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기도한 것 이상으로 복에 복을 더 하셨습니다. … 지난 7년 여간 큰 위로와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지난 달 큰 손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 했습니다. 가끔 전화로 대화를 하지만 이번처럼 울음 섞인 떨리는 소리는 처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손녀의 첫 마디는 다급한 목소리로 “Do me a favor Grandfather”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이었기에 이렇게 급한 소리로 전화 했을까?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지만 당연히 원하는 것을 해주리라 생각했습니다. 손녀가 전화 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물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위중한 상태에 있는 할머니를 위해서 전화를 한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사랑하는 할머니가 죽지 않고 오래 살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집 사람은 어려운 병으로 수시로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런 전화를 한 것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큰 손녀의 뜻밖의 전화를 받고나서 가슴에 진한 감동과 함께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어린 손자녀들이 할머니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할머니의 병세가 호전되지 아니하므로 위기를 느껴 자기가 기도하는 것보다는 할아버지는 목사님이기에 기도에 대한 응답을 속히 주시리라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손녀의 부탁을 받은 필자는 마음에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집 사람의 병세가 나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약해져 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어쩌면 어린 손자녀들이 이번 일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받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아이로만 알았던 손녀가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른과 다르지 아니함을 보면서 생각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자녀의 복자손의 복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집사람이 13년 이상 투병을 해 오면서 그 힘든 시기를 인내하며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딸의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축복하신 온 천하보다 귀한 6명의 손자녀들을 통한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웃을 일이 별로 없는데도 혼자 소리 내어 웃음을 지으며 기뻐합니다. 어떤 때는 손벽을 치며 눈물까지 흘리며 큰 소리로 웃습니다. 처음에는 무엇 때문에 웃느냐고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웃음의 의미를 알기 때문입니다. 손자녀들의 재롱을 생각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집 사람이 처음 발병 했을 때 자녀들에 대한 소원은 두 딸이 기도한 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배후자로 짝지어 주시는 것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도한 것 이상으로 복에 복을 더하셨습니다. 아들도 대학을 졸업하게 하셨고 두 딸의 가정을 통하여 주신 6 명의 손자녀들을 보는 재미로 지난 7년 여간 큰 위로와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집 사람이 처음 수술 받고나서 4년 반 후에 재발이 되었을 때 담당의사는 앞으로 남은 생명은 2년 미만이라고 했습니다만 지금까지 생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집 사람이 그 어려운 투병 중에도 절망하지 아니하고 기적 같은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사방에서 집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내외가 주위 여러 어르신들에게 받은사랑의 빚은 평생을 두고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19-12-27 00:34:102019-12-27 00:34:42Do me a favor Grandfather!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는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뿐인 것입니다
지난 달 어느 오후에 집 사람이 20여 일간 입원해 있는 병원 한 편에 위치한 간이 커피숍에서 줄을 서 있었을 때 필자의 눈에 띄는 분이 계셨습니다. 커피를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곤한 몸을 가지고 계산대 한 편에 손을 대고 쉬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돌아서는 발걸음이 편치 않아서 커피를 사고 남은 거스름 돈을 받지 아니하고 그 돈으로 노 수녀님에게 커피 한잔을 드리라고 부탁하고 돌아서는 필자를 향하여 수녀님이 뜻밖의 말을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이시지요?”
나의 무엇이 노 수녀님의 눈에 보통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비쳐졌을까? 한 번의 만남도 대화도 없었을 뿐아니라 서로의 신상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먼발치에서 잠시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수녀님은 계속 말을 이어가셨습니다. 내 평생에 목사님에게 커피를 대접받기는 처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대한 대답으로 저도 수녀님에게 커피를 대접하기는 생애 처음이라고 화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녀님은 “누가 어느 병동 몇 호에 입원에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노 수녀님은 그 병원 환자들을 담당하시는 수녀님이셨습니다.
