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 월 14일 일일 평균 강수량으로는 남가주에 133여년 만에 큰 비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이곳에선 그런 비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날 최근 현역에서 은퇴하신 K 목사님이 저와 친구 목사님 4 부부를 식당으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3 년 전에 발간한 필자의 자서전을 읽고서 꼭 만나고 싶다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 목사님들과는 오래전부터 교제가 있어왔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저 이름만 듣고 알 정도여서 가까이 뵙고 대접받는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현역에 있는 저나 친구 가 대접하려 했지만 한사코 거절하셨습니다. 어느 덧 우리도 은퇴를 준비하기에 은퇴하신 선배님들 앞에선 고개가 숙어지게 됩니다.
K 목사님은 식사 중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은퇴 목사의 덕목중 중요한 것은 후배 목회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지갑을 자주 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 7 장 12절에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아는 것을 실행하기가 마음처럼 쉽지가 않은 것은 은퇴자의 지갑이 두둑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시고 우리에게 큰 기쁨을 선사해 주신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본을 보이신 대로 우리도 후배들에게 다가가 지갑을 열 것을 다짐해 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기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원한다고 타인으로부터 존중히 여김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웃을 자기 몸처럼 돌보고 사랑하며 섬기지 아니하고선 절대로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씨앗과 같아서 뿌린 자가 거두는 것과 같습니다.
또 다른 특별한 대접은 다음 날 이었습니다. 이 달에 교회 지붕 공사를 마치고 나서 그 날부터 교회 건물 외부 페인트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공사를 맡은 인부들은 3 명의 멕시칸이었습니다. 첫날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일하는 분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서 교회 인근에 있는 한국식당에 음식을 사러 갔습니다.
음식을 사러 가면서 자신들 것만 사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필자와 교회 공사 책임자 집사님의 점심까지 순두부찌개 5 인분을 주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곁에서 듣고서 우리가 일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점심을 대접해야지 어떻게 대접을 받을 수 있느냐고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에게 점심 대접을 받는 것이 미안해서 다음 날 점심은 우리가 대접하겠다고 했습니다. 3 년 전에 옮겨온 지금의 교회 건물이 90여년의 역사를 가진 건물이고 이전에 30년 이상 사용해 오던 건물도 95년 이상 된 오래된 건물 이었기에 여러 번의 공사를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많은 공사 중에도 이번처럼 일하는 분들에게 식사를 대접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한국음식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김치, 짬뽕, 짜장면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축복 가운데 제일가는 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다음으로 좋은 것은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만나야 할 사람을 정한 때에 만나지 못하면 그로인하여 많은 상처와 아픔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처음도 그러하지만 결과도 아름답습니다. 이번에 교회 지붕 공사를 위해서도 숙련된 일꾼들을 만나게 해 주셨을 뿐 아니라 페인트를 위해서도 선한 일꾼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성탄의 때를 맞추어 주님의 몸 되신 교회를 아름답게 단장해 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고향에서 명절에 색동옷을 입고 좋아했던 때를 연상하면서 우리 주님도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니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11월 28일은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역사적인 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1년 후가 되는 2023년 1월 첫 주일이 교회설립 42주년이 되면서 설립당시부터 섬겨온 담임목사직에서 제2대 담임목사에게 바통을 물려주고 원로목사로 자리를 옮길 준비를 위한 공동의회를 개최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40여년의 긴 세월을 생각지 못했었는데 시간이 빠르게 흘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전문 산악인의 말에 의하면 높은 산을 오르는 것도 위험하지만 하산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막상 은퇴를 생각하게 되니까? 걱정되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크게 걱정이 되는 것은 후임자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주변의 교회들이 여러 과정을 거쳐서 선정한 후임자에게 교회를 이양하고 나서 생각처럼 순탄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을 자주 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의 일처럼 생각되지 아니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때를 거역하고 담임목사직을 고집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4-5년 전부터 후임자를 위해서 기도하길 시작했습니다. 이양의 복을 주시되 후임자의 복을 허락하시므로 아름다운 승계를 할 수 있도록 구했습니다. 필자가 구한 후임자의 자격은 하나였습니다. 실력보다는 주님을 사랑하는 종이었습니다.
