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편 1 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새길 수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노회 안에 샘물교회를 21년 전에 개척하여 시무하고 계시는 K 목사님이 1년 전에 간암 진단을 받으시고 치료 중 병원으로부터 간 이식을 받아야 한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충격은 K 목사님과 가족만이 아닙니다. 평소 목사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던 주변의 사람들도 놀라게 했습니다. 간을 이식해야 한다는 것은 치료가 되지 않는 상태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이나 다른 방법으로는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날로부터 필자도 기도해 오고 있습니다.
한번은 나의 간 담당 의사에게 상담을 해 보았습니다. 친구 목사님이 간 이식을 하라는데 어느 정도로 가능한 일이며 얼마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묻는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답을 주셨습니다. 환자의 상태마다 다르기 때문에 직접 진단하고 확인해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묻기를 환자의 보험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좋은 보험이냐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재정적인 상태는 어떤가에 대해서도 질문 하셨습니다. 이유인 즉 캘리포니아에선 간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정적인 뒷받침이 되고 좋은 보험을 가지고 있다면 플로리다 주로 가서 치료 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K 목사님의 간 이식 수술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생각 했는데, 2 월 12일 USC MEDICAL SCHOOL에서 수술 일자가 잡혔다는 것입니다. K 목사님이 간 이식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은 한국에 있는 3살 아래 남동생이 형을 위해서 간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2월 2일 수술을 위해 미국에 도착한 동생 장로부부를 2월 3일 한인 타운의 식당으로 형 목사님 부부와 함께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형제라도 자신의 신체 일부를 떼어내어 죽어가는 형을 살린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그런 위대한 결정을 해준 동생 부부를 만나고 싶어서 였습니다.
식당에서 만나기 전 당일 이른 아침에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와 만나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간 이식을 위하여 소요되는 시간은 최소 12시간에서 14시간 이라고 했습니다. 수술에 동원되는 마취의사만 해도 3분이 교대로 투입이 될 정도로 말 그대로 대 수술입니다. 수술에 투입되는 전문의도 여섯 분이나 됩니다.
K 목사님의 간 이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여섯 분의 의사들이 수술 일자를 조정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려야 했습니다. 수술이 얼마나 어려운 수술이면 간을 제공하는 동생에게 병원 실무자가 형을 위해서 간을 제공하므로 인해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하여 동의한다는 싸인을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기를 각오할 정도로 형을 위해서 자기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형제들이 다 이런 결정을 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질로는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지만 자기 생명을 끊어서 형제에게 준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촌각에 달려 있는 형 목사님을 위해서 한국의 직장에 2달 동안 장기 휴가를 내고 달려온 동생 장로님 부부가 그래서 더욱 존경스러워 보이는 것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누가 보실 때에 이 형제들의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답다는 말일까요? 주님이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답다는 말이며 우리가 보기에 선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두 형제들을 축복하시길 원합니다. 이식 받으시는 목사님이나 자신의 간을 형에게 제공하는 동생 모두가 속히 병상에서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와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 영광을 돌리게 하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3-04 06:55:342020-03-04 23:56:21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리모델링을 위해서 3주 전부터 4명의 인부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공사가 진행 되는 동안 필자도 공사 현장을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교회에 일하기 위하여 출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교회 나오고 저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교회에 남아 있다가 집으로 갑니다.
매일 반복되는 작업 현장을 지켜보면서 건축 일에 종사하는 분들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오전 8시에 일하기 위해서 10분에서 20분 전에 교회에 도착을 합니다. 8시에 일을 시작하면 잠시도 쉬지 아니하고 점심때까지 열심히 일을 합니다. 식사 시간은 20분을 넘기지 않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누가 말하기도 전에 스스로 알아서 자기 할 일을 합니다. 그렇게 시작되는 일은 오후 4시 10분전까지 계속됩니다. 8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에 마치게 되는 겁니다. 지난 3주일 동안 이 같은 원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서 왜 건축업자가 이 사람들을 고용했는지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맡은 일에 대하여 철저한 시간과 책임을 완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누가 보던지 아니 보던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에게 맡겨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여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감동을 받습니다. 저들이 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쉼 없이 반복해서 손과 발을 움직여야만 하는 말 그대로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하지 아니하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하는 사람이 좋은 직장이나, 상사를 만나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업을 경영하는 사람도 좋은 일군을 만나는 것도 축복입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일군이고 어떤 주인이 좋은 주인입니까? 좋은 주인은 일하는 일군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주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일에 필요한 물자를 필요한 때에 제공해야 합니다. 좋은 일군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터를 제공해 주어도 맡은 자가 충성하지 아니하면 주인이 만족해 할 수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지 아니하는 일군을 좋아할 주인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 공사를 맡은 건축업자와 일군들은 서로를 신뢰하며 좋은 관계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곁에서 이 둘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에게 좋은 주인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를 안전하고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는 사랑의 주님에게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일을 하는 업자와 일군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하여 필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는 것처럼 우리도 맡은 일에 기쁨으로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지,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며 소금과 빛으로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은 멀리 가서 큰 일 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만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마 25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탈란트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니라” 누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까? 주님이 맡기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착한 종이 되길 원하십니다.
