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고 최순일 박사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로스앤젤레스 한인사회의 올드타이머 중 한 분이셨던 고 최순일 박사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은 인터넷 신문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서너 시간 후 고인의 외아들이 필자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장례식을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장례식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전화로 간단하게 절차를 설명하고 한국장의사에서 이틀 후 만나서 장례절차를 상의하기로 한 것이다. 고인의 아들에게 전화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고인과 아들은 한 때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성도였었다. 그러다가 20여 년 전에 교회를 떠나 있었다.

아들과 약속한 날 장의사에 도착하니 장례절차를 의논하기 위해서 나와 있는 분이 미주주부클럽연합회 강금자 회장과 아들이 살고 있는 집 주인이 나와 있었다. 두 분 다 가족관계는 아니었다.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넷이 머리를 마주 대하고 앉아서 먼저 아들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남기신 유언과 재산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남기신 재산이 하나도 없고 지난 수년 동안 혼자 아파트에 사시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하셨다는 것이다. 자신도 아버지 장례식을 치를 경제력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필자에게 전화할 생각을 했느냐고 했더니 일을 당하면 이상기 목사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장례식을 위해선 묘지 구입비용을 포함해서 대략 2만 달러의 경비가 소요되는데 변변한 직장을 가지지 못한 아들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에게 아버지의 장례를 간단하게 치를 것을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다. 화장을 권한 것이다. 지금까지 35년 동안 한 교회를 섬겨오면서 이런 권면은 처음 이었다.

화장을 해서 바다에 뿌리자는 필자의 말에 아들은 당황해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설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갑을 열어 필자의 시신 기증 카드를 보여주면서 이해를 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5년 전에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면 한 두 시간 이내에 시신이 의과대학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에게 필요로 하는 장기를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빠른 이송을 하기에 가족이나 교회 교인 누구도 시신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세 자녀들도 알고 동의하고 함께 사인을 했으며 교회에는 [이런 장례식을 원합니다]라는 내용의 문서를 당회에 비치하게 한 것이다.

내가 원하는 나의 장례는 1)신문에 부고를 내지 마시고 2)조화와 조의금은 사양해 주시고 3)예배는 한 번만 감사예배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4)그리고 매년 추도예배도 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면서 나의 신앙고백으로 이렇게 써 놓은 것이다.

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습니다.
나는 성경을 믿습니다. 나는 부활을 믿습니다. 나는 천국을 믿습니다. 나는 사도들이 고백한 사도신경을 믿습니다. 나의 몸은 죽었지만 나의 영혼은 살아서 주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시신을 감사함으로 주신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이 일을 성실이 이행해 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2010년 1월.

이런 내용을 고인의 아들에게 설명하면서 나의 시신도 의과대학에서 필요한 부분을 사용하고 나면 화장을 하고 남가주 해안에 나의 가족도 모르는 장소와 시간에 뿌려진다는 것을 설명하므로 비로소 아들은 마음의 평안을 얻고 필자의 의견에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할지라도 소요되는 경비가 6천 달러가 필요합니다.

이 때 함께 자리한 강금자 회장이 한국장의사 사장님께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한인 사회를 위해서 오랫동안 크게 헌신하신 고인과 불쌍한 외아들을 위해서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우리가 원한 것은 다만 1,000달러라도 깎아 주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장의사 제임스 안 회장님이 무료로 봉사해 주기로 하신 겁니다.

너무 뜻밖의 귀한 선물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야 했습니다. 고인이 지난 수년간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아오셨지만 그 동안 한인 사회를 위하여 크게 섬기신 것이 이런 감동으로 이어진 것임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인이 교회에 남기신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25년 전 어머니 주일이었습니다. 공원에서 야외예배를 드릴 때 보물찾기 선물로 25인치짜리 컬러 TV를 기증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웬만한 가정에선 그런 TV를 가지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온 교인이 그 선물 받기를 소망했습니다.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은 주일학교 학생의 친구가 처음 데리고 나온 학생이었습니다. 교인이 아닌 아이에게 선물을 줄 수 없다는 일부의 말에도 주었던 것은 그럴 경우 교회를 평생 떠나 살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2015년 10 월 20일 새벽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318

누가 ‘청아제’를 아시나요?

