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아침저녁으로 이어지는 맑은 날씨와 신선한 공기 그리고 높고 티 없이 곱고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에서 겨울이 지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7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면서 전에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을 머리로 알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삶 속에서 피부로 느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맞이하는 봄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주변에 일 년 여 전에 20여 구루의 과실 수를 심었습니다. 작년에도 과실 수에서 꽃이 피고 열매들이 맺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감동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과실 수 중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것은 복숭아였습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복숭아나무는 잎이 다 떨어져 마치 죽은 나무와 같았었습니다. 다른 나무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복숭아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실 수 중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전에는 복숭아꽃이 그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줄 몰랐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복숭아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숭아나무가 잎이 먼저 난 다음에 꽃이 피는 것이 아니고 꽃이 피었다가 지고 난 다음에서야 잎이 나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연분홍 꽃잎의 색이 얼마나 짙고 고운지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나를 너무 행복케 합니다.
복숭아나무가 자리한 곳은 교회당으로 들고 나는 문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좌편으로는 사과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에도 대여섯 번 교회 당 안으로 들고 나면서 대여섯 번 이상 그 꽃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며 어떻게 이렇게 고울 수가 있을까 하면서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혼자 보기에 너무 아까워 사진으로 찍어서 지인들에게 보내기도하고 Facebook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나무의 사명은 살아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실 수의 사명은 때를 따라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며 때를 따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나무의 열매는 하루아침에 맺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 스스로 맺는 것도 아닙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선 먼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뿌리로부터 계속 양분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꽃이 핀다고 그것이 다 열매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꽃의 수보다 열매가 맺히는 것은 적습니다. 그렇다고 작은 열매들이 다 추수 때가지 익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긴 시간 동안 세월과 싸워서 이겨야만 합니다. 여름을 지나면서 계속되는 뜨거운 태양 빛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비와 바람과도 싸워야 합니다. 여러 가지 병충해와도 싸워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살아남아야 비로소 농부들에게 기쁨을 주는 아름다운 과일로 익어가는 것입니다.
시편 1 편에서 복 있는 나무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복이 있는 것은 마르지 않기 때문이며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마르지 아니하는 생명 강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 안에 믿음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철마다 죽은 가지에서 다시 생명이 돋아나듯 우리의 삶에도 희망의 새 순과 꽃이 철마다 피어오르며 아름다운 축복의 열매들이 줄줄이 맺어져 말씀하신대로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꽃이 피어서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물하듯 우리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삶,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웃과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삶의 주인공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우리의 남은 삶이 얼마일지 아는 자가 없습니다만 앞으로 얼마를 더 살던지 지난 삶보다 남은 생애가 하늘의 큰 상급을 쌓으며 자신과 이웃에게도 복이 되는 삶을 사시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21년 2월 6일
이상기 목사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1-02-08 13:04:292021-02-08 13:05:14목양칼럼 # 228 소리 없이 다가와 봄을 알리는 복숭아꽃!
지난 1 월 27일 수요일에 주님의 은혜로 Covid-19 백신 주사를 맞았습니다. 이주일 전인 1 월 13일 저녁 늦은 시간에 65세 이상 고령자와 기저 질환 환자에게 백신 주사를 우선적으로 접종한다는 로칼 정부의 행정 명령이 뉴스를 통하여 보도되자마자 필자의 큰 딸이 즉시 컴퓨터로 예약을 받았습니다.
접종을 받기로 한 장소는 집에서 약 15마일 거리에 있는 Ralphs 마켓 안에 있는 약국이었습니다. 약속 받은 시간은 오후 1시 15분이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릴지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 만일을 대비하여 이른 시간인 두 시간 전에 도착 했습니다. 그런데 대기자가 한 사람도 없이 창구가 한산했습니다.
약국 직원에게 예약된 서류를 보여주며 백신 접종을 하는 곳이 맞느냐고 문의를 했더니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종이에 카피된 새로운 장소를 주면서 지금 곧 그리로 가면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15마일 떨어진 곳으로 30여분 자동차로 달려가니 대학교 주차장이었습니다.
