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나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3)

기도원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누구에게도 그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누구에게 말해도 그 말을 믿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였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소중하게 간직하고서 이후부터 당당하게 아들의 문제를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즉시 병원 의사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지정해 주는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2주일 동안 반복해서 간 조직 검사를 했습니다. 학교에는 이 같은 사정을 알리고 학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아들만 놀라는 것이 아니라 아들 친구와 학교에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2달의 시간이 경과했습니다. 그 동안의 진료 결과를 마지막으로 듣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아들과 병든 아내 그리고 두 딸과 함께 간 전문의사의 진료실을 방문했습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들의 담당 의사인 여자 의사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인사를 하려고 하자 내게서 눈을 돌리고 그냥 자신의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틀렸구나! 한 가닥 기대했던 희망도 사라졌구나!

긴 탄식과 한숨이 터져 나왔습니다. 진료실 안에서 마주한 때도 의사는 우리에게 미소를 주지 않았습니다. 궂은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눕히고 손으로 간 부위를 만지며 청진기로 심장의 박동을 들을 때 우리는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진찰이 마침과 동시에 그 의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죽고 살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치 오랜 시간처럼 침묵이 이어지는 듯 했습니다. 의사는 진료를 마치고 진료 차트를 읽고 나서 우리를 향하여 무거운 입을 드디어 떼었습니다. 그 때 의사의 말은 긴 말이 아니었습니다. “It’ normal”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죽을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소리를 들었는데도 전혀 기쁘지가 않았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아내는 땅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의사가 고마운 것이 아니라 주먹을 의사의 얼굴에 날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껴야 했습니다. 이유는 의사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처음 만날 때라든지 아니면 진료를 하기 전에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했다면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는 너무 냉정했습니다. 환자의 입장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도 의사에게 하지 아니하고 진료실을 나왔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기적이 있지만 우리 가정에 임한 이것이 기적 중 기적이 아닐까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가족 중 누구도 이런 말을 들으리라고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너무도 신기하고 놀라운 기쁨의 소리, 삶의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당신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깊은 터널에서 벗어난 아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강력한 예방 주사를 맞은 아들은 죽음이 무엇임을 두 달 동안 깊이 알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큰 공부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대학 2학년의 학점 크레딧을 받고 졸업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California 내에 있는 어느 대학이든지 2년만 공부를 하면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타주로 대학을 진학을 경우 6개월의 크레딧만 받게 됩니다. 대학을 입학하게 되었을 때에 여러 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 중 그가 택한 곳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부 워싱턴에 위치한 Georgetown 대학이었습니다. 그 대학으로 가는 것을 동의하지 못했던 나를 향하여 얼마 전 어느 날 아들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빠의 말을 듣고 가주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으면 아마도 자신의 지금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작은 진료실에서 몇 사람의 환자만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하지만 동부의 학교로 갔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경계가 전 세계가 되어 하늘을 날라 다닌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는 욥기 22장 10절의 말씀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890

나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2)

갑작스럽게 닥친 아들의 질병 문제는 가족 모두를 큰 충격과 혼돈에 빠지게 했습니다. 정말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이러한 상황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이제 나의 목회는 끝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낮으로 강단에 설수가 있겠습니까? 무슨 면목으로 설교를 할 수 있습니까?

그때 내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아들의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내가 나아갈 길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부인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두 딸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었습니다.

차를 몰고 산으로 향했습니다. 평소 다니던 기도원으로 향한 것입니다. 얼마나 그곳에 머물지에 대한 생각도 없이 무작정 집을 떠난 것입니다. 기도원을 향하여 운전을 하고 가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이게 뭡니까? 하나님 이게 뭡니까? 지금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아 왔는데 이게 뭡니까?

오래 전 Palmdale 기도원에서 40일 금식기도 할 때에도 장래에 대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 때 이상으로 아들 때에도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기도원에 머문 기간은 3일 이었습니다. 3일 동안 금식을 했지만 기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성경도 읽혀지지가 않았습니다. 그 때 나의 입에서 쉬지 아니하고 반복해서 터져 나오는 탄식만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게 뭡니까” “주님 이게 뭡니까?”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제 나는 더 이상 교회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무슨 면목으로 내가 부름 받은 종이라 할 수 있습니까? 나의 목회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진정으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십니까?

