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코로나 바이러스의 힘이 강하다 할지라도 철통 경계로 소문난 백악관은 바이러스의 공격을 당연히 막아 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너무도 쉽게 그리고 빠르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바이러스에 걸린다 할지라도 마지막까지 바이러스의 공격에 살아남을 곳은 백악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통령뿐 아니라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진들과 가족들이 줄줄이 감염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 대통령의 감염 소식은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떡케 미국의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될 수 있습니까? 대통령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물 샐틈 없는 경호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안전을 위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전문가들이 밤과 낮으로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현대 의학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마치 미국의 강한 힘을 조롱하는 듯, 아니 미국만 아니라 전 세계를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 칼럼을 쓰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강한 나라 미국의 대통령도 막지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격에서 나와 가족 교회와 성도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아니한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나고 힘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보호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나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이 도우시고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잠시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건강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보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환란의 시대에 우리가 더 주님을 의지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의학이 나를 도와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에서 도망갈 수도 없고, 싸워 이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시편 50장 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주님은 이 시대 우리가 만나고 있는 환란의 정체를 알고 계십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와서 왜 우리를 공격하는지 알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지만 주님은 다 아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두렵게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악한 영과 같아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며 느낄 수도 없는 것이지만 주님만이 도우시고 주님만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기에서 우리를 보호하심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서워 하지만 말아야 합니다. 코로나 보다 더 강한 주님이 계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아래로 달려 나아가 주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로 인하여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기에서 건지심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0 여일 전 교회를 섬기는 L 권사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이웃에 사시는 S 권사님의 부탁으로 필자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S 권사님이 L 권사님에게 전화를 요청한 것은 우리 교회의 교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때는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셨습니다. 그러다가 교회를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에 대한 사랑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매해 추석 명절과 크리스마스가 되면 귀한 선물을 보내오곤 하십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일 년에 서너 차례 정성된 반찬을 만들어서 L 권사님을 통하여 보내오십니다. S 권사님이 단골로 보내오는 반찬 중 필자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고추장 복음과 소고기 장조림, 그리고 새끼 감자조림과 여러 종류의 김치 등입니다. 반찬을 선물 받을 때마다 감동을 느끼는 것은 반찬에서 느껴지는 권사님의 사랑과 정성 때문입니다. 권사님은 손이 크셔서 반찬을 보내실 때 한두 번 먹을 양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고추장 복음이나 장조림은 2-3달 먹을 양을 보내오십니다.
그래서 냉장고에는 S 권사님이 보내주신 사랑의 반찬이 늘 자리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권사님이 보내주시는 반찬을 좋아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이번 추석 선물로 늘 하시던 대로 한국 배를 선물로 드리는 것보다는 반찬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필자에게 직접 물어보기가 미안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이웃에 사시는 L 권사님에게 부탁해서 목사님이 무엇을 원하시는 지 알아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전화를 받고서 L 권사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그만 하셔도 됩니다. 그 동안의 사랑의 선물이면 충분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S 권사님의 요즘 건강이 걱정스러울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나이 80을 넘어서면서 그렇게 건강하시던 모습이 매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걸으시는 모습이 힘에 겨워 보이시며 아직은 운전을 하시지만 그 불편한 몸으로 시장을 봐다가 오랜 시간 음식을 준비하려면 건강한 사람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을 전하시는 L 권사님에게 이제는 그만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얼마 전 어느 분이 고추장복음을 만드는 것을 곁에서 우연히 지켜본 일이 있습니다. 두 서너 시간을 불 곁에 서서 계속 나무 주걱으로 쉬지 않고 저어야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건강한 사람도 힘든 것임을 알았습니다. 필자가 권사님의 고추장 복음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추장 복음에 들어가는 특별한 양념 때문입니다. 통깨와 함께 얇게 다져진 소고기 그리고 잣을 듬뿍 넣어 버무려 볶아진 고추장은 맛도 맛이지만 영양도 만점이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지금까지 먹어본 고추장 복음 중에서 이런 것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복음 고추장 한 숟가락에는 잣이 20여 개나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고추장 복음이 아니라 잣 깨소금 소고기 고추장 복음이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10 월 1 일은 추석입니다. 일주일 전 수요일에 S 권사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선물이 준비되었으니 집에 가시는 길에 다녀가시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분에 넘치는 양을 선물 받았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사랑의 선물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새끼감자 조림과 시원한 국물김치를 한 대접 밥도 없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후에는 국수를 삶아서 국물김치에 말아 먹으면서 권사님의 사랑과 정성을 감사하며 크게 행복해 했습니다. S 권사님은 젊어서 교육가로 한국에서 사시다가 중년에 미국에 오셨습니다. 권사님에겐 Nick name이 있습니다.
