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목양칼럼 # 275 목회에 힘이 되어준 아름다운 이름들(3)

교회를 설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Moon H Y 집사님이 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누구에게 전도를 받았거나 권면을 받으시고 교회에 나오신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교회를 찾아 오셨습니다. 1970년대 초 파독 간호사로 근무하셨습니다.

남편은 파독 광부 출신이셨습니다. 독일에서 만나 가정을 이루시고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습니다. 당시 South Gate 시에서 중형 마켓을 운영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어려운 병에 걸리셨습니다. 전문 의료인이었기에 자신의 병이 얼마나 중한지에 대해서 아시고 계셨습니다.

치료를 받으시는 동안 필자가 어려운 병에서 기적 같은 은혜로 살아났다는 소식을 전해듣고서 살기 위해서는 이 목사의 곁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서 교회에 나오셨다고 후일에 간증하셨습니다. 교회에 처음 오셨을 때는 상태가 매우 위중했습니다. 치료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은 다 빠져 있으셨습니다.

얼굴에는 핏기가 없어 매우 창백했으며 앉고 일어서는 것도 주변의 도우 심을 받으셔야 할 정도로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시고 얼굴엔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생사의 반복되는 위기와 치료 부작용으로 인한 아픔에도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한 번도 힘들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중병을 앓고 있는 분들이 집사님처럼 마음의 평안을 가지지 못하시고 항상 불안해하시며 죽음의 공포로 인하여 가까운 이웃이나 가족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집사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천사와 같으신 성품을 지니신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을 여러 차례 반복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 직원이 필자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집사님이 수혈을 반복해서 받아야 하는데 가족이나 주변에서 집사님을 위하여 헌혈을 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교회로 돌아와 광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분 밖에 헌혈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필자와 K 장로님이셨습니다. 다음 날 헌혈을 위해서 병원으로 갈 때에 Y 집사님이 함께 가시길 원했습니다. 입원에 계시는 집사님을 병문안하고 헌혈을 했습니다. 그 광경을 Y 집사님은 곁에서 지켜보고만 계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교회 청년 집사님이 꼭 보셔야 할 것이 있다고 해서 주어진 주소로 갔습니다.

가보니 매물로 나온 건물이었습니다. 6 개월 이상 사용치 아니하고 방치된 극장 건물로 천장의 일부가 내려앉았고 비가 새어 바닥 카펫에선 역한 냄새가 코를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청년 집사님이 부동산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첫 번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건물 상태가 좋지 않아 시가의 절반 가격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당시 교회 형편상 건물을 매입할 실력이 되지 못했습니다. 청년 집사님의 강요에 마지못해 보기만 하려고 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가셨던 Y 집사님이 건물을 둘러보고 차를 타려고 하는데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나는 간이 나빠서 헌혈을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것을 하겠습니다”

당시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Y 집사님은 한국에서 이민 오셔서 교회에 출석하신지 몇 개월이 되지 아니하셨을 때였습니다. 한국에 계실 때에는 전문 법조인으로 평생을 사시다가 말년에 건강상 이유로 미국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M 집사님의 투병을 통하여 큰 감동을 받으셨던 것이었습니다.

그 주일에 건물 구입에 필요한 다운페이먼트 55,000.00 불을 가져 오셨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그 돈을 지불하고 건물 구입을 위한 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Y 집사님이 그런 실력이 있는 분인 줄 몰랐습니다. 후에 장로 안수를 받으셨습니다.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즉시 입주하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이 있기 두 달 전에 4 년 동안 교회 건물 주시기 위해서 기도하다가 건물 구입을 위한 에스크로 오픈 과정에서 교회가 두 조각이 났습니다. 그 일로 교회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도의 응답을 기적적으로 허락하시어 새 장소로 입당케 하시오 지금의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2022년 4월 23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74 목회에 큰 힘이 되어준 아름다운 이름들(2)

지난 칼럼에 이어 Paik 집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남기고 싶습니다. 교회를 떠난 지 오래된 집사님에게 긴급한 교회의 재정적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분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그런 믿음과 신뢰를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 집사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벌써 40년 전 일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제게 두툼한 봉투를 하나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돈으로 성지를 다녀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도 성지를 가보지 못했지만 설교하시는 목사님은 성지를 다녀오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영문으로 이 돈을 주시는지를 물었습니다.

자신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6 개월 동안 기간을 정하고서 팀으로 모아진 것을 목사님의 여행경비로 모았다는 것이었습니다. 40년 전에 2000불은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한인 타운에 집을 사려면 다운 페이먼트로 지불할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 돈을 받고 너무 놀라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이지만 손님들에게 봉사하고서 얻은 작은 팁을 6 개월 동안 모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돈을 모을 때 생각 없이 모은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으로 모았습니다. 담임목사님의 성지 순례 비용으로 모은 것입니다. 세상에 누가 나를 위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정말로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교회 형편으로 그 돈을 가지고 즉시 성지 여행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회와 상의해서 그 헌금을 교회에 적립을 하고 언제고 성지 여행을 떠날 때에는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 약속이 실행 된 것은 그로부터 20년 이 지난 후 이었습니다.

교회 설립 20주년을 기념하면서 Paik 집사님 이름으로 성지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한 달 전 여행사를 통하여 모집된 여행객이 4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과의 전쟁 소문이 난 것입니다. 그 일로 출발 일주일 전까지 예약된 모든 예약이 취소되었습니다.