자동차에 탄 채로 안내자에게 예약된 서류를 보여주니 저들이 가지고 있는 서류와 대조를 한 후 두 장의 서류를 내어주며 작성해 싸인을 하라고 했습니다. 서류 작성을 마치니 앞에 놓인 두 개의 자동차 노선 가운데 왼쪽 줄로 들어가라고 해서 긴 줄을 따라 가서 순서에 따라 접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백신 접종 초창기라 그런지 생각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몰리지는 않았습니다. 예약된 사람만 접종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차에서 앉은 채로 주사를 맞는 것이 일하시는 간호사분이나, 주사를 맞는 자신도 불편할 것 같아 차에서 내렸더니 담당 간호사분이 다시 차에 오르라고 해서 운적 석에 앉은 채로 왼쪽 팔을 걷어 올리고 백신 주사를 맞을 수 있었습니다. 백신을 맞고서 즉시 백신 접종 카드를 받았습니다. 그런 다음 15 분 동안 기다렸다가 이상이 없으면 가라고 해서 기다렸다가 집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두 주간 동안 이 날을 기다리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오갔습니다.
정말로 예약된 장소와 시간에 백신 주사를 맞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연일 뉴스를 통하여 보도되길 예약된 백신 물량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예약이 취소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신을 맞은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아 안정성에 대한 의문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백신 주사를 맞은 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만일에 있을지 모를 부작용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성도님들 중에는 전문 의료인들이 계셨습니다. 그 분들이 조언해 주는 대로 백신을 맞으러 가는 날 타이레놀을 먹고 갔습니다.
백신을 맞고 하루가 지나고 나니 주사 맞은 곳에 약간 통증을 느끼며 있으며 움직이는데 조금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생각보다 가벼운 것이며 이 정도라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3 주 후에 두 번째 백신 접종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전 세계를 큰 혼돈과 사망의 공포로 떨게 했던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쉬지 아니하고 일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릴 때 시 116편 12절의 말씀이 마음에 크게 와 닿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돈을 내라면 큰돈을 지불하고라도 맞아야 할 백신입니다. 부자라고 먼저 맞는 것이 아닙니다. 권세자라고 먼저 맞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난 사람이라고 먼저 맞는 것도 아닙니다. 가진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평범한 시민을 우대하고 섬기며 대접하는 미국에 사는 것이 특별한 은혜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지난 1 월 20일은 미 제 46대 대통령 취임식을 갖는 날이었습니다. TV를 통하여 생중계되는 행사를 지켜보고 있는데 전화기에서 카톡 울림이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지인이 보내온 메시지였습니다. 제목에 “한국을 떠나려는 이재용과 삼성,, 옥중서신, 특별회견문”이라고 되어 있어 지체하지 않고 읽어 내려갔습니다.
길지 않은 회견문은 구구절절이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받은 카톡을 주변 지인들에게도 바로 전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루도 지나기도 전에 한국의 일간 신문 사회면에 그 내용이 가짜라는 보도가 실렸습니다. 너무도 진짜 같은 가짜 뉴스였기에 필자도 그 가짜 뉴스에 속아 넘어간 것이었습니다.
가짜 뉴스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 달 여 동안 우리는 미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나서 가짜 뉴스의 바다에 빠진 것 같은 혼돈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정말로 너무도 많은 믿을 수 없는 진짜 같은 가짜 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빠르게 전달되어 한 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기도 했었습니다.
특별히 이름난 유명 인사들이 유튜브를 통하여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내용이기에 쉽게 가짜 뉴스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거에 부정이 있다는 소송 제기에 연방 법원과 대법원에서 연달아 소송을 기각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몇 번의 소송을 경험하면서 미국의 사법제도가 얼마나 정확하고 분명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미국 법원의 판사들이 매우 현명하고 뛰어난 판단력을 가진 분들이라는 것을 재판을 통하여 경험했습니다. 만일 일부에서 주장한 것처럼 선거에 엄청난 부정이 존재했다면 법원이 소송을 기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부터 자극적인 유튜브 방송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족 중에도 가짜 뉴스에 현혹되어 분노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될 뿐 아니라 가까운 지인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셨습니다. 필자의 권유를 들을만한 분들에게는 더 이상 그런 내용으로 화를 보이지 말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염려와 우려 속에 아무런 사고 없이 대통령 취임식 행사가 마쳤습니다. 취임식이 끝나면서 사람들의 모습이 셋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며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바이든을 반대했지만 대통령으로 인정한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절대로 바이든을 자신들의 대통령으로 인정할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불법과 부정으로 표를 훔쳐간 죄인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가슴에 타오르는 화로 분노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냉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새 시대가 되었습니다. 새 대통령이 만인 앞에서 왼손을 성경에 손을 얻고 오른 손으로는 법대로 이 나라와 백성을 통치하겠다고 선서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믿기 싫어도 믿어야 합니다.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미국에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이고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3 장 1 – 2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1-01-26 11:26:082021-01-26 11:26:08목양칼럼 # 226 진짜 같은 가짜 뉴스의 놀라운 파급력
목양칼럼 # 228 소리 없이 다가와 봄을 알리는 복숭아꽃!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요즈음 아침저녁으로 이어지는 맑은 날씨와 신선한 공기 그리고 높고 티 없이 곱고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에서 겨울이 지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7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면서 전에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을 머리로 알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삶 속에서 피부로 느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맞이하는 봄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주변에 일 년 여 전에 20여 구루의 과실 수를 심었습니다. 작년에도 과실 수에서 꽃이 피고 열매들이 맺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감동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과실 수 중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것은 복숭아였습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복숭아나무는 잎이 다 떨어져 마치 죽은 나무와 같았었습니다. 다른 나무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복숭아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실 수 중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전에는 복숭아꽃이 그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줄 몰랐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복숭아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숭아나무가 잎이 먼저 난 다음에 꽃이 피는 것이 아니고 꽃이 피었다가 지고 난 다음에서야 잎이 나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연분홍 꽃잎의 색이 얼마나 짙고 고운지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나를 너무 행복케 합니다.