천사 같은 권사님입니다. 권사님과 30여년을 지내오면서 단 한 번도 남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화난 얼굴도 본 일이 없습니다. 큰 소리로 말을 하는 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조용히 그리고 미소를 담고 계셨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권사님에 대하여 하는 말은 천사 같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삶의 모범을 보이시는 권사님이십니다. S 권사님! 곁에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사님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함을 보여 주시며 기독인의 바른 삶을 가르쳐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남은 생애를 통하여 하늘에 더 큰 상을 예비하시며 더 건강하시고 행복한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9-30 13:27:082021-01-06 13:15:12목양칼럼 # 209 "목사님! 추석 선물로 무엇을 드리는 것이 좋을까요?"
목사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저 이상목 목사입니다. 지난 달 동부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사역하시는 어느 목사님이 카톡으로 반가운 인사를 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분에 대한 기억이 없었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어떡케 아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왜 자신을 모른다고 부정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농담으로 자신을 웃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이런 설명을 하셨습니다. 오래 전에 목사님과 함께 San Diego의 어느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사시던 아파트 건너편에 자기 가족이 살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다시 답장을 했습니다. 저는 San Diego에 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신학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님에 대한 기억이 없을뿐더러 목사님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이름 때문에 혼동을 가진 것 같다고 말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에는 나 말고도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목사님이 한 분 더 계십니다. 동명이인으로 나 보다는 젊고 생기기도 더 잘 생기신 분이라는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시는 듯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카톡 전화로 다시 연락을 해 오셨습니다. 그 전화를 통하여 서로를 확인하고서 한바탕 웃으면서 통화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같은 이름 때문에 가끔 웃게 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하며 때로는 생각지 못한 전화를 받아야 할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에 같은 이름을 가지신 목사님의 사모님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 신문에 부고가 났습니다. 그 때 저를 아는 많은 지인들이 그 부고를 보고서 사방에서 위로 전화를 해온 것입니다. 나만 이런 일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의 이름 때문에 동명이인 목사님도 비슷한 일을 당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나 때문에 다른 동명이인 목사님이 손해를 당하시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더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으로서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해 보았습니다. 나의 이름을 가진 목사님이 같은 지역에서 주의 종으로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 때문에 동명이인 목사님이 어떠한 경우에도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비난이나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아름다운 선행과 삶 그리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헌신과 충성 나아가서 성도를 섬김의 본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름만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이름과 같은 이름의 교회가 한 때는 동일한 지역에 세 개나 더 있었습니다. 그로인한 전화도 여러 번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으면 아무개 장로님이나 성도님을 바꾸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분이 안 계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럴 경우 상대방이 왜 그런 분이 목사님의 교회에 안 계시느냐고 묻기도 전에 먼저 말을 합니다. “우리 교회는 평강교회가 맞기는 한데 원조 평강교회입니다”라고 말을 하면 그 말을 이해하는 분은 웃으며 전화를 바로 끊지만 센스가 없는 분들은 그렇게 말하는 뜻을 잘 받아 드리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이름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이름도 다르지 않습니다. 나의 이름은 내가 짓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나 아니면 할아버지가 지었을 것입니다. 이름을 지을 때 아무렇게나 짓지 아니합니다. 모든 이름에는 그래서 숨겨진 의미와 뜻이 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이름은 내가 지은 것이 아닙니다.
함께 교회 개척을 하셨던 K 장로님이 지으셨습니다. 평강이라는 이름의 뜻은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후 밀폐된 공간에서 두려움과 공포로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시어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이 평강인 것입니다.
