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며 활발하게 활동하시므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셨던 어느 음악 목사님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환송예배를 드린다는 내용의 부고를 일간신문의 광고 지면에 크게 부고된 것을 읽고서 마음에 걸리는 내용이 있어서 며칠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신문에 부고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종 000 음악 목사이시며 저희들의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버지께서 2021년 5 월 21일 향년 76세 일기로 천국으로 이민 가셨기에 천국 환송식 예배를 드립니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부고를 보아왔지만 이런 내용의 부고는 처음 보았습니다.
필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부고의 내용 중 천국으로 이민을 가셨다고 하는 표현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국을 떠나 이민자로 이 땅에 살고 있기에 이민이라는 단어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민이라는 단어의 뜻은 정든 고향을 자의적 의사로 멀리 떠나 나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필자도 이민자로 고국을 떠나 이 땅에서 산지도 반세기가 되어 이곳에서 태어난 큰 딸이 40 중반이 되었고 두 딸을 통하여 태어난 이민 3세들 중에는 벌써 1년여 앞으로 다가온 대학입학을 준비해야 하는 손녀들이 둘이나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이지만 이민은 천국처럼 늘 위로와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민자로 낮선 타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고향에서 경험하지 못한 피 눈물을 흘려야 할 때도 있으며 고국에서의 삶보다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언어적인 문제, 문화적인 충격, 인종간의 갈등도 격어야 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명절이면 고향에서 가족들이 모이던 만남의 행복도 잃었습니다.
보고 싶은 친구, 일가친척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 그리움에 지칠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 중에는 이민의 삶의 뿌리를 안정되게 정착하지 못해 자녀들이 탈선하므로 원하던 이민의 꿈을 잃어버린 분들도 있는가하면 행복하던 가정이 파산 당한 가정도 있습니다. 차라리 이민을 오지 않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탄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민으로 성공하고 꿈을 이룬 가정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은 구원은 세상에서 천국으로 이민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남의 나라가 아닙니다. 천국의 주인은 바로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우리의 본향입니다. 고향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 34절에서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하라” 우리가 세상을 떠나서 가는 곳은 아버지의 나라, 천국입니다. 그 나라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들어갈 때에 이민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상속자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이 내가 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예수님은 계 21장 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지나 갔음이니라”
이민자에게는 눈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망도 있습니다. 아픔도 만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선 영원토록 그런 일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그 나라에서 왕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5절에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천국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까? 왕의 일을 합니다. 얼마동안 왕 노릇을 합니까? 백년이 아닙니다. 천년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왕으로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로 말미암은 구원의 부르심은 이민자로 부르심 받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끝이 보이지 아니할 것 같았던 Covid-19 때문에 지난 15개월 동안 우리는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리 중에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큰 슬픔을 당한 가정이 있는가하면 사업체가 파산 당하여 온 가족이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분들도 계시며 팬데믹 기간 동안 직장을 잃은 분들도 있습니다.
필자의 주변에도 가까운 가족과 이웃들이 어려움 당하지 아니한 분들이 없을 정도로 누구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이 제재와 강한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했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만날 수 없었으며,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수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이 임종하는 때에도 병실 방문이 가족도 허락이 되지 않았었습니다. 필자도 지난 일 년 전에 병원에 11일 동안 수술을 받고 입원을 해 있을 때에 그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을 홀로 힘들게 보내야만 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분은 부모님의 장례식에도 오가는 하늘 길이 막혀 참석치 못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늘 생각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과학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이며 더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은 지구에서 가장 의학적 수준이 높은 국가이기에 이번 사태를 능히 극복하리라 믿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로인하여 우리는 더 큰 충격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 미국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지난 6월 15일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우리 모두를 큰 혼돈과 환란의 깊은 어둠의 공포에서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 자유와 강한 통제를 풀어 코로나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게 한 것입니다.
아!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이었습니까? 그렇게 긴 시간을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놀랍고도 반가운 기다림의 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가 팬데믹 기간 매일의 삶 속에서 불편하고 힘들어 했던 것은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잠간은 쓸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팬데믹이 우리를 힘들게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배운 것이 많습니다. 자유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임을 알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요 8장 31-32절에서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허락하시는 자유는 일시적인 자유가 아닙니다. 세상에서만이 아니라 영원한 자유입니다. 우리의 삶이 통제와 갇힘에서 놓임 받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가고 먹고 싶은 것 원하는 대로 먹고 보고 싶은 사람 만나는 것이 축복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봉쇄령에서 해방을 받은 다음 날 점심은 필자가 35년 째 다니는 단골 식당을 방문했습니다. 15개월 만에 다시 찾은 것입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어려운 시험에서 살아남은 것을 서로 격려하며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다음 날 동창회에서 7월에 모임 장소와 일자를 통보 받았습니다.
