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눈물로 고백 받은 집사님이 지은 죄!

지금으로 20여 년 전에 장성한 두 아들과 두 딸을 둔 가정의 가장이었던 K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한 동안 필자가 섬기는 교회를 잘 섬기시다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교회로 옮겨 가신 후 일 년에 한 두 번씩 전화로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로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로 안부를 물을 때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가 부러져 몇 달 동안 문밖출입을 하지 못하고 침대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곧 바로 자동차로 한 시간을 달려 집사님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부인 집사님이 2층 남편이 계신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병원 침대에 오른 쪽 다리를 공중에 매어 단채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K 집사님은 부인에게 부탁 했습니다. 내가 목사님하고 조용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문을 닫고 아래층에 내려가 있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집사님은 필자의 손을 부여잡고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주님이 정말로 나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면서 눈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집사님 부부는 오랫동안 수입이 좋은 가게를 운영하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으셨습니다. 좋은 지역에 좋은 집을 사시어 여섯 식구가 남부럽지 않은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4명의 자녀들이 이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세 자녀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을 때 였습니다. 무슨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부부가 심각한 싸움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2년 동안 한 집에 살면서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사셨다고 했습니다. 남이 볼 때는 행복한 가정이었지만 당사자인 부부는 지옥 같은 삶을 사신 겁니다.

각방을 쓰는 것은 물론이요 함께 식탁에 앉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K 집사님에게 대화의 상대자가 생겼습니다. 말이 대화의 상대이지 여자가 생긴 것입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지금의 아내와는 더 이상 가정을 이루며 살 수 없다고 판단을 하고서 새로운 삶을 새 여인과 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부인에게는 아무런 통보도 상의도 하지 아니하고 새 여인과 타주로 출발하여 새 가정을 만들려고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타고 갈 자동차의 오일체인지를 평소와 같이 집에서 하였던 것입니다. 집사님의 집에는 자녀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까지 여러 대가 있지만 매번 오일체인지는 정비소에서 하지 않고 집 마당에서 해왔습니다.

미국에 사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늘 해오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날 이른 아침에 평소처럼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 오일을 교환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일을 마치면 오전 11시에 약속한 장소에서 여인을 만나 네바다 주로 출발하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고가 났습니다.

자신의 자동차가 뒤로 굴러 그 밑에 있던 집사님의 오른쪽 허벅지 다리를 넘어간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오른쪽 허벅지 다리뼈가 부러진 것입니다. 사고로 지난 6개월 동안 죽게 고생을 하는 동안 크게 깨달았습니다. 부인과 가정을 버리고 도망가서 새사람과 행복한 삶을 계획한 것이 큰 죄인 것을 안 것이었습니다.

부인과 자녀들에게 죄가 될 뿐 아니라 믿음의 사람으로서 교회와 하나님께 큰 죄가 되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나의 범죄 계획을 하나님이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다리를 부러뜨리지 아니하시면 죄악의 구렁텅이로 내려갈 것이기에 불쌍히 여기시고 자신의 다리를 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까지 자신을 사랑하시는 줄 몰랐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에 이민 와서 산 것이 나의 노력과 열심히 살았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고백을 하는 동안 집사님은 뜨거운 눈물을 반복해서 흘리시면서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이런 내용은 목사님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내도 모르고 자녀도 모르고 주변 어느 누구도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서 용서를 구한 것입니다. 집사님의 진실한 회개의 고백을 듣고서 우리는 함께 기도 했습니다. 집사님을 그토록 사랑해주신 주님의 은혜와 멸망의 직전에서 구원을 허락하심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 남편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성심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섬기시던 교회에서 장로가 되셨고 부인은 권사님이 되셨습니다. 지금은 먼 곳으로 농장을 사서 이사 가시어 무너진 가정을 회복하고 충실한 믿음의 종으로서 아름다운 노후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계신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431

목사님은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2 년 전 어느 주일에 낮 예배를 마치고 2 층 친교실에서 점심 식사가 끝나갈 즈음에 권사님 몇 분이서 둘러 앉아 심각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 대화의 내용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얼굴 표정으로 보아서 매우 심각한 내용의 말이 오고 간 것으로 짐작이 되었습니다.

무슨 내용이기에 둘러앉은 권사님들의 얼굴이 그토록 심각하였을까를 생각하면서 오후 예배를 준비하기 위하여 아래층 예배실을 향하여 계단을 내려오는데 뒤이어 권사님 중에는 나이가 가장 젊은 권사님이 뒤따라 내려오더니 필자를 향하여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것이 무엇인 줄 아세요”

갑작스런 질문을 받고서 잠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목회 경험으로 보아서 돌발적인 질문에는 반듯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권사님의 삶이 힘들어 보이더니 필자가 알지 못하는 어려운 일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묻는 질문에 곧 바로 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만일 질문하신 권사님이 원하는 답을 드리지 못했다가는 권사님이 힘들어 하는 상처를 더 아프게 건드릴 수 도 있고 더 힘들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묻는 말에 즉시 대답하지 못하고 도리어 권사님을 향하여 그게 뭔데요 하면서 질문하신 권사님이 스스로 말씀하기를 유도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서럽고 힘든 것은 그 어떤 아픔보다도 과부의 서러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날 그 자리에서 권사님들이 주고받은 대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짐작이 되었습니다.