복숭아나무가 자리한 곳은 교회당으로 들고 나는 문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좌편으로는 사과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에도 대여섯 번 교회 당 안으로 들고 나면서 대여섯 번 이상 그 꽃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며 어떻게 이렇게 고울 수가 있을까 하면서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혼자 보기에 너무 아까워 사진으로 찍어서 지인들에게 보내기도하고 Facebook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나무의 사명은 살아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실 수의 사명은 때를 따라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며 때를 따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나무의 열매는 하루아침에 맺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 스스로 맺는 것도 아닙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선 먼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뿌리로부터 계속 양분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꽃이 핀다고 그것이 다 열매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꽃의 수보다 열매가 맺히는 것은 적습니다. 그렇다고 작은 열매들이 다 추수 때가지 익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긴 시간 동안 세월과 싸워서 이겨야만 합니다. 여름을 지나면서 계속되는 뜨거운 태양 빛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비와 바람과도 싸워야 합니다. 여러 가지 병충해와도 싸워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살아남아야 비로소 농부들에게 기쁨을 주는 아름다운 과일로 익어가는 것입니다.
시편 1 편에서 복 있는 나무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복이 있는 것은 마르지 않기 때문이며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마르지 아니하는 생명 강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 안에 믿음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철마다 죽은 가지에서 다시 생명이 돋아나듯 우리의 삶에도 희망의 새 순과 꽃이 철마다 피어오르며 아름다운 축복의 열매들이 줄줄이 맺어져 말씀하신대로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꽃이 피어서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물하듯 우리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삶,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웃과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삶의 주인공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우리의 남은 삶이 얼마일지 아는 자가 없습니다만 앞으로 얼마를 더 살던지 지난 삶보다 남은 생애가 하늘의 큰 상급을 쌓으며 자신과 이웃에게도 복이 되는 삶을 사시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21년 2월 6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27 Covid-19 백신 주사를 맞았습니다.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지난 1 월 27일 수요일에 주님의 은혜로 Covid-19 백신 주사를 맞았습니다. 이주일 전인 1 월 13일 저녁 늦은 시간에 65세 이상 고령자와 기저 질환 환자에게 백신 주사를 우선적으로 접종한다는 로칼 정부의 행정 명령이 뉴스를 통하여 보도되자마자 필자의 큰 딸이 즉시 컴퓨터로 예약을 받았습니다.
접종을 받기로 한 장소는 집에서 약 15마일 거리에 있는 Ralphs 마켓 안에 있는 약국이었습니다. 약속 받은 시간은 오후 1시 15분이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릴지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 만일을 대비하여 이른 시간인 두 시간 전에 도착 했습니다. 그런데 대기자가 한 사람도 없이 창구가 한산했습니다.
약국 직원에게 예약된 서류를 보여주며 백신 접종을 하는 곳이 맞느냐고 문의를 했더니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종이에 카피된 새로운 장소를 주면서 지금 곧 그리로 가면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15마일 떨어진 곳으로 30여분 자동차로 달려가니 대학교 주차장이었습니다.