수년 전에 그런 종을 교회로 보내주셨습니다. 당회의 결의로 그 동안 부목사로 섬겨오던 S 목사님을 제2대 담임목사 후보자로 정하고 공동의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공동의회는 이 뿐 아니라 세 분의 장로 후보자와 세 분의 권사 후보자도 투표를 받게 했습니다. 공동의회를 하기 전 날 깊은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행여나 투표 결과가 잘못 나오게 되면 어떡케 하나? 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당회가 원하는 것은 1차 투표마다 2/3 이상의 표를 받기를 원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투표를 받으시는 분들이 마음에 부담과 상처를 받을 것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투표를 하기 전 이런 당부의 말을 했습니다.
당회가 추천한 일곱 분 모두는 교회가 어려움 당할 때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를 희생할 분들이십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죽는 날까지 교회를 지키고 온 마음과 정성으로 충성할 분들이기에 우리가 한 마음이 되어 힘을 모아 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공동의회가 축제의 날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동의 순간이며 축복의 순간으로 우리만 놀라는 것이 아니라 이웃 교회들도 놀라고 세계 모든 교회가 놀랄 투표 결과를 만들어 주시길 부탁하고 투표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제2대 담임목사후보자에 대한투표 결과 1차 투표에서 투표자 전원 찬성으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어, 장로후보 3인도 1차 투표에서 3분 모두 전원 찬성으로 피택 받았으며, 권사후보 3인도 1차 투표에서 같은 선택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섬겨오면서 여러 번의 공동의회를 했었지만 이런 결과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교회도 투표자 전원이 찬성을 받았다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연이은 세 번의 투표 결과가 모두 하나같이 투표자 전원이 찬성을 했다는 것은 세계 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놀라고 온 교우들도 놀랐습니다. 정말로 주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신 축복의 사건이었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으셨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느 목사님이 중국의 시진핑 보다 강하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평강교회의 주인 되시는 주님이 공산당보다 더 강한 교회라는 뜻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42여년의 긴 여정에 위기를 만날 때마다 그 자리에 먼저 가시어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아름답고 귀한 것으로 늘 채워주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크게 감사드립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1-12-12 11:57:412021-12-12 11:57:41목양칼럼 # 262 공동의회를 통하여 받은 은혜!
지난 11월 26일 금요일 새벽에 기도하러 교회에 갔습니다. 아직 먼동이 트지 않아 사방은 어두웠습니다. 교회당 문을 열고 본당으로 들어가 전기 불을 밝히자 아무도 없어야 하는데 한 사람이 본 당 안에 놀란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키는 필자보다 훨씬커 보이는 건장한 청년의 다른 인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교회당 안에 이 밤중에 들어왔느냐고 했더니 지난밤에 여자 분이 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여자냐고 하면서 아시안이나 스페니시냐 백인이냐고 물었더니 아시안 여인 3명이 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교회 문이 닫혀 있기에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밖으로 나와 교회 근처에 사시는 분에게 전화를 걸어 911에 전화를 걸고 지금 바로 교회당으로 와 달라고 요청을 드렸습니다. 혹시라도 육체적인 충돌이 있을지 모를 일을 대비해서였습니다. 다시 밤손님에게 다가가 핸드폰으로 사진 촬영을 하겠다고 하고서 촬영을 한 후 전화번호와 주소를 달라고 했습니다.
받은 전화번호로 즉시 전화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는 번호였습니다. 진짜 번호를 달라고 했더니 다른 번호를 주었지만 그것도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경찰차 두 대가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3명의 경관이 본당으로 들어와 낮선 사람에게 다가가 이유도 묻지 않고 즉시 두 손에 수갑을 채웠습니다.