출발하기 수일 전 여행사 담당자가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이번 여행에 위험이 있으니 다른 분들처럼 여행을 취소하고 다음 기회가 되는대로 다시 일정을 조종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나 혼자라도 여행을 가겠다고 고집했습니다. 이유는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이스라엘 정부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시민권자가 자국을 방문할 때 자국민 이상으로 여행자의 신분과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예약된 40명 중 떠나는 날엔 혼자만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현지에 도착해 보니 상황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사방에서 총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로인하여 성지를 방문하려는 세계인의 발길이 끊겼습니다. 예루살렘은 물론 모든 관광지가 기다림 없이 텅 빈 상태로 비어있어 어디를 가든지 기다림 없이 즉시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일로 크게 은혜를 받은 곳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던 곳입니다.

그곳은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많은 사람이 방문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언덕진 곳을 오르고 내리는 길이 협소하여 많은 사람이 방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마다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그 날은 기다림이 없어서 필자도 그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무 십자가가 세워진 곳은 바위가 움푹 패어 있습니다. 마치 페인트 1 갤론짜리 크기의 넓이와 깊이로 패어 있습니다. 그 공간에 나무 십자가가 세워졌던 것이며 그곳으로 예수님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가 쏟아져 모였던 곳입니다.

그곳을 두 손으로 바닥을 쓸어 더듬으며 기독교가 우화의 종교가 아니라 역사적 종교라는 사실이 강하게 각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주님의 보혈의 능력 권세가 얼마나 위대하며 강한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은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하게 지금도 나에게 밀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Paik 집사님의 희생과 헌신 감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22년 4월 5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73 목회에 큰 힘이 되어준 아름다운 이름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살 어름 위를 걷는 것 같았었던 42년 동안의 긴 목회 여정을 7-8 개월 남기고 평강교회를 이끌 제2대 담임목사를 선정하고 은퇴를 준비하면서 지난 온 목회 여정 가운데 오늘의 우리 교회가 있기까지 아름다운 믿음의 자취를 남겨주신 분들을 기억하면서 감사의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첫 번째로 Paik, Y H and Paik, S K 집사님이십니다. 교회설립 회원 중 한분이셨던 이갑제 권사님이 Paik 집사님 집에 거하시며 가사를 도와주셨습니다. 이 권사님은 신실하시며 기도를 많이 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권사님이 집안일을 하시는 동안 Paik 집사님 부부는 권사님을 통하여 큰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권사님이 가사 일을 하신 지 3개월 만에 Paik 집사님 가정이 저희 교회를 출석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란 것은 Paik 집사님이 교회를 출석하시면서 모두가 놀랄 정도로 헌금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당시는 교인수도 작았고 십일조를 하는 분들이 많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의 가정에서 십일조를 하셨습니다.

십일조를 하시면서 부인 집사님이 특별한 부탁을 하셨습니다. 남편이 십일조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무명으로 주보에 게재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교회 제정의 40% 정도를 Paik 집사님 가정에서 담당하실 정도였습니다. 집사님은 세탁소와 식당을 운영하셨고, 남편은 직장에서 중역으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섬기던 중 어느 날 부인 집사님이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상담의 내용은 지난 2년 여 동안 비밀에 부쳐왔던 십일조 바치는 것이 남편에게 발각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부부 사이에 다툼이 있었답니다. 계속 십일조를 바친다면 남편은 교회 출석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인 집사님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성도가 양보할 수 없는 것으로 어떠한 시험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드려야만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신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묵상 기도를 마친 후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헌금도 중요하지만 가정의 평안도 중요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를 드릴 때 남편의 뜻을 존중해 함께 상의해서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 목회의 첫 실패한 상담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 다음부터 집사님의 가정은 십일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부부는 두어 달 교회 출석을 하시다가 이후에 교회를 떠나셨습니다.

그런 Paik 집사님을 남다르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교회를 떠나셨지만 부인 집사님은 특별하셨습니다. 집사님이 교회를 떠나가신 후 다시 오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 왔지만 다시 오시라고 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도움의 전화를 몇 번 했습니다.

그것도 교회를 떠나신지 잠시 후가 아니라 십 수 년이 지났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얼마나 다급하고 상황이 어려우면 교회를 떠나간 교인에게 담임목사가 전화를 하겠습니까? 정말로 망설이고 주저하다가 하는 수 없이, 달리 재정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없어서 체면을 불구하고 어렵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지금은 교회 건물 페이먼트가 없어 주변 분들의 말처럼 빚이 없는 교회가 되었지만 지난 30여 년 동안 건물 페이먼트로 인한 압박을 반복해서 당해 왔었습니다. 은행이 정한 날짜에 페이먼트를 지불하지 못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교회에서 가장 힘들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 재정을 담당하시는 장로님과 담임목사입니다. 필자의 전화를 받은 부인 집사님은 왜 교회를 떠나간 교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시느냐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번도 교회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필자가 어렵게 전화하는 것을 아시기에 도리어 전화 해 주셔서 감사하시다는 말씀과 함께 필요한 액수를 즉시 전달해 주셨습니다.

그런 신실한 믿음의 종님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평강교회가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022년 4월 5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