자동차에 탄 채로 안내자에게 예약된 서류를 보여주니 저들이 가지고 있는 서류와 대조를 한 후 두 장의 서류를 내어주며 작성해 싸인을 하라고 했습니다. 서류 작성을 마치니 앞에 놓인 두 개의 자동차 노선 가운데 왼쪽 줄로 들어가라고 해서 긴 줄을 따라 가서 순서에 따라 접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백신 접종 초창기라 그런지 생각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몰리지는 않았습니다. 예약된 사람만 접종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차에서 앉은 채로 주사를 맞는 것이 일하시는 간호사분이나, 주사를 맞는 자신도 불편할 것 같아 차에서 내렸더니 담당 간호사분이 다시 차에 오르라고 해서 운적 석에 앉은 채로 왼쪽 팔을 걷어 올리고 백신 주사를 맞을 수 있었습니다. 백신을 맞고서 즉시 백신 접종 카드를 받았습니다. 그런 다음 15 분 동안 기다렸다가 이상이 없으면 가라고 해서 기다렸다가 집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두 주간 동안 이 날을 기다리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오갔습니다.
정말로 예약된 장소와 시간에 백신 주사를 맞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연일 뉴스를 통하여 보도되길 예약된 백신 물량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예약이 취소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신을 맞은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아 안정성에 대한 의문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백신 주사를 맞은 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만일에 있을지 모를 부작용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성도님들 중에는 전문 의료인들이 계셨습니다. 그 분들이 조언해 주는 대로 백신을 맞으러 가는 날 타이레놀을 먹고 갔습니다.
백신을 맞고 하루가 지나고 나니 주사 맞은 곳에 약간 통증을 느끼며 있으며 움직이는데 조금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생각보다 가벼운 것이며 이 정도라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3 주 후에 두 번째 백신 접종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전 세계를 큰 혼돈과 사망의 공포로 떨게 했던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쉬지 아니하고 일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릴 때 시 116편 12절의 말씀이 마음에 크게 와 닿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돈을 내라면 큰돈을 지불하고라도 맞아야 할 백신입니다. 부자라고 먼저 맞는 것이 아닙니다. 권세자라고 먼저 맞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난 사람이라고 먼저 맞는 것도 아닙니다. 가진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평범한 시민을 우대하고 섬기며 대접하는 미국에 사는 것이 특별한 은혜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2021년 1월 29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26 진짜 같은 가짜 뉴스의 놀라운 파급력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지난 1 월 20일은 미 제 46대 대통령 취임식을 갖는 날이었습니다. TV를 통하여 생중계되는 행사를 지켜보고 있는데 전화기에서 카톡 울림이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지인이 보내온 메시지였습니다. 제목에 “한국을 떠나려는 이재용과 삼성,, 옥중서신, 특별회견문”이라고 되어 있어 지체하지 않고 읽어 내려갔습니다.
길지 않은 회견문은 구구절절이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받은 카톡을 주변 지인들에게도 바로 전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루도 지나기도 전에 한국의 일간 신문 사회면에 그 내용이 가짜라는 보도가 실렸습니다. 너무도 진짜 같은 가짜 뉴스였기에 필자도 그 가짜 뉴스에 속아 넘어간 것이었습니다.
가짜 뉴스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 달 여 동안 우리는 미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나서 가짜 뉴스의 바다에 빠진 것 같은 혼돈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정말로 너무도 많은 믿을 수 없는 진짜 같은 가짜 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빠르게 전달되어 한 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기도 했었습니다.
특별히 이름난 유명 인사들이 유튜브를 통하여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내용이기에 쉽게 가짜 뉴스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거에 부정이 있다는 소송 제기에 연방 법원과 대법원에서 연달아 소송을 기각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몇 번의 소송을 경험하면서 미국의 사법제도가 얼마나 정확하고 분명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미국 법원의 판사들이 매우 현명하고 뛰어난 판단력을 가진 분들이라는 것을 재판을 통하여 경험했습니다. 만일 일부에서 주장한 것처럼 선거에 엄청난 부정이 존재했다면 법원이 소송을 기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부터 자극적인 유튜브 방송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족 중에도 가짜 뉴스에 현혹되어 분노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될 뿐 아니라 가까운 지인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셨습니다. 필자의 권유를 들을만한 분들에게는 더 이상 그런 내용으로 화를 보이지 말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염려와 우려 속에 아무런 사고 없이 대통령 취임식 행사가 마쳤습니다. 취임식이 끝나면서 사람들의 모습이 셋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며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바이든을 반대했지만 대통령으로 인정한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절대로 바이든을 자신들의 대통령으로 인정할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불법과 부정으로 표를 훔쳐간 죄인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가슴에 타오르는 화로 분노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냉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새 시대가 되었습니다. 새 대통령이 만인 앞에서 왼손을 성경에 손을 얻고 오른 손으로는 법대로 이 나라와 백성을 통치하겠다고 선서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믿기 싫어도 믿어야 합니다.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미국에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이고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3 장 1 – 2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2021년 1월 21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