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왜 안식교가 이단인가요?

얼마 전 30 여 년 동안 지척의 거리에서 알고 지내던 분이 전화로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평소에는 필자에게 직접 전화를 건 예가 없었습니다. 상담의 내용은 왜 안식교가 이단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식교가 이단인 이유에 대해서 간단하게 두 가지를 설명했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받는 것인데 안식교에선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면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는 행위 믿음 때문이며, 두 번째는 성경의 일부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안식교는 지옥을 부정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옥을 만드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옥에 대해서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바르게 믿고 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도 지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왜 갑자기 안식교에 대해서 질문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질문이라면 본인이 나가는 교회 목사님께 질문해야지 왜 필자에게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전화로 하는 말이 “목사님! 그러면 쪽 팔리잖아요!”

이단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을 본 교회 목사님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말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안식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중 한 분이 안식교 교인인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성실하고 이웃을 배려하며 정직하게 사시는 분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민 생활 30여 년 동안 LA 한인 타운의 이름 있는 큰 교회를 섬겨오면서 그 동안 너무나 많은 교인들로 인해 상처를 받아왔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보수를 받는 정식 직원으로 일하면서 교회 분쟁의 현장을 수도 없이 목격하면서 이 편도 저편도 들 수 없는 형편에서 평소 가깝게 친분을 나누던 교우들이 양편으로 갈리어 서로를 경멸하고 원수시하는 상황에서 이편도 저편도 들 수 없었던 자신을 향하여 비판과 비난이 쏟아질 때는 너무나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큰 건물과 교인 수를 자랑하던 교회 안에서 그가 존경할만한 믿음의 사람을 만나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직장 동료가 속해 있는 안식교회로 교회를 옮겨볼까 하는 생각에서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필자는 기가 막혔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건만 교회 안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면 과연 이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요?

물론 본인 자신이 이웃을 섬기고 헌신적으로 사랑했다면 이런 대접은 받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이 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교인 속에서 진정한 성도의 코이노니아를 느끼지 못했다면 그 분 주위에 먼저 믿은 사람과 직분 자들에게도 잘못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용서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가족에게는 물론이요 가까운 이웃과 교인 사이에서도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가짜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교회 안에 없기 때문에 안식교로 가겠다는 이 말은 오늘의 모든 교회를 향하여 외치는 경종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왜 교회가 이렇게 사랑이 식어져 가고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섬기는 자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지 말고 대접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 그 분에게 필자는 이런 권면을 했습니다.

집사님! 사람보고 따라가지 마세요! 직장 동료가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성품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출석하는 안식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곳도 사람이 모이는 곳입니다. 거기에 가도 집사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시험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안식교에 가서는 아니 되는 중요한 이유는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다른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행 4 : 11-12절에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1735

암수술을 기다리는 J엄마에게

얼마 전 우리 중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성실하며 매사에 본을 보이셨고 또 간호사로 열심히 사셨던 J 어머니가 자가 진단을 통하여 몸에 나타난 것 때문에 의사를 찾아가 조직 검사를 하고나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통하여 남편으로부터 듣고서 우리 내외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특히 집 사람은 누구보다도 “j”엄마를 친 자매 이상으로 아끼고 사랑하기에 그 소식을 듣자마자 목 놓아 눈물로 통곡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뜻밖의 일을 당하고서 매 순간마다 얼마나 힘들고 고독하셨습니까? 수술을 앞두고 왜 두렵지 않으시겠습니까? 남에게만 있는 일인줄 알았는데 자신에게 나타난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받으신 충격이 어떠했음을 짐작케 합니다.

집 사람이 유방암 수술을 받은 지 15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참으로 긴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한 때는 보이지 아니하는 절망의 어두운 터널에 빠져든 것 같은 착각을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만 지금의 우리 내외는 고난을 통하여 주신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힘든 환란을 당해야합니까? 잘 못 산 것은 아닙니까? 부름 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은것은 아닌가요? 때로는 원망과 낙심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 주시는 환란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 15년 여 동안 고난의 와중에서도 이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자녀들에게 넘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병마와 싸워 지치지 않도록 위기를 당할 때마다 감동할 수 있는 은혜와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 가정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J”엄마의 가정에도 역사하실 것을 믿습니다.

