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간음죄를 고백한 어느 목사님을 생각하며

뉴욕 한인교회 이 목사님의 지은 죄에 대한 고백이 있은 지 10여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 목사님의 사건이 멀어지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파장이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과연 이 목사님의 지은 죄에 대한 공개적인 고백이 용기 있는 아름다운 신앙 행위였을까를 지난 수일 동안 생각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수많은 성도들과 교회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계속해서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목사님의 고백은 사탄이 계획하고 바라던 바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목사님의 죄의 내용이 처음 뉴스를 통하여 대하던 것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크게 드러나 단순한 실수가 아닌 상습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과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교회 앞에서 공개적인 고백을 하기보다는 섬기시던 교회 당회에 이미 고백을 했고, 그 결과 교회를 조용하게 사임하기로 결의한 대로 이를 준행하면서 일을 마무리 하셨다면 지금처럼 주님의 나라가 크게 상처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마 10장10절의 말씀으로 권면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시시각각 우리를 공격하는 죄와 싸워 이기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일시적으로 넘어졌다 할지라도 주님은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한 때에 우리의 지은 죄 때문에 사단에게 유익을 주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뱀처럼 지혜롭게 처신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 모두의 몫이 되는 것입니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10076

“아빠, 하나님이 꿈을 이뤄 주셨어요”

워싱턴 D.C.를 방문하고 있는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나님이 나의 꿈을 이루어 주셨어요.” 이제까지 그렇게 흥분된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또 아빠,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지난 3월10일에는 UCLA로부터 아들은 입학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삼일뒤인 어제는 Geogetown University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은 것이다. 이 대학이 어느 정도로 입학이 어려운 학교인지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멀리 있는 학교를 가는 것보다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내 생각을 말했다.

“아빠, 우리 학교에서 이제까지 G.U.에 입학 허락을 받은 것은 개교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에요”라고 아들은 말했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밸리에 있는 매그넷(Magnets) 스쿨이다. 아들의 전화를 받고 나서 초등학교 졸업식 때 교장 선생님이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났다. 교장 선생님은 우리 내외에게 말하기를“데이빗은 앞으로 좋은 대학에 가게 될 것입니다.” 좋은 중∙고등학교를 가게 된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좋은 대학을 가게될 것이란 말에 고맙다고 답례는 했지만, 그저 지나는 인사 정도로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졸업식장의 교장 선생님 말씀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전문가의 안목이 얼마나 사려 깊고 정확했던가를 생각해본다. 오늘 영광의 기쁨이 있기까지 지도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뜨거운 감사를 보낸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가게 되었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나의 꿈을 이루어주셨다는 아들의 신앙간증이 목회자인 나의 마음을 더욱 기쁘게 한다. 아들은 3일 동안 계속 전화를 하면서“아빠, 아직도 나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말하고 있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7593

바나바 같은 장로님과 함께한 25년

이제 10여일 후면 평강교회 설립 25주년을 기념하게 된다. 29살이 되던 1980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미주서부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당시만해도 로스앤젤레스에는 한인교회가 지금처럼 많지않아 청빙하는 교회도 없었다.

가야할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에 K 장로님으로부터 교회설립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그제의에 쉽게 동의하지 못한 것은 교회를 설립하면 매 주마다 정기적으로 4-5편의 설교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당시 실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수 없을 것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님의제의를 거절치 못한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필자는 서류 미필자로 7년여 동안 불법체류 중이었다.

12월 31일 밤에 교회명칭을 정하고 첫예배는 1981년 1월 4일 주일부터 드리기로 했으나 처소가 준비되지 못해 우선 다저스 야구장이 있는 엘리시안 공원에서 2달간 야외예배를 드리고 그 후 흑인 침례교회를 빌려 오후 1시반에 예배드리게 되었다.

교회개척 1년 만에 장로님의 안내로 교회를 통해 4가족이 영주권을 받게되었고 변호사 비용까지도 장로님이 담당해 주셨다. 그러던 중 설립 5년만에 큰 위기를 경험하게 되었다. 90여만 달러의 교회당 구입을 위해 건축 헌금을 하기에 이르자 믿었던 교인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남은 교인보다 떠난 교인이 더 많았다. 미국교회에 사정을 말하고 계약을 파기해야 했다. 정말로 낙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평강교회가 문을 닫았다고 하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어디론가 피하고 싶었고, 도망가고도 싶었다. 이런 나에게 K장로님은 다시 일어날 용기와 힘을 주셨다. “목사님! 우리 다시 개척하는 겁니다” 그때 그 한 마디가 아니면 오늘의 나와 평강교회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난 25년 세월은 빠르게 지나갔다.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부모와 자식간에도 오랜 시간 보내다 보면 얼굴 붉혀야 할때가 있는 것인데 장로님은 지금껏 단 한번도 내게 얼굴붉히신 적이 없다. 돌이켜 보건대 지금껏 교회를 섬겨오면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수가 있었음을 고백하지않을 수 없다. 그런 나를 지금의 자리까지 서게한 것은 장로님의 희생과 사랑의 결과인 것이다.

장로님은 섬김의 도를 내게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셨다. 교회설립 25주년을 기념해 당회가 K 장로님께 장기근속기념패를 드리고자 했으나 조용히 사양하셨다. 지난 25년간 모든 공식예배 즉 주일새벽기도회와 주일낮예배와 오후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등에 100% 출석하셨다.

몸이 아파 일어서지 못할때에도 죽을 힘을 다해 예배에 참석하셨다. 언젠가는 새벽기도회에 늦게 일어나, 교우들이 돌아가는데 도착하신 장로님 부부는 닫힌 교회문을 열고 들어 가시는 것이었다. 장로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위로하셨고, 방패가 되어 주셨으며 한번도‘아니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못했다. 주의 일에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획하셨다.

혹자는 교회부흥은 목회자의 능력에 따라서라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목회자의 실력과 자질이 충만해도 좋은 장로님을 만나지 못하면 날개 잃은 독수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교회부흥은 목회자의 자질 못지않게 좋은 장로님과의 만남에 달려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이민목회 25년간 한 길로만 달려 올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축복이지만 바나바 같은 믿음의 장로님이 곁에 계셨기 때문이다. K 장로님은 이제 80을 행해 달려가고 계시다. 바라기는 오래도록 건강하시어 지금처럼 평강교회의 힘있는 울타리가 되어 주시길 기도하는 것이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7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