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의 일로 기억이 됩니다.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교회 주일 학교 학생 중 하나가 치료가 되지 않는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을 때에 그 학생을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이 교회 안과 밖에서 있었습니다. 어른 뿐 아니라 주일 학교 어린이 사이에서도 모금 운동이 진행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주일학생 중 하나가 필자에게 다가와 크게 화를 내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강력하게 항의 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지난 주일에 아픈 학생을 위하여 주일 학생들이 모금 할 때에 자신도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그래 좋은 일에 동참한 것 참 잘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위하여 얼마를 했느냐고 했더니 5불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 때문에 화가 났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낸 돈으로 그 아이의 아빠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교회 당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 일로 모금에 동참한 어린이가 격하게 화를 내는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당시 어린 주일학교 학생이 아픈 친구를 위하여 모금에 동참한 5불은 어른이 생각하는 5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큰돈을 아픈 친구를 위해서 바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드린 그 귀한 돈이 목적한 대로 아픈 친구를 위하여 사용이 되지 않고 자신 앞에서 병든 아이 아빠의 담배 연기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서 너무나 화가 났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담배 한 갑의 값이 3-4불정도 했던 모양입니다. 그 순간 자기가 순수한 마음으로 동참한 모금이 후회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정성으로 바친 그 돈이 그렇게 의미 없이 사용이 되는 줄 알았으면 모금에 동참하지 않았을 것처럼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어린이답지 않는 당당함과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분노하는 학생을 향하여 필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변명하지도 못했습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그 학생을 이해시킬 수가 있습니까? 그저 그 아이 앞에서 죄인 된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유구무언이 되었습니다. 이 후 그런 내용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아이 아빠에게도 지금까지도 말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담아두고만 있는 것입니다.
15년 전의 그 어린 학생은 계속되는 학교생활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마약과 술 담배의 유혹으로부터 스스로 자기를 지키며 보호하는 삶을 살아가더니 지금은 29살의 건강한 청년으로 동부의 명문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미 주류사회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지도자로 성장하여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조심하며 나름대로 책임 있는 행동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나 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생각과 판단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생각 없이 행동한 언행이 주변 사람을 화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화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의 충성스런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 사도는 고전 10장 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권면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 늘 감사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연약을 아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허락하시므로 그 능력을 힘입어 매일의 삶을 통하여 자기를 굴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시기 때문에 오늘도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말씀의 푯대를 향하여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2-06 00:30:562020-02-06 00:31:39목사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남가주를 26년 만에 기록적으로 뜨겁게 달구던 살인적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7 월의 두 번째 주일이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서 일 년 전 교회를 설립하고 꾸준하고 성장해 오던 H N 교회가 창립 1 주년을 기념하는 감사예배를 주일 오후 4 시에 드리고 있었습니다. 필자는 기념 예배에 초청 받아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축사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창립 1주년을 축하하는 내빈의 시간이었습니다. 두 분이 축사로 단에 서셨습니다. 먼저는 한인 타운에서 존경 받으시는 원로 목사님이 축사를 하셨고 이어서 본 교회를 담임하시는 P 목사님이 자신의 외사촌 형님이라고 소개하면서 멀리서 오신 순서에도 없는 장로님을 단에 불러 세우셨습니다.
단에 서신 장로님은 이런 말로 축사가 아닌 자신의 신앙 간증으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 나는 날라리 장로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념 감사예배에 참석한 50여 분 모두는 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날라리 장로라는 말은 진짜 장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름뿐인 장로라는 말입니다.
가짜 장로라는 고백이었습니다. 누가 자신을 향하여 그렇게 말을 해도 화가 나고 인정할 수 없을 터인데 그날 그 장로님은 강단에서 입을 열자마자 힘주어 그 말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말을 공적인 장소에서 선언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은 이러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교회 강단에 서본 것이 처음이기에 축사를 해 본 일도 없어서 어떻게 덕담의 말을 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가정은 조상 대대로 부처를(절) 유별나게 믿어 왔다고 하셨습니다. 골수분자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정도로 절을 섬겨왔으면 지금도 한국 고향의 절에는 자신들의 이름이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엄한 가정에서 자라난 자신이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된 것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은혜 이었다고 하셨습니다. 12 남매를 거느린 어머니가 가문에서 처음 예수를 믿으시므로 형제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불교 가정에 시집 오셔서 예수를 믿기까지 어머님이 겪으셔야 했던 아픔이 어느 정도였음을 장로님의 간증을 통하여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만 장로가 된 것이 아니라 위로 두 분 형님도 장로님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더욱이 신기하고도 자랑스러운 것은 자신의 집안에선 처음으로 외사촌 동생이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한분으로 가정만 아니라 일가친척이 구원에 동참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자신을 날라리 장로라고 공적인 장소에서 말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 교회를 섬겨오는 동안 교회 장로로서 말이나 행동에 조심하면서 실수하지 아니하고 교인의 의무와 행동을 해 왔다고 했습니다. 그것으로 교인의 사명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 정도면 잘 믿어왔다고 자부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감당할 때는 온 마음과 정성으로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정도면 나는 멋있는 장로, 장로다운 장로라고 여겨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잘 믿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의 믿음이 진짜가 아니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되신 겁니다.
