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동안 사용하던 예배 처소를 매각하고 새로 하나님께 선물 받은 교회 건물로 이사 온 지 3개월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새 건물 열쇠를 받고 첫 예배를 드리는 주일 날 성전 이전 감사예배를 드리긴 했지만 우리 교회 사정을 아는 주변의 동역자들이 “언제 봉헌예배를 드리십니까?” 라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페이먼트가 없는 성전 건물을 받았기에 처음부터 이전 감사가 아닌 봉헌예배를 드리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봉헌감사예배] 순서지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봉헌예배를 취소한 이유가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면 성전 봉헌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원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허락 받아도 건물 빚을 다 갚기 전에는 하나님께 봉헌을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받은 성전은 전액 현찰을 지불하고 샀기에 빚이 없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봉헌 예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봉헌예배 일자를 정했습니다. 예배 순서자를 정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에 특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헌예배를 드리기에는 뭔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봉헌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중 새 성전 구입을 위해서 특별 헌금을 한 분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성전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장소와 건물을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성전 구입 특별헌금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주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로 받은 건물을 가지고 마치 우리가 땀과 정성을 드려서 이룬 것처럼 하나님께 봉헌 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봉헌 예배를 드리라는 가까운 친구 목사님들의 권면이 있었지만 나의 마음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은 당분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받은 선물을 감사함으로 사용하는 것을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새 장소로 이사를 오고 나서 주일 예배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전에는 두 교회가 한 지붕 아래 예배를 드렸습니다. 25-6년 동안 스페니시교회가 우리가 사용하고 난 주일 오후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새 장소로 오고 나서 두 교회가 더 늘었습니다. 20년 동안 미국교회를 빌려서 사용해 오던 친구 목사님이 갑자기 예배 처소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처소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로인하여 교회를 문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드리는 오후 1시 예배를 중단하고 그 시간 친구 목사님 교회가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해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교회는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현재의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려왔었습니다. 그 교회까지 예배를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오전 11시는 평강교회가 사용하고, 오후 1시는 부활교회가 사용하며, 오후 3시는 갓피플교회가 사용하고, 오후 5시는 스페니시교회가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5년 만에 처음으로 교회당 건물을 구입했을 때입니다. 어느 날 스페니시 교회 목사님이 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예배 처소를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벌써 25-6년 전의 일입니다. 그 때 염려 속에서도 교회당을 스페니시교회에 거절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서 예배 처소가 없어 두 달 동안 다저스 야구장이 있는 엘리시안 공원에서 야외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두 달 동안 예배 처소를 빌리기 위해서 K 장로님과 수십 곳을 방문했었습니다. 그러나 쉽게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허락받은 곳이 흑인 침례교회당으로 주일 예배를 오후 1시 반에 허락 받았습니다.
그 때의 어려움을 경험했기에 스페니시교회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5-6년 동안 그 때의 결정으로 스페니시교회를 통하여 우리가 큰 은혜와 감동을 지금도 계속해서 받아오고 있습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예수 안에서 한 형제요 참 믿음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2-20 13:03:532020-02-20 13:03:53목사님 교회는 왜 성전 봉헌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새 성전으로 이사한지 2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아름다운 곳에 성전을 허락 받았습니다. 성전을 이전하고 나서 여전도회 회원 중심으로 과일 나무를 심자는 운동이 일어나 모금을 했습니다. 그래서 모아진 돈으로 감나무 4 구루, 복숭아나무 3 구루, 체리나무 2 구루, 대추나무 2 구루, 사과나무 2 구루, 블루베리 2 구루, 살구나무 2 구루, 그리고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이사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오렌지 나무까지 합하여 교회당 건물을 완전히 과일나무로 두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나무를 한 번에 심어보기는 처음입니다. 물론 제가 심은 것은 아닙니다.
나에겐 과실 수를 관리할 만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과실 수를 파는 정원을 방문해서 원하는 나무를 골라 실어오는 것만이 아니라 땅을 깊게 파고 심는 것까지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나무 하나 당 심어주는 값으로 25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과일나무 한 구루 값의 1/4의 됩니다.
