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계 신문을 인터넷으로 읽다가 부산 수영로교회 설립 목사이셨던 존경하는 정필도 목사님이 82세의 나이로 지난 3월 21일 부산동아대병원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필자가 고 정필도 목사님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1981년 봄으로 41년 전 이었습니다.
교회를 설립하고 몇 개월이 지나지 아니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시던 당시 동양선교교회 협동장로님이셨던 박계로 장로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인 타운에는 지금처럼 한인 교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사위 목사가 Los Angeles를 방문했는데 설교할 교회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목사님으로 부산지역에서 제일가는 교회로 자리하고 있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 장로님이 섬기시는 교회에서도 설교자로 세우심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당시 필자의 교회는 20여명이 모여서 미국인 교회당을 빌려서 그것도 낮 예배를 11시에 드리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미국인 교회가 예배를 마치고 난 오후 1시 반에 주일 낮 예배를 드리던 때 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 강사를 모신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때였습니다. 전화로 부탁하시는 박 장로님에게 교인이 너무 적고 예배 시간도 11시가 아니고 오후 1시 반이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그래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처음으로 외부 설교자를 모시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정 목사님은 예배 시간에 부산에서 교회를 개척하셨을 때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매일 새벽 기도를 마치고 나면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돈 것처럼 교회당 주변 땅을 밟으며 성전의 터를 넓혀 가셨다고 간증하셨습니다.
당시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교회당 건물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정 목사님의 간증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부산 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의 기도도 들으시고 교회 건물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주일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나면 새벽 기도에 참석한 교인들이 교회당 주변을 여리고 성을 도는 것처럼 기도하기를 4년 동안 계속했습니다. 어느 날 미국인 교인들이 우리의 이러한 행동을 보았습니다. 왜 새벽 기도를 한 후 교회당 주변을 도느냐고 물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이 교회당 건물을 우리에게 주시길 기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인 교회도 건물을 매각하고 다른 곳으로 이전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이 되어 양 교회가 건축위원회를 구성하고 매입 절차를 6개월 간 협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스크로를 오픈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우리교회와 같이 작고 힘없는 교회가 어떻게 건물을 살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도 가난하고 장로님도 가난한데 에스크로스가 끝나면 그 많은 다운페이먼트를 누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견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약하고 가난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결국 건축헌금을 작정하는 과정에서 교회가 큰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상당수의 교인들이 교회당 구입을 반대하면서 교회를 떠나갔습니다. 사방에서 교회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당시의 절망감을 무어라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미국교회에 이 같은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난 4 년 동안 성전 건물 주시길 위해서 우리가 반복해서 기도한 것을 외면치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러면 주시리라는 말씀은 진리였습니다. 정필도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한 건물보다 더 좋은 건물과 장소를 예비하시고 기적 같은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건물 구입을 포기하고 두 손을 놓은 지 두 달도 되지 않아서 새 성전으로 입당케하셨습니다. 평강교회가 건물을 구입하는 것은 홍해가 갈라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적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때 정필도 목사님의 간증을 듣지 못했더라면 성전 건물을 위해서 기도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성전 건물의 축복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늘 정 목사님께 받은 은혜를 잊지 못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중 햇살이 뜨거워지는 아침에 교회 뜰에서 잔디와 과실 수에 물을 주다가 금년 들어 처음으로 가까이서 살구나무 꽃 위에 자리하고 앉아 있는 호랑나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몸체는 감색으로 진하게 물들어 있었고 넓은 날개는 검은색 결을 따라 크고 작은 백색의 많은 점들이 줄무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교회 주변에 들러선 20여 구루의 과실 수들이 봄을 맞아 저마나 자기의 꽃을 피우니 사방에서 벌들이 날아드는 것을 보지만 호랑나비가 날아든 것은 금년 들어 처음 보았기에 신기하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이를 보면서 하나님이 풀 한 포기 나무 하나를 통해서도 쉬지 않으시고 일하시고 계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잔디에 물을 줄 때도 아무런 생각이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물을 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먹고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메마른 사막이나 황폐한 땅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의, 환경이 보기에 아름답기를 원하시고 우리만 평안한 것이 아니라 들의 풀 한포기도 아름답게 피어나길 원하시며 공중을 나는 새와 땅과 바다에 거하는 모든 생물들이 다 창조함 받은 대로 아름다움을 노래하길 원하십니다.