자신의 의지나 생각에도 없었던 성령을 체험하게 되셨습니다. 그 날 이후 자신의 믿음이 잘못된 믿음이었음을 깨닫게 되신 겁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세월 동안 교회를 섬기며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하신 겁니다. 그러시면서 날라리 장로님은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외치고 계셨습니다.
지난날의 어리석었던 자신처럼 이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도 나처럼 날라리 교인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름뿐인 교인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형식적인 교인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교회 다닌다고 다 구원 받지 못하며 교회 다닌다고 다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은혜이며 축복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결국은 천국을 상속 받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누구도 예외 없이 거듭나는 믿음,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구원의 주님을 바르게 믿고 증거하는 모두가 되어 달라고 주문하셨습니다.
월드컵의 열기가 시간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축구에 대해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TV로 중계되는 경기를 보면서 이전과 달리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대륙과 나라별로 축구 실력이 비교적 평준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한 팀도 우리나라가 상대할 만만한 팀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금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최초로 상대한 나라는 스웨덴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알라스카를 여행 중이었기에 그 경기를 보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LA 시간으로는 새벽 5시였지만 알라스카 시간으로는 새벽 4시에 경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알라스카는 남한 땅의 15배나 되지만 인구는 백만이 조금 넘습니다.
그 중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앵커리지는 30만 명이 살고 있고 그 중에 한국인은 3천여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LA처럼 장소를 정하고 모여서 함께 응원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5년 째 살고 있는 사위와 딸도 미국에서 태어났고 손 자녀들은 이민 3세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딸 가족이 한국과 스웨덴과의 축구경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스웨덴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서 전 날 밤 온 가족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3시에 어린 손 자녀들이 잠에서 깨어나 TV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큰 손녀는 13살이고 손자는 11살, 둘째 손녀는 9살입니다. 저들은 한국을 아직까지 방문해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저들이 아는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나라라는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3세 손 자녀들이 이처럼 우리나라 선수들에 대하여 가지는 존경심과 경기를 이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마음을 조려야 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두 나라간 객관적인 실력으로 보아서 우리가 이긴다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스웨덴에게 지게 될 경우 어린 손 자녀들이 가질 실망감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처럼 스웨덴은 우리가 상대하기에 버거운 팀인 것을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자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기게 해 달라고 손 자녀들과 함께 기도할 수도 없는 것은 만일 기도했는데도 졌다면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어 속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실수하지 않게 해 주세요!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래서인지 경기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지루하고 길게 느껴졌습니다. 지더라도 크게 지지는 말아야 하는데! 하는 염려 속에서도 우리 선수들의 작은 움직임에 대해서 아이들의 연이은 감탄과 탄식이 번갈아 나오다가 결국 경기는 지고 말았습니다. 한 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아야 했습니다.
아! 하는 아쉬움과 긴 한숨이 이어졌습니다. 비록 경기는 졌지만 이번 경기를 통하여 얻은 것이 있습니다. 나를 기쁘고 행복케 한 것이 있었습니다. 자랑스러운 나의 이민 3세 손 자녀들이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알아주고 응원해 주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가르쳐서 한 일이 아닙니다.
