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 218 명절 음식인 터키 없이 보낸 추수감사절!

미국 생활 반세기 만에 추수감사절에 터기 고기 없이 명절을 보냈습니다. 추사감사절에 각 가정에서만 터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터기를 먹어 왔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다음 달이면 교회 설립 40주년을 맞이합니다. 40년을 지나오는 동안에 추수감사절에 터기를 먹지 아니한 때는 단 두 번뿐이었습니다.

금년과 그리고 지난 해였습니다. 금년은 코로나 19 때문에 교회에서 모임과 식사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해에 터키를 먹지 아니한 것은 어느 교인 중 한 분이 추수감사절 때마다 먹는 터기 음식이 입에 맞지 아니한다며 차라리 닭고기를 교회에서 만들어 먹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그 분의 의견을 여전도회 회원들이 듣고서 지난해에는 교회 마당에서 터키 고기를 대신하여 양념 닭고기를 현장에서 버무려 기름에 튀겨 맛있게 먹은 일이 있습니다. 필자도 오랜 이민 생활을 하면서 추수감사절 때마다 터키 고기를 먹는 것에 익숙지 못했습니다. 근 30여년이 지나오는 동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터기 고기가 입에 맞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매년 추수감사절이 되면 터기 고기가 기다려졌습니다. 누군가 옆에서 이런 나의 변한 입맛을 향하여 말하길 이제야 비로서 미국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터키 고기가 없는 추수감사절은 생각할 수 없는 음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는 교회에서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터키를 먹지 못했습니다. 전 같으면 식당에 가서라도 사 먹을 수 있지만 지금은 식당도 영업을 하지 않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집에서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할 분이 계시지만 아직 나의 실력으로는 터키를 요리할 정도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매년 추수감사절 때마다 가까이 사는 딸 가정에서 모임을 갖고 잔치 음식을 나누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딸이 초청을 했지만 처음으로 딸의 잔치 초대에 거절을 했습니다. 이유는 코로나 19 때문이었습니다. 최근 코로나 19 사태가 필자가 사는 대도시에 갑자기 빠르게 확산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하여 시 행정 당국의 책임자가 명절 기간 동안 가족 모임을 자제하라고 강력하고 권고하고 있기에 이를 거역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마음은 간절하면서도 서로를 위해서 모임을 갖지 아니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서운하며 안스러움이 가시지 아니했습니다.

코로나 19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우리 삶의 여러 영역에 엄청난 변화와 충격을 계속해서 주고 있습니다. 누구도 이런 일이 우리 시대에 일어날 것에 대하여 예상한 과학자나 정치가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일로 앞으로 어디까지 어떤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할 지에 대해서도 아는 자가 없습니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의 시작은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미국에 온 청교도들에 의해서 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미국 동부 프리므스 항에 도착한 저들을 맞은 것은 기쁨과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혹독한 추위와 질병 굶주림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항해 중 잃는 슬픔과 눈물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일 년 만에 첫 수확을 거둔 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청교도들이 드린 감사는 풍성한 가운데 드린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행복해서 드린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아픔과 고난 절망과 좌절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바라보면서 드린 믿음의 감사이며 하나님께 감동을 드린 눈물의 감사였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불안하고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도 역사의 주인이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시일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나타나 우리가 당한 팬데믹에서 자유함을 허락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12 월 1 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17 JESUS IS LORD

지난 토요일 이른 아침에 교회를 향하여 자동차로 달려가고 있을 때입니다. 집에서 교회 까지는 20마일이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로 30분을 달려가야 합니다. 교회로 가기 위해선 두 번의 고속도로를 갈아타야 하고 가는 길 중간 로칼 길에서는 여러 번의 교차로를 만나게 됩니다.