3개월 후면 교회 설립 4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교회 이름처럼 광야 같은 이곳에서 평강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까지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으며 교회의 주인 되시는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9월 21일 2020년
이상기목사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9-23 10:10:392021-01-06 13:15:01목양칼럼 # 208 목사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목양칼럼 # 210 미국의 대통령도 피하지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힘!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지난 주말 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코로나 바이러스의 힘이 강하다 할지라도 철통 경계로 소문난 백악관은 바이러스의 공격을 당연히 막아 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너무도 쉽게 그리고 빠르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바이러스에 걸린다 할지라도 마지막까지 바이러스의 공격에 살아남을 곳은 백악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통령뿐 아니라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진들과 가족들이 줄줄이 감염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 대통령의 감염 소식은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떡케 미국의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될 수 있습니까? 대통령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물 샐틈 없는 경호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안전을 위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전문가들이 밤과 낮으로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현대 의학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마치 미국의 강한 힘을 조롱하는 듯, 아니 미국만 아니라 전 세계를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 칼럼을 쓰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강한 나라 미국의 대통령도 막지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격에서 나와 가족 교회와 성도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아니한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나고 힘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보호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나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이 도우시고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잠시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건강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보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환란의 시대에 우리가 더 주님을 의지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의학이 나를 도와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에서 도망갈 수도 없고, 싸워 이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시편 50장 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주님은 이 시대 우리가 만나고 있는 환란의 정체를 알고 계십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와서 왜 우리를 공격하는지 알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지만 주님은 다 아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두렵게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악한 영과 같아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며 느낄 수도 없는 것이지만 주님만이 도우시고 주님만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기에서 우리를 보호하심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서워 하지만 말아야 합니다. 코로나 보다 더 강한 주님이 계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아래로 달려 나아가 주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로 인하여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기에서 건지심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0 월 5 일 2020년
이상기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09 “목사님! 추석 선물로 무엇을 드리는 것이 좋을까요?”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10 여일 전 교회를 섬기는 L 권사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이웃에 사시는 S 권사님의 부탁으로 필자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S 권사님이 L 권사님에게 전화를 요청한 것은 우리 교회의 교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때는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셨습니다. 그러다가 교회를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에 대한 사랑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매해 추석 명절과 크리스마스가 되면 귀한 선물을 보내오곤 하십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일 년에 서너 차례 정성된 반찬을 만들어서 L 권사님을 통하여 보내오십니다. S 권사님이 단골로 보내오는 반찬 중 필자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고추장 복음과 소고기 장조림, 그리고 새끼 감자조림과 여러 종류의 김치 등입니다. 반찬을 선물 받을 때마다 감동을 느끼는 것은 반찬에서 느껴지는 권사님의 사랑과 정성 때문입니다. 권사님은 손이 크셔서 반찬을 보내실 때 한두 번 먹을 양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고추장 복음이나 장조림은 2-3달 먹을 양을 보내오십니다.
그래서 냉장고에는 S 권사님이 보내주신 사랑의 반찬이 늘 자리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권사님이 보내주시는 반찬을 좋아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이번 추석 선물로 늘 하시던 대로 한국 배를 선물로 드리는 것보다는 반찬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필자에게 직접 물어보기가 미안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이웃에 사시는 L 권사님에게 부탁해서 목사님이 무엇을 원하시는 지 알아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전화를 받고서 L 권사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그만 하셔도 됩니다. 그 동안의 사랑의 선물이면 충분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S 권사님의 요즘 건강이 걱정스러울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나이 80을 넘어서면서 그렇게 건강하시던 모습이 매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걸으시는 모습이 힘에 겨워 보이시며 아직은 운전을 하시지만 그 불편한 몸으로 시장을 봐다가 오랜 시간 음식을 준비하려면 건강한 사람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을 전하시는 L 권사님에게 이제는 그만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얼마 전 어느 분이 고추장복음을 만드는 것을 곁에서 우연히 지켜본 일이 있습니다. 두 서너 시간을 불 곁에 서서 계속 나무 주걱으로 쉬지 않고 저어야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건강한 사람도 힘든 것임을 알았습니다. 필자가 권사님의 고추장 복음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추장 복음에 들어가는 특별한 양념 때문입니다. 통깨와 함께 얇게 다져진 소고기 그리고 잣을 듬뿍 넣어 버무려 볶아진 고추장은 맛도 맛이지만 영양도 만점이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지금까지 먹어본 고추장 복음 중에서 이런 것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복음 고추장 한 숟가락에는 잣이 20여 개나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고추장 복음이 아니라 잣 깨소금 소고기 고추장 복음이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10 월 1 일은 추석입니다. 일주일 전 수요일에 S 권사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선물이 준비되었으니 집에 가시는 길에 다녀가시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분에 넘치는 양을 선물 받았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사랑의 선물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새끼감자 조림과 시원한 국물김치를 한 대접 밥도 없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후에는 국수를 삶아서 국물김치에 말아 먹으면서 권사님의 사랑과 정성을 감사하며 크게 행복해 했습니다. S 권사님은 젊어서 교육가로 한국에서 사시다가 중년에 미국에 오셨습니다. 권사님에겐 Nick name이 있습니다.