만일 그날 경기에서 우리가 이겼다면 모두는 큰 소리로 환호하며 서로 부둥켜 앉고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이번 월드컵 경기가 아니었으면 알 수 없었던 나의 이민 3세 손 자녀들의 할아버지의 나라, 우리의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확인한 것이야 말로 큰 기쁨이며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2-05 00:27:202020-02-05 00:27:20알라스카에서 손 자녀들과 한국 축구 응원하기
목사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15년 전의 일로 기억이 됩니다.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교회 주일 학교 학생 중 하나가 치료가 되지 않는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을 때에 그 학생을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이 교회 안과 밖에서 있었습니다. 어른 뿐 아니라 주일 학교 어린이 사이에서도 모금 운동이 진행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주일학생 중 하나가 필자에게 다가와 크게 화를 내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강력하게 항의 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지난 주일에 아픈 학생을 위하여 주일 학생들이 모금 할 때에 자신도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그래 좋은 일에 동참한 것 참 잘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위하여 얼마를 했느냐고 했더니 5불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 때문에 화가 났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낸 돈으로 그 아이의 아빠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교회 당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 일로 모금에 동참한 어린이가 격하게 화를 내는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당시 어린 주일학교 학생이 아픈 친구를 위하여 모금에 동참한 5불은 어른이 생각하는 5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큰돈을 아픈 친구를 위해서 바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드린 그 귀한 돈이 목적한 대로 아픈 친구를 위하여 사용이 되지 않고 자신 앞에서 병든 아이 아빠의 담배 연기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서 너무나 화가 났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담배 한 갑의 값이 3-4불정도 했던 모양입니다. 그 순간 자기가 순수한 마음으로 동참한 모금이 후회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정성으로 바친 그 돈이 그렇게 의미 없이 사용이 되는 줄 알았으면 모금에 동참하지 않았을 것처럼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어린이답지 않는 당당함과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분노하는 학생을 향하여 필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변명하지도 못했습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그 학생을 이해시킬 수가 있습니까? 그저 그 아이 앞에서 죄인 된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유구무언이 되었습니다. 이 후 그런 내용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아이 아빠에게도 지금까지도 말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담아두고만 있는 것입니다.
15년 전의 그 어린 학생은 계속되는 학교생활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마약과 술 담배의 유혹으로부터 스스로 자기를 지키며 보호하는 삶을 살아가더니 지금은 29살의 건강한 청년으로 동부의 명문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미 주류사회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지도자로 성장하여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조심하며 나름대로 책임 있는 행동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나 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생각과 판단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생각 없이 행동한 언행이 주변 사람을 화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화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의 충성스런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 사도는 고전 10장 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권면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 늘 감사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연약을 아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허락하시므로 그 능력을 힘입어 매일의 삶을 통하여 자기를 굴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시기 때문에 오늘도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말씀의 푯대를 향하여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420
“여러분! 나는 날라리 장로입니다”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남가주를 26년 만에 기록적으로 뜨겁게 달구던 살인적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7 월의 두 번째 주일이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서 일 년 전 교회를 설립하고 꾸준하고 성장해 오던 H N 교회가 창립 1 주년을 기념하는 감사예배를 주일 오후 4 시에 드리고 있었습니다. 필자는 기념 예배에 초청 받아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축사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창립 1주년을 축하하는 내빈의 시간이었습니다. 두 분이 축사로 단에 서셨습니다. 먼저는 한인 타운에서 존경 받으시는 원로 목사님이 축사를 하셨고 이어서 본 교회를 담임하시는 P 목사님이 자신의 외사촌 형님이라고 소개하면서 멀리서 오신 순서에도 없는 장로님을 단에 불러 세우셨습니다.
단에 서신 장로님은 이런 말로 축사가 아닌 자신의 신앙 간증으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 나는 날라리 장로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념 감사예배에 참석한 50여 분 모두는 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날라리 장로라는 말은 진짜 장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름뿐인 장로라는 말입니다.
