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지역에서 목회하는 G 목사님이 십 수 년 전에 어느 모임에서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목사님이 섬기시는 P K 교회는 가까운 시일에 부흥회를 할 계획이 없으신가요? 금번에 한국에서 이름 있는 부흥사가 미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이번 기회에 부흥회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이민 교회의 형편상 이름 있는 한국의 부흥강사를 섭외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쉽지 않은데 이번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부흥 강사가 방문하는 시기에 일정만 조정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금번에 오시는 강사님의 명성이 크기에 많은 교회들이 부흥회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저를 위하여 특혜를 주는 것처럼 말을 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의 제의를 받고 허락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생각해 보겠다고 말을 하지도 않고 단번에 그럴 계획이 없다고 거절한 것이다. 그러자 이런 내용의 질문을 하셨다. 지금까지 수십 년을 한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얼마나 많은 부흥회를 해 보았느냐는 것이었다.
또 어느 부흥사를 모셨는가에 대해서 물어 오셨다. 아직까지 부흥회다운 부흥회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고 말을 했더니 그러고도 어떡케 지금까지 교회를 이끌 수 있었느냐고 반문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목사님은 연중행사로 매년 한국에서 부흥사를 초청하여 부흥회를 해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부흥회를 개최하는 것이 목회에 좋은 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부흥회를 개최하고 나면 부흥사로 초청받은 강사 목사님이 답례로 한국에 부흥회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해 준다는 것이었다. 가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목사님도 한국에 매년 나가 부흥회를 하고 온 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왜 나는 지금까지 36년 이상 한 교회를 섬겨오면서 부흥회를 시도해 보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그 분의 말처럼 내가 부흥강사가 되지 아니한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부흥사가 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70년대 후반부터 이민교회에 부흥회가 성황을 이루던 때가 있었다. 당시 명성을 떨치던 부흥사로는 한국에서 온 K목사 L목사 C목사 등이 크게 활동을 하셨다. 필자도 그분들의 부흥회를 빼놓지 않고 따라 다녔다. 한때는 그분들처럼 부흥사가 되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산 기도를 하면서 소나무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해서 그런 기도도 해 보았다.
그러다가 부흥사를 하지 않기로 한 동기가 있었다. 1980년 7 월 팜데일 기도원에서 기도를 할 때였다. 필자가 사용하던 방 맞은편에 당시 400여명의 성도가 모이는 감리교회의 P목사님 부부가 일주일 동안 금식 기도를 하고 계셨다. P 목사님은 40년 동안 사역을 해 오시면서 늘 마음에 부족한 것이 있어 채움 받고자 오셨다고 하셨다.
은퇴를 앞두고 이번이 아니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결단을 하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뜨거운 기도의 체험과 성령의 은사를 받고 싶다고 하셨다” 신유의 은사도 받고 싶고, 방언의 은사도 받고 싶다고 하신 것이다. 일주일 동안 금식을 하면서 기도 했는데도 원하는 은사를 받지 못하셨다.
그런데 마지막 날 이른 새벽에 P 목사님이 떨리는 음성으로 방문을 두드리시며 “나 기도 응답 받았습니다”라며 제 방으로 오셨다. 그리곤 받은 기도의 응답을 이렇게 간증하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 새벽에 기도하는데 비몽사몽간에 예수님이 나타나시어 네가 평생 원하던 것을 받으라고 하시어 두 손을 벌려 내밀었다.
주님이 직접 나타나시어 기도의 응답을 주시리라곤 기대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너무도 놀랍고 기뻐서 주님께 받은 선물을 펴 보는 순간 크게 실망을 하고 말았다. 예수님이 주신 선물은 목사님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두 손안에 있는 것은 공사판에서 쓰다가 버린 녹이 슬어 휘어지고 부러진 몇 개의 못이었다.
