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의 일 이었습니다. 아무런 염려와 근심이 없어 보이는 노년의 여 집사님이 아들의 집을 방문해 달라고 간곡한 요청을 했습니다. 수년 동안 교회를 출석하셨음에도 그 말을 하시기 전까지는 집사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심방을 긴급하게 요청한 이유는 사랑하는 아들이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집사님의 아들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의 은혜로 서울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1980년대 미국에 유학을 와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많은 사람이 원하는 자랑스러운 박사학위를 받고 이곳에서 군수산업회사의 중역으로 일하면서 돈도 많이 벌어 좋은 집에서 가정을 이루고 성공한 이민 가정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좀 사는가 싶더니 그만 죽을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자동차로 1시간을 달려가 아들의 집을 방문했는데 우리를 조금도 반갑게 맞아주질 않았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로는 어머니와 함께 하지 아니했다면 문전 박대를 당할 그런 분위기 였습니다. 지금까지 오랜 기간 목회를 해 오면서 그런 대접과 심방은 처음이었습니다.
도무지 예배드릴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기도를 하자고 권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집사님의 아들은 마주 앉은 필자를 향하여 묻지도 않은 말을 불편한 마음으로 이렇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나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남들이 편히 쉬고 놀 때 밤을 새우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자리에 까지 올라왔습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지 아니했으면 오늘의 나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예배드리러 가서 성경은 펴보지도 못하고 찬송도 부르지 못하며 기도도 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 분의 심정과 영양가 없는 세상적인 말만 들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대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어려운 문제도 다른 누구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고 했습니다. 나는 나의 문제를 내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럴만한 실력과 자신이 있다면서 예배를 거부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자신 있어 보이던 분은 자신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오래 가지 않아서 결국은 안타깝게도 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죽음과 동시에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학위도 아무런 쓸데가 없어졌습니다. 그가 소중하게 여기던 가정과 자녀 모두가 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이룬 모든 것들이 자신을 지키며 행복케 할 것으로 믿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좋은 세상에서 부족함 없이 천년만년 영원할 것으로 믿었지만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공부도 많이 하고 세상 적으로는 실력이 많은 똑똑한 분이셨지만 그러나 그 분이 알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생명의 주인이 계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죽은 다음에 천국과 지옥중 하나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천국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마다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이 귀한 것은 세상에 나지 아니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다가 아닙니다. 천국에 가기 위한 징검다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는 동안 구원의 주를 만나는 것이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구원을 얻지 못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어리석은 인생이라고 성경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남보다 잘나서 좋은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에게 공부하는 지혜를 주시고, 환경을 주시고 미국에 유학을 허락하신 분이 인생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셨던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알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자기의 노력으로 좋은 병원, 좋은 의사, 좋은 신약을 찾아서 병을 싸워 위기에서 벗어날 것으로 자신했지만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으로는 그 어느 누구도 정해진 자신의 운명을 하루도 연장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1-23 01:06:142020-01-23 01:06:14나는 나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국에서 부족함이 없이 사셨던 L 집사님은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과 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30여 년 전에 이민을 오셨습니다. L 집사님을 처음 뵈올 때는 교회를 알지 못하는 분이셨습니다. 그 분을 처음 만난 것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폐병 환자들을 격리해서 장기간 치료하는 요양 병원이었습니다.