가짜 장로라는 고백이었습니다. 누가 자신을 향하여 그렇게 말을 해도 화가 나고 인정할 수 없을 터인데 그날 그 장로님은 강단에서 입을 열자마자 힘주어 그 말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말을 공적인 장소에서 선언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은 이러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교회 강단에 서본 것이 처음이기에 축사를 해 본 일도 없어서 어떻게 덕담의 말을 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가정은 조상 대대로 부처를(절) 유별나게 믿어 왔다고 하셨습니다. 골수분자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정도로 절을 섬겨왔으면 지금도 한국 고향의 절에는 자신들의 이름이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엄한 가정에서 자라난 자신이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된 것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은혜 이었다고 하셨습니다. 12 남매를 거느린 어머니가 가문에서 처음 예수를 믿으시므로 형제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불교 가정에 시집 오셔서 예수를 믿기까지 어머님이 겪으셔야 했던 아픔이 어느 정도였음을 장로님의 간증을 통하여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만 장로가 된 것이 아니라 위로 두 분 형님도 장로님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더욱이 신기하고도 자랑스러운 것은 자신의 집안에선 처음으로 외사촌 동생이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한분으로 가정만 아니라 일가친척이 구원에 동참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자신을 날라리 장로라고 공적인 장소에서 말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 교회를 섬겨오는 동안 교회 장로로서 말이나 행동에 조심하면서 실수하지 아니하고 교인의 의무와 행동을 해 왔다고 했습니다. 그것으로 교인의 사명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 정도면 잘 믿어왔다고 자부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감당할 때는 온 마음과 정성으로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정도면 나는 멋있는 장로, 장로다운 장로라고 여겨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잘 믿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의 믿음이 진짜가 아니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되신 겁니다.
자신의 의지나 생각에도 없었던 성령을 체험하게 되셨습니다. 그 날 이후 자신의 믿음이 잘못된 믿음이었음을 깨닫게 되신 겁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세월 동안 교회를 섬기며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하신 겁니다. 그러시면서 날라리 장로님은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외치고 계셨습니다.
지난날의 어리석었던 자신처럼 이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도 나처럼 날라리 교인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름뿐인 교인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형식적인 교인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교회 다닌다고 다 구원 받지 못하며 교회 다닌다고 다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은혜이며 축복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결국은 천국을 상속 받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누구도 예외 없이 거듭나는 믿음,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구원의 주님을 바르게 믿고 증거하는 모두가 되어 달라고 주문하셨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405
알라스카에서 손 자녀들과 한국 축구 응원하기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월드컵의 열기가 시간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축구에 대해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TV로 중계되는 경기를 보면서 이전과 달리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대륙과 나라별로 축구 실력이 비교적 평준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한 팀도 우리나라가 상대할 만만한 팀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금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최초로 상대한 나라는 스웨덴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알라스카를 여행 중이었기에 그 경기를 보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LA 시간으로는 새벽 5시였지만 알라스카 시간으로는 새벽 4시에 경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알라스카는 남한 땅의 15배나 되지만 인구는 백만이 조금 넘습니다.
그 중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앵커리지는 30만 명이 살고 있고 그 중에 한국인은 3천여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LA처럼 장소를 정하고 모여서 함께 응원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5년 째 살고 있는 사위와 딸도 미국에서 태어났고 손 자녀들은 이민 3세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딸 가족이 한국과 스웨덴과의 축구경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스웨덴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서 전 날 밤 온 가족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3시에 어린 손 자녀들이 잠에서 깨어나 TV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큰 손녀는 13살이고 손자는 11살, 둘째 손녀는 9살입니다. 저들은 한국을 아직까지 방문해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저들이 아는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나라라는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3세 손 자녀들이 이처럼 우리나라 선수들에 대하여 가지는 존경심과 경기를 이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마음을 조려야 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두 나라간 객관적인 실력으로 보아서 우리가 이긴다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스웨덴에게 지게 될 경우 어린 손 자녀들이 가질 실망감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처럼 스웨덴은 우리가 상대하기에 버거운 팀인 것을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자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기게 해 달라고 손 자녀들과 함께 기도할 수도 없는 것은 만일 기도했는데도 졌다면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어 속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실수하지 않게 해 주세요!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래서인지 경기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지루하고 길게 느껴졌습니다. 지더라도 크게 지지는 말아야 하는데! 하는 염려 속에서도 우리 선수들의 작은 움직임에 대해서 아이들의 연이은 감탄과 탄식이 번갈아 나오다가 결국 경기는 지고 말았습니다. 한 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아야 했습니다.
아! 하는 아쉬움과 긴 한숨이 이어졌습니다. 비록 경기는 졌지만 이번 경기를 통하여 얻은 것이 있습니다. 나를 기쁘고 행복케 한 것이 있었습니다. 자랑스러운 나의 이민 3세 손 자녀들이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알아주고 응원해 주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가르쳐서 한 일이 아닙니다.
만일 그날 경기에서 우리가 이겼다면 모두는 큰 소리로 환호하며 서로 부둥켜 앉고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이번 월드컵 경기가 아니었으면 알 수 없었던 나의 이민 3세 손 자녀들의 할아버지의 나라, 우리의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확인한 것이야 말로 큰 기쁨이며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