꽃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벌이 몰려들고 나비들이 떼를 이루며 날아옴같이 주님이 계신 곳에는 목마른 심령들이 달려 나와 복음(말씀의 떡, 생명의 떡)을 통하여 굶주린 영혼들이 배부름을 얻게 하셨습니다. 벌과 나비들을 위하여 꽃을 허락하신 주님이 굶주린 우리를 위하여 몸되신 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벌들이 꽃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은 복의 근원이 되며 축복의 씨앗이 되는 교회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수 없습니다. 시편 1 편 3절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나무의 행복은 시냇가에 심기어질 때입니다. 아무리 심한 가물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아니하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때마다 과실을 맺습니다. 모든 것이 메말라가는 시대에도 생명강 되시는 주님께 믿음의 뿌리를 내리면 나의 삶에 물질이 마르지 아니하게 하십니다. 마음에 기쁨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가정에 웃음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건강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하늘의 소망이 시들 거나 쇠하지 않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계획하지 아니한 것까지라도 주께서 형통케 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이러한 것들을 이미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사람마다 더 큰 행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각자의 수고와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냇가 되신 주님의 몸 되신 교회에 우리의 믿음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내리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마실 우물은 어디에 있을까요? 잠 5:15절에서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은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우리가 섬겨야 할 교회가 아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마다 마실 우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허락받은 자신의 우물을 관리하고 보존하며 그 샘에서 나는 우물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집이 나의 것이 아님 같이 모든 교회가 우리 교회가 아닙니다.
나의 가정, 나의 교회를 주님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나의 행복은 나의 가정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처럼, 나의 영적 기쁨과 충만도 나의 샘 되신 우리 교회를 통하여 공급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제일 좋은 가정은 나의 가정인 것처럼 세상에서 제일 좋은 교회도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022년 3월 17일
이상기 목사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2-03-21 12:52:392022-03-21 12:52:42목양칼럼 # 271 금년에 처음 만난 호랑나비!
3 월 9일 한국에서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가 있기 3 일전인 3 월 6일에 오랫동안 같은 교단을 섬겨왔던 K 목사님이 카톡으로 자신과 사모가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위하여 기도하던중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번 대선에서 당선될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을 알려 주셨다고 하면서 급하게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계시를 받은 것이 이번만이 아니라며 트럼프가 선거에서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도 그가 당선될 것을 많은 사람이 기대하지 못했을 때도 자신은 계시를 통하여 알게 되었고 그 같은 사실을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면서 이번에도 하나님이 알려주셨기에 Y 후보가 당선이 된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 칼럼이 신문에 게재가 될 때는 선거가 끝나 한국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을 하게 됩니다. K 목사가 받았다는 계시대로 Y 후보가 당선이 되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계시 받은 분이 대통령이 된다고 그분에게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는 무엇일까?
필자가 여기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가 받은 계시가 복음에 무슨 유익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계시는 교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계시를 허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 가운데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죽지만 그 시간과 장소 방법을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자신의 죽음의 시간과 장소 방법을 안다면 그로인한 불안과 공포 두려움으로 잠시도 평안할 삶을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죽음을 비밀에 부치셨습니다. 또 하나는 각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신 겁니다. 그래서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은 알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의 평안과 화평을 위하여 하나님은 알아야 할 것과 알아서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것을 구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숨기신 내용을 특별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알려 주셨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물론 기도를 통하여 그런 계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교회의 덕을 세우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남이 받지 아니한 자신만의 신비로운 체험의 내용을 함부로 말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그 같은 기도의 체험으로 인하여 자칫하다간 영적 교만에 빠질 수도 있으며 주변으로부터 이단자로 정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K 목사님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신학적인 기초가 약한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장자교단의 정통신학교육을 받으셨고, 오래전에 미국에 유학 오시어 미국에서도 공인된 유명한 신학교에서 오랫동안 그 어려운 박사과정을 힘들게 공부하셨던 것을 곁에서 가까이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목양칼럼 # 272 정필도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접하고서!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얼마 전 교계 신문을 인터넷으로 읽다가 부산 수영로교회 설립 목사이셨던 존경하는 정필도 목사님이 82세의 나이로 지난 3월 21일 부산동아대병원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필자가 고 정필도 목사님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1981년 봄으로 41년 전 이었습니다.