이번에 교회 뜰에 심기어진 과일 나무마다 모금에 동참해 주신 교우님들의 명찰을 매어 달려고 합니다. 물과 걸음을 주는 것도 가급적이면 각자가 관심을 가지고 자기 나무를 키우게 하고 싶어서입니다. 철마다 잎이 피고 꽃이 피고지면서 각각의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지는 것을 보면서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그랬더니 교인들의 반응이 너무 좋습니다. 과일 나무를 심기 전에는 교회 주변의 정원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교회당을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새롭게 심기어진 나무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냥 지나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한 주간 동안 얼마나 성장했나를 확인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무를 향하여 예쁘게 자라다오! 이렇게 자리를 잘 지키며 성장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과일나무들과 교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 안에 새로운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세상에 존재의 가치가 없는 것은 없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주신 것들입니다. 보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늘의 구름과 바람까지도 다 나를 위하고 우리를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흙과 크고 작은 돌 하나도 의미가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 중에도 과일 나무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건강과 생명에 도움을 주시기 위해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무들을 가까이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잘 관리를 해 주어야 합니다. 이 같은 행위를 주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예배 처소로 사용했던 건물은 극장 건물이었기에 나무를 심을 공간도 없었고 잔디를 깎아야 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선물 받은 교회당은 교회 건물 앞과 뒤 옆 등 사방이 나무와 잔디로 둘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나무들을 관리해주고 시도 때도 없이 빠르게 자라나는 잔디를 관리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가드너를 고용했습니다. 2주일에 한 번씩 가드너가 와서 정원 잔디와 나무를 관리해 줍니다.
이를 위해서 미처 생각지 못한 교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생겼습니다. 매달 350불을 정원 관리비로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작은 돈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정원 관리비로 이렇게 많은 돈을 사용해 보기는 처음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정원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시편 1편 3절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나무의 복은 종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심겨지는가에 따라서 복과 저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사막이나 마른 땅에 심겨지면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땅에 심겨질 때 철을 따라 성장하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면 나무에게 좋은 땅은 어떤 땅입니까? 항상 마르지 아니하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입니다. 인생도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 믿음의 뿌리를 내린 사람은 만사가 형통하게 하십니다. 기쁨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행복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가정에 물질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이 복을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2-20 13:01:352020-02-20 13:01:35교회 이전 기념 과실수 묘목하는 날!
지난 6월 11일부터 16일까지 남가주 코로나시에 인접한 축구장에서 대통령컵 전국 주 대항 초등학교 남녀 축구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각 주에서 초등학교 대항 시합에서 우승을 한 학교 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반세기 가까이 이곳에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그런 대회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필자의 둘째 딸 가족은 알래스카 주에 살고 있는데 외손자 Ryan은 초등학교 축구 선수입니다. 그가 속한 학교 팀이 알래스카 주 대항 축구 시합에서 지난 2018년 우승을 해서 금번 대회에 초청 받아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곳에 사는 딸 가족 다섯 명이 경기를 위해서 함께 왔습니다.
미국이 큰 나라 인 것은 4-5시간 비행기로 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 경기가 있는 날은 6 월 11일 오전 11시였습니다. 필자도 응원을 하기 위해서 이른 아침 집을 나섰습니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두 분의 친구 목사님 부부도 함께 했습니다. 자동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서 운동장에 도착을 하고서 놀라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운동경기라 규모가 그렇게 크리라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경기 규모가 컸습니다. 경기장에 참석한 사람들의 숫자도 많았을 뿐 아니라 더 놀라운 것은 경기장이 50여개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한 장소에 그렇게 많은 축구 경기장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잘 준비된 엄청난 규모의 축구 경기장이 있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 전국의 50 개 주의 챔피언 학교 남녀 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각 경기장마다 경기를 진행하는 진행요원과 작은 본부석이 있었습니다.