아는 분의 소개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병상을 찾아가 여러 번 기도를 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건강을 회복하고 병원에서 퇴원하고서 교회로 찾아와 인연을 이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 분이 그렇게 큰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첫 심방을 하고나서야 그분의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민을 오기전 재산을 정리하기 위하여 한국에 남아있으면서 부인에게는 먼저 가서 가족들이 편하게 이민 생활을 정착 할 수 있도록 집을 장만하라고 큰 목돈과 함께 부인을 먼저 보냈습니다. 6개월 후 세 자녀들과 함께 큰 꿈을 가지고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마중 나와 있어야 할 부인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아서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는 겁니다. 지금 같으면 공항에 한국인을 흔하게 만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기에 형언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부인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째 연락이 두절되어 부인의 주소로 찾아갔습니다. 너무나 사랑했던 부인이었습니다.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던 부인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세 자녀를 사랑했던 어머니였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순간도 부인이 없는 삶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평생을 함께 행복하게 살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6개월 여 만에 타국에서 처음 만난 부인은 타인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집안에서 나오는 사람은 부인이 아닌 외국인 남자였습니다. 그 남자의 뒤를 따라 부인이 나타났습니다. 부인은 남편을 보자 타인을 대하듯 한 것입니다. 너무나 당황스럽고 눈앞에 전개된 현실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어떤 부부인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결국 부인을 그곳에 두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천병력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수일을 눈물로 지새우고 다시 부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애원을 했던 것입니다. 그간의 사정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의 곁으로 돌아와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길 몇 번 더 하다가 결국은 타협을 하기에 이릅니다. 두 딸은 아버지가 그리고 어린 아들은 부인이 맡기로 한 것입니다. 행복을 찾아서 미국에 왔지만 온 가족이 꿈꾸던 그 행복은 한 순간도 느껴보지 못하고 미국에 도착하면서 산산 조각이 나고 만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마음도 상하고 몸도 상해서 몸이 약해져 폐병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부인만 잃은 것이 아니라 재산도 잃고 돈도 잃고 가정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돈을 먼저 보내지 말 것을, 아니 반만 보낼 것을 하면서 탄식을 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부인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부인이 자신과 아이들을 버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던 부인에게 속은 사실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아픔은 점점 더 커만 갔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됩니다. 두 딸이 집을 비운 사이에 아파트 목욕탕에 들어가 물을 틀어 놓고 욕조에서 면도칼로 왼쪽 손목의 정맥을 세차게 자르고 자살을 시도한 것입니다. 욕조에 물이 흘러넘치면서 피 석인 물이 밖으로 흘러내리자 이를 발견한 사람의 신고로 응급 팀이 도착을 했을 때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정신을 잃고 욕조에 쓸어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폐병 환자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병원에서 기사회생을 하고나서 곧 바로 폐병 환자를 위한 요양병원으로 이송 되었던 것입니다. 그 분은 훗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미국에 속았습니다.
내가 지금 당하는 모든 시련과 고통은 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미국에 가면 사는 날까지 염려와 근심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22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1-23 01:02:112020-01-23 01:02:11어느 집사님의 가슴 아픈 이민 이야기
교회를 출석하지 않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 한 번씩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편지로 500달러를 20년 가까이 교회로 보내옵니다. 편지 안에는 다른 내용은 없고 수표를 흰 백지에 말아서 보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수표에는 보내는 사람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지만 그 분의 수표에는 주소도 없고 전화번호도 없습니다.
다만 그 분의 우편번호만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탄헌금을 받아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화로 전하지 못합니다. 지난 연말에도 편지로 헌금을 받고서 감사의 편지와 함께 새해에는 만나보고도 싶고 전화로 소통하고 싶다고 하면서 통화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지만 답장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서 그 분을 만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 분을 알게 된 것은 그 분의 어머니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입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서 교회를 설립하고 2-3년 지났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60이 넘으신 할머니가 교회를 찾아 오셨습니다.
몇 개월 동안 아무 말 없이 교회를 다니시다가 어느 날 심방을 했을 때 교회를 나오시게 된 동기를 말씀했습니다. 북한이 고향이신 할머니는 6.25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실향민으로 서울에서 사시다가 1970년 초 미국에 유학을 온 아들의 초청으로 이민을 오셨습니다. 교회에 대한 기억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 잠시 다녔던 기억이 전부였습니다.
