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축도는 두 번하지 않습니다!

지난 6월 25일 오전 카타리나 섬으로 회사 직원들과 함께 낚시하러 갔다가 강한 파도에 휩쓸려 타고 있던 작은 배가 뒤집어져 함께 타고 있던 7명중 현장에서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망자 중에는 필자와 오랫동안 교제를 이어온 고 박영준 집사님(사장)이 있었습니다.

고인의 94세 되시는 어머니 권사님이 우리 교회 교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자녀 중 어머니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큰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한 관계로 고인의 가족과 인연을 맺어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교회에 특별 행사가 있을 때에는 교회 행사에 참석한 적도 몇 번 있었습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에는 카톡으로 “가까운 시일에 가족을 데리고 어머니 교회에 한번 가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았습니다. 20여 년 동안 교제를 이어오면서 약속을 중히 여기시는 분으로 한 번도 실없는 말을 한 적이 없으셨기에 예배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가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하나님께로 보내는 교회묘지에서의 고별 예배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고인의 사고 소식을 들은 것은 사고 다음 날인 주일 오전 8시였습니다. 교회에 한 번도 빠진 일이 없으신 어머니 권사님이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예배에 참석치 못하셨습니다. 그 날 오후 5시에 무거운 마음으로 권사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어머니 권사님과 며느리 권사님을 어떻게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권사님 댁을 향하는 내내 답답하고 가슴 아픔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필자를 맞이하기 위하여 누워있던 어머니 권사님이 방에서 나오시는데 그 얼굴이 이전에 보지 못하던 얼굴이었습니다. 몸은 가누기 힘든 정도로 가까스로 서 계셨습니다.

그런 권사님을 부둥켜안고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권사님의 집에는 사고 소식을 듣고 고인의 친지와 유족들이 많이 와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며느리 권사님의 곡소리가 모인 모두를 슬프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슬픈 여인의 울음소리는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컥컥하는 숨이 넘어가는 듯 하는 고통 소리와 함께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며느리 권사님의 울음소리는 한 동안 그치지 않았습니다. 고인이 섬기던 교회의 교인들도 와 있기에 기도하자는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어머니 권사님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려 하자 며느리 권사님이 필자에게 다가와 남편의 마지막 가는 고별예배에 축도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장례식은 금요일 오후 Rose Hills Memorial Park의 Sky Chapel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고서 수많은 조객들과 많은 조화들을 보면서 고인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착석한 장례식 중 그렇게 많은 조화는 처음이었습니다. 고별예배의 집례는 고인이 출석하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하셨습니다. 예배의 모든 순서가 끝나고 마지막 찬송을 하는 시간입니다. 찬송이 끝나면 필자가 축도를 하므로 예배를 마치게 됩니다. 찬송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필자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축도를 하기 위하여 강단 앞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강단 앞에는 집례좌와 둘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찬송이 끝나면 곧 바로 축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집례하시는 목사님과 찬송을 하면서 서로 목례도 나누었습니다. 집례하시는 목사님은 매 순서마다 맡으신 분들을 소개하면서 순서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찬송이 끝나면 PK교회 000목사님이 축도하시겠습니다”라는 소개를 할 줄 알았는데 말이 없는 겁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집례하시는 목사님이 축도를 하고 계신 겁니다. 축도를 마치고 나서야 집례하신 목사님이 실수한 것을 아시고 제게 말하시길 죄송합니다라고 하시면서 강단을 빗겨서시며 000목사님이 축도하시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경건하고 위로 받는 예배를 마무리 하는 순간에 강단에 선 저는 잠시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집례 자가 축도를 해 버렸는데 내가 다시 축도를 한다면 앞에 한 축도는 무엇이고 내가 하는 축도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인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축도를 다시 하길 기다리는 모든 조객들 앞에서 이런 말로 예배를 마무리 했던 것입니다.

“고별예배는 마쳤습니다. 축도는 두 번하지 않습니다. 금요일 오후 시간에 원근각처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유가족을 위로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031

“이런 인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10여 년 전부터 담당 의사로부터 건강에 대한 경고를 들어왔기에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유산소 운동을 통하여 땀 흘리는 운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필자가 하는 운동은 테니스장에서 족구를 하는 것입니다. 낮에는 남가주의 태양 빛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밤 8시부터 2시간 여 동안 일주일에 두 세 차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속해 있는 족구 동호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분들은 10여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교인들로 시작한 것이 발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 년에 전부터 젊은 목사님들이 단체로 우리 모임에 참여하고 있으십니다. 운동을 위해서 모였다가도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기가 바쁘기 때문에 서로 통 성명을 할 기회도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느 분이 목사님이라는 것만 알 정도로 만나면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지난 2월 7일 일요일 밤 8시 모임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시간이면 10명의 회원들이 모이는데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을 해서 의자에서 앉자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목사님 그룹의 회원들이 구장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 중 한 젊은 목사님이 제가 앉아 있는 긴 의자 앞으로 다가오더니 “목사님께 세배 드리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할 때가지만 해도 다음 날이 구정이기에 말로서 구정 인사를 하는 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로만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멘트 운동장에 낮은 자세를 취하고 엎드려서 큰절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뜻밖이고 예상치 못한 일이라 놀라서 저도 엉겁결에 땅 바닥에 엎드려서 맞절을 하고서 “이런 인사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공개된 그리고 운동장에서 어떻게 엎드리어 절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적어도 세배를 주고받을 정도이면 당사자 간에 충분한 교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서로가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세배를 주고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모두가 보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같은 목사님으로서 다른 목사에게 세배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목사이지만 나도 다른 선배 목사님에게 세배를 드려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함께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서 손을 맞잡고 서로의 힘을 의지하여 일어섰습니다. 이를 지켜본 주변의 목사님들은 박수를 쳤지만 지금도 왜 내가 그런 세배를 받아야 했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 목사님의 이름도 모르고 섬기시는 교회 이름도 모릅니다. 다만 그 목사님에게 무안한 존경을 보내면서 그 목사님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슨 연유로 세배를 하게 되었는지? 나 말고도 함께 하시는 동료 목사님들 중에 나이 드신 목사님도 계셨는데 왜 그 분에게는 그런 세배를 드리지 아니하고 유독 나에게만 세배를 한 것인지? 나에 대해서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들으셨기에 세배를 하게 되었는지? 한번은 만나서 함께 식사를 대접하며 꼭 물어보고 싶습니다. 세배를 받고나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분명하게 생각이 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보통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그 목사님이 나보다 훌륭하신 목사님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배를 받은 나보다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낮은 자세로 세배하신 목사님의 인품이 한없이 높아 보였던 것입니다. 나도 하지 못하는 그런 일을 하신 겁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목사님에게 받은 세배는 이번이 두 번째 이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 부 교역자로 10여간 크게 수고 하셨던 P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20여 년 전에 이곳을 떠나 부모님이 계신 뉴욕으로 이주 하시어 그곳에서 교회를 개척하시다가 다시 LA 오셨습니다.