경기하는 운동장에는 심판이 세 명씩 배당이 되어 시간별로 이어지는 경기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 만 하더라도 미국은 축구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미국도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미국 축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속도로 계속 발전한다면 아마도 20년 이내에 미국의 축구가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운동장에서 경기에 임하는 어린 선수만 아니라 선수보다 더 많은 부모와 가족들의 부르짖는 함성에서 미국의 힘, 삶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 날은 남가주에 폭염이 있었던 날 이었습니다. 경기장은 110도의 열기로 지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습니다. 알레스카의 그 날의 기온은 70도 였습니다. 알레스카에서 내려온 아이들이 남가주의 그런 날씨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경기를 하기 위해서 운동장에 들어간 알래스카에서 온 선수들의 모습이 평소와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모두 긴 시간 여행과 날씨 여파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아는 선수 중에는 등번호 50번을 단 선수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선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입니다. 같은 팀에서 뛰는 손자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50번 친구가 부럽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학교 축구팀 코치인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운동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자신은 부모로부터 좋은 운동 소질을 받지 못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하길, 할아버지인 나도 초등학교 때 축구 선수였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지난 해 앵커리지를 방문했을 때 손자가 다니는 학교와 다른 학교가 시합을 하는 것을 두 번 본 일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경기에서 두 세골씩을 넣는 선수가 50번 이었습니다. 그 선수가 꼴을 넣어야 팀이 이기는데 이번에는 한 꼴도 넣지를 못했습니다.
꼴을 넣지 못할뿐더러 전혀 다른 사람처럼 몸놀림이 둔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만히 있어도 땀이 구슬처럼 솟아나는데 추운 지역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필자도 그 날의 더운 날씨 때문에 2 틀 동안 더위를 먹고 혼이 났었습니다. 어느 덧 필자의 3세가 이 땅에서 자랑스럽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자손을 축복하시는 주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2-19 13:50:502020-02-19 13:50:50운동장에서 발견한 새로운 미국의 희망
목사님 교회는 왜 성전 봉헌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33년 동안 사용하던 예배 처소를 매각하고 새로 하나님께 선물 받은 교회 건물로 이사 온 지 3개월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새 건물 열쇠를 받고 첫 예배를 드리는 주일 날 성전 이전 감사예배를 드리긴 했지만 우리 교회 사정을 아는 주변의 동역자들이 “언제 봉헌예배를 드리십니까?” 라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페이먼트가 없는 성전 건물을 받았기에 처음부터 이전 감사가 아닌 봉헌예배를 드리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봉헌감사예배] 순서지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봉헌예배를 취소한 이유가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면 성전 봉헌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원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허락 받아도 건물 빚을 다 갚기 전에는 하나님께 봉헌을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받은 성전은 전액 현찰을 지불하고 샀기에 빚이 없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봉헌 예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봉헌예배 일자를 정했습니다. 예배 순서자를 정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에 특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헌예배를 드리기에는 뭔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봉헌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중 새 성전 구입을 위해서 특별 헌금을 한 분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성전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장소와 건물을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성전 구입 특별헌금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주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로 받은 건물을 가지고 마치 우리가 땀과 정성을 드려서 이룬 것처럼 하나님께 봉헌 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봉헌 예배를 드리라는 가까운 친구 목사님들의 권면이 있었지만 나의 마음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은 당분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받은 선물을 감사함으로 사용하는 것을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새 장소로 이사를 오고 나서 주일 예배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전에는 두 교회가 한 지붕 아래 예배를 드렸습니다. 25-6년 동안 스페니시교회가 우리가 사용하고 난 주일 오후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새 장소로 오고 나서 두 교회가 더 늘었습니다. 20년 동안 미국교회를 빌려서 사용해 오던 친구 목사님이 갑자기 예배 처소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처소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로인하여 교회를 문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드리는 오후 1시 예배를 중단하고 그 시간 친구 목사님 교회가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해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교회는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현재의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려왔었습니다. 그 교회까지 예배를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오전 11시는 평강교회가 사용하고, 오후 1시는 부활교회가 사용하며, 오후 3시는 갓피플교회가 사용하고, 오후 5시는 스페니시교회가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5년 만에 처음으로 교회당 건물을 구입했을 때입니다. 어느 날 스페니시 교회 목사님이 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예배 처소를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벌써 25-6년 전의 일입니다. 그 때 염려 속에서도 교회당을 스페니시교회에 거절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서 예배 처소가 없어 두 달 동안 다저스 야구장이 있는 엘리시안 공원에서 야외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두 달 동안 예배 처소를 빌리기 위해서 K 장로님과 수십 곳을 방문했었습니다. 그러나 쉽게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허락받은 곳이 흑인 침례교회당으로 주일 예배를 오후 1시 반에 허락 받았습니다.