그 중 한 곳에서 만난 사거리에서 왼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가 탄 차 앞에는 3 대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고 뒤에도 다른 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의 세대 차 중 두 번째 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유는 다른 차와 달리 중형 트럭으로 차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검은색의 자동차 운전석 뒤편에 “JESUS IS LORD”라는 흰색 페인트의 큰 글자가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글을 보는 순간 입가에선 아멘이라는 소리가 튀어 나왔습니다. 자신이 믿는 예수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모든 사람에게 표시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감동이 식기도 전이었습니다. 기다리던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오면서 차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신호등이 바뀌기까지 5-6대의 차량이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선 3 대의 차 중 첫 번째 차가 빠르게 갔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차가 움직이지를 않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운전자가 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 아니면 전화를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검은 차 바로 뒤에 서 있던 차에서 강한 크락션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래도 앞에 선 차가 움직이지 않으니까? 계속해서 경적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면서 비로서 두 번째 차가 움직였습니다.

그 일로 6-7 대의 차량이 건너야 할 신호등이었지만 나까지 고작 4대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내 뒤에 줄 서서 기다리던 운전자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검은 색 차는 미안한 마음을 감추려는 듯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빠르고 거칠게 마치 도망가듯 달려갔습니다.

이른 아침 상쾌한 운전 길에 만난 뜻하지 않은 이 일로 필자의 마음이 상한 것은 차라리 “JESUS IS LORD”라는 말을 자기 차에 쓰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글자를 쓰더라도 그렇게 큰 글자가 아닌 작은 글씨로 썼다면 더 좋았을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자신을 구원한 주님을 증거하는 것은 귀한 일이며 아름다운 행동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사람으로서 모범적인 행동이 수반하지 아니하는 사소한 일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다면 그 일로 주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향하여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말로만 믿는 자가 아니라 믿는 자의 삶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말로서 전도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믿는 자의 삶을 통하여 주님이 증거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 22장 37절 이하에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말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이 나타나야 하며 자신을 사랑함같이 이웃의 아픔을 돌아보며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큰 소리로 나는 구원 받았습니다라고 외치지 아니해도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이 널리 증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11 월 16일
이상기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16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입니까?

크리스찬투데이가 2020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구독자들을 향하여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입니까? 라는 설문 조사를 하는 것을 인터넷에서 읽고서 잠시도 지체하지 아니하고 곧 바로 “내가 원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것입니다”라는 글을 보냈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받고 싶은 선물을 생각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선물 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선물 할 대상은 어른이 아니고 어린 손자 손녀들 입니다. 그래서 이미 두 딸들에게 성탄 선물을 준비하라고 돈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엄마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구입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름으로 성탄 선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크리스찬투데이가 당신이 받고 싶은 성탄 선물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서 이제껏 생각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질문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설문지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내가 받고 싶은 성탄 선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받아서 기쁘고 행복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나와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환란으로 고통당하는 사람과 가정들이 어려움에서 회복 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는 명단에 있는 사람 중에는 수년째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도 있고 최근에 올라온 이름도 있습니다. 나이가 어린 틴에이저도 있고 연로하신 어른도 있습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사람도 있고 한국에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개중에는 수년 째 기도하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분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중에는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되지 아니하는 환자도 있고 임종을 앞두고 본인만 아니라 가족 모두 힘들어 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는 지난주만 해도 암 3기와 4기 진단을 받으신 분들도 있습니다. 내가 매일 자신들의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아는 분도 있지만 모르는 분도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우리 교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반 이상은 우리 교회 교인이 아니기도 합니다. 기도자 명단에 수록된 10여 분과 그 가족을 위하여 쉬지 아니하고 기도하는 것은 그들을 위한 기도를 주님이 기뻐하시는 주의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의 일은 멀리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로 고통 받고 신음하는 이웃을 위하여 상대방이 알던지 모르던지 그 분들의 아픔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받으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일 주님이 2020년 성탄 선물로 네가 무엇을 받기 원하시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지체하지 아니하고 왕상 3 장에 기록된 솔로몬처럼 구하려고 합니다.
돈과 명예 권세를 원하지 아니하고 장수를 원하기보다 나의 이 백성을 위하여 다스릴 지혜를 달라고 했던 것처럼 내가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로 어려운 질병의 사슬, 고통에서 놓임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들이 다시는 어두운 삶에서 신음하고 아파하지 아니한다는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저들이 더 이상 부모와 가족들의 염려와 걱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책임지고 여러 사람에게 도움 받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위로를 주고 행복을 주며 이웃에게는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칭찬 받는 은혜의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나에게 이런 성탄 선물을 주시옵소서!