이것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여의도 순복음교회 C 목사님처럼 기도할 때마다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설교할 때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 받는 것이며 능력 있는 설교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동안 구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미 너는 복을 받았느니라! 네가 구하던 것들은 지금까지 전하고 설교한 내용들에 비하면 이처럼 쓸모가 없는 것들이니라! 고 하신 것이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잘못 구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주님을 만난 기쁨이 크게 교차하면서 충만한 기쁨 속에 하산을 하셨던 것이다. 그 간증을 들은 필자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큰 은사가 병 고치는 은사가 아니요 능력 행하는 은사가 아니며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환영 받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어 기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종이 되게 해 달라고 구한 것이다. 사는 동안 복음만 전하는 종 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가끔 웃지 못 할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십여 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모임에 집 사람과 함께 참석을 했을 때였습니다. 평소 친분은 없었지만 그 장소에서 마주 친 분이 목사라는 것을 알았지만 목회를 하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특정지역의 선교사로 알려진 분이셨습니다.
마주하게 되어 간단히 목례만 하고 옆으로 지나가려는데 앉은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서더니 필자를 향하여 큰 소리로 화를 내면서 손을 들고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사님! 그럴 수가 있습니까? 사모 장례식에도 참석을 했는데 날 모르십니까? 왜 날 모른 척 하십니까? 참으로 기가 막히고 화가 나는 일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집 사람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이 저를 아는 분이라면 그런 인사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그 분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처럼 그 분도 저를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만 당황한 것이 아니라 곁에 있던 집 사람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도 그 분은 집 사람이 어려운 병으로 오랜 시간 동안 투병 중인 것을 어디선가 듣고 알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생각하길 이 목사의 부인은 더 이상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을 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옆에서 다정하게 자리하고 있는 집 사람을 향하여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공적인 자리에서 그런 돌발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까? 그로인하여 상대방이 얼마나 난처한 입장에 처한다는 것을 알면서 말입니다. 홀로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공적인 장소에 부끄럼 없이 새 여인을 동반하여 나타났냐며 여러 사람들 앞에서 부도덕한 목사로 망신을 줄 각오로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라고 판단되었습니다. 이럴 때 상대방을 향하여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잘 아는 분도 아니고 알고 지내는 사람도 아닙니다. 형제도 아니고 일가친척도 아닙니다. 선후배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 설령 주변에 그런 사람을 알고 있어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더라면 조용한 자리로 따로 불러서 말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생각이 있는 사는 사람이라면 나에게만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부인 앞에서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났습니다. 세상에 별일도 다 보게 되었습니다.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몰상식한 사람에게 면박을 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확인도 아니 하고 분명하지도 않은 일에 대하여 그토록 분을 발하는 것은 최소한의 인격을 갖추어야할 목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로 어떻게 상대방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겠습니까? 바른 자세로 정색을 하고서 그렇게 말하는 분을 향하여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저희 집 사람인데요! 집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을 하셨다고요! “언제 어디에서!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물론 그 말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터무니없는 말로 무모한 공격을 가하는 상대방을 향하여 반격하자 양심에 찔림을 받았는지 상대방의 얼굴이 금방 빨개졌습니다.
기본 소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부끄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게만 아니라 옆에 있는 집 사람에게도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 분은 그런 인사도 없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는 동작으로 사과의 말 한마디도 없이 급하게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인사를 받은 일도 있습니다. 저와 같은 이름의 목사님이 같은 지역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동명이인입니다. 그 목사님의 사모님이 오랜 투병을 하시다가 수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 부고가 필자와 같은 이름으로 일간 신문 광고란에 올랐습니다. 이를 본 저를 아는 많은 분들이 사방에서 전화로 위로의 인사를 주셨습니다. 전화뿐 아니라 카톡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내용을 여러 개 받았습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집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황당한 인사를 받는 것을 보니 당신은 오래 살 것 같아요!
