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돌려드린 주차장 헌금

17-18년의 긴 세월이 지나갔지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아니하는 A 권사님이 계십니다. 교회가 주차장 구입을 위해서 6개월 동안 기도한 후 헌금할 날짜를 정하고 특별헌금을 했습니다. 당시 목표로 한 헌금은 다운페이먼트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액수인 2-3만 불로 정했으나 헌금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A 권사님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필자의 차 안에서 평소에 보지 못하던 검은 가방을 주시며 떨리는 음성으로 받으시라고 하셨습니다. 웬 가방이냐고 했더니 그 안에 헌금 5000불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A 권사님은 60의 나이셨습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오신 분이십니다. 일찍이 교육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님의 소개로 교육자인 남편을 만나 2남 1녀를 낳으셨으나 30중반에 홀로 되시어 온갖 궂은 일을 하시며 살아오셨습니다.

3년 전에 미국에 돈 벌기 위해서 방문으로 오셔서 남의 집에 사시며 대학에 다니는 막내아들 학비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지금껏 한 번도 저금 통장을 가져 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미국에 사시는 동안 그 흔한 여행이나 구경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6일 동안 식모살이 하고 주일 날 교회에 나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며 기쁨이셨던 것입니다.

그런 권사님에게 5천불은 생명과 같은 것이며 평생 처음 그렇게 많은 돈을 쥐어 보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교회 예배 시간에 바치지 아니하고 예배 후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필자에게 준 것일까요? 헌금이 든 검은 가방을 받아 들고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권사님은 오늘도 교회에서 바치기 위해서 가져오셨지만 바칠까 말까 망설이다가 바치지 못하신 것입니다. 그러기를 지난 한 달 동안 계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더 망설이다가는 바치지 못할 것 같아 크게 결심을 하고 필자에게 전해주신 것입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눈을 감았는데 너무 감격하여 쉽게 기도의 입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권사님을 위하여 기도하는데 큰 감동과 은혜를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필자는 하나님과 권사님께 부끄러움을 가져야 했습니다. 당시의 필자는 이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인색하게 작은 액수의 주차장 헌금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마친 후 필자는 중대한 결심을 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결정이 훗날 하나님께 엄한 꾸짐을 당한다 할지라도 감당하기로 한 것입니다. “권사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권사님의 주차장 헌금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이제 지금 제가 권사님에게 드리는 이 5천불은 하나님께서 권사님에게 드리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나는 그 가방을 열어보지도 아니하고 받은 대로 다시 권사님에게 돌려 드릴 때 가방을 받는 권사님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앞으로 미국에서 계속 사시려면 영주권도 얻어야 하고 또 남의 집에서 일할 수 없을 때에는 방도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알고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

A 권사님은“목사님!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래도 되겠습니까?”세 번이나 반복해서 물으셨다. 그럴 때마다 힘주어 나는“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1 년 뒤 막내아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교사로 임명이 되어 어머니를 모셔가 자녀들과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A 권사님과 자손들 위에 항상 함께 하시길 오늘도 기도합니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19038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2)

두 가지를 질문했다. 돈은 어떤 의미로 생각하시느냐는 것과 어떻게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란 필자의 칼럼이 본지를 통해 보도(2010년 1월 20일자) 되고나서 두 달 후 한국서 발행되는 기독언론 <아름다운 동행>의 발행인 박 에스더 권사님으로 부터 칼럼에 소개된 이정희(한) 회장님을 인터뷰 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로부터 1년 2개월 만인 지난 5월 4일 박 에스더 권사님이 이곳 Los Angeles를 방문, 이 회장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 회장님은 1974년 서울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다음 해에 미국에 오셔서 간호사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분야에서 크게 성공, 현재 11 개의 양로병원을 소유하고 있으며 직원 2000명을 거느리며 5개의 양로 병원을 새로 짓기 위하여 부지 구입을 완료하고 공사를 준비하고 있으시다.

