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시는 P 목사님이 오후 예배시 강단에서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 왜 신발을 벗으시고 설교하시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구도 그런 질문을 내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니 설교할 때 신발을 벗고 설교한지가 햇수로는 25-26년 이상 되었습니다.
필자가 설교시 신발을 벗은 것을 장로님들과 동역자만이 아는 것은 설교하기 위하여 강단에 설 때 교인들은 나의 발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낮 예배는 위 강단에서 설교를 하고 오후 예배나, 수요예배, 그리고 금요 기도회 때에는 아래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데 교인들과 거리가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나무로 만들어진 강단이 앞을 가려 나의 발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을 받고서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배 때 마다 신발을 벗고 설교하는 것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신발을 벗고 설교를 시작한 것은 1989년 성지를 여행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이집트에서 시작하여 출애굽 여정을 따라 시내산 정상을 오르고 나서 산 아래 호렙산에 있는 모세의 우물과 그 옆에 있는 떨기나무를 방문했었습니다. 처음 성지를 방문 했을 때만해도 떨기나무 잎을 손으로 만져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잎 10여개를 따 가지고 와 교회 앞에 공개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15년 전에 두 번째 성지를 방문했을 때는 그 떨기나무에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닭장을 치듯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도록 떨기나무에 울타리를 둘렀던 것입니다. 첫 번 여행 때 안내자는 떨기나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 했습니다. 지구상에서 이 나무가 존재하는 곳은 그곳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떨기나무만을 남겨두신 이유는 이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모세의 만남을 기념케 하시기 위함일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에 그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모세가 어찌하여 떨기나무가 타지 아니하는가 하고 이상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광야 40년의 도피 생활 중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존귀하게 쓰임 받는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지를 여행할 때마다 받는 은혜와 감동이 너무나 많습니다. 함께 여행하는 일행 중에는 이 비싼 돈 들여서 이 고생을 하러 왔는가라고 원망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지여행은 관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확인하는 여행입니다. 주님의 사역의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정말로 감동의 연속이며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은 성지 여행을 통하여 기독교가 역사적인 종교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지를 처음 다녀와서 강단에 설 때마다 광야에서 모세를 부르셨던 하나님의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 부터인가 설교할 때에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렇지 지금 내가 선 곳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구별된 곳이니 나도 신발을 벗고서 설교를 하자고 생각하고서 시작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신발을 신고 설교할 때보다 마음이 편하여 지는 것입니다.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셨던 하나님이 연상 되면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며 하감하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신전의식이라고 할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생각이 이르자 설교할 때 단어하나도 속된 말이나 천한 말을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도 이런 감동이 늘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신발을 벗고 설교한지가 25-26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단을 맡기신 지는 36년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동안 강단에 설 때마다 이런 나의 설교 습관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같은 지역에 사시기 때문에 만나면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는 동내 어른이 계십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인사차 선물을 주시는데 붉은색 사각형 상자 안에 담기어진 양주를 필자에게 선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목사님! 피곤하실 때에 한 잔씩 잡수세요! 피곤이 풀리실 겁니다”라고 하시면서 허리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하시는 겁니다.
선물을 받으면서 “나는 술을 하지 않습니다. 술을 먹지 못합니다. 한 번도 이런 것을 마셔보지 못했습니다. 아시는 대로 나는 목사입니다. 그러니 이 선물을 사양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80 중반이 넘으신 동네 할머님이 필자를 생각하고서 나름대로 정성스러운 선물을 한 것이기에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주시는 대로 받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선물을 받아 보았지만 이런 선물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선물을 받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술과 담배를 파는 장사들이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을뿐더러 술과 마약 그리고 도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소유하고 번창하는 것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그런 영업이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60여 생애를 살아오면서 담배와 술 그리고 도박에 사용된 돈이 1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도박을 하지 않는 이유는 믿었던 교인 중 여러 명이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가정이 파탄 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도박을 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교회의 중직 자가 도박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도박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인생을 처절하게 망가지게 하는 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만류도 해 보고 권면도 해 보고 도박의 늪에서 구해내기 위하여 저들과 싸워 보기도 했지만 모두가 소용이 없었습니다.