지난 해 집 뜰에서 딴 늙은 여러 개의 호박 가운데 잘 생긴 것 하나를 깨트려 씨앗을 꺼내 말렸다가 이른 봄에 여러 곳에 심고 이 중에 과연 몇 개나 싹을 피울수 있을까 염려 반 기대반 고대하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물을 뿌리곤 했었다. 놀랍게도 뿌려 진 씨앗 가운데 나지 않은 것은 없었다. 호박씨앗의 강한 생명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뜰에는 여러 종류의 꽃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호박꽃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은 나에게 창조의 원리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매년 반복해서 호박꽃을 볼 때마다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은 암꽃이 아니다. 수꽃이 먼저 피어나는 것이다. 암꽃보다도 수꽃의 숫자가 현저하게 더 많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셨을 때도 여자를 먼저 만드시지 않으셨다. 남자 아담을 만드셨다.
그렇기 때문에 호박꽃이 피어날 때에 암꽃부터 피지 아니하고 창조의 질서대로 수꽃이 먼저 피어난 후에 암꽃이 따라 피어나게 되는 것이다. 뜰에 호박의 수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이제 한 주일이 지나면 암꽃이 피어날 것이고 그 꽃이 피기 시작하면 겨울 내내 볼 수 없었던 벌들이 날아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또 한두 주일이 지나면 기다리던 금년의 호박을 수확할 것이고 계절 탓에 한 동안 잃었던 입맛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빠르게 성장하는 호박을 바라보면서 고전 3장 6-8절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가 주님의 교회를 향하여 씨앗을 심는 심정으로 충성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기 때문이다.
기도한대로 응답받게 하신다. 우리가 심는 것은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로 축복하시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나온 삶을 돌아 볼 때에 나의 수고와 노력으로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복된 가정, 성공한 자녀들로 자라나게 하셨다.
생각하고 계획한 것 이상으로 복에 복을 더하셨다. 60중반을 넘어 70을 향하여 달려가는 나의 삶을 돌아 볼 때에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선하신 주님의 은혜이심을 생각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광야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뜰, 좋은 땅에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허락하시고 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끊임없이 공급하시는 나의 주님을 그래서 오늘도 변함없이 힘써 찬송 드리길 원하는 것이다.
“좋은 강사님이 계신데 부흥회를 하시겠습니까!”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동일한 지역에서 목회하는 G 목사님이 십 수 년 전에 어느 모임에서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목사님이 섬기시는 P K 교회는 가까운 시일에 부흥회를 할 계획이 없으신가요? 금번에 한국에서 이름 있는 부흥사가 미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이번 기회에 부흥회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이민 교회의 형편상 이름 있는 한국의 부흥강사를 섭외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쉽지 않은데 이번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부흥 강사가 방문하는 시기에 일정만 조정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금번에 오시는 강사님의 명성이 크기에 많은 교회들이 부흥회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저를 위하여 특혜를 주는 것처럼 말을 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의 제의를 받고 허락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생각해 보겠다고 말을 하지도 않고 단번에 그럴 계획이 없다고 거절한 것이다. 그러자 이런 내용의 질문을 하셨다. 지금까지 수십 년을 한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얼마나 많은 부흥회를 해 보았느냐는 것이었다.
또 어느 부흥사를 모셨는가에 대해서 물어 오셨다. 아직까지 부흥회다운 부흥회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고 말을 했더니 그러고도 어떡케 지금까지 교회를 이끌 수 있었느냐고 반문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목사님은 연중행사로 매년 한국에서 부흥사를 초청하여 부흥회를 해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부흥회를 개최하는 것이 목회에 좋은 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부흥회를 개최하고 나면 부흥사로 초청받은 강사 목사님이 답례로 한국에 부흥회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해 준다는 것이었다. 가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목사님도 한국에 매년 나가 부흥회를 하고 온 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왜 나는 지금까지 36년 이상 한 교회를 섬겨오면서 부흥회를 시도해 보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그 분의 말처럼 내가 부흥강사가 되지 아니한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부흥사가 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70년대 후반부터 이민교회에 부흥회가 성황을 이루던 때가 있었다. 당시 명성을 떨치던 부흥사로는 한국에서 온 K목사 L목사 C목사 등이 크게 활동을 하셨다. 필자도 그분들의 부흥회를 빼놓지 않고 따라 다녔다. 한때는 그분들처럼 부흥사가 되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산 기도를 하면서 소나무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해서 그런 기도도 해 보았다.