그런 다음 밖으로 데리고 나간 후 3명의 경관 중 한 분이 이 사람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지금 데리고 가서 구금을 하면 판사 앞에 가서 필자가 진술을 해야 한다고 하기에 다른 옵션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만일 교회에 없어진 물건이 없다면 구두로 경고하고 보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경고의 내용은 다시 교회당에 불법으로 침입하면 즉시 구금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밤손님을 그렇게 보낸 후 경찰 책임자가 필자에게 다가와 교회당으로 들어오는 문을 있는 대로 보여 달라고 해서 여러 개의 문을 돌아보는 중 본당 현관문을 보더니 이곳이라고 지적을 하면서 문아래 부분이 파손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밖에서 힘으로 강하게 당기어 문을 고정시키는 아래 부분의 자물쇠가 부서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자물쇠를 사다가 고정시키라고 해서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후 교회에 다시 정문이 심하게 훼손이 되었습니다. 안에서 잠근 자물쇠 때문에 외부인이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습니다.
다시 문을 수리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말연시를 앞두고 각종 범죄 기사가 넘쳐나는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고나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고 누구에게나 당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래전에 가까이 지내던 분이 하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20여 년 전에 큰 지진이 났을 때였습니다. 교회 건물에 약간의 피해가 있는 것을 걱정하고 있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집도 교회 건물도 없어서 지진이 나도 걱정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것도 감사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분의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담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했지만 나무가 무성하면 좋은 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더운 날에는 피할 그늘도 있고, 나무가 과실수이면 철마다 아름다운 결실을 보상받기 때문입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 아닙니다. 양육을 위한 수고보다는 그 일로 받는 위로와 보상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시 127편 3-5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반갑지 않은 밤손님을 보내고 나서 생각해보니 큰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위기를 막아주시고 영혼과 육체를 안전하게 지켜주신 주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직 가야할 사명의 길이 남아 있어서 지켜주신 줄 믿습니다. 부르시는 그 날 까지 순종하겠습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1-12-02 07:34:252021-12-02 07:34:25목양칼럼 # 261 밤중에 만난 반갑지 않은 손님!
목양칼럼 # 263 특별한 식사 대접을 받았습니다.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지난 12 월 14일 일일 평균 강수량으로는 남가주에 133여년 만에 큰 비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이곳에선 그런 비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날 최근 현역에서 은퇴하신 K 목사님이 저와 친구 목사님 4 부부를 식당으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3 년 전에 발간한 필자의 자서전을 읽고서 꼭 만나고 싶다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 목사님들과는 오래전부터 교제가 있어왔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저 이름만 듣고 알 정도여서 가까이 뵙고 대접받는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현역에 있는 저나 친구 가 대접하려 했지만 한사코 거절하셨습니다. 어느 덧 우리도 은퇴를 준비하기에 은퇴하신 선배님들 앞에선 고개가 숙어지게 됩니다.
K 목사님은 식사 중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은퇴 목사의 덕목중 중요한 것은 후배 목회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지갑을 자주 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 7 장 12절에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아는 것을 실행하기가 마음처럼 쉽지가 않은 것은 은퇴자의 지갑이 두둑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시고 우리에게 큰 기쁨을 선사해 주신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본을 보이신 대로 우리도 후배들에게 다가가 지갑을 열 것을 다짐해 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기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원한다고 타인으로부터 존중히 여김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웃을 자기 몸처럼 돌보고 사랑하며 섬기지 아니하고선 절대로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씨앗과 같아서 뿌린 자가 거두는 것과 같습니다.
또 다른 특별한 대접은 다음 날 이었습니다. 이 달에 교회 지붕 공사를 마치고 나서 그 날부터 교회 건물 외부 페인트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공사를 맡은 인부들은 3 명의 멕시칸이었습니다. 첫날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일하는 분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서 교회 인근에 있는 한국식당에 음식을 사러 갔습니다.