‘청아제’는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 있는 한의원의 이름입니다. 필자가 ‘청아제’를 알게 된 것은 5년 전이었습니다. 집 사람이 치료 받으러 다니던 병원의 매니저 이셨던 이 여사님의 인도로 소개 받아 간 곳입니다. 당시 집 사람은 백혈구 급강하로(백혈구수치가 900까지 내려감) 인하여 치료를 거의 포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처음에는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만 인도하신 매니저 선생님이 지난 10여 년 동안 집 사람을 위하여 너무나 헌신적으로 섬겨 주셨기에 그 분을 믿고 한의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매니저 이 선생님은 집 사람을 위하여 그 동안 많은 눈물을 흘려주신 분이십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제일먼저 만나는 분은 언제나 매니저인데 그 동안 그 분의 얼굴만 보아도 집 사람의 병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집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분의 얼굴은 언제나 우리에게 집 사람의 건강을 읽을 수 있는 거울과 같았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만났을 때 웃음을 보이면 우리는 즉시 희망을 가집니다. 그런데 그 분의 얼굴에 수심이 있거나 집 사람을 대할 때 눈물을 보일 때는 함께 울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 분의 인도를 따르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처음 ‘청아제’에서 진료를 시작했을 때 진료비를 담당해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곳에 다니고 나서부터 집 사람에게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백혈구의 수치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잃었던 입맛이 돌아와 밥을 잘 먹기 시작하면서 다시 키모테라피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이후 지금까지도 치료를 중단하지 아니하고 계속하고 있는 것은 ‘청아제’의 도움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기적이 있습니다만 집 사람의 건강이 ‘청아제’를 통하여 놀라울 정도로 회복 되어가는 것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 내외에겐 기적 중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청아제’를 운영하시는 원장 장 박사님은 한국에서 해병대 군 법무관 및 검사로 한 때 일 하셨던 법조인이셨습니다.

이 후 법대 교수를 하시다가 콜로라도 주에 있는 미 공군 사관학교 교환교수로 오셨습니다. 당시 중학생과 초등학생 이었던 두 아들이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예일대학과 프린스턴대학에 들어가므로 두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 교수직을 포기하셨습니다. 두 아들은 지금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아들은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으며 큰 아들은 외과의사 수련을 받고 있는 레지던트로 동부에서 의대를 다니고 있습니다. 아들의 장래를 위하여 자신의 전공 분야를 포기하고 새로운 직업을 위해서 한의사가 된 것입니다. 현재 한의과대학 박사원 교수(한의학 박사학위 3개를 받으셨고 지금은 또 다른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를 담당하고 계십니다.

‘청아제’의 치료는 강화도에서 양질의 쑥을 들여와 당일 사용할 재료를 원장 부부가 밤마다 손수 만들어서 사용하는 쑥뜸과 침 치료에 있습니다. 필자가 ‘청아제’를 소개하는 것은 아름다운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소속해 있는 남가주목사장로부부찬양단 단원이신 C 목사님의 사모님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외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3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으셨는데 지금은 온몸에 암이 번져서 병원에서 더 이상의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이를 알게 된 합창단의 여자 목사님이 강권하여 C 사모님을 ‘청아제’로 모시고 온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님의 사모도 ‘청아제’를 통하여 다시 힘을 얻고 지금까지 병원 치료를 잘 받아오고 있다고 소개한 것입니다.

처음 ‘청아제’에 왔을 때 도수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음이 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강제로 끌려오는 듯 했습니다. 자신의 몸의 상태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의 치료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C 사모님이 치료에 더 적극적이지 못하셨던 것은 치료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은 개척교회를 담임하시는 이민교회 목사님의 형편으로는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청아제’로 인도하신 목사님이 10회분의 진료비를 담당해 주셨습니다. 서너 번 치료를 받는 동안 사모님에게도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입맛을 잃고 식사를 하지 못하였는데 밥을 먹기 시작하신 겁니다.

