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어느 특별한 생일잔치

지난 3월5일 이종선 여사님의 80회 생일잔치가 용산에 위치한 국방부내 태극홀에서 성대하게 개최됐다. 단상에는 태극기가 자리하고 있었고 국기에 대한 경례에 이어 우렁찬 애국가 제창 후 필자의 기도로 생일잔치가 시작되었다.

고국의 친척 20여분과 현역 군인 영관급 고급장교 30여분과 6∙25 참전 용사 중 퇴역 장군 10여분 그리고 이 여사님의 간호장교 후배와 대학 후배 40∙50명이 함께 하였다. 이 여사님의 생일잔치가 이렇게 특별한 이유는 6∙25 참전 간호장교였기 때문이다. 이 여사님은 반세기 전부터 미국에 살고 계시다.

간호장교 소령 출신으로 이 땅에 사시면서도 항상 조국의 현실과 미래를 걱정하시며 한국의 여인으로 태어나 직업 군인으로 사셨던 것을 평생 자랑하셨다. 이 여사님을 미국에서 처음 만난 것은 35년 전이다. 이 여사님을 가까이 할수록 삶이 무엇임을 생각하게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임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마취의사로 50년 가까이 살아오셨기에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게 살아 오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1불 쓰는 것도 아까워 하시는 분이시다.

10여년 전 필자의 집에서 머무실 때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이 여사님의 양발이 누더기처럼 여기 저기 서툰 솜씨로 기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보고 우리 내외는 충격을 받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불행한 이웃을 위해서는 큰돈을 아낌없이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여사님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여인으로서 그 흔한 향수나 변변한 기초 화장품도 가지고 다니지 않으신다.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해서 사세요! 그렇게 사셨으면 훌륭하게 사신 것입니다. 남은 인생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세요!’이 말에 이 여사님께서 이렇게 대답을 하셨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인가 봐! 누군가를 도와주지 않고는 기쁨을 느낄 수가 없고 무엇인가 남을 위하여 일하지 않고는 행복을 가질 수가 없어!”

사람마다 자기를 위하여 살지만 이 여사님은 평생을 남을 위해 사셨다. 이런 희생정신과 군인정신 때문인지 가정을 가지지 못하시고 지금까지 혼자 살아오고 계신 것이다. 12년전에는 함께 아마존 의료선교를 다녀오기도 하셨다. 최근에는 한국 간호 사관학교 운동장에 잔디를 깔아 주기도 했다.

금번에 고국을 방문하시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6∙25참전 동지들과 친지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큰 잔치를 베푸신 것은 지금까지 지내온 자신의 삶을 조용하게 정리하고 싶으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마치 먼 길 떠남을 준비하시는 듯 했다.

현재는 와이오밍 주 프레스턴 대학에서 외국인 학생을 위한 상임고문으로 활동을 하고 계신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통령 자문기관인 평화통일정책회의 위원으로 80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시고 국내외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 것이다.

이 여사님의 아름다운 삶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느껴지며 우리 주님의 선하신 마음이 읽혀지는 것이다. 격동의 세월속에서 지금까지 이 여사님을 선한 길로 이끌어 주시어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행복을 나누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남은 생애 동안에도 변함없이 함께 하시길 기도한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17046

아마존의 여의사 Y 선교사

지난 해 가을 오래 간만에 아마존에서 사역하는 Y 선교사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7년 전 남가주목사회 총무로 있을 때, 임원회의 결의로 열악한 환경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의 사역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이 시작이 되어 4번에 걸쳐 아마존을 방문했고, 이후로도 많은 전문 의료인들과 목사님들이 그곳을 방문하여 사역을 도울 수 있었다. Y 선교사님이 사역의 본부로 삼으신 곳은 아마존 강의 하류로써, 페루와 콜롬비아 그리고 브라질이 만나는 삼각지역으로 세 나라가 국경 없이 오가는 마을이었다.

당시 그곳을 방문하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아마존은 현대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곳이다. 아마도 지구상에서 마지막 관광지가 있다면 그곳은 아마존이 될 것이다. 지구가 창조된 원시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곳은 아마존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디오 마을은 일반인이 들어갈 수가 없다. 인디오들은 조상 대대로부터 받은 피해 때문인지 외부인에 대하여 지나칠 정도로 배타적이다. 그래서 각 마을의 추장에게 허락을 받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저들의 땅을 밟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불모지에 한국인 선교사가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Y 선교사 때문이었다.

