충격을 받은 것은 우리를 위하여 너무 큰 잔치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의 정성과 사랑으로 우리를 초청하리라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음식은 어느 소문난 식당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진귀한 것으로 다양하게 준비해 주셨습니다. 최고의 사랑과 정성으로 우리를 섬겨주셨습니다.

식사하는 동안에는 식탁 앞에서 최고의 기량을 지니신 성악가와 악기 연주자들이 은혜로운 곡을 연속적으로 공연해 주시어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감동을 받게 하였습니다. 마치 왕의 식탁에 초대 받은 느낌이 이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더욱이 감동이 되었던 것은 우리를 초청한 교회를 담임하시는 C 목사님이 우리와 함께 식탁에 앉지 아니하시고 봉사하시는 장로님들과 교우님들과 함께 음식을 나르시고 커피를 공급하시며 우리가 식사를 마치기까지 서서 수고하심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몇 번이고 함께 식탁에 앉으실 것을 권했지만 끝까지 사양하셨습니다. 감동은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가지 많은 종류의 선물 보따리를 정성으로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 중 감동을 더한 것은 담임 목사님이 손 글씨로 예쁘게 써 내려간 감사의 인사 카드는 너무 멋있었습니다. 우리는 초청하는 교회와 목사님에게 아무것도 드리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해서 너무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놀란 것은 카드 속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연말에 목사님의 가족이 즐거운 식사를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300불의 현찰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필자도 이런 섬김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수십 명에게 그런 사랑의 선물을 베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가 예산이 넉넉하기 때문에 잔치를 베푼 것 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담임 목사님의 희생과 섬김의 결단이 아니면 그런 아름다운 잔치를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잔치에 참석해서 곁에 자리하신 선배 목사님께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노회에 40년 동안 몸담아 있는 동안 이런 모임과 잔치는 처음입니다 살다보니 이런 모임도 만나게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성탄은 예수님을 본 받아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절기입니다. 작은 희생은 상대방에게 작은 기쁨을 주지만 우리의 큰 희생과 사랑은 이웃에게 큰 기쁨과 위로를 받게 합니다.

주님의 나심과 십자가에 죽으심이 온 인류에게 희망과 구원의 기쁨이 되었듯이 우리도 이웃을 위하여 섬김과 희생을 통하여 맛을 내는 소금이 되는 성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C 목사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섬기시는 교회에 큰 부흥으로 이전보다 더 크게 주의 영광을 들어내는 교회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241

설교자를 위하여 강단에 물을 바치셨던 K 권사님을 생각하며…

지난 달 심한 독감으로 두서너 주간 고생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심한 감기로 어려움 당해보기는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어르신들의 말씀이 나이가 더해 갈수록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시던 말씀이 기억이 됩니다. 언제나 건강이 나와 함께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병원 의사의 처방으로도 쉽게 낮지 않아 항생제 처방을 세 번이나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기침이 멈추지 아니하자 폐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어 폐 X-Ray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다행히 폐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설교하기 위하여 강단에 설 때마다 그리워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35년 동안 설교자를 위하여 강단에 정성으로 준비해 차를 올리시던 권사님의 사랑과 섬김의 손길입니다. 물론 지금도 설교시마다 강단에 설교자를 위한 찻잔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물과 K 권사님이 올리시던 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의 물은 늘 같은 찻잔에 같은 종류의 물입니다.

그러나 K 권사님이 바치시던 물은 잔부터가 다릅니다. 매 주일 같은 잔이 올라오는 법이 없습니다. 강단에 올리는 차의 내용에 따라 찻잔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얼음덩어리가 찻잔 속에 함께 올라옵니다. 겨울에는 뚜껑이 있는 찻잔이 올라와 설교하는 동안 따뜻한 차 안의 온기가 식지 않게 합니다.

K 권사님이 강대상에 올리시던 물이 지난 달 더욱 그립게 느껴지는 것은 권사님이 바치시는 물은 그냥 물이 아닙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귀 동냥을 하시어 이름 있고 몸에 좋다는 차를 발품 팔아 구입해서 정성으로 강단에 바치시는 겁니다. 한 번도 같은 내용의 물을 연속적으로 올리지 않으셨습니다.

권사님은 이를 위하여 매일 기도하셨습니다. 특별히 다음에는 어떤 차로 설교자를 도울까에 대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건강 상태를 늘 세심하게 살피시곤 기도를 하시는 겁니다. 권사님이 그렇게 매의 눈으로 관찰하시고 기도하시는 것은 직업에서 얻은 관찰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사님은 평생을 약사로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차가 어떤 때 좋은 것이라는 것을 잘 아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35년 동안 강단을 지켜오면서 공 예배시마다 강단에 올리신 차의 종류는 너무 다향 했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많은 종류의 차를 마셔본 설교자도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주일 낮 예배, 주일 오후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시마다 강단에 물을 올리십니다. 어느 날 권사님이 바치신 찻잔의 수를 세어 보았습니다. 한 주일에 기본적으로 4 번을 바치십니다. 그러면 1년이면 208잔이고 십년이면 2,080잔이며 35년 간 그 일을 해 오셨으니까? 7,280잔이 계산되었습니다.

그 외에 교회 내 여러 가지 다른 행사까지 합하면 필자가 권사님에게 대접받은 찻잔의 수는 7,500잔은 족히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를 계수하다가 주님의 말씀이 어느 날 기억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2절에서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K 권사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교회 안에 그런 일꾼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 정성과 사랑 그리고 기도로 봉사하신 수고를 주님도 아시기에 하늘에서 크고 아름다운 상으로 예비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난 달 몸살을 심하게 앓으면서 권사님의 섬김을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은 90이 되신 고령의 몸이시기에 수년 전부터 강단에 물을 바치시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시고 계십니다.

지금도 K 권사님이 건강하셔서 예전처럼 기도와 사랑으로 준비하신 물이 강단에 올라왔다면 기침 감기로 그렇게 큰 고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권사님 감사합니다. 더욱 건강하세요! 주님이 권사님을 위해서 천국에서 예비하신 상급이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는 것일지 기대하게 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