다음 날 입원실을 방문했을 때 집 사람에게 수녀님이 다녀가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놀란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보! 수녀님이 기도해 주셨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셨어요” 집 사람이 놀라워 하는 것은 천주교인들이 기도할 때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필자도 있는 시간에 노 수녀님이 다시 입원실을 방문하셨습니다. 그 때 우리 내외는 수녀님의 기도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신 것을 특별히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중하게 질문하길 평소 기도하실 때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시는지요? 필자가 묻는 질문의 의도를 아시는 노 수녀님은 이렇게 대답 하셨습니다. 집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한 것은 집 사람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불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는 나무아무타불로 기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기도 받는 사람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편협한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넓어서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제한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세상 어느 종교 모든 종교는 다 하나라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의 말처럼 들렸습니다. 수녀님과의 짧은 만남을 통하여 천주교와 개신교가 결코 하나 될 수 없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4 :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날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 어떤 종교로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녀 된 보증으로 기도의 특권을 허락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아무렇게나 기도해도 된다면 이런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응답 받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는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뿐인 것입니다.
197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숫자는 3-4천명으로 집계가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많은 한인이 없었을 때입니다. 길을 가다가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 서로 통성명을 하던 때였습니다.그 당시 한인타운에서 유일하게 하숙집을 하고 있는 곳에 10여명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식사시간이면 자주 듣는 말이 있었습니다. 강원도에서 수학선생을 하시다가 미국에 오신 Ko 선생님에 대한 말이었습니다.그 분은 하숙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친구와 함께 생활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한인들은 지금처럼 이민 비자를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때는 미국에 가는 사람에게 한국 정부가 200불 이상을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할 때였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도착해서도 변변한 직장을 쉽게 가질 수 없었습니다.그런데 Ko 선생님은 달랐습니다. 미국에 도착하자 마자 한국에서의 직업을 생각지 않으신 것입니다.무슨 일이든 닥치는대로 하셨습니다.
당시에 우리 한인이 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남자는 밤마다 빌딩 청소나 페인트를 하고 낮에는 주유소에서 일했습니다.모두가 청운의 푸른 꿈을 품고 미국에 유학차 오신분도 계셨고 사업을 위해서 오신 분도 있으셨지만 모두가 만만치 않았습니다.모두가 특별하시고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미국에서의 정착은 쉽지가 않았습니다.그런데 Ko 선생님은 달랐습니다.그 분은 하루에 세 곳에서 일하셨습니다.그렇게 2년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로 2만불의 돈을 모았습니다.당시 그 정도의 돈은 큰 돈이었습니다.지금 한인타운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올림픽 가에 위치한 집 한 채의 값이 15,000 – 20,000불 할 때였습니다.2-3천불이면 집을 한 채 다운페이 하고 살 수 있었습니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노동을 해서 그 돈을 모은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이룬 것입니다.그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Ko선생님을 말로만 들었지 보지는 못했습니다.그 분의 친구가 하숙집에 머물고 있어 어느날 인사차 들렀습니다.
Ko 선생님은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롱비치에 위치한 리커스토어를 계약했습니다. 가게를 시작하면 몇 년은 그 일에 매말려야 하므로 이번에 일주일 동안 시간을 내었습니다. 그분이 택한 휴가 장소는 라스베가스였습니다.
한국에서부터 미국에 가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했습니다.우리 모두의 부러움을 뒤로한 채 여행을 떠났습니다.그런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분의 소식을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Ko 선생님은 라스베가스에서 머무는 며칠 동안 수천불의 돈을 땄습니다.
그것이 화가 된 것입니다.하지만 일주일 머무는 동안 가지고 온 돈 마저 다 잃고 만 것입니다 본전 생각이 났습니다.어떻게 번 돈인데! 먹을 것도 절약하고 밤잠도 자지 아니하면서 힘들여 모은 돈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고 화가 난 것입니다.
이후 Ko 선생님을 어디에서 보았다는 분도 없었고 어디로 가셨는지 아는 분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당당하시고 그렇게 멋있어 보이셨던 Ko 선생님이 왜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야만 하셨을까?
그 분을 생각할 때마다 약1:22절을 생각하게 됩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Ko 선생님이 누구에게 속았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속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게 속은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 꾀에 속은 것입니다.주님을 떠난 인생의 결국은 다 이런 것입니다.