어느 권사님은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탄식하는 말을 하신 것이고 다른 권사님은 자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그 문제로 아픔을 호소하신 것이며 다른 권사님은 고부간의 갈등으로 한탄하신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K 권사님은 30여 년 전 젊은 나이에 교회에 출석하시어 지금까지 변함없이 섬기고 계십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남편이 오랜 병상에서 투병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남편 생전에는 생업을 위해서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남편의 직업이 비교적 좋은 보수를 받는 직장이었기에 부인은 일을 하지 않고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주부로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며 부족함이 없이 사셨습니다.

그러다가 건강하던 남편이 뜻하지 않은 폐암 선고를 받고 이어지는 수년간의 병원과 가정에서의 길고 지루한 투병 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권사님의 기억에서 지금 과부로서 힘들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병든 남편이 곁에 있을 때가 더 좋았던 때인 것을 알기 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가진 문제가 가장 크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며 호소 하셨지만 K 권사님이 연로하신 권사님들의 하소연을 들을 때에 그런 문제는 자신에게 비하면 그렇게 심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지난 십여 년 동안 남편 없이 철없는 딸을 부양하며 젊은 과부로 힘겹게 살아온 것을 연로하신 권사님들에게 하소연 한들 누가 알아주겠으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필자에게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K 권사님에게 그 말을 듣기 전 까지는 이 땅에서 과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우리가 미처 알 수 없는, 아니 알지 못하는 어려운 삶인 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혼자만의 몸도 아니고 다른 두 명의 가족을 돌보며 사셔야만 하는 권사님의 고단한 삶을 생각하면서 정말로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계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K 권사님을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도 얼마나 피곤하게 사셨을까? 몸도 아프고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하나 뿐인 딸과 외손자의 양육을 책임지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 식구의 생계를 위해서 오늘도 두 일터를 오가며 열심히 일하시는 권사님을 존경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권사님의 가정에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411

“목사님은 나의 엄마를 아시나요?”

얼마 전 고 최순일 박사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장례식 전에 고인의 아들과 두 번의 만남을 가졌었습니다. 어려서 본 후 20여 년 만에 처음 만난 것입니다. 장례 절차를 의논하던 중 고인의 외아들인 33살의 Alex가 갑자기 뜻밖의 질문을 필자에게 이렇게 했습니다. “목사님은 나의 엄마를 아시나요?”

고인을 필자가 처음 만났을 때 부인의 존재는 없었습니다. 교회에 올 때도 항상 아버지와 아들만 왔었던 것입니다. 이혼을 했는지 사별을 했는지 궁금했지만 본인들이 말하지 않는 가정 사에 대해서 아무리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라도 부인의 존재와 아이 엄마에 대해선 물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엄마의 존재를 묻는 아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지구상에 홀로 남아 있다는 생각과 오랫동안 엄마를 그리워하며 살아온 지나온 삶이 아픔으로 그를 더 슬프게 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어머니의 존재를 몰라도 이 목사는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엄한 아버지의 불같은 성격 때문에 감히 엄마의 존재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같은 질문을 아들에게 했습니다. 너는 너의 엄마에 대해서 얼마나 기억을 하고 있느냐고 했더니 자신도 엄마에 대해서 아무런 기억이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헤어져서 엄마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수일 후 장례식 날 예식을 마치고 조객들과 고인과의 작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유가족이 외아들 혼자여서 너무 쓸쓸해 보여 순서를 맡았던 목사님들이 아들 옆에 나란히 서서 조객들과 인사를 하고 있을 때 한 나이 드신 여자 분이 Alex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내가 너희 엄마 친구다. 네가 태어날 때 내가 거기 있었다”라면서 울음을 보였습니다.

그 말을 바로 곁에서 듣던 나는 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즉시 그 분을 옆으로 모시고 엄마의 존재를 물었습니다. Alex 엄마가 살아 있습니까?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너무 뜻밖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엄마를 만나게 해주어야겠습니다. 그러자 친구 분이 차분하게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Alex 엄마가 만나려 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천륜인 엄마와 아들이 왜 만나지 못합니까? 그러면서 나의 명함을 주면서 제게 전화를 꼭 해 달라고 부탁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엄마의 친구 분의 남편 되시는 분이 필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Alex 엄마의 이름과 성씨 그리고 일하는 직장의 회사와 전화번호를 알려준 것입니다. 본인들이 Alex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것보다는 목사인 내가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곧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고인의 사망 소식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네 엄마 친구’라는 말을 듣고서 Alex가 크게 흐느껴 울었던 내용을 전하면서 아들과 만나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와 아들이 만나는데 무슨 준비가 필요합니까? 이산가족도 만나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들의 소식을 전해주면 기뻐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순간 Alex 엄마도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평생 힘들게 살아 오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들의 근황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했습니까? 직업은 무엇입니까? 사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러면서도 아들의 전화번호를 달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속히 만나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했더니 마음이 정리가 되면 필자에게 전화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둘은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아직은 Alex에게 엄마의 존재를 이야기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어떤 사정이 있기에 그런 것인지!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언제쯤이나 마음을 정리하고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인지? 그럴 날이 오기는 할 것인지?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가 살아서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뻐할 터인데 하는 생각에 오늘도 전화를 기다렸지만 벨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