그 때의 어려움을 경험했기에 스페니시교회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5-6년 동안 그 때의 결정으로 스페니시교회를 통하여 우리가 큰 은혜와 감동을 지금도 계속해서 받아오고 있습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예수 안에서 한 형제요 참 믿음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지붕아래 4교회 예배를 주님이 기뻐 받으실 것을 믿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011
교회 이전 기념 과실수 묘목하는 날!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새 성전으로 이사한지 2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아름다운 곳에 성전을 허락 받았습니다. 성전을 이전하고 나서 여전도회 회원 중심으로 과일 나무를 심자는 운동이 일어나 모금을 했습니다. 그래서 모아진 돈으로 감나무 4 구루, 복숭아나무 3 구루, 체리나무 2 구루, 대추나무 2 구루, 사과나무 2 구루, 블루베리 2 구루, 살구나무 2 구루, 그리고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이사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오렌지 나무까지 합하여 교회당 건물을 완전히 과일나무로 두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나무를 한 번에 심어보기는 처음입니다. 물론 제가 심은 것은 아닙니다.
나에겐 과실 수를 관리할 만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과실 수를 파는 정원을 방문해서 원하는 나무를 골라 실어오는 것만이 아니라 땅을 깊게 파고 심는 것까지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나무 하나 당 심어주는 값으로 25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과일나무 한 구루 값의 1/4의 됩니다.
이번에 교회 뜰에 심기어진 과일 나무마다 모금에 동참해 주신 교우님들의 명찰을 매어 달려고 합니다. 물과 걸음을 주는 것도 가급적이면 각자가 관심을 가지고 자기 나무를 키우게 하고 싶어서입니다. 철마다 잎이 피고 꽃이 피고지면서 각각의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지는 것을 보면서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그랬더니 교인들의 반응이 너무 좋습니다. 과일 나무를 심기 전에는 교회 주변의 정원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교회당을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새롭게 심기어진 나무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냥 지나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한 주간 동안 얼마나 성장했나를 확인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무를 향하여 예쁘게 자라다오! 이렇게 자리를 잘 지키며 성장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과일나무들과 교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 안에 새로운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세상에 존재의 가치가 없는 것은 없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주신 것들입니다. 보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늘의 구름과 바람까지도 다 나를 위하고 우리를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흙과 크고 작은 돌 하나도 의미가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 중에도 과일 나무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건강과 생명에 도움을 주시기 위해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무들을 가까이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잘 관리를 해 주어야 합니다. 이 같은 행위를 주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예배 처소로 사용했던 건물은 극장 건물이었기에 나무를 심을 공간도 없었고 잔디를 깎아야 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선물 받은 교회당은 교회 건물 앞과 뒤 옆 등 사방이 나무와 잔디로 둘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나무들을 관리해주고 시도 때도 없이 빠르게 자라나는 잔디를 관리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가드너를 고용했습니다. 2주일에 한 번씩 가드너가 와서 정원 잔디와 나무를 관리해 줍니다.