어떤 종이 착한 종입니까? 주님이 맡기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마다 큰일 하길 원하지만 작은 일로 인정받지 못하면 큰일을 맡을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 부름 받은 종으로서 맡은 일에 충성하여 착한 종으로 인정받아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하는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3-04 06:52:012020-03-04 23:53:17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일꾼들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
친구 목사님 가운데 한 교회를 36년 째 개척해서 지금까지 섬기고 계신 P 목사님이 동일한 지역에 함께 살아가고 계십니다. 종종 만나서 목회 정보도 나누고 교회를 섬기면서 당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의논하는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과 친구로 지내기는 벌써 40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동갑내기 목사입니다. 오랜 시간 교제해 온 친구이기에 서로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로 친한 사이인가 하면 둘 중 먼저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면 남은 사람이 먼저 가는 친구의 장례식을 책임지기로 약속을 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운동을 마치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친구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의 화장실 청소를 지금까지 전담해 오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P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의 화장실은 3개입니다. 필자도 여러 번 P 목사님의 교회를 방문했지만 그럴 때마다 교회 화장실이 마치 호텔 화장실처럼 깨끗하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교회 화장실중 가장 청결하고 아름다운 화장실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교인들의 작품인줄 알았지 담임목사님이 손수 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교회 안에는 사역하시는 목사님이 2-3분이나 계셨고, 전도사님을 비롯해 믿음 좋은 권사님들이 많기로 소문난 교회였기에 담임 목사님이 화장실 청소를 수십 년째 해 오셨다는 것을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교인들이 다른 청소는 다 하면서도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아니한 것은 언제나 깨끗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은 청소를 하면서도 화장실은 청소를 할 필요가 없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인들이 수십 년 동안 담임목사님이 화장실 청소를 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런 내용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P 목사님은 자신의 집 화장실은 교회 화장실처럼 정성 들여서 청소를 하지 못하신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교회 화장실은 최고의 정성으로 봉사하신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친구 목사님을 다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그 고백을 듣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던 아름다운 비밀이었습니다. P 목사님이 그 말을 하시게 된 이유는 필자의 교회 권사님 중 지금은 소천 하셨지만 90이 넘으시기까지 30년 가까이 교회 화장실 청소를 해 오신 권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말이었습니다.
30년 동안 우리 교회 화장실 청소를 전담해 오신 S 권사님은 주님의 나라에 가시기 전 병원에서 여러 달 입원해 계시는 동안을 제외하곤 죽도록 그 일에 충성하셨습니다. 교회 여러 가지 많은 봉사 중 가장 어려운 것을 말하려면 화장실 청소 일 것입니다. 말년에는 허리가 아프시어 고통을 당하실 때도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서울 종로에 있는 종교감리교회를 담임하셨던 목사님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 안에서 살아 오셨습니다. 그 옛날 대학 시절에 소프트볼 선수 생활을 하셨던 권사님은 그 인연으로 야구를 평생토록 좋아 하셨습니다. 권사님은 한 번도 남의 험담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 화장실 청소를 해 오시면서 청소에 사용되는 도구와 재료들을 교회에 청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자 화장실만 청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 화장실까지 하셨습니다. 화장실 청소를 위해서 언제나 일찍 교회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내 남자 화장실을 출입하시는 권사님이란 Nick Name을 가지셨습니다.