점심때만 되면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을까를 염려해야 했었는데 이제는 아무 곳이나 원하는 곳을 방문해서 허기진 배를 채룰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6월 15일, 이 날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오래도록 기억이 될 역사적인 감격의 날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자유와 행복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1-06-21 13:38:022021-06-21 13:38:02목양칼럼 # 247 우리 시대 오래도록 기억될 6월 15일!
수일 전 한국에 사는 여 동생에게서 급하게 온 전화 내용의 일부입니다. 누구보다도 건강하여 건강에 늘 자신 만만하던 막내 여동생의 남편이 어려운 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것도 남은 생명이 한두 달 이라는 서울의 대학병원 간 전문의사의 말에 환자 본인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큰 충격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필자에게는 4남 5녀의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나는 7번째이고 밑으로는 남동생과 끝으로 여 동생이 있습니다. 남자 형제들 네 명 중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자는 나 혼자이고 4명의 누님과 막내 여동생이 있습니다. 70년을 가까이 살아오면서 그 동안 많은 사건과 사고를 당했지만 이번에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도록 자기 몸에 대해서 알지 못했는가에 대한 안쓰러음이 있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주변의 동역자 중 한 분이 지난 해 간암으로 투병 중 더 이상의 병원 치료와 약으로는 나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서 어려움에 처하여 있을 때 한국에 사는 동생 장로의 간 이식을 받고 살아난 분이 계십니다.
형을 위한 일이라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당시 한국에서 한 달 이상의 병가를 내고 미국으로 날아온 동생 부부를 초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해 드린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에게 전화로 두 가지를 문의했습니다. 첫째는 왜 몸이 그렇게 망가질 때가지 알지 못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동생의 간 이식을 받고 죽음에서 극적으로 살아나신 목사님이 필자가 질문한 것에 대한 답으로 이렇게 말을 하셨습니다. 간은 한마디로 말해서 “멍청이”라는 것입니다. 멍청이라는 말은 어리석고 정신이 흐릿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 신체 중에서 가장 바보스러운 기관이 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병든 것을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 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양쪽 간에 암 세포가 가득해 이식을 할 수도 없고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새로 개발된 약이 있는데 그것은 시험용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치료비용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현찰로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데 한 달에 사용되는 약값이 한화 500만원이라는 것입니다. 달리 방법이 없기에 가족이 마지막 수단으로 그것이라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경험자이신 목사님은 어떤 권면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간 이식으로 죽음에서 살아난 목사님도 필자가 생각하는 대로 같은 생각의 말을 해 주셨습니다. 간 이식을 받을 수 없도록 암세포가 간에 가득차 있어서 병원에서 조차 치료를 포기한 상태라면 간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주변의 다른 장기에도 전염이 된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극한 상황에선 마지막 남은 시간을 본인이 준비하고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하며 주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환자 본인과 가족 모두가 그 동안 믿음 생활을 충실하게 해 왔습니다.
가족 중 어느 분은 이런 상황을 보면서 “왜 착하게 산 사람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합니까?”라면서 믿음으로 산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면 자신은 차라리 악하게 살아야 갰다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왜 환란을 당해야 할까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이 꼭 저주는 아닙니다. 준비된 자의 죽음은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은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사도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죽어서만 가는 천국을 산몸으로 올라가서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영원한 세계를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방문할 때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명하시길 “네가 본 천국을 책으로 기록하라 명하시며 믿는 자의 죽음이 복됨을 전하라”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남도 나의 의지대로 온 것이 아닌 것처럼 가는 것도 내가 원하는 때와 장소 방법으로 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오기 전 이미 세상이 존재함과 같이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도 우리는 준비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주님이 믿는 자들을 위하여 영원한 세계를 예비하고 우리를 영생토록 복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는 동안 예수를 믿는 것이 가장 귀한 복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귀한 것은 세상이라는 징검다리를 거치지 아니하고는 누구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힘으로도 아니 되고 돈으로도 아니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 의지하면 죽음의 문을 통하여 영광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2021년 6월 10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1-06-13 14:04:212021-06-13 14:04:46목양칼럼 # 246 “어떻게 하면 좋아요, 기도해 주세요!”