이를 위해서 미처 생각지 못한 교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생겼습니다. 매달 350불을 정원 관리비로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작은 돈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정원 관리비로 이렇게 많은 돈을 사용해 보기는 처음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정원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시편 1편 3절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나무의 복은 종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심겨지는가에 따라서 복과 저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사막이나 마른 땅에 심겨지면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땅에 심겨질 때 철을 따라 성장하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면 나무에게 좋은 땅은 어떤 땅입니까? 항상 마르지 아니하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입니다. 인생도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 믿음의 뿌리를 내린 사람은 만사가 형통하게 하십니다. 기쁨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행복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가정에 물질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이 복을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995
운동장에서 발견한 새로운 미국의 희망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지난 6월 11일부터 16일까지 남가주 코로나시에 인접한 축구장에서 대통령컵 전국 주 대항 초등학교 남녀 축구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각 주에서 초등학교 대항 시합에서 우승을 한 학교 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반세기 가까이 이곳에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그런 대회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필자의 둘째 딸 가족은 알래스카 주에 살고 있는데 외손자 Ryan은 초등학교 축구 선수입니다. 그가 속한 학교 팀이 알래스카 주 대항 축구 시합에서 지난 2018년 우승을 해서 금번 대회에 초청 받아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곳에 사는 딸 가족 다섯 명이 경기를 위해서 함께 왔습니다.
미국이 큰 나라 인 것은 4-5시간 비행기로 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 경기가 있는 날은 6 월 11일 오전 11시였습니다. 필자도 응원을 하기 위해서 이른 아침 집을 나섰습니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두 분의 친구 목사님 부부도 함께 했습니다. 자동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서 운동장에 도착을 하고서 놀라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운동경기라 규모가 그렇게 크리라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경기 규모가 컸습니다. 경기장에 참석한 사람들의 숫자도 많았을 뿐 아니라 더 놀라운 것은 경기장이 50여개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한 장소에 그렇게 많은 축구 경기장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잘 준비된 엄청난 규모의 축구 경기장이 있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 전국의 50 개 주의 챔피언 학교 남녀 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각 경기장마다 경기를 진행하는 진행요원과 작은 본부석이 있었습니다.
경기하는 운동장에는 심판이 세 명씩 배당이 되어 시간별로 이어지는 경기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 만 하더라도 미국은 축구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미국도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미국 축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속도로 계속 발전한다면 아마도 20년 이내에 미국의 축구가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운동장에서 경기에 임하는 어린 선수만 아니라 선수보다 더 많은 부모와 가족들의 부르짖는 함성에서 미국의 힘, 삶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 날은 남가주에 폭염이 있었던 날 이었습니다. 경기장은 110도의 열기로 지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습니다. 알레스카의 그 날의 기온은 70도 였습니다. 알레스카에서 내려온 아이들이 남가주의 그런 날씨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경기를 하기 위해서 운동장에 들어간 알래스카에서 온 선수들의 모습이 평소와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모두 긴 시간 여행과 날씨 여파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아는 선수 중에는 등번호 50번을 단 선수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선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입니다. 같은 팀에서 뛰는 손자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50번 친구가 부럽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학교 축구팀 코치인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운동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자신은 부모로부터 좋은 운동 소질을 받지 못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하길, 할아버지인 나도 초등학교 때 축구 선수였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지난 해 앵커리지를 방문했을 때 손자가 다니는 학교와 다른 학교가 시합을 하는 것을 두 번 본 일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경기에서 두 세골씩을 넣는 선수가 50번 이었습니다. 그 선수가 꼴을 넣어야 팀이 이기는데 이번에는 한 꼴도 넣지를 못했습니다.
꼴을 넣지 못할뿐더러 전혀 다른 사람처럼 몸놀림이 둔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만히 있어도 땀이 구슬처럼 솟아나는데 추운 지역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필자도 그 날의 더운 날씨 때문에 2 틀 동안 더위를 먹고 혼이 났었습니다. 어느 덧 필자의 3세가 이 땅에서 자랑스럽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자손을 축복하시는 주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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