그러다가 부흥사를 하지 않기로 한 동기가 있었다. 1980년 7 월 팜데일 기도원에서 기도를 할 때였다. 필자가 사용하던 방 맞은편에 당시 400여명의 성도가 모이는 감리교회의 P목사님 부부가 일주일 동안 금식 기도를 하고 계셨다. P 목사님은 40년 동안 사역을 해 오시면서 늘 마음에 부족한 것이 있어 채움 받고자 오셨다고 하셨다.
은퇴를 앞두고 이번이 아니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결단을 하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뜨거운 기도의 체험과 성령의 은사를 받고 싶다고 하셨다” 신유의 은사도 받고 싶고, 방언의 은사도 받고 싶다고 하신 것이다. 일주일 동안 금식을 하면서 기도 했는데도 원하는 은사를 받지 못하셨다.
그런데 마지막 날 이른 새벽에 P 목사님이 떨리는 음성으로 방문을 두드리시며 “나 기도 응답 받았습니다”라며 제 방으로 오셨다. 그리곤 받은 기도의 응답을 이렇게 간증하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 새벽에 기도하는데 비몽사몽간에 예수님이 나타나시어 네가 평생 원하던 것을 받으라고 하시어 두 손을 벌려 내밀었다.
주님이 직접 나타나시어 기도의 응답을 주시리라곤 기대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너무도 놀랍고 기뻐서 주님께 받은 선물을 펴 보는 순간 크게 실망을 하고 말았다. 예수님이 주신 선물은 목사님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두 손안에 있는 것은 공사판에서 쓰다가 버린 녹이 슬어 휘어지고 부러진 몇 개의 못이었다.
이것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여의도 순복음교회 C 목사님처럼 기도할 때마다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설교할 때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 받는 것이며 능력 있는 설교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동안 구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미 너는 복을 받았느니라! 네가 구하던 것들은 지금까지 전하고 설교한 내용들에 비하면 이처럼 쓸모가 없는 것들이니라! 고 하신 것이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잘못 구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주님을 만난 기쁨이 크게 교차하면서 충만한 기쁨 속에 하산을 하셨던 것이다. 그 간증을 들은 필자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큰 은사가 병 고치는 은사가 아니요 능력 행하는 은사가 아니며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환영 받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어 기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종이 되게 해 달라고 구한 것이다. 사는 동안 복음만 전하는 종 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762
사모 장례식에도 참석했는데 날 모르십니까?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살아가다 보면 가끔 웃지 못 할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십여 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모임에 집 사람과 함께 참석을 했을 때였습니다. 평소 친분은 없었지만 그 장소에서 마주 친 분이 목사라는 것을 알았지만 목회를 하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특정지역의 선교사로 알려진 분이셨습니다.
마주하게 되어 간단히 목례만 하고 옆으로 지나가려는데 앉은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서더니 필자를 향하여 큰 소리로 화를 내면서 손을 들고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사님! 그럴 수가 있습니까? 사모 장례식에도 참석을 했는데 날 모르십니까? 왜 날 모른 척 하십니까? 참으로 기가 막히고 화가 나는 일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집 사람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이 저를 아는 분이라면 그런 인사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그 분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처럼 그 분도 저를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만 당황한 것이 아니라 곁에 있던 집 사람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도 그 분은 집 사람이 어려운 병으로 오랜 시간 동안 투병 중인 것을 어디선가 듣고 알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생각하길 이 목사의 부인은 더 이상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을 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옆에서 다정하게 자리하고 있는 집 사람을 향하여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공적인 자리에서 그런 돌발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까? 그로인하여 상대방이 얼마나 난처한 입장에 처한다는 것을 알면서 말입니다. 홀로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공적인 장소에 부끄럼 없이 새 여인을 동반하여 나타났냐며 여러 사람들 앞에서 부도덕한 목사로 망신을 줄 각오로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라고 판단되었습니다. 이럴 때 상대방을 향하여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잘 아는 분도 아니고 알고 지내는 사람도 아닙니다. 형제도 아니고 일가친척도 아닙니다. 선후배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 설령 주변에 그런 사람을 알고 있어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더라면 조용한 자리로 따로 불러서 말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생각이 있는 사는 사람이라면 나에게만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부인 앞에서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났습니다. 세상에 별일도 다 보게 되었습니다.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몰상식한 사람에게 면박을 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확인도 아니 하고 분명하지도 않은 일에 대하여 그토록 분을 발하는 것은 최소한의 인격을 갖추어야할 목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로 어떻게 상대방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겠습니까? 바른 자세로 정색을 하고서 그렇게 말하는 분을 향하여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저희 집 사람인데요! 집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을 하셨다고요! “언제 어디에서!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물론 그 말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터무니없는 말로 무모한 공격을 가하는 상대방을 향하여 반격하자 양심에 찔림을 받았는지 상대방의 얼굴이 금방 빨개졌습니다.