다시 살 소망의 줄을 놓고 있었는데 이제는 다시 살 희망이 생기셨다고 말을 하시는 겁니다. 지금까지 감사하는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못해왔는데 요즘에는 사람과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불 같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얼굴에서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모님의 변하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다른 환자분이(그분도 유방암 환자) 10회 분의 진료비를 선납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끝나지 아니하고 또 다른 무명의 권사님이 C 사모님을 위해서 10회분의 진료비를 대납하셨습니다. 작은 돈이 아닙니다. 요즘과 같이 각박한 이민의 삶에서 아름다운 이 소식을 함께 느끼고 싶은 것입니다. 더불어 지금까지 집 사람의 ‘청아제’ 진료비의 많은 부분을 담당해 주신 무명의 성도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297

목사장로부부찬양단 정기공연을 준비하면서!

오는 11월 29일 저녁 7시에 윌셔연합감리교회당에서 남가주목사장로부부찬양단 제8회 정기공연이 개최됩니다. 정기공연을 앞두고 40여명의 단원들이 온 마음과 정성을 모아서 매주 월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영락교회 소망관에서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본 찬양단 창립단원으로 지금까지 10년 여 동안 합창단을 섬겨오고 있습니다.

평소 음악에 대해서 달란트가 부족한 것을 알기에 필자가 찬양단 단원이 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교회 성가대원으로도 활동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찬양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필자가 지금까지 합창단을 섬겨온 것은 특별한 은혜요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합창단에 들어오게 된 것은 친구 목사님의 강력한 권고를 뿌리칠 수가 없어서였습니다. 두 달 동안 계속되는 강요에 이끌려 합창단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오래 머물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는 일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찬양이 좋아서였습니다. 잘 따라하지는 못해도 찬양단에서 단원들과 함께 존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동안 평소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하던 은혜가 있었습니다. 찬양을 통한 위로가 좋았습니다. 찬양을 통한 기쁨을 알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찬양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반 찬양단과 목사장로부부찬양단이 다른 것이 있습니다. 목사장로부부찬양단은 성가곡만 찬양합니다.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며 모일 때마다 시작부터 마치는 시간까지 성가만 찬양합니다. 그러므로 매주 월요일 저녁이 기다려지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비록 소리로는 찬양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단원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자리를 지켜온 것입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 목사님이 언젠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목사장로부부찬양단 단장도 하셨고 오랫동안 단원으로 수고하셨으니 이제는 졸업 할 때가 되신 것 아닙니까? 햇수가 더하여 가면서 오래된 단원과 새로운 단원들이 자리가 바뀌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필자가 지금까지 합창단 단원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찬양이 나에게 은혜가 되기 때문이며, 둘째 이유는 역대 합창단 단장으로 크게 활동하셨던 증경 단장님들이 하나같이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합창단을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책임을 맡은 동안에는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하여 합창단을 위해서 크게 헌신하셨습니다. 그런데 임기를 마침과 동시에 그토록 변함없이 충성하리라 믿었던 합창단을 냉정하게 떠나게 될 때에 그런 모습이 너무나 보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위한 충성이었고 누구를 위한 충성이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한 충성이요 희생이었다면 책임을 맡았을 때나 그 후에라도 변함없이 충성하고 헌신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역대 단장들이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일로 남은 단원들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었습니다.

매해 반복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작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내가 합창단을 위해서 큰 힘은 되어주지 못하지만 울타리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버팀목이 되어주자는 것이었습니다. 바람막이가 되어주기로 한 것입니다. 합창단에는 필자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여러분이 계십니다. 언제나 말이 없으십니다. 변함없이 어떠한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시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계시는 동안 남가주목사장로부부합창단은 계속해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단원 중에는 성악을 전공하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믿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찬양의 실력도 뛰어나십니다. 찬양단의 자랑이 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하신 지휘자 전중재 교수님과 박헬렌 집사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매년 정기공연을 통하여 경험한 것처럼 금번 제8회 정기공연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의 고백과 곡조 있는 기도의 찬양을 통하여 큰 영광 받으실 것을 믿으며 온 마음과 정성을 모아서 성심으로 준비하는 단원들뿐 아니라 함께하는 모든 청중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큰 감동과 은혜가 넘쳐날 것을 믿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