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칼럼 및 자서전 출판기념회 답사

살다보니 이런 영광스러운 날도 만나게 되는군요! 나의 계획으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년 중 가장 분주한 때임에도 불구하시고 이 날을 기억해 주시고 이렇게 귀한 시간 내어 주시어 먼 길을 달려 이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 한분 한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평소 가까이서 크게 존경하는 어르신들께서 귀한 순서를 맡아 주시고 주옥같은 말씀을 주심에 대하여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책을 출판했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의 목사님들이 제게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소문도 없이 언제 그런 준비를 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시면서 묻는 질문은 비용이 얼마나 들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목사님들이 바라는 소망은 다르지 않습니다. 설교집이나 칼럼 그리고 자서전을 출판하는 것입니다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내는데 돈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돈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크리스찬투데이의 금 같은 지면에 부족한 사람의 글을 실어 주신 것도 귀하고 감사한 일인데 이번에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출판할 수 있도록 저를 강하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 책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크리스찬투데이 발행인과 사장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 시간 특별히 감사드리는 것은 자서전 (야곱의 고백)출판을 위해서 크게 수고하신 아름다운동행의 박에스더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년전부터 이곳에 오실 때마다 저에게 자서전을 내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제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럴 때마다 박에스더 사장님이 반복해서 하시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빚이 있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 받은 특별한 은혜가 있지 않으십니까? 그것을 감사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라고 하시는 말씀에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모르던 때에 죽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는 겁니다. 주님도, 천국도 하늘의 상급도 얻지 못했을 텐데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의학적으로 치료가 어려운 병이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한국의 모든 병원이 1972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었습니다. 한 때 서울 세브란스 병원만 4 번 입원 했었습니다.

마지막 입원은 40일 동안 있었습니다. 당시 나의 몸의 상태는 혈압이 60/25, 맥박이 일분에 330번까지 뛰었습니다. 혈압이 너무 약하게 뛰니까? 심장에 청진기를 대고 박동 수를 세어야 했습니다. 혈압이 내려가니까? 피가 신체 전 부분으로 공급이 되지 않아 발끝 손끝에서부터 굳어져 갑니다.

심할 때는 헤모글로빈의 숫자가 2-3까지 내려간 적도 있었습니다. 일 년 이상 반복 수혈을 통하여 생명을 이어가야 했었습니다. 그런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습니다. 당시 중앙일보 사회장이셨던 김천수선생님이 치료 되었다는 말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목사가 산 것은 이 목사님의 하나님이 살리신 겁니다.

이 목사의 병이 자연적으로 치료될 확률은 3-400년 만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는 몰랐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를 살리신 분은 의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모 형제도 아니고 나의 수고나 노력으로 산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살리시고 여기 이 자리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빛내 주신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인사의 말씀을 마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677

동심으로 돌아간 2박 3일의 아름다운 여행!

필자가 12년 째 섬기고 있는 남가주목사장로부부찬양단이 제11회 정기 공연을 지난 10월 27일 저녁 6시에 아가페세계선교교회에서 은혜 가운데 마치고 난 다음인 지난 11월 5일 출발하여 2박 3일 동안 그랜드캐년으로 50명의 합창단원이 수양회를 다녀왔습니다. 이번이 3 번째 연속해서 맞이하는 수양회였지만 필자는 처음으로 참여했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망설임 가운데 수양회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통하여 생각지 못한 은혜와 아름다운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합창단원으로 오랫동안 함께 해 왔지만 사실 단원들 간에 한 자리에서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가지지 못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찬양 연습을 위해서 정해진 장소와 시간 속에서 단원들이 잠시 만난 후 찬양이 끝나면 곧 바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에 바빴기 때문에 서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금번 여행을 통하여 멀었던 우리의 관계가 가까워진 것입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우리 모두가 이처럼 한 마음이 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한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남이 아닌 가까운 이웃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여행사를 통하여 전세낸 대형버스를 타고 긴 시간 오고가는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통하여 서로를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우리의 모습은 늘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로서 목사와 장로 그리고 그 가족이라는 부담에 눌려 말과 행동에 늘 조심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비단 합창단 안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금번 여행에서 우리 모두는 그런 부담에서 탈출을 하게 된 것입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다 동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긴 시간 차로 이동하는 동안 오래도록 불러보지 못했던 기억에서 희미해진 옛날의 동요들과 우리의 귀에 익숙한 고향의 노래들이 들려질 때마다 우리는 한마음이 되어 큰 소리로 합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잊었던 어린 시절 고향의 뒷동산에서 뛰놀던 친구들의 얼굴들이 떠오르기도 해 우리를 먼 기억속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금번 수양회가 아니었으면 느낄 수 없었던 아름다운 순간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대화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가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마음으로 주고받는 따뜻한 인사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만날수록 더 따듯해지고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만나고 있는 분들이 이렇게 귀하고 아름다운 분들이심을 왜 그동안 모르고 살아왔는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합창단원들의 평균연령이 70세 정도로 추정이 됩니다. 이번 여행에도 건강상의 이유로 10여분이 참석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녹녹치 않은 연세임에도 불구하시고 누구하나 실족하지 않으시고 건강하게 여행을 즐기셨습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에는 콜로라도 맑은 강물에 띠운 배에 일행이 올랐습니다. 한 시간 반 이상 되는 배 안에서의 모임은 선상 무도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누구하나 빠짐없이 모두가 어린 아이가 되어 손에 손을 맞잡고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은 더 이상 나이든 어른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긴 세월 살아오는 동안 가면 속에 가려진 우리의 본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이번 여행이 그래서 오래도록 기억이 될 것입니다. 여행을 통하여 하나님이 찬양 받으시길 좋아하실 뿐 아니라 찬양하는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시는 분이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목사장로부부찬양단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631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선물한 백정숙 권사님