교회를 설립하고 몇 개월이 지나지 아니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시던 당시 동양선교교회 협동장로님이셨던 박계로 장로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인 타운에는 지금처럼 한인 교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사위 목사가 Los Angeles를 방문했는데 설교할 교회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목사님으로 부산지역에서 제일가는 교회로 자리하고 있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 장로님이 섬기시는 교회에서도 설교자로 세우심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당시 필자의 교회는 20여명이 모여서 미국인 교회당을 빌려서 그것도 낮 예배를 11시에 드리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미국인 교회가 예배를 마치고 난 오후 1시 반에 주일 낮 예배를 드리던 때 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 강사를 모신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때였습니다. 전화로 부탁하시는 박 장로님에게 교인이 너무 적고 예배 시간도 11시가 아니고 오후 1시 반이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그래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처음으로 외부 설교자를 모시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정 목사님은 예배 시간에 부산에서 교회를 개척하셨을 때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매일 새벽 기도를 마치고 나면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돈 것처럼 교회당 주변 땅을 밟으며 성전의 터를 넓혀 가셨다고 간증하셨습니다.
당시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교회당 건물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정 목사님의 간증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부산 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의 기도도 들으시고 교회 건물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주일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나면 새벽 기도에 참석한 교인들이 교회당 주변을 여리고 성을 도는 것처럼 기도하기를 4년 동안 계속했습니다. 어느 날 미국인 교인들이 우리의 이러한 행동을 보았습니다. 왜 새벽 기도를 한 후 교회당 주변을 도느냐고 물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이 교회당 건물을 우리에게 주시길 기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인 교회도 건물을 매각하고 다른 곳으로 이전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이 되어 양 교회가 건축위원회를 구성하고 매입 절차를 6개월 간 협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스크로를 오픈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우리교회와 같이 작고 힘없는 교회가 어떻게 건물을 살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도 가난하고 장로님도 가난한데 에스크로스가 끝나면 그 많은 다운페이먼트를 누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견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약하고 가난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결국 건축헌금을 작정하는 과정에서 교회가 큰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상당수의 교인들이 교회당 구입을 반대하면서 교회를 떠나갔습니다. 사방에서 교회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당시의 절망감을 무어라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미국교회에 이 같은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난 4 년 동안 성전 건물 주시길 위해서 우리가 반복해서 기도한 것을 외면치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러면 주시리라는 말씀은 진리였습니다. 정필도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한 건물보다 더 좋은 건물과 장소를 예비하시고 기적 같은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건물 구입을 포기하고 두 손을 놓은 지 두 달도 되지 않아서 새 성전으로 입당케하셨습니다. 평강교회가 건물을 구입하는 것은 홍해가 갈라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적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때 정필도 목사님의 간증을 듣지 못했더라면 성전 건물을 위해서 기도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성전 건물의 축복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늘 정 목사님께 받은 은혜를 잊지 못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2022년 3월 22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71 금년에 처음 만난 호랑나비!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지난 주중 햇살이 뜨거워지는 아침에 교회 뜰에서 잔디와 과실 수에 물을 주다가 금년 들어 처음으로 가까이서 살구나무 꽃 위에 자리하고 앉아 있는 호랑나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몸체는 감색으로 진하게 물들어 있었고 넓은 날개는 검은색 결을 따라 크고 작은 백색의 많은 점들이 줄무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교회 주변에 들러선 20여 구루의 과실 수들이 봄을 맞아 저마나 자기의 꽃을 피우니 사방에서 벌들이 날아드는 것을 보지만 호랑나비가 날아든 것은 금년 들어 처음 보았기에 신기하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이를 보면서 하나님이 풀 한 포기 나무 하나를 통해서도 쉬지 않으시고 일하시고 계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잔디에 물을 줄 때도 아무런 생각이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물을 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먹고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메마른 사막이나 황폐한 땅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의, 환경이 보기에 아름답기를 원하시고 우리만 평안한 것이 아니라 들의 풀 한포기도 아름답게 피어나길 원하시며 공중을 나는 새와 땅과 바다에 거하는 모든 생물들이 다 창조함 받은 대로 아름다움을 노래하길 원하십니다.