그 동안 교회를 멀리하며 하나님을 잊은 채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일상적인 꿈은 잠에서 깨어나면 쉽게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그 날의 꿈은 시간이 가도 잊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새롭게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꿈인데도 생시보다 더 분명하고 더 실감 있게 느껴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안내 받아 간 곳은 주님 앞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할머니에게 사랑하는 딸아 그 동안 수고 많았다고 하시면서 할머니 머리에 개털모자를 씌어주셨습니다. 그것을 받는 순간 너무 좋아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았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세상에 사는 동안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자신에게 분에 넘치는 대접과 상을 주신 것에 대하여 너무 기뻤습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자신을 기억해 주시고 초청해 주실 뿐 아니라 손수 머리에 개털모자를 씌워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개털 모자를 받아쓰고 주님의 곁을 떠나 천국의 아름다운 황금 길을 걸어갈 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모자와 같은 모자를 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다 빛나는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모자를 쓰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가 만나는 사람마다 빛나는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자기 머리에 쓴 모자가 자랑스러운 모자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할머니의 머리의 개털모자를 조롱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비난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에는 자랑스러운 면류관들이 씌어져 있는데 본인의 머리에는 개털 모자가 씌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찾아 나오신 겁니다. 그 때부터 시작된 교회 생활은 세상을 떠나시기 까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집사로 직분을 감당하시다가 마지막에는 시무 권사로 10여년을 충성스럽게 섬기셨습니다.
그 분의 아들은 80년 대 초 사업에 크게 성공해서 부자들만 산다는 베벌리힐즈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인 타운에서 듣던 말로는 다섯 손가락안에 들 정도로 그 곳에 성공한 한인이 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 살고 계십니다. 어머니 생전에는 교회를 매주 나왔습니다. 그러나 축도를 하고 강단에서 내려가면 교회를 떠나 만날 수가 없습니다.
당시는 헌금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를 출석하는 것은 오로지 어머니를 뵙기 위한 것으로 생각 되었습니다. 예배 중에는 어머니와 손을 잡고 앉아 있다가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교회를 떠나가는 겁니다. 언젠가 어머니 권사에게 아드님의 집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 집을 보지 못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서 초청을 하는데 그 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십 수 년 전에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 분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어서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C 사장님은 왜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십니까? 한 번도 양복을 입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입은 이 옷 늘 같은 것 입는 것 같지요! 아닙니다. 같은 옷이 10벌이 있어 교대로 매일 바꾸어서 입고 있습니다. 늘 허름한 차림으로 부자가 아닌 소박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변장을 하고 생활하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사업에 크게 성공한 큰 부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1-22 01:27:042020-01-22 01:27:04해마다 이어지는 크리스마스 특별헌금
나는 나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30년 전의 일 이었습니다. 아무런 염려와 근심이 없어 보이는 노년의 여 집사님이 아들의 집을 방문해 달라고 간곡한 요청을 했습니다. 수년 동안 교회를 출석하셨음에도 그 말을 하시기 전까지는 집사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심방을 긴급하게 요청한 이유는 사랑하는 아들이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집사님의 아들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의 은혜로 서울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1980년대 미국에 유학을 와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많은 사람이 원하는 자랑스러운 박사학위를 받고 이곳에서 군수산업회사의 중역으로 일하면서 돈도 많이 벌어 좋은 집에서 가정을 이루고 성공한 이민 가정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좀 사는가 싶더니 그만 죽을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자동차로 1시간을 달려가 아들의 집을 방문했는데 우리를 조금도 반갑게 맞아주질 않았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로는 어머니와 함께 하지 아니했다면 문전 박대를 당할 그런 분위기 였습니다. 지금까지 오랜 기간 목회를 해 오면서 그런 대접과 심방은 처음이었습니다.