목양칼럼 # 248 어느 목사님의 천국 환송식 부고를 읽고서!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얼마 전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며 활발하게 활동하시므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셨던 어느 음악 목사님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환송예배를 드린다는 내용의 부고를 일간신문의 광고 지면에 크게 부고된 것을 읽고서 마음에 걸리는 내용이 있어서 며칠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신문에 부고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종 000 음악 목사이시며 저희들의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버지께서 2021년 5 월 21일 향년 76세 일기로 천국으로 이민 가셨기에 천국 환송식 예배를 드립니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부고를 보아왔지만 이런 내용의 부고는 처음 보았습니다.
필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부고의 내용 중 천국으로 이민을 가셨다고 하는 표현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국을 떠나 이민자로 이 땅에 살고 있기에 이민이라는 단어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민이라는 단어의 뜻은 정든 고향을 자의적 의사로 멀리 떠나 나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필자도 이민자로 고국을 떠나 이 땅에서 산지도 반세기가 되어 이곳에서 태어난 큰 딸이 40 중반이 되었고 두 딸을 통하여 태어난 이민 3세들 중에는 벌써 1년여 앞으로 다가온 대학입학을 준비해야 하는 손녀들이 둘이나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이지만 이민은 천국처럼 늘 위로와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민자로 낮선 타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고향에서 경험하지 못한 피 눈물을 흘려야 할 때도 있으며 고국에서의 삶보다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언어적인 문제, 문화적인 충격, 인종간의 갈등도 격어야 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명절이면 고향에서 가족들이 모이던 만남의 행복도 잃었습니다.
보고 싶은 친구, 일가친척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 그리움에 지칠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 중에는 이민의 삶의 뿌리를 안정되게 정착하지 못해 자녀들이 탈선하므로 원하던 이민의 꿈을 잃어버린 분들도 있는가하면 행복하던 가정이 파산 당한 가정도 있습니다. 차라리 이민을 오지 않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탄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민으로 성공하고 꿈을 이룬 가정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은 구원은 세상에서 천국으로 이민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남의 나라가 아닙니다. 천국의 주인은 바로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우리의 본향입니다. 고향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 34절에서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하라” 우리가 세상을 떠나서 가는 곳은 아버지의 나라, 천국입니다. 그 나라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들어갈 때에 이민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상속자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이 내가 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예수님은 계 21장 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지나 갔음이니라”
이민자에게는 눈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망도 있습니다. 아픔도 만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선 영원토록 그런 일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그 나라에서 왕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5절에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천국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까? 왕의 일을 합니다. 얼마동안 왕 노릇을 합니까? 백년이 아닙니다. 천년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왕으로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로 말미암은 구원의 부르심은 이민자로 부르심 받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2021년 6월 20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47 우리 시대 오래도록 기억될 6월 15일!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끝이 보이지 아니할 것 같았던 Covid-19 때문에 지난 15개월 동안 우리는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리 중에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큰 슬픔을 당한 가정이 있는가하면 사업체가 파산 당하여 온 가족이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분들도 계시며 팬데믹 기간 동안 직장을 잃은 분들도 있습니다.
필자의 주변에도 가까운 가족과 이웃들이 어려움 당하지 아니한 분들이 없을 정도로 누구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이 제재와 강한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했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만날 수 없었으며,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수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이 임종하는 때에도 병실 방문이 가족도 허락이 되지 않았었습니다. 필자도 지난 일 년 전에 병원에 11일 동안 수술을 받고 입원을 해 있을 때에 그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을 홀로 힘들게 보내야만 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분은 부모님의 장례식에도 오가는 하늘 길이 막혀 참석치 못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늘 생각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과학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이며 더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은 지구에서 가장 의학적 수준이 높은 국가이기에 이번 사태를 능히 극복하리라 믿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로인하여 우리는 더 큰 충격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 미국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지난 6월 15일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우리 모두를 큰 혼돈과 환란의 깊은 어둠의 공포에서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 자유와 강한 통제를 풀어 코로나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게 한 것입니다.