Y 선교사는 브라질 교포 1.5세로 어려서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자라나 브라질리아 의대를 졸업한 여의사이다. 평생 동안 예방 주사를 한 번도 맞아보지 못한 아마존의 인디오들에게 의사는 신비로운 존재요, 저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도움의 대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마을이고 Y 선교사님은 무시로 방문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젊은 처녀 의사를 오지에 보낸 부모는 안심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 목사님이 딸이 사역하는 곳에서 함께 기거하면서 병든 몸을 치료 받기 위하여 찾아오는 인디오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것이 발전하여 교회가 되었고 더 발전하여 신학교를 경영하기에 이른 것이다.

각 마을로 의료 진료를 다니면서 장래성이 보이는 젊은이들을 불러내어 신학교육을 시키어 저들의 마을에 교회당을 지어주어 복음이 그 땅에서 열매 맺게 한 것이다. 이 같은 사역은 20여 년째 계속되어 오고 있다. 그러다가 수년 전 뜻하지 아니한 아마존의 인디오들에 의한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그 일로 선교지에서 집이 있는 상파울로로 돌아와 오랜 기간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한 후 다시 아마존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해 봄에 복음을 영접한 인디오 청년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온 마음과 자기 몸을 다 바쳐 그 땅에서 마지막 까지 복음을 위해서 살기로 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집 사람과 함께 나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 순결하며 너무 아까운 선교사님의 생애를 알기 때문이다. 필자는 Y 선교사님을 만났을 때 수년만 그곳에서 봉사하고 큰 도시로 나가서 좋은 남편을 만나 다른 모습으로 행복한 삶을 살면서 주님을 섬길 것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16847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2월12일 토요일 오후1시에 베버리힐스에 살고 계시는 Mrs. Lee 여사님 댁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남가주에는 모든 사람들이 살기를 소망하는 아름다운 지역이 있습니다. 베버리힐스와 헹콕팍 그리고 아케디아 등의 지역입니다.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는 그런 곳에서 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끔 부자촌을 자동차로 지날 때마다 저렇게 아름답고 큰 집에 사시는 분들은 어떤 사람들일까를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정직하며 부지런하여 자기의 업종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조상님들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여사님이 사시는 곳은 6 에이커의 넓은 대지 중앙에 3층으로 9년여 전에 건립된 건평 3만4,000 스퀘어피트의 대 저택이었습니다. 베버리힐스 산 중턱에 남향으로 향한 전망이 좋은 집으로 철제 문 세 곳을 지나야 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얼마짜리 집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좋은 시절에는 5000만 불 이라고 하셨습니다.

집을 방문하고서 아래층부터 3층까지 안내를 받으며 구경을 하는데 30여분의 시간이 걸려야 했습니다. 베버리힐스에 10여 분의 교포들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큰 집에서 사시는 분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 여사님은 4년 전부터 그 곳에서 살고 계십니다.

이 여사님에 대해 호기심이 가지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2시간여 동안 담소를 나누면서 이 여사님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청하여 듣게 된 것입니다. 이 여사님은 서울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1975년 LA로 이민을 오셨습니다. 서울을 떠날 때 단돈 200불을 가지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처음 몇 년은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간호사 라이선스를 획득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면허를 취득하신 후 일하신 곳이 유대인이 경영하는 양로병원이었습니다. 일을 하실 때에 한 번도 직장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천직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함으로 일을 했습니다.

십 수 년을 변함없이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본 유대인 주인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주인인 나보다도 환자와 병원을 더 사랑하고 모든 물자를 절약했습니다. 1991년 12월 어느 날 유대인 주인이 놀라운 제안을 했습니다. 은퇴를 하는데 이 양로병원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양로병원을 인수할 만 한 돈이 없습니다. 그리고 운영할 자신도 없습니다. 그 때 유대인 주인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돈은 필요 없습니다. 이번 달 이곳에서 일한 사람들에게 지불해야 할 임금이 5000불인데 그것만 가지고 시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5000불은 이 여사님이 가지고 있는 돈의 전부였습니다. 약간의 망서림과 떨림이 있었습니다만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결심을 하고서 전문 경영인으로 태어나기를 시작했습니다. 종업원으로 일을 할 때는 주어진 시간만 충실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영을 책임 맡고 나서는 평소 생각지 못한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그럴 때마다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정면 돌파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의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갔습니다. 한 개로 시작한 양로병원이 두 개가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눈은 정확했습니다. 다음에는 네 개의 양로 병원으로 발전하면서 점점 속도가 배가 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12개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지금 이 여사님의 양로병원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2000명인데 앞으로 2년 안으로 2만 명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충성함으로 주인을 감동케 한 것이 큰 부를 이루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16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