도무지 예배드릴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기도를 하자고 권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집사님의 아들은 마주 앉은 필자를 향하여 묻지도 않은 말을 불편한 마음으로 이렇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나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남들이 편히 쉬고 놀 때 밤을 새우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자리에 까지 올라왔습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지 아니했으면 오늘의 나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예배드리러 가서 성경은 펴보지도 못하고 찬송도 부르지 못하며 기도도 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 분의 심정과 영양가 없는 세상적인 말만 들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대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어려운 문제도 다른 누구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고 했습니다. 나는 나의 문제를 내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럴만한 실력과 자신이 있다면서 예배를 거부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자신 있어 보이던 분은 자신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오래 가지 않아서 결국은 안타깝게도 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죽음과 동시에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학위도 아무런 쓸데가 없어졌습니다. 그가 소중하게 여기던 가정과 자녀 모두가 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이룬 모든 것들이 자신을 지키며 행복케 할 것으로 믿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좋은 세상에서 부족함 없이 천년만년 영원할 것으로 믿었지만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공부도 많이 하고 세상 적으로는 실력이 많은 똑똑한 분이셨지만 그러나 그 분이 알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생명의 주인이 계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죽은 다음에 천국과 지옥중 하나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천국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마다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이 귀한 것은 세상에 나지 아니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다가 아닙니다. 천국에 가기 위한 징검다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는 동안 구원의 주를 만나는 것이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구원을 얻지 못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어리석은 인생이라고 성경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남보다 잘나서 좋은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에게 공부하는 지혜를 주시고, 환경을 주시고 미국에 유학을 허락하신 분이 인생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셨던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알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자기의 노력으로 좋은 병원, 좋은 의사, 좋은 신약을 찾아서 병을 싸워 위기에서 벗어날 것으로 자신했지만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으로는 그 어느 누구도 정해진 자신의 운명을 하루도 연장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549
어느 집사님의 가슴 아픈 이민 이야기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한국에서 부족함이 없이 사셨던 L 집사님은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과 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30여 년 전에 이민을 오셨습니다. L 집사님을 처음 뵈올 때는 교회를 알지 못하는 분이셨습니다. 그 분을 처음 만난 것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폐병 환자들을 격리해서 장기간 치료하는 요양 병원이었습니다.
아는 분의 소개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병상을 찾아가 여러 번 기도를 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건강을 회복하고 병원에서 퇴원하고서 교회로 찾아와 인연을 이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 분이 그렇게 큰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첫 심방을 하고나서야 그분의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민을 오기전 재산을 정리하기 위하여 한국에 남아있으면서 부인에게는 먼저 가서 가족들이 편하게 이민 생활을 정착 할 수 있도록 집을 장만하라고 큰 목돈과 함께 부인을 먼저 보냈습니다. 6개월 후 세 자녀들과 함께 큰 꿈을 가지고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마중 나와 있어야 할 부인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아서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는 겁니다. 지금 같으면 공항에 한국인을 흔하게 만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기에 형언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부인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째 연락이 두절되어 부인의 주소로 찾아갔습니다. 너무나 사랑했던 부인이었습니다.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던 부인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세 자녀를 사랑했던 어머니였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순간도 부인이 없는 삶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평생을 함께 행복하게 살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6개월 여 만에 타국에서 처음 만난 부인은 타인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집안에서 나오는 사람은 부인이 아닌 외국인 남자였습니다. 그 남자의 뒤를 따라 부인이 나타났습니다. 부인은 남편을 보자 타인을 대하듯 한 것입니다. 너무나 당황스럽고 눈앞에 전개된 현실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어떤 부부인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결국 부인을 그곳에 두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천병력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수일을 눈물로 지새우고 다시 부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애원을 했던 것입니다. 그간의 사정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의 곁으로 돌아와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길 몇 번 더 하다가 결국은 타협을 하기에 이릅니다. 두 딸은 아버지가 그리고 어린 아들은 부인이 맡기로 한 것입니다. 행복을 찾아서 미국에 왔지만 온 가족이 꿈꾸던 그 행복은 한 순간도 느껴보지 못하고 미국에 도착하면서 산산 조각이 나고 만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마음도 상하고 몸도 상해서 몸이 약해져 폐병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부인만 잃은 것이 아니라 재산도 잃고 돈도 잃고 가정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돈을 먼저 보내지 말 것을, 아니 반만 보낼 것을 하면서 탄식을 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부인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부인이 자신과 아이들을 버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던 부인에게 속은 사실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아픔은 점점 더 커만 갔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됩니다. 두 딸이 집을 비운 사이에 아파트 목욕탕에 들어가 물을 틀어 놓고 욕조에서 면도칼로 왼쪽 손목의 정맥을 세차게 자르고 자살을 시도한 것입니다. 욕조에 물이 흘러넘치면서 피 석인 물이 밖으로 흘러내리자 이를 발견한 사람의 신고로 응급 팀이 도착을 했을 때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정신을 잃고 욕조에 쓸어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폐병 환자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병원에서 기사회생을 하고나서 곧 바로 폐병 환자를 위한 요양병원으로 이송 되었던 것입니다. 그 분은 훗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미국에 속았습니다.