천사 같은 권사님입니다. 권사님과 30여년을 지내오면서 단 한 번도 남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화난 얼굴도 본 일이 없습니다. 큰 소리로 말을 하는 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조용히 그리고 미소를 담고 계셨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권사님에 대하여 하는 말은 천사 같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삶의 모범을 보이시는 권사님이십니다. S 권사님! 곁에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사님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함을 보여 주시며 기독인의 바른 삶을 가르쳐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남은 생애를 통하여 하늘에 더 큰 상을 예비하시며 더 건강하시고 행복한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9월 30일 2020년
이상기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747
목양칼럼 # 208 목사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목사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저 이상목 목사입니다. 지난 달 동부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사역하시는 어느 목사님이 카톡으로 반가운 인사를 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분에 대한 기억이 없었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어떡케 아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왜 자신을 모른다고 부정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농담으로 자신을 웃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이런 설명을 하셨습니다. 오래 전에 목사님과 함께 San Diego의 어느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사시던 아파트 건너편에 자기 가족이 살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다시 답장을 했습니다. 저는 San Diego에 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신학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님에 대한 기억이 없을뿐더러 목사님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이름 때문에 혼동을 가진 것 같다고 말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에는 나 말고도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목사님이 한 분 더 계십니다. 동명이인으로 나 보다는 젊고 생기기도 더 잘 생기신 분이라는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시는 듯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카톡 전화로 다시 연락을 해 오셨습니다. 그 전화를 통하여 서로를 확인하고서 한바탕 웃으면서 통화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같은 이름 때문에 가끔 웃게 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하며 때로는 생각지 못한 전화를 받아야 할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에 같은 이름을 가지신 목사님의 사모님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 신문에 부고가 났습니다. 그 때 저를 아는 많은 지인들이 그 부고를 보고서 사방에서 위로 전화를 해온 것입니다. 나만 이런 일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의 이름 때문에 동명이인 목사님도 비슷한 일을 당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나 때문에 다른 동명이인 목사님이 손해를 당하시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더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으로서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해 보았습니다. 나의 이름을 가진 목사님이 같은 지역에서 주의 종으로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 때문에 동명이인 목사님이 어떠한 경우에도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비난이나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아름다운 선행과 삶 그리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헌신과 충성 나아가서 성도를 섬김의 본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름만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이름과 같은 이름의 교회가 한 때는 동일한 지역에 세 개나 더 있었습니다. 그로인한 전화도 여러 번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으면 아무개 장로님이나 성도님을 바꾸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분이 안 계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럴 경우 상대방이 왜 그런 분이 목사님의 교회에 안 계시느냐고 묻기도 전에 먼저 말을 합니다. “우리 교회는 평강교회가 맞기는 한데 원조 평강교회입니다”라고 말을 하면 그 말을 이해하는 분은 웃으며 전화를 바로 끊지만 센스가 없는 분들은 그렇게 말하는 뜻을 잘 받아 드리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이름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이름도 다르지 않습니다. 나의 이름은 내가 짓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나 아니면 할아버지가 지었을 것입니다. 이름을 지을 때 아무렇게나 짓지 아니합니다. 모든 이름에는 그래서 숨겨진 의미와 뜻이 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이름은 내가 지은 것이 아닙니다.
함께 교회 개척을 하셨던 K 장로님이 지으셨습니다. 평강이라는 이름의 뜻은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후 밀폐된 공간에서 두려움과 공포로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시어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이 평강인 것입니다.
3개월 후면 교회 설립 4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교회 이름처럼 광야 같은 이곳에서 평강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까지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으며 교회의 주인 되시는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9월 21일 2020년
이상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