나의 자랑 “남자 화장실을 출입하시는 권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신 친구 P 목사님은 그 자리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나도 우리 교회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요”라고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친구 목회자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너무 귀한 동역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편 1 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새길 수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노회 안에 샘물교회를 21년 전에 개척하여 시무하고 계시는 K 목사님이 1년 전에 간암 진단을 받으시고 치료 중 병원으로부터 간 이식을 받아야 한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충격은 K 목사님과 가족만이 아닙니다. 평소 목사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던 주변의 사람들도 놀라게 했습니다. 간을 이식해야 한다는 것은 치료가 되지 않는 상태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이나 다른 방법으로는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날로부터 필자도 기도해 오고 있습니다.
한번은 나의 간 담당 의사에게 상담을 해 보았습니다. 친구 목사님이 간 이식을 하라는데 어느 정도로 가능한 일이며 얼마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묻는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답을 주셨습니다. 환자의 상태마다 다르기 때문에 직접 진단하고 확인해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묻기를 환자의 보험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좋은 보험이냐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재정적인 상태는 어떤가에 대해서도 질문 하셨습니다. 이유인 즉 캘리포니아에선 간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정적인 뒷받침이 되고 좋은 보험을 가지고 있다면 플로리다 주로 가서 치료 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K 목사님의 간 이식 수술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생각 했는데, 2 월 12일 USC MEDICAL SCHOOL에서 수술 일자가 잡혔다는 것입니다. K 목사님이 간 이식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은 한국에 있는 3살 아래 남동생이 형을 위해서 간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2월 2일 수술을 위해 미국에 도착한 동생 장로부부를 2월 3일 한인 타운의 식당으로 형 목사님 부부와 함께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형제라도 자신의 신체 일부를 떼어내어 죽어가는 형을 살린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그런 위대한 결정을 해준 동생 부부를 만나고 싶어서 였습니다.
식당에서 만나기 전 당일 이른 아침에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와 만나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간 이식을 위하여 소요되는 시간은 최소 12시간에서 14시간 이라고 했습니다. 수술에 동원되는 마취의사만 해도 3분이 교대로 투입이 될 정도로 말 그대로 대 수술입니다. 수술에 투입되는 전문의도 여섯 분이나 됩니다.
K 목사님의 간 이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여섯 분의 의사들이 수술 일자를 조정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려야 했습니다. 수술이 얼마나 어려운 수술이면 간을 제공하는 동생에게 병원 실무자가 형을 위해서 간을 제공하므로 인해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하여 동의한다는 싸인을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기를 각오할 정도로 형을 위해서 자기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형제들이 다 이런 결정을 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질로는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지만 자기 생명을 끊어서 형제에게 준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촌각에 달려 있는 형 목사님을 위해서 한국의 직장에 2달 동안 장기 휴가를 내고 달려온 동생 장로님 부부가 그래서 더욱 존경스러워 보이는 것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누가 보실 때에 이 형제들의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답다는 말일까요? 주님이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답다는 말이며 우리가 보기에 선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두 형제들을 축복하시길 원합니다. 이식 받으시는 목사님이나 자신의 간을 형에게 제공하는 동생 모두가 속히 병상에서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와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 영광을 돌리게 하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318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일꾼들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리모델링을 위해서 3주 전부터 4명의 인부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공사가 진행 되는 동안 필자도 공사 현장을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교회에 일하기 위하여 출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교회 나오고 저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교회에 남아 있다가 집으로 갑니다.
매일 반복되는 작업 현장을 지켜보면서 건축 일에 종사하는 분들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오전 8시에 일하기 위해서 10분에서 20분 전에 교회에 도착을 합니다. 8시에 일을 시작하면 잠시도 쉬지 아니하고 점심때까지 열심히 일을 합니다. 식사 시간은 20분을 넘기지 않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누가 말하기도 전에 스스로 알아서 자기 할 일을 합니다. 그렇게 시작되는 일은 오후 4시 10분전까지 계속됩니다. 8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에 마치게 되는 겁니다. 지난 3주일 동안 이 같은 원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서 왜 건축업자가 이 사람들을 고용했는지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맡은 일에 대하여 철저한 시간과 책임을 완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누가 보던지 아니 보던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에게 맡겨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여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감동을 받습니다. 저들이 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쉼 없이 반복해서 손과 발을 움직여야만 하는 말 그대로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하지 아니하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하는 사람이 좋은 직장이나, 상사를 만나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업을 경영하는 사람도 좋은 일군을 만나는 것도 축복입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일군이고 어떤 주인이 좋은 주인입니까? 좋은 주인은 일하는 일군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주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일에 필요한 물자를 필요한 때에 제공해야 합니다. 좋은 일군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터를 제공해 주어도 맡은 자가 충성하지 아니하면 주인이 만족해 할 수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지 아니하는 일군을 좋아할 주인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 공사를 맡은 건축업자와 일군들은 서로를 신뢰하며 좋은 관계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곁에서 이 둘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에게 좋은 주인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를 안전하고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는 사랑의 주님에게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일을 하는 업자와 일군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하여 필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는 것처럼 우리도 맡은 일에 기쁨으로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지,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며 소금과 빛으로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은 멀리 가서 큰 일 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만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마 25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탈란트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니라” 누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까? 주님이 맡기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착한 종이 되길 원하십니다.