6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를 마치면서 박 에스더 기자가 두 가지를 질문했다. 돈은 어떤 의미로 생각하시느냐는 것과 어떻게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첫째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하셨다. 자신에게 돈은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으며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종이에 숫자를 적고 그 뒤에 (0)을 몇 개 더 부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하셨다. 자신에게 필요한 돈은 하루에 2-30 불로 족하다는 것이었다. 재산이 적을 때는 많은 돈을 가져보길 원했지만 큰 돈을 소유하고 나니까 돈이 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사업 수단이 있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땀 흘려 수고했기 때문에 오늘의 성공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대답 할 줄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큰 부자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부어 주셔서 받은 것 밖에 없다고 겸손하게 고백하시며 이런 말을 하셨다.

빈손으로 이민 와서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기 위해 이민 초창기에 너무 힘들게 사셨단다. 침대도 없는 방에서 4 식구가 살았고 심지어 먹는 것 까지 아끼면서 돈을 모으셨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원칙을 정하신 것이다. 부부가 버는 월급 중 한 사람의 것은 저금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였던 것이다. 일하는 병원이 직장이라고 생각지 아니하고 주님을,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직원들이 하기 싫어하는 냄새나고 힘든 일을 도맡아 했고,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살피지 아니하며 주변 사람을 원망하지 않으며 항상 감사하며 일을 했다. 그렇게 일하는 것을 본 병원장이 감동을 받은 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19년 전에 시작한 한 개의 양로병원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런 말을 하셨다. 작은 배는 작은 물에서 놀기에 작은 바람과 파도를 만나지만 큰 배는 큰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야 하기에 큰 바람과 풍랑이 있다고 하셨다.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큰 도전과 반복되는 위기를 돌파해서 나아가야만 하는 회장의 위치가 너무 외롭고 힘들어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욥 8 장 7 절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주님과 동행하시는 삶에 감사를 드린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18951

약속이 다르지 않습니까?

정성으로 대접한 음식을 받지 못함이 모두에게 그렇게 큰 상처로 남을 줄 몰랐다. 당시만 해도 목회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였기에 그런 우를 범하게 된 것이다.

20 여 년 전 어느 여름에 있었던 일로 오랜 시간이 흘러갔지만 아직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유학생으로 학교와 직장을 오가며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L 청년을 지켜보던 어느 분이 자신의 조카딸을 배필로 소개하여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다.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신혼부부는 필자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목사님을 모시고 축복 기도로 결혼 생활을 시작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랑신부와 필자는 이런 약속을 했다. 약속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필자가 선언을 하고 다짐 받은 것이다. 심방 시간은 식사 시간을 피해서 토요일 오후 2 시 반으로 정했다. 그리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말것을 지시했다. 첫 심방의 조건으로 내건 것은 차 한 잔의 대접만 받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한 것은 신랑과 신부를 잘 아는 필자로서는 신혼살이를 시작하는 가정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부는 좋은 가문에서 곱게 자라 막 학업을 끝내고 살림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방을 할 때마다 어머니 같은 전도사님과 함께 했다. 심방하는 날은 전도사님의 생신이었다. 당시 교회가 전도사님에게 사례를 하지 않았기에 생일을 맞으신 전도사님을 위해서 점심이라도 대접하고 싶어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불리고 지척의 거리에 있는 신혼 가정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각종 산해진미의 아름다운 음식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장모에게 있었던 것이다. 사위가 마음에 드니까! 심방하시는 목사님을 최고의 정성으로 대접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이틀 전부터 장모와 처제가 음식을 준비했고 간밤에는 세 모녀가 밤을 새우며 잔치 음식을 차린 것이다. 좁은 방안에 두 개의 큰 상을 펼치고 가득하게 음식을 차린 것이다. 이럴 때는 위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으련만! 상을 마주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수고한 손길을 칭찬하면서 감사의 뜻을 전했지만 이미 식사를 하였기에 그 많은 음식을 조금도 입에 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안한 마음은 필자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 약속을 두 번 세 번 했던 신랑과 신부도 마찬가지였다. “약속이 다르지 않습니까”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 모두는 유구무언이었다.

이럴 것이면 미리 말을 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차 한 잔으로 심방을 마친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 이후 교회에 출석해야 할 신혼부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정성으로 대접한 음식을 받지 못함이 모두에게 그렇게 큰 상처로 남을 줄 몰랐다. 당시만 해도 목회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였기에 그런 우를 범하게 된 것이다. 약속을 했지만 처음 모시는 목사님을 정성으로 대접하고 싶어 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다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욱 심방에 세심한 주의를 가지게 된 것이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18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