음식을 사러 가면서 자신들 것만 사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필자와 교회 공사 책임자 집사님의 점심까지 순두부찌개 5 인분을 주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곁에서 듣고서 우리가 일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점심을 대접해야지 어떻게 대접을 받을 수 있느냐고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에게 점심 대접을 받는 것이 미안해서 다음 날 점심은 우리가 대접하겠다고 했습니다. 3 년 전에 옮겨온 지금의 교회 건물이 90여년의 역사를 가진 건물이고 이전에 30년 이상 사용해 오던 건물도 95년 이상 된 오래된 건물 이었기에 여러 번의 공사를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많은 공사 중에도 이번처럼 일하는 분들에게 식사를 대접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한국음식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김치, 짬뽕, 짜장면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축복 가운데 제일가는 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다음으로 좋은 것은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만나야 할 사람을 정한 때에 만나지 못하면 그로인하여 많은 상처와 아픔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처음도 그러하지만 결과도 아름답습니다. 이번에 교회 지붕 공사를 위해서도 숙련된 일꾼들을 만나게 해 주셨을 뿐 아니라 페인트를 위해서도 선한 일꾼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성탄의 때를 맞추어 주님의 몸 되신 교회를 아름답게 단장해 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고향에서 명절에 색동옷을 입고 좋아했던 때를 연상하면서 우리 주님도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니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1년 12 월 16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62 공동의회를 통하여 받은 은혜!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지난 11월 28일은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역사적인 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1년 후가 되는 2023년 1월 첫 주일이 교회설립 42주년이 되면서 설립당시부터 섬겨온 담임목사직에서 제2대 담임목사에게 바통을 물려주고 원로목사로 자리를 옮길 준비를 위한 공동의회를 개최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40여년의 긴 세월을 생각지 못했었는데 시간이 빠르게 흘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전문 산악인의 말에 의하면 높은 산을 오르는 것도 위험하지만 하산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막상 은퇴를 생각하게 되니까? 걱정되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크게 걱정이 되는 것은 후임자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주변의 교회들이 여러 과정을 거쳐서 선정한 후임자에게 교회를 이양하고 나서 생각처럼 순탄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을 자주 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의 일처럼 생각되지 아니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때를 거역하고 담임목사직을 고집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4-5년 전부터 후임자를 위해서 기도하길 시작했습니다. 이양의 복을 주시되 후임자의 복을 허락하시므로 아름다운 승계를 할 수 있도록 구했습니다. 필자가 구한 후임자의 자격은 하나였습니다. 실력보다는 주님을 사랑하는 종이었습니다.
수년 전에 그런 종을 교회로 보내주셨습니다. 당회의 결의로 그 동안 부목사로 섬겨오던 S 목사님을 제2대 담임목사 후보자로 정하고 공동의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공동의회는 이 뿐 아니라 세 분의 장로 후보자와 세 분의 권사 후보자도 투표를 받게 했습니다. 공동의회를 하기 전 날 깊은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행여나 투표 결과가 잘못 나오게 되면 어떡케 하나? 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당회가 원하는 것은 1차 투표마다 2/3 이상의 표를 받기를 원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투표를 받으시는 분들이 마음에 부담과 상처를 받을 것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투표를 하기 전 이런 당부의 말을 했습니다.
당회가 추천한 일곱 분 모두는 교회가 어려움 당할 때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를 희생할 분들이십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죽는 날까지 교회를 지키고 온 마음과 정성으로 충성할 분들이기에 우리가 한 마음이 되어 힘을 모아 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공동의회가 축제의 날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동의 순간이며 축복의 순간으로 우리만 놀라는 것이 아니라 이웃 교회들도 놀라고 세계 모든 교회가 놀랄 투표 결과를 만들어 주시길 부탁하고 투표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제2대 담임목사후보자에 대한투표 결과 1차 투표에서 투표자 전원 찬성으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어, 장로후보 3인도 1차 투표에서 3분 모두 전원 찬성으로 피택 받았으며, 권사후보 3인도 1차 투표에서 같은 선택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섬겨오면서 여러 번의 공동의회를 했었지만 이런 결과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교회도 투표자 전원이 찬성을 받았다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연이은 세 번의 투표 결과가 모두 하나같이 투표자 전원이 찬성을 했다는 것은 세계 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놀라고 온 교우들도 놀랐습니다. 정말로 주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신 축복의 사건이었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으셨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느 목사님이 중국의 시진핑 보다 강하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평강교회의 주인 되시는 주님이 공산당보다 더 강한 교회라는 뜻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42여년의 긴 여정에 위기를 만날 때마다 그 자리에 먼저 가시어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아름답고 귀한 것으로 늘 채워주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크게 감사드립니다.