이전에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20년 성탄 선물을 주님께 정말로 받고 싶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기도하는 10여 명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주님의 은혜로 살아났습니다. 이제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간증하는 사람이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한 사람도 좋습니다. 둘이 되면 더 좋겠고,,,

셋 아니 그 이상 이면 더 좋겠습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내게 이 기쁨의 성탄 선물을 허락해 주세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2020년 11 월 11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15 양분되어 가는 미국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제46대 미 대통령 선거가 끝났지만 예전 같으면 벌써 당선자가 나와야 하는데 이번에는 아직도 당선자가 발표되지 않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일로 장차 미국의 앞날에 무거운 먹구름이 내려앉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더하여 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 전국 여러 곳에서 염려하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일로 국민들의 마음이 양편으로 갈리어 서로를 증오하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가정 에서도 부부간에 이 편 저편으로 나뉘어 부부가 싸움을 하게 되는가하면 부모와 자식 간의 견해 차이로 다투기도 합니다.

전에는 같은 편이 아니라도 서로 간에 문제 삼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같은 편이 아니면 이전에 아무리 좋았던 관계라도 서로를 멀리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에게 투표했다는 말을 전처럼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일로 직장이나 이웃에게 어떤 아픔을 주고받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염려하는 것처럼 어느 편에서 차기 대통령이 나온다 할지라도 이미 상처 입은 다른 편의 국민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것이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인내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선거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현상을 보게 되는 것이 슬프게 느껴집니다.

선거전에는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편을 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거가 끝이 났으면 자신의 주장과 생각도 접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원하는 사람이 당선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일로 화를 발하며 분노를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성숙한 시민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투표한 사람이 당선되었다고 해서 지나치게 기쁨을 들어내는 것도 좋은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웃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세계인이 동경하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독재국가와 달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권력자가 국민의 투표에 의하여 선출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로 나타난 결과에 대하여 다른 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선거가 이번 한번으로 그치고 만다면 얼마든지 결과에 불복할 수 있습니다. 항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거는 한번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4 년 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선거 결과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염려하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민들의 적극적인 의사 표시와 행동은 더 강한 나라를 만들어가는 미국만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속담에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가 오면 땅이 질척해도 마르면 단단하게 굳어집니다.
어떤 이들은 이번 사태가 미국인의 민 낮을 드러냈다고 주장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생각할 수만 없습니다. 미국이 건강한 나라, 강한 나라이기에 그런 현상도 일어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래서 미국의 장래에 대해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더 강한 나라, 민주주의 국가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God Bless America!

2020년 11 월 7 일

이상기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14 내년 봄을 기대하면서 꽃씨를 뿌렸습니다.

오는 세월 막을 수 없고 가는 세월 잡을 수 없다는 말이 절로 생각이 나는 계절이 왔습니다. 2020년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 19의 계속되는 위기로 염려와 두려움 속에 지나온 한 해였습니다. 조금만 참고 인내하면 곧 진정되리라고 믿었던 기대가 무너지면서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삶 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 큰 파격을 가져왔습니다. 충격은 개인에 한하지 않고 나라와 대륙의 경계를 넘어 지구촌 전체로 확장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천국의 시민으로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예배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꿈에도 생각지 못한 예배가 제한을 받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인생들처럼 코로나 19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아니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들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겨울을 앞두고 긴 봄과 여름을 지내오면서 그렇게 푸르름을 자랑하던 무성한 나뭇잎들이 낙엽으로 변하여 앙상한 가지를 남기도 있습니다.