큰 아빠 어떻게 하면 좋아요? 다은이 아빠의 생명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답니다. 11월 12일 월요일 아침에 북가주에 살고 있는 동생 부인이 전화로 알려온 내용이었다. 다은이 아빠는 북가주 지역의 KCCC 간사로 사역을 하고 있는 37세의 젊은 목사로 8살 5살의 어린 두 딸을 두고 있습니다.

3년 여 전부터 뜻하지 아니한 갑작스런 질병으로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습니다. 영어 병명으로는 ALS, 한국 병명으로는 루케릭으로 온 몸의 신경이 죽어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손발을 움직이지 못할 뿐 아니라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혀도 움직일 수가 없어 음식도 넘기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아버지 선교사를 따라 루마니아로 떠나서 지금까지 타향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평생을 선교사로 사역하시는 목사님의 아들 목사이기에 하나님이 그대로는 이 목사님을 데려가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하고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이적을 위해서 쉬지 아니하고 기도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와는 달리 이 목사님의 건강은 날로 쇠약해져 가더니 결국에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것도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고 선고 받았던 날을 다 채우지 못하고 3일만 인 지난 11월 14일 수요일 저녁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걱정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떠나간 사람을 위해서 남은 가족이 해야 할 일은 장례식을 치르는 것입니다. 가난한 목사의 삶이기에 장례식을 위해서 준비해둔 것은 없었습니다. 전화로 장례절차를 물었더니 필자가 살고 있는 LA와 달리 북가주는 최소 5만 불의 비용이 든 다는 것이었습니다. 묘지 값이 2 만 불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로서 장례식의 경험이 많은 필자는 동생 부인에게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장례식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재정 형평으로 무리해 가면서 장례식을 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어린 두 딸의 장래를 위하여 단돈 얼마라도 절약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로 제안을 했습니다. 첫째는 시신을 화장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을 믿는 우리들에 게는 매장이나 화장의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화장을 하면 장례식 경비를 1/3 수준으로 절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여의치 아니할 때는 북가주에서 장례식을 행한 후 필자가 있는 이곳으로 시신을 옮겨와 매장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경우 북가주에서의 장례 경비의 1/2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감동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섬기고 출석하던 리치몬트침례교회 백정숙 권사님이 모두를 놀라게 하셨습니다.

젊고 신실했던 목회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위해서 평소 자신이 죽으면 사용하시려고 준비해 두신 묘지를 고 이준은 목사님을 위해서 아무런 조건 없이 기쁜 마음으로 기증해 주신 것입니다. 자신의 묘지를 기증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화장을 해 달라고 하시면서 기증을 하신 것입니다.

전화로 그 소식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어떻게 이런 귀한 희생과 사랑을 만날 수 있습니까? 백정숙 권사님의 크신 사랑을 통하여 고 이준은 목사의 짧은 생애가 실패한 사역, 기억에서 잊혀져간 인생이 아니며 헛되게 산 것이 아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고인이 그토록 사랑했던 남기고 간 어린 두 딸에 대해서 염려하던 필자의 마음에 주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시편 37편 25-26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세상은 말하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에 와서 천국을 얻고 돌아갑니다. 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얻고 갑니다. 천하보다 귀한 자녀들을 얻고 돌아갑니다. 축복의 믿음의 씨앗을 만대로 뿌리 내리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