어떤 종이 착한 종입니까? 주님이 맡기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마다 큰일 하길 원하지만 작은 일로 인정받지 못하면 큰일을 맡을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 부름 받은 종으로서 맡은 일에 충성하여 착한 종으로 인정받아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하는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304
교회 화장실 청소를 수십 년 째 하시는 담임 목사님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친구 목사님 가운데 한 교회를 36년 째 개척해서 지금까지 섬기고 계신 P 목사님이 동일한 지역에 함께 살아가고 계십니다. 종종 만나서 목회 정보도 나누고 교회를 섬기면서 당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의논하는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과 친구로 지내기는 벌써 40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동갑내기 목사입니다. 오랜 시간 교제해 온 친구이기에 서로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로 친한 사이인가 하면 둘 중 먼저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면 남은 사람이 먼저 가는 친구의 장례식을 책임지기로 약속을 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운동을 마치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친구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의 화장실 청소를 지금까지 전담해 오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P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의 화장실은 3개입니다. 필자도 여러 번 P 목사님의 교회를 방문했지만 그럴 때마다 교회 화장실이 마치 호텔 화장실처럼 깨끗하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교회 화장실중 가장 청결하고 아름다운 화장실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교인들의 작품인줄 알았지 담임목사님이 손수 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교회 안에는 사역하시는 목사님이 2-3분이나 계셨고, 전도사님을 비롯해 믿음 좋은 권사님들이 많기로 소문난 교회였기에 담임 목사님이 화장실 청소를 수십 년째 해 오셨다는 것을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교인들이 다른 청소는 다 하면서도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아니한 것은 언제나 깨끗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은 청소를 하면서도 화장실은 청소를 할 필요가 없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인들이 수십 년 동안 담임목사님이 화장실 청소를 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런 내용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P 목사님은 자신의 집 화장실은 교회 화장실처럼 정성 들여서 청소를 하지 못하신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교회 화장실은 최고의 정성으로 봉사하신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친구 목사님을 다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그 고백을 듣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던 아름다운 비밀이었습니다. P 목사님이 그 말을 하시게 된 이유는 필자의 교회 권사님 중 지금은 소천 하셨지만 90이 넘으시기까지 30년 가까이 교회 화장실 청소를 해 오신 권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말이었습니다.
30년 동안 우리 교회 화장실 청소를 전담해 오신 S 권사님은 주님의 나라에 가시기 전 병원에서 여러 달 입원해 계시는 동안을 제외하곤 죽도록 그 일에 충성하셨습니다. 교회 여러 가지 많은 봉사 중 가장 어려운 것을 말하려면 화장실 청소 일 것입니다. 말년에는 허리가 아프시어 고통을 당하실 때도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서울 종로에 있는 종교감리교회를 담임하셨던 목사님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 안에서 살아 오셨습니다. 그 옛날 대학 시절에 소프트볼 선수 생활을 하셨던 권사님은 그 인연으로 야구를 평생토록 좋아 하셨습니다. 권사님은 한 번도 남의 험담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 화장실 청소를 해 오시면서 청소에 사용되는 도구와 재료들을 교회에 청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자 화장실만 청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 화장실까지 하셨습니다. 화장실 청소를 위해서 언제나 일찍 교회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내 남자 화장실을 출입하시는 권사님이란 Nick Name을 가지셨습니다.
나의 자랑 “남자 화장실을 출입하시는 권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신 친구 P 목사님은 그 자리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나도 우리 교회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요”라고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친구 목회자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너무 귀한 동역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