단풍으로 붉고 화사하게 물들어가는 때에 교회를 함께 섬기는 S 목사님이 교회 뜰에 봄맞이 꽃씨를 뿌려보자고 제안을 해 오셔서 즉시 응답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두 주간 동안 두 번의 토요일에 씨앗을 뿌리기 전에 필요한 거름을 사다 뿌렸습니다. 먼저 토요일에는 봄동 배추와 시금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 예쁘게 싹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싹을 피우며 올라오는 생명들을 보는 나를 기쁘게 한 것은 성경의 말씀대로 뿌린 대로 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씨앗을 뿌리지 아니했으면 이런 감동과 기쁨은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 보면서 주님이 왜 우리를 향하여 씨 부리는 비유를 배우라고 하셨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편 5 –6 절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심지 아니하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주님을 향하여 믿음의 뿌리를 내리지 아니하면 얻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때로는 눈물을 흘려야 할 때도 있으며, 울어야 할 일도 만날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란과 아픔이 있을 때 눈물 흘리면서도 주님께 나아가지 아니하면 위로와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 주인 지난 토요일에는 튤립과 꽃씨를 심기 위해 고랑을 내고 심고 뿌렸습니다. 튤립은 탁구공보다 조금 커 보이는 것으로 수십개를 30-40 센티미터 간격으로 심었습니다. 이마에는 구슬땀이 흐르고 허리는 아픔을 느꼈지만 내년 봄에 아름답게 피어날 것을 생각만 해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사역하시는 Y 목사님이 얼마 전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교회 뜰에 과실수와 꽃을 심을 수 있는 것이 은혜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늘 마음에 안정을 주는 푸른 잔디, 교회당을 두르고 있는 20 여 구루의 과실 수에서 계절을 따라 잎을 피고 꽃을 내며 열매 맺는 것을 보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를 보면서 농부가 자기 밭에 뿌린 씨앗이나 과실 수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결실 할 때를 기다림같이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도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무엇을 위하여 어떤 삶을 사는 지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시고 지켜보심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020년 11 월 3 일

이상기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13 미 대통령 선거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역사적인 제 46대 미 대통령 선거가 한 주 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선거철이면 늘 경험하는 것이지만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조용하게 선거를 준비하는 것 같다가도 선거 일자가 가까워지면서 양당 후보만 아니라 각 진영마다 상대 진영을 향하여 더욱 강하게 공격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민자로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이 땅에 살아오면서 9번 대통령 선거에 참여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지난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좌 우 대립과 분열의 양상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아마도 선거가 끝나고 나면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이런 생각을 반복해서 해 오던 중 10여 전에 아들과 나누던 대화가 생각이 나면서 미국의 장래에 대하여 염려하던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들은 Georgetown University를 졸업했습니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캘리포니아에 있는 대학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이유는 아들이 원하는 동부로 가게 될 경우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매번 오고 갈 때마다 비행경비와 체제 경비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모든 대학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대학 2학년의 수업과 학점을 받아 놓았기에 2년 만 다니면 졸업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들은 UCLA와 Berkeley 대학을 택하지 아니하고 동부의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그 때 부모로서 아들의 선택을 강하게 만류했지만 아들은 자신의 선택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필자가 동부의 명문 대학을 선택한 것을 마지막 순간까지 반대한 것은 그 대학이 어떤 대학임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대학은 학생의 97%가 백인이며 학부모들이 미국의 상류사회를 이끌어 가는 분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시안과 흑인 그리고 멕시칸 등 기타 모든 소수계 학생을 다 합해도 3% 밖에 되지 아니하기에 겁이 났던 것입니다. 직장에서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인종의 벽이 있는 것을 그 동안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성장한 아들이 넓고 험한 세상에서 행여나 보이지 아니하는 세상의 파도를 이기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염려는 대학에 들어간 지 두 달 만에 사라졌습니다. 신입생 2천명이 참여한 학생회장 선거에서 아들이 선출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방학을 맞아 집에 왔을 때 물었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가서 그 동안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주저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들이 섬겨야 할 나라는 미국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상대할 나라는 지역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가 너희들의 나타남을 고대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 두 번째 집에 왔을 때 이번에는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 중 여러 명이 학업을 중단하고 자원해서 군대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놀랬습니다. 군대를 가려면 학업을 마치고 가야지 그 어려운 대학에 들어가서 중간에 군대에 가면 다시 와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친구들이 군대에 들어가는 것은 자신들의 선택이라기보다는 부모들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모 중에는 상원의원도 있고, 국회의원도 있으며 주지사도 있었습니다. 미국인들의 나라 사랑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고 헌신적이며 국가를 위하여 자신은 물론이요 가정을 희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국민을 위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으로 군대를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미국이 얼마나 건강한 나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선거의 결과에 대해서도 내가 투표한 사람이 당선 되어도 너무 좋아하지도 절망하거나 비관하지도 않습니다. 누가 되어도 그 배후에는 미국을 뜨겁게 사랑하며 자유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 헌신하며 말없이 충성하는 다수의 국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2020년 10 월 26일
이상기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12 코로나 바이러스 19는 언제 잡힐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과거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과학 만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금년 초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 19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지구 전체로 빠르게 확산 되면서 인류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겨오던 과학문명을 조롱하는 하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19가 금년 초 처음 우리에게 알려졌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삶에 이렇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곳이 미국이기에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코로나바이러스 19의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가 잘 못된 것임을 금방 알게 되었으며 그런 기대가 무너져 내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우리가 알고 믿었던 세계 제일의 미국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코로나바이러스 19로 쉽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으며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주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세계 각 나라별 코로나바이러스 19 감염 숫자를 보고서 놀라움과 함께 미국 땅에 살아가는 사람 중 하나로 큰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나라 216개 국가 중에서 감염자의 숫자가 가장 많은 나라로 미국이 1 위를 차지하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840만 명이고, 2 위는 인도로 750만 명이며, 3 위는 브라질로 530만 명, 4 위는 러시아로 140만 명, 5 위는 스페인으로 99만 명이 집계 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19에 감염된 숫자는 4 천만 명이었습니다. 지난 주 까지 사망자는 약 112만 명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보이는 것이며 만져지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19는 우리가 이전에 알지 못하던 것으로 강한 자나 부자나 권세 자를 가리지 아니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이지도 아니하고 만져지지도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가 이렇게 큰 영향을 주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있습니다. 전 세계의 의학계가 코로나바이러스 19를 대항할 치료약과 예방약을 만들기 위하여 엄청난 예산과 고급인력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과물이 나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과연 코로나바이러스 19를 대항할 치료약과 백신이 나오기는 하는 것일까요?