Do me a favor Grandfather!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하나님은 기도한 것 이상으로 복에 복을 더 하셨습니다. … 지난 7년 여간 큰 위로와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지난 달 큰 손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 했습니다. 가끔 전화로 대화를 하지만 이번처럼 울음 섞인 떨리는 소리는 처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손녀의 첫 마디는 다급한 목소리로 “Do me a favor Grandfather”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이었기에 이렇게 급한 소리로 전화 했을까?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지만 당연히 원하는 것을 해주리라 생각했습니다. 손녀가 전화 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물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위중한 상태에 있는 할머니를 위해서 전화를 한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사랑하는 할머니가 죽지 않고 오래 살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집 사람은 어려운 병으로 수시로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런 전화를 한 것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큰 손녀의 뜻밖의 전화를 받고나서 가슴에 진한 감동과 함께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어린 손자녀들이 할머니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할머니의 병세가 호전되지 아니하므로 위기를 느껴 자기가 기도하는 것보다는 할아버지는 목사님이기에 기도에 대한 응답을 속히 주시리라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손녀의 부탁을 받은 필자는 마음에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집 사람의 병세가 나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약해져 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어쩌면 어린 손자녀들이 이번 일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받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아이로만 알았던 손녀가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른과 다르지 아니함을 보면서 생각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자녀의 복자손의 복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집사람이 13년 이상 투병을 해 오면서 그 힘든 시기를 인내하며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딸의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축복하신 온 천하보다 귀한 6명의 손자녀들을 통한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웃을 일이 별로 없는데도 혼자 소리 내어 웃음을 지으며 기뻐합니다. 어떤 때는 손벽을 치며 눈물까지 흘리며 큰 소리로 웃습니다. 처음에는 무엇 때문에 웃느냐고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웃음의 의미를 알기 때문입니다. 손자녀들의 재롱을 생각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집 사람이 처음 발병 했을 때 자녀들에 대한 소원은 두 딸이 기도한 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배후자로 짝지어 주시는 것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도한 것 이상으로 복에 복을 더하셨습니다. 아들도 대학을 졸업하게 하셨고 두 딸의 가정을 통하여 주신 6 명의 손자녀들을 보는 재미로 지난 7년 여간 큰 위로와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집 사람이 처음 수술 받고나서 4년 반 후에 재발이 되었을 때 담당의사는 앞으로 남은 생명은 2년 미만이라고 했습니다만 지금까지 생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집 사람이 그 어려운 투병 중에도 절망하지 아니하고 기적 같은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사방에서 집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내외가 주위 여러 어르신들에게 받은사랑의 빚은 평생을 두고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0609
어느 노 수녀님과의 만남!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는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뿐인 것입니다
지난 달 어느 오후에 집 사람이 20여 일간 입원해 있는 병원 한 편에 위치한 간이 커피숍에서 줄을 서 있었을 때 필자의 눈에 띄는 분이 계셨습니다. 커피를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곤한 몸을 가지고 계산대 한 편에 손을 대고 쉬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돌아서는 발걸음이 편치 않아서 커피를 사고 남은 거스름 돈을 받지 아니하고 그 돈으로 노 수녀님에게 커피 한잔을 드리라고 부탁하고 돌아서는 필자를 향하여 수녀님이 뜻밖의 말을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이시지요?”
나의 무엇이 노 수녀님의 눈에 보통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비쳐졌을까? 한 번의 만남도 대화도 없었을 뿐아니라 서로의 신상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먼발치에서 잠시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수녀님은 계속 말을 이어가셨습니다. 내 평생에 목사님에게 커피를 대접받기는 처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대한 대답으로 저도 수녀님에게 커피를 대접하기는 생애 처음이라고 화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녀님은 “누가 어느 병동 몇 호에 입원에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노 수녀님은 그 병원 환자들을 담당하시는 수녀님이셨습니다.