내가 지금 당하는 모든 시련과 고통은 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미국에 가면 사는 날까지 염려와 근심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22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505
해마다 이어지는 크리스마스 특별헌금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교회를 출석하지 않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 한 번씩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편지로 500달러를 20년 가까이 교회로 보내옵니다. 편지 안에는 다른 내용은 없고 수표를 흰 백지에 말아서 보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수표에는 보내는 사람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지만 그 분의 수표에는 주소도 없고 전화번호도 없습니다.
다만 그 분의 우편번호만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탄헌금을 받아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화로 전하지 못합니다. 지난 연말에도 편지로 헌금을 받고서 감사의 편지와 함께 새해에는 만나보고도 싶고 전화로 소통하고 싶다고 하면서 통화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지만 답장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서 그 분을 만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 분을 알게 된 것은 그 분의 어머니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입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서 교회를 설립하고 2-3년 지났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60이 넘으신 할머니가 교회를 찾아 오셨습니다.
몇 개월 동안 아무 말 없이 교회를 다니시다가 어느 날 심방을 했을 때 교회를 나오시게 된 동기를 말씀했습니다. 북한이 고향이신 할머니는 6.25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실향민으로 서울에서 사시다가 1970년 초 미국에 유학을 온 아들의 초청으로 이민을 오셨습니다. 교회에 대한 기억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 잠시 다녔던 기억이 전부였습니다.
그 동안 교회를 멀리하며 하나님을 잊은 채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일상적인 꿈은 잠에서 깨어나면 쉽게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그 날의 꿈은 시간이 가도 잊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새롭게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꿈인데도 생시보다 더 분명하고 더 실감 있게 느껴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안내 받아 간 곳은 주님 앞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할머니에게 사랑하는 딸아 그 동안 수고 많았다고 하시면서 할머니 머리에 개털모자를 씌어주셨습니다. 그것을 받는 순간 너무 좋아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았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세상에 사는 동안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자신에게 분에 넘치는 대접과 상을 주신 것에 대하여 너무 기뻤습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자신을 기억해 주시고 초청해 주실 뿐 아니라 손수 머리에 개털모자를 씌워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개털 모자를 받아쓰고 주님의 곁을 떠나 천국의 아름다운 황금 길을 걸어갈 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모자와 같은 모자를 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다 빛나는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모자를 쓰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가 만나는 사람마다 빛나는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자기 머리에 쓴 모자가 자랑스러운 모자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할머니의 머리의 개털모자를 조롱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비난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에는 자랑스러운 면류관들이 씌어져 있는데 본인의 머리에는 개털 모자가 씌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찾아 나오신 겁니다. 그 때부터 시작된 교회 생활은 세상을 떠나시기 까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집사로 직분을 감당하시다가 마지막에는 시무 권사로 10여년을 충성스럽게 섬기셨습니다.
그 분의 아들은 80년 대 초 사업에 크게 성공해서 부자들만 산다는 베벌리힐즈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인 타운에서 듣던 말로는 다섯 손가락안에 들 정도로 그 곳에 성공한 한인이 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 살고 계십니다. 어머니 생전에는 교회를 매주 나왔습니다. 그러나 축도를 하고 강단에서 내려가면 교회를 떠나 만날 수가 없습니다.
당시는 헌금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를 출석하는 것은 오로지 어머니를 뵙기 위한 것으로 생각 되었습니다. 예배 중에는 어머니와 손을 잡고 앉아 있다가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교회를 떠나가는 겁니다. 언젠가 어머니 권사에게 아드님의 집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 집을 보지 못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서 초청을 하는데 그 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십 수 년 전에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 분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어서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C 사장님은 왜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십니까? 한 번도 양복을 입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입은 이 옷 늘 같은 것 입는 것 같지요! 아닙니다. 같은 옷이 10벌이 있어 교대로 매일 바꾸어서 입고 있습니다. 늘 허름한 차림으로 부자가 아닌 소박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변장을 하고 생활하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사업에 크게 성공한 큰 부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