물론 그런 날이 반드시 오기는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쯤이나 우리가 그런 약과 백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 중 그 날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불안하고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불안해하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염려와 근심이 없는 사람을 향하여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실제로 심각한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잠시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큰 위험과 위기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염려를 아시는 주님이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만나는 코로나바이러스 19가 전 세계인을 두려움에 빠트리는 것을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 주님이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이 말씀을 주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는 말씀입니다.

세상 나라를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주님이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이 축복의 말씀으로 코로나바이러스 19로 인한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세상 끝날 까지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보호와 은총을 힘입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20년 10 월 20일
이상기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11 제46대 미 대통령 선거에서 과연 누가 웃게 될 것인가?

정해진 시간은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드디어 제 46대 미 대통령 선거일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과연 이번 선거에서 누가 승리하여 웃게 될까요? 현 대통령인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웃게 될까요? 아니면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 후보가 웃게 될 까요? 과거 어느 선거보다도 관심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매번 선거철이 다가오면 여론 기관에서 누가 당선될 것인가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 합니다. 지난 45대 선거 때처럼 이번에도 여론조사에선 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조 바이든 전 부통령 후보에게 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진영에서는 승리한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조 바이든 전 부통령 후보 진영에서는 여론 조사 결과가 자신들의 진영에 유리하게 나타난 결과에 대하여 만족해하면서도 4년 전인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여론에서 크게 승리하고도 투표에서 진 경험이 있기에 그 때의 상황이 다시 전개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매번 선거를 할 때마다 경험하는 것이지만 내가 선택한 후보가 당선이 되었을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아니할 때도 있었습니다. 내가 투표한 후보가 선거에서 당선이 되었을 때는 나만이 느끼는 뿌듯함으로 기쁨을 누리지만 내가 선택한 후보가 선거에서 지게 되면 한 동안 허전한 마음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하곤 했습니다.