쇠귀에 경 읽기 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았던 믿음도 신앙도 한 순간에 헌신짝처럼 벗어 던져 버리는 것을 보면서 얻은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세상에는 술을 안 먹는 사람보다는 먹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고 담배도 안 피우는 사람보다는 피우는 사람이 더 많으며 도박을 하는 사람도 안하는 사람보다 더 많으며 마약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나는 저 사람들과 다른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나는 술을 먹지 못하는가? 그 많은 술 선전과 거리에 늘어선 술집 광고를 보면서도 유혹을 받지 않았던 것일까? 왜 나는 도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일까? 왜 나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제가 믿었던 교우 중에 몇 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Y 장로님, L 권사님, B 집사님, K 집사님, Y 집사님! 위의 분들은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 한 때 참으로 귀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크게 받으셨던 분들이셨습니다. 세상에서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성공하셨던 분들이었습니다. 교회의 충성된 제직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박으로 받은바 은혜와 축복을 사단에게 탈취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많은 재산을 다 탕진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교회를 사랑했고 충성했었던 모든 공력이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교회 나타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들의 황폐된 가정 그리고 후손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픔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떠나 세상 쾌락의 죄악에 묻혀 산 결과가 이렇게 무서운 것임을 보면서 죄의 결과는 세상에서만 아니라 우리의 구원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술과 도박 마약의 유혹에서 벗어난 것은 오직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와 축복의 결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가주에 엘니뇨현상으로 집중 폭우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연일 뉴스를 통하여 발표되고 있기에 하루라도 빨리 지붕공사를 하기 위하여 지난 수개월 동안 업자를 수소문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인즉 예배처소로 사용하는 건물의 전체 지붕을 새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공사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에 지붕 공사를 한 것은 10여 년 전이기에 전체적인 공사가 필요치 아니했고 다만 누수 되는 부분을 공사하길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업체에서 교회 일에 선뜻 나서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변에서 소개 받은 25년 경력의 전문 루핑회사 사장님이 교회를 방문한 것입니다.
남가주의 루핑업계는 지금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일손이 모자랄 정도로 분주합니다. 그로인하여 우리가 원하는 때에 공사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만 금번에 공사를 하신 분은 교회 지붕 상태를 점검하고 나서 폭우를 대비해 신속하게 공사를 하기 위하여 다른 일정을 조종해 가면서 지난 12월 31일과 1월 2일에 걸쳐서 공사를 했습니다.
일을 하시면서 2015년의 마지막 날 일을 교회 일로 마무리하고 2016년의 시작을 교회일로 시작하게 되어 기쁘다고 하셨습니다. 그 인품과 말에 감동이 되어 예사로운 분 같지 않다는 생각에 혹시 교회 장로님이 아니시냐고 물었더니 집사라고 말을 하셨습니다.
지붕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붕 한 편 구석진 그늘에서 비둘기 둥지가 발견된 것입니다. 제비집 보다 조금 큰 것으로 나뭇가지로 엮어진 둥지였습니다. 그 안에는 평생처음 보는 백색의 아름다운 비둘기 알이 있었습니다. 어미 비둘기가 알을 품고 있다가 갑작스런 인기척에 놀라 달아난 것입니다.
일하는 인부들이 그 상황을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사장에게 보고했고 사장은 이를 확인한 후 일을 중단시키고 필자에게 다가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오늘은 일을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있기에 그 상태로 일을 진행하면 둥지에 있는 비둘기 알이 죽어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붕 공사에 사용되는 재료가 고무로 된 재질이어서 그것을 강한 불로 열을 가한 후 덮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두 시간만 더 하면 일이 마무리 되는데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니 그런 말을 듣는 저로서는 황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일 후부터 남가주에 큰 폭우가 온다는 예보가 있기에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마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10여일이 지나면 비둘기가 부화하여 날아갈 것이기 때문에 2주일 후에 다시 와서 미진한 부분의 공사를 마무리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사장까지 4 명이었습니다. 한 두 시간이면 마무리 할 수 있는 일을 비둘기 알 때문에 중단하고 2주후에 다시 오면 루핑회사로서도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은 그런 결정을 한 것입니다.
나는 그 결정을 보고 받고서 작은 생명 하나에게까지 세심한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것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만일 일하는 분들이 둥지의 비둘기 알을 발견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것을 발견했다면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것을 발로 걷어 차 버렸거나 아니면 빗자루로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서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그 동안 비둘기로 인한 어려움을 당해 왔었습니다. 교회당 지붕은 비둘기들의 집합장소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생겨나는 쓰레기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더운 여름철에는 열려진 교회당 2층 창문을 통하여 숨어든 비둘기로 인하여 소란을 피운 일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하찮은 작은 생명까지도 함부로 대하지 아니하고 깊은 배려를 베푸시는 루핑회사 사장님께 머리가 숙어지는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시간적 물질적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시는 K 사장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1-16 00:17:322020-01-16 00:17:32둥지에 알을 품은 비둘기를 보셨나요?