다음 날 입원실을 방문했을 때 집 사람에게 수녀님이 다녀가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놀란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보! 수녀님이 기도해 주셨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셨어요” 집 사람이 놀라워 하는 것은 천주교인들이 기도할 때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필자도 있는 시간에 노 수녀님이 다시 입원실을 방문하셨습니다. 그 때 우리 내외는 수녀님의 기도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신 것을 특별히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중하게 질문하길 평소 기도하실 때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시는지요? 필자가 묻는 질문의 의도를 아시는 노 수녀님은 이렇게 대답 하셨습니다. 집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한 것은 집 사람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불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는 나무아무타불로 기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기도 받는 사람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편협한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넓어서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제한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세상 어느 종교 모든 종교는 다 하나라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의 말처럼 들렸습니다. 수녀님과의 짧은 만남을 통하여 천주교와 개신교가 결코 하나 될 수 없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4 :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날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 어떤 종교로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녀 된 보증으로 기도의 특권을 허락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아무렇게나 기도해도 된다면 이런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응답 받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는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뿐인 것입니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0445
Ko 수학선생님을 생각하며!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197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숫자는 3-4천명으로 집계가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많은 한인이 없었을 때입니다. 길을 가다가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 서로 통성명을 하던 때였습니다.그 당시 한인타운에서 유일하게 하숙집을 하고 있는 곳에 10여명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식사시간이면 자주 듣는 말이 있었습니다. 강원도에서 수학선생을 하시다가 미국에 오신 Ko 선생님에 대한 말이었습니다.그 분은 하숙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친구와 함께 생활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한인들은 지금처럼 이민 비자를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때는 미국에 가는 사람에게 한국 정부가 200불 이상을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할 때였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도착해서도 변변한 직장을 쉽게 가질 수 없었습니다.그런데 Ko 선생님은 달랐습니다. 미국에 도착하자 마자 한국에서의 직업을 생각지 않으신 것입니다.무슨 일이든 닥치는대로 하셨습니다.
당시에 우리 한인이 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남자는 밤마다 빌딩 청소나 페인트를 하고 낮에는 주유소에서 일했습니다.모두가 청운의 푸른 꿈을 품고 미국에 유학차 오신분도 계셨고 사업을 위해서 오신 분도 있으셨지만 모두가 만만치 않았습니다.모두가 특별하시고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미국에서의 정착은 쉽지가 않았습니다.그런데 Ko 선생님은 달랐습니다.그 분은 하루에 세 곳에서 일하셨습니다.그렇게 2년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로 2만불의 돈을 모았습니다.당시 그 정도의 돈은 큰 돈이었습니다.지금 한인타운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올림픽 가에 위치한 집 한 채의 값이 15,000 – 20,000불 할 때였습니다.2-3천불이면 집을 한 채 다운페이 하고 살 수 있었습니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노동을 해서 그 돈을 모은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이룬 것입니다.그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Ko선생님을 말로만 들었지 보지는 못했습니다.그 분의 친구가 하숙집에 머물고 있어 어느날 인사차 들렀습니다.
Ko 선생님은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롱비치에 위치한 리커스토어를 계약했습니다. 가게를 시작하면 몇 년은 그 일에 매말려야 하므로 이번에 일주일 동안 시간을 내었습니다. 그분이 택한 휴가 장소는 라스베가스였습니다.
한국에서부터 미국에 가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했습니다.우리 모두의 부러움을 뒤로한 채 여행을 떠났습니다.그런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분의 소식을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Ko 선생님은 라스베가스에서 머무는 며칠 동안 수천불의 돈을 땄습니다.
그것이 화가 된 것입니다.하지만 일주일 머무는 동안 가지고 온 돈 마저 다 잃고 만 것입니다 본전 생각이 났습니다.어떻게 번 돈인데! 먹을 것도 절약하고 밤잠도 자지 아니하면서 힘들여 모은 돈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고 화가 난 것입니다.
이후 Ko 선생님을 어디에서 보았다는 분도 없었고 어디로 가셨는지 아는 분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당당하시고 그렇게 멋있어 보이셨던 Ko 선생님이 왜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야만 하셨을까?
그 분을 생각할 때마다 약1:22절을 생각하게 됩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Ko 선생님이 누구에게 속았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속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게 속은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 꾀에 속은 것입니다.주님을 떠난 인생의 결국은 다 이런 것입니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