2021년 12월 18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61 밤중에 만난 반갑지 않은 손님!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지난 11월 26일 금요일 새벽에 기도하러 교회에 갔습니다. 아직 먼동이 트지 않아 사방은 어두웠습니다. 교회당 문을 열고 본당으로 들어가 전기 불을 밝히자 아무도 없어야 하는데 한 사람이 본 당 안에 놀란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키는 필자보다 훨씬커 보이는 건장한 청년의 다른 인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교회당 안에 이 밤중에 들어왔느냐고 했더니 지난밤에 여자 분이 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여자냐고 하면서 아시안이나 스페니시냐 백인이냐고 물었더니 아시안 여인 3명이 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교회 문이 닫혀 있기에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밖으로 나와 교회 근처에 사시는 분에게 전화를 걸어 911에 전화를 걸고 지금 바로 교회당으로 와 달라고 요청을 드렸습니다. 혹시라도 육체적인 충돌이 있을지 모를 일을 대비해서였습니다. 다시 밤손님에게 다가가 핸드폰으로 사진 촬영을 하겠다고 하고서 촬영을 한 후 전화번호와 주소를 달라고 했습니다.
받은 전화번호로 즉시 전화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는 번호였습니다. 진짜 번호를 달라고 했더니 다른 번호를 주었지만 그것도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경찰차 두 대가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3명의 경관이 본당으로 들어와 낮선 사람에게 다가가 이유도 묻지 않고 즉시 두 손에 수갑을 채웠습니다.
그런 다음 밖으로 데리고 나간 후 3명의 경관 중 한 분이 이 사람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지금 데리고 가서 구금을 하면 판사 앞에 가서 필자가 진술을 해야 한다고 하기에 다른 옵션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만일 교회에 없어진 물건이 없다면 구두로 경고하고 보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경고의 내용은 다시 교회당에 불법으로 침입하면 즉시 구금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밤손님을 그렇게 보낸 후 경찰 책임자가 필자에게 다가와 교회당으로 들어오는 문을 있는 대로 보여 달라고 해서 여러 개의 문을 돌아보는 중 본당 현관문을 보더니 이곳이라고 지적을 하면서 문아래 부분이 파손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밖에서 힘으로 강하게 당기어 문을 고정시키는 아래 부분의 자물쇠가 부서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자물쇠를 사다가 고정시키라고 해서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후 교회에 다시 정문이 심하게 훼손이 되었습니다. 안에서 잠근 자물쇠 때문에 외부인이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습니다.
다시 문을 수리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말연시를 앞두고 각종 범죄 기사가 넘쳐나는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고나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고 누구에게나 당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래전에 가까이 지내던 분이 하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20여 년 전에 큰 지진이 났을 때였습니다. 교회 건물에 약간의 피해가 있는 것을 걱정하고 있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집도 교회 건물도 없어서 지진이 나도 걱정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것도 감사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분의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담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했지만 나무가 무성하면 좋은 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더운 날에는 피할 그늘도 있고, 나무가 과실수이면 철마다 아름다운 결실을 보상받기 때문입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 아닙니다. 양육을 위한 수고보다는 그 일로 받는 위로와 보상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시 127편 3-5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반갑지 않은 밤손님을 보내고 나서 생각해보니 큰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위기를 막아주시고 영혼과 육체를 안전하게 지켜주신 주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직 가야할 사명의 길이 남아 있어서 지켜주신 줄 믿습니다. 부르시는 그 날 까지 순종하겠습니다.
2021년 11월 26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