아!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이었습니까? 그렇게 긴 시간을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놀랍고도 반가운 기다림의 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가 팬데믹 기간 매일의 삶 속에서 불편하고 힘들어 했던 것은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잠간은 쓸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팬데믹이 우리를 힘들게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배운 것이 많습니다. 자유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임을 알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요 8장 31-32절에서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허락하시는 자유는 일시적인 자유가 아닙니다. 세상에서만이 아니라 영원한 자유입니다. 우리의 삶이 통제와 갇힘에서 놓임 받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가고 먹고 싶은 것 원하는 대로 먹고 보고 싶은 사람 만나는 것이 축복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봉쇄령에서 해방을 받은 다음 날 점심은 필자가 35년 째 다니는 단골 식당을 방문했습니다. 15개월 만에 다시 찾은 것입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어려운 시험에서 살아남은 것을 서로 격려하며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다음 날 동창회에서 7월에 모임 장소와 일자를 통보 받았습니다.
점심때만 되면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을까를 염려해야 했었는데 이제는 아무 곳이나 원하는 곳을 방문해서 허기진 배를 채룰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6월 15일, 이 날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오래도록 기억이 될 역사적인 감격의 날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자유와 행복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21년 6월 18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46 “어떻게 하면 좋아요, 기도해 주세요!”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수일 전 한국에 사는 여 동생에게서 급하게 온 전화 내용의 일부입니다. 누구보다도 건강하여 건강에 늘 자신 만만하던 막내 여동생의 남편이 어려운 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것도 남은 생명이 한두 달 이라는 서울의 대학병원 간 전문의사의 말에 환자 본인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큰 충격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필자에게는 4남 5녀의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나는 7번째이고 밑으로는 남동생과 끝으로 여 동생이 있습니다. 남자 형제들 네 명 중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자는 나 혼자이고 4명의 누님과 막내 여동생이 있습니다. 70년을 가까이 살아오면서 그 동안 많은 사건과 사고를 당했지만 이번에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도록 자기 몸에 대해서 알지 못했는가에 대한 안쓰러음이 있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주변의 동역자 중 한 분이 지난 해 간암으로 투병 중 더 이상의 병원 치료와 약으로는 나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서 어려움에 처하여 있을 때 한국에 사는 동생 장로의 간 이식을 받고 살아난 분이 계십니다.
형을 위한 일이라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당시 한국에서 한 달 이상의 병가를 내고 미국으로 날아온 동생 부부를 초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해 드린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에게 전화로 두 가지를 문의했습니다. 첫째는 왜 몸이 그렇게 망가질 때가지 알지 못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동생의 간 이식을 받고 죽음에서 극적으로 살아나신 목사님이 필자가 질문한 것에 대한 답으로 이렇게 말을 하셨습니다. 간은 한마디로 말해서 “멍청이”라는 것입니다. 멍청이라는 말은 어리석고 정신이 흐릿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 신체 중에서 가장 바보스러운 기관이 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병든 것을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 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양쪽 간에 암 세포가 가득해 이식을 할 수도 없고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새로 개발된 약이 있는데 그것은 시험용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치료비용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현찰로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데 한 달에 사용되는 약값이 한화 500만원이라는 것입니다. 달리 방법이 없기에 가족이 마지막 수단으로 그것이라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경험자이신 목사님은 어떤 권면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간 이식으로 죽음에서 살아난 목사님도 필자가 생각하는 대로 같은 생각의 말을 해 주셨습니다. 간 이식을 받을 수 없도록 암세포가 간에 가득차 있어서 병원에서 조차 치료를 포기한 상태라면 간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주변의 다른 장기에도 전염이 된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극한 상황에선 마지막 남은 시간을 본인이 준비하고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하며 주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환자 본인과 가족 모두가 그 동안 믿음 생활을 충실하게 해 왔습니다.
가족 중 어느 분은 이런 상황을 보면서 “왜 착하게 산 사람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합니까?”라면서 믿음으로 산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면 자신은 차라리 악하게 살아야 갰다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왜 환란을 당해야 할까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이 꼭 저주는 아닙니다. 준비된 자의 죽음은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은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사도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죽어서만 가는 천국을 산몸으로 올라가서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영원한 세계를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방문할 때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명하시길 “네가 본 천국을 책으로 기록하라 명하시며 믿는 자의 죽음이 복됨을 전하라”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남도 나의 의지대로 온 것이 아닌 것처럼 가는 것도 내가 원하는 때와 장소 방법으로 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오기 전 이미 세상이 존재함과 같이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도 우리는 준비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주님이 믿는 자들을 위하여 영원한 세계를 예비하고 우리를 영생토록 복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는 동안 예수를 믿는 것이 가장 귀한 복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귀한 것은 세상이라는 징검다리를 거치지 아니하고는 누구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힘으로도 아니 되고 돈으로도 아니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 의지하면 죽음의 문을 통하여 영광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2021년 6월 10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