꽃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벌이 몰려들고 나비들이 떼를 이루며 날아옴같이 주님이 계신 곳에는 목마른 심령들이 달려 나와 복음(말씀의 떡, 생명의 떡)을 통하여 굶주린 영혼들이 배부름을 얻게 하셨습니다. 벌과 나비들을 위하여 꽃을 허락하신 주님이 굶주린 우리를 위하여 몸되신 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벌들이 꽃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은 복의 근원이 되며 축복의 씨앗이 되는 교회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수 없습니다. 시편 1 편 3절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나무의 행복은 시냇가에 심기어질 때입니다. 아무리 심한 가물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아니하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때마다 과실을 맺습니다. 모든 것이 메말라가는 시대에도 생명강 되시는 주님께 믿음의 뿌리를 내리면 나의 삶에 물질이 마르지 아니하게 하십니다. 마음에 기쁨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가정에 웃음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건강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하늘의 소망이 시들 거나 쇠하지 않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계획하지 아니한 것까지라도 주께서 형통케 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이러한 것들을 이미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사람마다 더 큰 행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각자의 수고와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냇가 되신 주님의 몸 되신 교회에 우리의 믿음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내리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마실 우물은 어디에 있을까요? 잠 5:15절에서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은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우리가 섬겨야 할 교회가 아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마다 마실 우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허락받은 자신의 우물을 관리하고 보존하며 그 샘에서 나는 우물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집이 나의 것이 아님 같이 모든 교회가 우리 교회가 아닙니다.
나의 가정, 나의 교회를 주님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나의 행복은 나의 가정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처럼, 나의 영적 기쁨과 충만도 나의 샘 되신 우리 교회를 통하여 공급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제일 좋은 가정은 나의 가정인 것처럼 세상에서 제일 좋은 교회도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022년 3월 17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70 대선에서 당선자를 계시 받았다는 어느 목사님!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3 월 9일 한국에서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가 있기 3 일전인 3 월 6일에 오랫동안 같은 교단을 섬겨왔던 K 목사님이 카톡으로 자신과 사모가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위하여 기도하던중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번 대선에서 당선될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을 알려 주셨다고 하면서 급하게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계시를 받은 것이 이번만이 아니라며 트럼프가 선거에서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도 그가 당선될 것을 많은 사람이 기대하지 못했을 때도 자신은 계시를 통하여 알게 되었고 그 같은 사실을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면서 이번에도 하나님이 알려주셨기에 Y 후보가 당선이 된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 칼럼이 신문에 게재가 될 때는 선거가 끝나 한국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을 하게 됩니다. K 목사가 받았다는 계시대로 Y 후보가 당선이 되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계시 받은 분이 대통령이 된다고 그분에게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는 무엇일까?
필자가 여기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가 받은 계시가 복음에 무슨 유익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계시는 교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계시를 허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 가운데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죽지만 그 시간과 장소 방법을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자신의 죽음의 시간과 장소 방법을 안다면 그로인한 불안과 공포 두려움으로 잠시도 평안할 삶을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죽음을 비밀에 부치셨습니다. 또 하나는 각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신 겁니다. 그래서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은 알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의 평안과 화평을 위하여 하나님은 알아야 할 것과 알아서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것을 구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숨기신 내용을 특별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알려 주셨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물론 기도를 통하여 그런 계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교회의 덕을 세우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남이 받지 아니한 자신만의 신비로운 체험의 내용을 함부로 말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그 같은 기도의 체험으로 인하여 자칫하다간 영적 교만에 빠질 수도 있으며 주변으로부터 이단자로 정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K 목사님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신학적인 기초가 약한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장자교단의 정통신학교육을 받으셨고, 오래전에 미국에 유학 오시어 미국에서도 공인된 유명한 신학교에서 오랫동안 그 어려운 박사과정을 힘들게 공부하셨던 것을 곁에서 가까이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2022년 3월 9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