기본 소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부끄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게만 아니라 옆에 있는 집 사람에게도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 분은 그런 인사도 없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는 동작으로 사과의 말 한마디도 없이 급하게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인사를 받은 일도 있습니다. 저와 같은 이름의 목사님이 같은 지역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동명이인입니다. 그 목사님의 사모님이 오랜 투병을 하시다가 수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 부고가 필자와 같은 이름으로 일간 신문 광고란에 올랐습니다. 이를 본 저를 아는 많은 분들이 사방에서 전화로 위로의 인사를 주셨습니다. 전화뿐 아니라 카톡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내용을 여러 개 받았습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집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황당한 인사를 받는 것을 보니 당신은 오래 살 것 같아요!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704
뒤뜰에 핀 아름다운 호박꽃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지난 해 집 뜰에서 딴 늙은 여러 개의 호박 가운데 잘 생긴 것 하나를 깨트려 씨앗을 꺼내 말렸다가 이른 봄에 여러 곳에 심고 이 중에 과연 몇 개나 싹을 피울수 있을까 염려 반 기대반 고대하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물을 뿌리곤 했었다. 놀랍게도 뿌려 진 씨앗 가운데 나지 않은 것은 없었다. 호박씨앗의 강한 생명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뜰에는 여러 종류의 꽃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호박꽃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은 나에게 창조의 원리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매년 반복해서 호박꽃을 볼 때마다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은 암꽃이 아니다. 수꽃이 먼저 피어나는 것이다. 암꽃보다도 수꽃의 숫자가 현저하게 더 많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셨을 때도 여자를 먼저 만드시지 않으셨다. 남자 아담을 만드셨다.
그렇기 때문에 호박꽃이 피어날 때에 암꽃부터 피지 아니하고 창조의 질서대로 수꽃이 먼저 피어난 후에 암꽃이 따라 피어나게 되는 것이다. 뜰에 호박의 수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이제 한 주일이 지나면 암꽃이 피어날 것이고 그 꽃이 피기 시작하면 겨울 내내 볼 수 없었던 벌들이 날아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또 한두 주일이 지나면 기다리던 금년의 호박을 수확할 것이고 계절 탓에 한 동안 잃었던 입맛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빠르게 성장하는 호박을 바라보면서 고전 3장 6-8절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가 주님의 교회를 향하여 씨앗을 심는 심정으로 충성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기 때문이다.
기도한대로 응답받게 하신다. 우리가 심는 것은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로 축복하시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나온 삶을 돌아 볼 때에 나의 수고와 노력으로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복된 가정, 성공한 자녀들로 자라나게 하셨다.
생각하고 계획한 것 이상으로 복에 복을 더하셨다. 60중반을 넘어 70을 향하여 달려가는 나의 삶을 돌아 볼 때에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선하신 주님의 은혜이심을 생각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광야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뜰, 좋은 땅에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허락하시고 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끊임없이 공급하시는 나의 주님을 그래서 오늘도 변함없이 힘써 찬송 드리길 원하는 것이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