3일 동안 기도원 골방에서 밖으로 나오지 아니하고 그냥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넋 놓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곳에서 얼마나 더 머물지에 대한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 이게 뭡니까? 하나님 이게 뭡니까? 반복해서 이 탄식만 수도 없이 부르짖는 것뿐이었습니다.

주님도 나를 버리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나의 아버지가 아니시고 타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 나의 모든 것이 끝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때의 절망감은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아픔이고 고통으로 느껴졌습니다. 다시는 내게 기쁨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다시는 나에게 웃을 일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에 나를 놀라게 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소리였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성이었습니다. 잠자던 나의 영혼을 크게 흔들어 깨어나게 하는 세미한 음성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나 분명하고 또렷한 음성이었습니다.

그 음성의 내용은 “데이비드가 누구의 아들이냐고 내게 조용하게 물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데이비드가 나의 아들인줄 알았습니다. 데이비드가 나의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데이비드가 나의 아들이 아님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데이비드가 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것이 깨달아지는 순간 내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밤에 순간에 광명한 빛으로 변화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입에서 “이게 뭡니까?”라며 3 일 동안 부르짖었던 탄식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데이비드가 내 아들이 아니고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알아서 하세요! 죽이시든 살리시든 주님 뜻대로 하세요! 그렇게 나의 소리가 바뀌면서 내 안에는 무거운 짐에서 벗은 것 같은 평안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문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리를 정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기도원에서 내려오자마자 교회로 향했습니다. 그 시간이 수요 예배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으면 하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영문도 모르고 수요예배 참석하셨던 교인들은 예배 인도자가 교회에 나타나지 아니하므로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기에 놀라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879

나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1)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기 22장 10절의 말씀입니다. 위의 말씀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런 이 말씀을 이해하기 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나에게는 없을 줄 알았던 인생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제서 이 말씀의 의미를 조금은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내가 계획하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내가 나의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던 때는 내가 나의 삶을 사는 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못하고 자기 잘난 멋에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20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란 많은 의사들의 말에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나의 수고와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에 삶의 경계를 허락 받아 반세기 가까이 이 땅에서 가정을 이루며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미국에 올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 나를 하나님의 강권적인 방법으로 이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짧지 않은 지난 삶을 살아오면서 여러 번의 위기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나의 삶에 결정적인 어려움을 주었던 것은 젊은 시절 죽음의 그림자에게 쫓김을 당하던 때였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42 년 동안 부부로 살아온 집 사람이 17년 동안 암으로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때였습니다. 두 번 다 쉽지 않은 시련과 고통이었지만 이보다 더 심각하고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아들이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귀로에 놓이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던 아들이었습니다.

자라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온 아들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학교로부터 선별 교육을 받았습니다.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는 것도 학교의 지도로 부모인 우리도 알지 못하는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들어간 것이 Los Angeles County 안에 두 개의 교실 밖에 없는 특수반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일명 Medical Magnet 프로그램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 반에 속한 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선 대형 병원에서 500시간 이상 자원 봉사를 이수해야만 합니다. 학교는 학생이 봉사할 병원을 지정해 줍니다. 그러면 배정 받은 병원에서 자원 봉사자로 일하기 위해선 먼저 지정 받은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건강에 이상이 없을 경우 봉사자의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건강에 이상이 없었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건강 검진 과정에서 아들이 중한 병에 걸린 것이 발견 되었습니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아니하는 것이긴 하지만 아들의 간에 cooper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으면 신경 계통의 심각한 문제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장 학업을 중단하라는 것입니다. 아들의 남은 생명이 수년 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뇌신경이 상처를 당하여 공부를 하지 못할뿐더러 온 몸이 굳어져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장 간 전문 의사를 찾아서 상담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천병력이라고 했던가요? 정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의 가정에 부인도 말기 암 환자인데 하나 뿐인 아들도 치료가 되지 않는 불치병에 걸렸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정말로 내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목사이긴 한 건가?

나의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혹시 내가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한 것은 아닌가? 의사로부터 아들이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의 얼굴도 볼 수가 없었고 두 딸의 얼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도 부끄럽고 너무도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가족이 서로 얼굴을 대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고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때부터 한 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 일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기만 했던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