집 사람의 투병 과정을 지켜오면서 몇 가지 정리되는 것이 있어서 참고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드립니다. 암은 알려진 대로 쉬운 병이 아닙니다. 혼자서 싸울 수 있는 병이 아닙니다. 가족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서 싸워야하는 병입니다. 이를 통하여 가정의 소중함을 배우게 됩니다.

암은 단 기간에 치료되지 않습니다. 오랜 인내와 투병이 필요합니다. 절대로 초조해 하거나 조급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랜 기간 동안 병원을수도 없이 드나들면서 암 투병을 통하여 발견한 것은 건강한 삶이 복이 되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다가오는 죽음도 저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통로(문)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믿어지기까지 아내는 죽음의 공포로 많은 날 동안 신음하며 두려움으로 밤을 새워야했습니다만 지금은 그 날을 사모하며 믿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J”어머니의 병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우리 내외는 기도하기를 쉬지 않고 있습니다. 오가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분명하게 믿기로는 지금 당하시는 아픔과 고난의 상처가 큰 것처럼 환란을 통하여 하나님께 받을 위로와 축복도 크다는 사실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아모스 5 장 4절로 8 절의 말씀을 드립니다.

병상에서 이 말씀을 암송하시므로 매일 매 순간마다 정금 같은 믿음으로 병과 싸워 승리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라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령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시어 받은 은혜와 축복을 크게 감사하시는 종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1676

목회자 마음에 살아있는 성도

세월이 갈수록 기억이 새로워지는 집사님 가정이 있습니다. 교회를 설립하고 두 해가 지났을 때 P가정 집사님 가정을 만났습니다. 그로부터 30여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남편은 직장을 다니고 계셨고 부인 집사님은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부인 집사님이 교회에 내신 십일조 헌금은 교회 전체 헌금의 1/3을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년 동안 무명으로 헌금을 바쳤기에 남편은 부인이 십일조를 바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부인 집사님이 심각한 얼굴로 저에게 상담을 요청한 것입니다. 교회에 바치는 헌금 문제로 남편과 심각한 싸움을 했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중단하지 않으면 교회 출석을 금하겠다는 말했다고 합니다. 이럴 줄 알고 그동안 남편에겐 비밀로 해왔었지만,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 문제 만큼은 양보할 수 없기에 지혜롭게 위기를 대처하기 위해 상담 요청을 해온 것입니다.

당시 집사님의 표정으로는 제가 집사님 남편에게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의 의무와 축복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권면해주길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십일조는 성도의 당연한 의무이기에 어떤 유혹과 시험이 있더라도 중단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이런 상담은 처음 당해본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습니다. 순간 묵상으로 주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이런 때에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교회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십일조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권면을 해야 할 형편이었기 때문에 고민은 더욱 깊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권면을 드렸습니다. “집사님 우선 남편의 뜻을 따르십시오, 모든 경제권을 이양하시고 남편을 위해, 가정의 일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세요” 그 다음주부터 그 집사님 가정에서 바쳐지는 십일조는 중단되었습니다. 그것뿐 아니라 몇 개월이 지난 후 그 집사님 가정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실패한 상담 때문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에 대한 기억은 그것뿐이 아니었습니다. 어느날 예배를 마치고 나서 2천달러가 든 봉투를 주셨습니다. 그것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오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지순례가 보편화되어서 많은 분들이 다녀오지만, 30년전만 해도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본인도 가보지 못한 것을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다녀와야 자신들도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돈은 지난 6개월간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손님들에게 받은 팁을 모은 것이었습니다. 뜻밖에 귀한 선물을 받고서, 교회에 광고를 하고 그 돈은 성지순례 헌금으로 교회에 적립했다가, 이후로 17년이 지나 교회설립 20주년을 기념하여 그 집사님 뜻대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집사님 부부가 교회를 떠나시고, 십수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교회가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있었는데, 그때 큰 용기를 내어 그 집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그 집사님은 교회가 필요한 돈을 선뜻 허락해주셨고, 오히려 잊지않고 연락주어서 감사하다는 말까지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분 가정이 기억에 크게 남습니다. 목회자의 마음에 기억이 되는 집사님 가정을, 우리 주님도 기억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1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