강단에서 신발을 벗고 설교하는 이유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얼마 전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시는 P 목사님이 오후 예배시 강단에서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 왜 신발을 벗으시고 설교하시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구도 그런 질문을 내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니 설교할 때 신발을 벗고 설교한지가 햇수로는 25-26년 이상 되었습니다.
필자가 설교시 신발을 벗은 것을 장로님들과 동역자만이 아는 것은 설교하기 위하여 강단에 설 때 교인들은 나의 발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낮 예배는 위 강단에서 설교를 하고 오후 예배나, 수요예배, 그리고 금요 기도회 때에는 아래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데 교인들과 거리가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나무로 만들어진 강단이 앞을 가려 나의 발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을 받고서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배 때 마다 신발을 벗고 설교하는 것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신발을 벗고 설교를 시작한 것은 1989년 성지를 여행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이집트에서 시작하여 출애굽 여정을 따라 시내산 정상을 오르고 나서 산 아래 호렙산에 있는 모세의 우물과 그 옆에 있는 떨기나무를 방문했었습니다. 처음 성지를 방문 했을 때만해도 떨기나무 잎을 손으로 만져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잎 10여개를 따 가지고 와 교회 앞에 공개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15년 전에 두 번째 성지를 방문했을 때는 그 떨기나무에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닭장을 치듯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도록 떨기나무에 울타리를 둘렀던 것입니다. 첫 번 여행 때 안내자는 떨기나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 했습니다. 지구상에서 이 나무가 존재하는 곳은 그곳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떨기나무만을 남겨두신 이유는 이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모세의 만남을 기념케 하시기 위함일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에 그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모세가 어찌하여 떨기나무가 타지 아니하는가 하고 이상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광야 40년의 도피 생활 중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존귀하게 쓰임 받는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지를 여행할 때마다 받는 은혜와 감동이 너무나 많습니다. 함께 여행하는 일행 중에는 이 비싼 돈 들여서 이 고생을 하러 왔는가라고 원망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지여행은 관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확인하는 여행입니다. 주님의 사역의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정말로 감동의 연속이며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은 성지 여행을 통하여 기독교가 역사적인 종교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지를 처음 다녀와서 강단에 설 때마다 광야에서 모세를 부르셨던 하나님의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 부터인가 설교할 때에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렇지 지금 내가 선 곳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구별된 곳이니 나도 신발을 벗고서 설교를 하자고 생각하고서 시작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신발을 신고 설교할 때보다 마음이 편하여 지는 것입니다.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셨던 하나님이 연상 되면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며 하감하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신전의식이라고 할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생각이 이르자 설교할 때 단어하나도 속된 말이나 천한 말을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도 이런 감동이 늘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신발을 벗고 설교한지가 25-26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단을 맡기신 지는 36년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동안 강단에 설 때마다 이런 나의 설교 습관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780
평생처음 선물 받은 Chivas Regal 12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같은 지역에 사시기 때문에 만나면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는 동내 어른이 계십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인사차 선물을 주시는데 붉은색 사각형 상자 안에 담기어진 양주를 필자에게 선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목사님! 피곤하실 때에 한 잔씩 잡수세요! 피곤이 풀리실 겁니다”라고 하시면서 허리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하시는 겁니다.
선물을 받으면서 “나는 술을 하지 않습니다. 술을 먹지 못합니다. 한 번도 이런 것을 마셔보지 못했습니다. 아시는 대로 나는 목사입니다. 그러니 이 선물을 사양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80 중반이 넘으신 동네 할머님이 필자를 생각하고서 나름대로 정성스러운 선물을 한 것이기에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주시는 대로 받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선물을 받아 보았지만 이런 선물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선물을 받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술과 담배를 파는 장사들이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을뿐더러 술과 마약 그리고 도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소유하고 번창하는 것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그런 영업이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60여 생애를 살아오면서 담배와 술 그리고 도박에 사용된 돈이 1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도박을 하지 않는 이유는 믿었던 교인 중 여러 명이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가정이 파탄 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도박을 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교회의 중직 자가 도박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도박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인생을 처절하게 망가지게 하는 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만류도 해 보고 권면도 해 보고 도박의 늪에서 구해내기 위하여 저들과 싸워 보기도 했지만 모두가 소용이 없었습니다.