이곳으로 오셨다는 말을 전해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당시 월요일마다 7명의 목사님들이 기도회를 정기적으로 마치고 나면 타운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그 때 식당에서 7명의 목사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뉴욕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P 목사님이 식당 안으로 들어오시다가 제가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P 목사님은 식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 자리에서 제가 앉은 식탁을 향하여 큰 절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놀라서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나 목사님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그 때 한 말은 “이런 인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때도 P 목사님이 예사로운 목사님이 아니시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003

어느 노 장로님의 가슴 아픈 사연

같은 교회를 섬기지는 않지만 십여 년 동안 필자와 함께 어느 기독교 단체를 섬겨오면서 꾸준하게 교제를 이어가고 있는 장로님이 계십니다. 특별히 필자가 교제를 나누는 기독인 중 귀하게 여기고 몇 안 되는 존경하는 장로님 중 한분이십니다. 이민을 오기 전 한국에서는 교육계에 평생을 몸담아 오셨습니다.

그런데 년 초부터 매주 월요일에 모임을 갖는 정기모임에 참석을 하지 못하시는 겁니다.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변함없이 그 시간 그 장소에 늘 계셨던 장로님과 권사님이셨습니다. 우리의 모임이 계속된 어려움에서도 지금까지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장로님과 권사님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간간히 모임에 나타나기도 하셨습니다만 지난 2-3개월 전부터는 전혀 참석치 못하고 계십니다. 이유는 부인 권사님의 병 때문이었습니다. 권사님은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처음에는 심하지 아니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급격하게 발전하여 지금은 가족도 남편도 알아보지를 못하시는 겁니다.

부인의 예기치 못한 질병으로 행복하던 가정의 평안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기치 못한 충격적인 일로 장로님의 여유롭던 삶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평생 동안 부인의 사랑을 받아오시던 장로님이 이제는 부인을 아기처럼 돌보며 어머니의 심정으로 섬겨야만 하시는 겁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더 깊은 수렁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습니다. 매일 매 순간 반복되는 고통과 아픔에서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권사님이 앓고 있는 치매가 환자 본인만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자녀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잠시일 뿐입니다. 부인 권사님을 위해서 마음 뿐 아니라 온 몸으로 희생을 해야 하는 것이 장로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식사를 준비하는 일, 집안의 청소, 몸을 닦고 머리를 손질하는 것까지도, 심지어 부인이 입는 옷 양발까지도 장로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밖으로 나갈 때는 잠시도 홀로 둘 수가 없습니다. 방향감각을 잃어 가던 길을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그 일로 장로님의 삶은 없어졌습니다. 그 좋아하시던 골프장에도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일 전 만난 장로님은 필자에게 여러 가지 많은 일 가운데서 가장 힘들고 아프게 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아픔을 호소하고 계셨습니다.

목사님! 어쩌면 좋습니까? 이제는 날 알아보지도 못합니다. 더 기막힌 것은 수일 전부터 부인이 강력하게 반복해서 요구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편 000장로님을 빨리 자기 앞으로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내가 평생을 살았는데 어떻게 나를 버리고 도망을 갈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의 남편이라고 아무리 강조해서 말을 해도 아니라는 겁니다. 당신은 내 남편이 나와 함께 살라고 보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 없이 갑자기 곁을 떠난 남편을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번은 만나서 직접 나를 버리고 떠나간 이유를 들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무슨 말로 이해를 시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장로님이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부인의 질병으로 예기치 못한 많은 어려운 중에도 기억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픔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기도해 주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기도해 주신 것 감사하지만 더 기도 부탁을 드립니다.

돌아서시는 장로님의 뒷모습이 얼마나 힘없어 보이시며 슬퍼 보이셨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장로님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반가운 인사를 하시며 맞아 주시던 예전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장로님을 보내는 나의 마음도 편치가 않았습니다.

왜 우리는 이런 아픔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구보다도 교회와 주님을 사랑했으며 그토록 충성하시던 장로님 권사님이셨는데! 그러다가 주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계시록 2장10절의 말씀입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우리가 사단의 공격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케 하시기 위함이며 이를 통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하심입니다. 장로님 이 말씀으로 인내하시고 승리하세요!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