쇠귀에 경 읽기 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았던 믿음도 신앙도 한 순간에 헌신짝처럼 벗어 던져 버리는 것을 보면서 얻은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세상에는 술을 안 먹는 사람보다는 먹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고 담배도 안 피우는 사람보다는 피우는 사람이 더 많으며 도박을 하는 사람도 안하는 사람보다 더 많으며 마약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나는 저 사람들과 다른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나는 술을 먹지 못하는가? 그 많은 술 선전과 거리에 늘어선 술집 광고를 보면서도 유혹을 받지 않았던 것일까? 왜 나는 도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일까? 왜 나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제가 믿었던 교우 중에 몇 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Y 장로님, L 권사님, B 집사님, K 집사님, Y 집사님! 위의 분들은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 한 때 참으로 귀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크게 받으셨던 분들이셨습니다. 세상에서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성공하셨던 분들이었습니다. 교회의 충성된 제직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박으로 받은바 은혜와 축복을 사단에게 탈취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많은 재산을 다 탕진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교회를 사랑했고 충성했었던 모든 공력이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교회 나타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들의 황폐된 가정 그리고 후손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픔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떠나 세상 쾌락의 죄악에 묻혀 산 결과가 이렇게 무서운 것임을 보면서 죄의 결과는 세상에서만 아니라 우리의 구원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술과 도박 마약의 유혹에서 벗어난 것은 오직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와 축복의 결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747
둥지에 알을 품은 비둘기를 보셨나요?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남가주에 엘니뇨현상으로 집중 폭우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연일 뉴스를 통하여 발표되고 있기에 하루라도 빨리 지붕공사를 하기 위하여 지난 수개월 동안 업자를 수소문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인즉 예배처소로 사용하는 건물의 전체 지붕을 새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공사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에 지붕 공사를 한 것은 10여 년 전이기에 전체적인 공사가 필요치 아니했고 다만 누수 되는 부분을 공사하길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업체에서 교회 일에 선뜻 나서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변에서 소개 받은 25년 경력의 전문 루핑회사 사장님이 교회를 방문한 것입니다.
남가주의 루핑업계는 지금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일손이 모자랄 정도로 분주합니다. 그로인하여 우리가 원하는 때에 공사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만 금번에 공사를 하신 분은 교회 지붕 상태를 점검하고 나서 폭우를 대비해 신속하게 공사를 하기 위하여 다른 일정을 조종해 가면서 지난 12월 31일과 1월 2일에 걸쳐서 공사를 했습니다.
일을 하시면서 2015년의 마지막 날 일을 교회 일로 마무리하고 2016년의 시작을 교회일로 시작하게 되어 기쁘다고 하셨습니다. 그 인품과 말에 감동이 되어 예사로운 분 같지 않다는 생각에 혹시 교회 장로님이 아니시냐고 물었더니 집사라고 말을 하셨습니다.
지붕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붕 한 편 구석진 그늘에서 비둘기 둥지가 발견된 것입니다. 제비집 보다 조금 큰 것으로 나뭇가지로 엮어진 둥지였습니다. 그 안에는 평생처음 보는 백색의 아름다운 비둘기 알이 있었습니다. 어미 비둘기가 알을 품고 있다가 갑작스런 인기척에 놀라 달아난 것입니다.
일하는 인부들이 그 상황을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사장에게 보고했고 사장은 이를 확인한 후 일을 중단시키고 필자에게 다가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오늘은 일을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있기에 그 상태로 일을 진행하면 둥지에 있는 비둘기 알이 죽어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붕 공사에 사용되는 재료가 고무로 된 재질이어서 그것을 강한 불로 열을 가한 후 덮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두 시간만 더 하면 일이 마무리 되는데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니 그런 말을 듣는 저로서는 황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일 후부터 남가주에 큰 폭우가 온다는 예보가 있기에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마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10여일이 지나면 비둘기가 부화하여 날아갈 것이기 때문에 2주일 후에 다시 와서 미진한 부분의 공사를 마무리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사장까지 4 명이었습니다. 한 두 시간이면 마무리 할 수 있는 일을 비둘기 알 때문에 중단하고 2주후에 다시 오면 루핑회사로서도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은 그런 결정을 한 것입니다.
나는 그 결정을 보고 받고서 작은 생명 하나에게까지 세심한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것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만일 일하는 분들이 둥지의 비둘기 알을 발견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것을 발견했다면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것을 발로 걷어 차 버렸거나 아니면 빗자루로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서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그 동안 비둘기로 인한 어려움을 당해 왔었습니다. 교회당 지붕은 비둘기들의 집합장소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생겨나는 쓰레기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더운 여름철에는 열려진 교회당 2층 창문을 통하여 숨어든 비둘기로 인하여 소란을 피운 일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하찮은 작은 생명까지도 함부로 대하지 아니하고 깊은 배려를 베푸시는 루핑회사 사장님께 머리가 숙어지는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시간적 물질적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시는 K 사장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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