1973년 20살 병든 청년의 몸으로 미국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이민자로 살아오면서 그 동안 9번 이상 미국 대통령 선거에 참여해 왔습니다. 미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이 땅에서 이렇게 오래 살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나라, 나의 조국은 한국이기에 미국에 머무는 것은 잠시 뿐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예레미아 10장 23절에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리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위의 말씀과 같이 지나온 나의 삶이 나의 계획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이 나의 길을 예비하시고 이끌어 주셨음을 감사함으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한 때는 미국의 시민권을 얻는 것이 조국을 배반하는 것으로 자랑스럽지 못한 부끄러운 행동으로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민자의 삶이 깊어가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나그네가 아니라 주인으로 미국의 시민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자랑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인생길을 지도하실 뿐 아니라 세상 나라와 민족의 길도 지도하심을 믿습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많은 사람이 미국의 장래에 대해서 불안해하며 심각한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미국의 장래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습니다. 근심하지 않습니다.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신 있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각 개인의 삶만 아니라 세상 나라도 이끄시며 미국의 미래를 계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계획을 할지라도 뜻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번 선거에서 웃는 사람도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필자도 지난 어느 선거보다 이번 선거처럼 관심을 크게 가져본 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내가 속한 정당과는 무관하게 소신 것 투표를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나의 마음에 합하지 않는 후보라도 내가 속한 정당의 후보에게 투표해오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소신 것 투표를 한 것입니다.

수일 전 우편 투표를 통하여 선거를 마쳤습니다. 이번 선거가 특별한 것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우리의 미래와 후손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하고 세계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서 이번 선거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10 월 14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10 미국의 대통령도 피하지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힘!

지난 주말 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코로나 바이러스의 힘이 강하다 할지라도 철통 경계로 소문난 백악관은 바이러스의 공격을 당연히 막아 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너무도 쉽게 그리고 빠르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바이러스에 걸린다 할지라도 마지막까지 바이러스의 공격에 살아남을 곳은 백악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통령뿐 아니라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진들과 가족들이 줄줄이 감염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 대통령의 감염 소식은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떡케 미국의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될 수 있습니까? 대통령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물 샐틈 없는 경호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안전을 위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전문가들이 밤과 낮으로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현대 의학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마치 미국의 강한 힘을 조롱하는 듯, 아니 미국만 아니라 전 세계를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 칼럼을 쓰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강한 나라 미국의 대통령도 막지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격에서 나와 가족 교회와 성도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아니한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나고 힘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보호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나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이 도우시고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잠시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건강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보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환란의 시대에 우리가 더 주님을 의지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의학이 나를 도와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에서 도망갈 수도 없고, 싸워 이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시편 50장 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주님은 이 시대 우리가 만나고 있는 환란의 정체를 알고 계십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와서 왜 우리를 공격하는지 알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지만 주님은 다 아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두렵게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악한 영과 같아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며 느낄 수도 없는 것이지만 주님만이 도우시고 주님만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기에서 우리를 보호하심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서워 하지만 말아야 합니다. 코로나 보다 더 강한 주님이 계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아래로 달려 나아가 주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로 인하여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기에서 건지심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0 월 5 일 2020년
이상기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09 “목사님! 추석 선물로 무엇을 드리는 것이 좋을까요?”

10 여일 전 교회를 섬기는 L 권사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이웃에 사시는 S 권사님의 부탁으로 필자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S 권사님이 L 권사님에게 전화를 요청한 것은 우리 교회의 교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때는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셨습니다. 그러다가 교회를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에 대한 사랑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매해 추석 명절과 크리스마스가 되면 귀한 선물을 보내오곤 하십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일 년에 서너 차례 정성된 반찬을 만들어서 L 권사님을 통하여 보내오십니다. S 권사님이 단골로 보내오는 반찬 중 필자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고추장 복음과 소고기 장조림, 그리고 새끼 감자조림과 여러 종류의 김치 등입니다. 반찬을 선물 받을 때마다 감동을 느끼는 것은 반찬에서 느껴지는 권사님의 사랑과 정성 때문입니다. 권사님은 손이 크셔서 반찬을 보내실 때 한두 번 먹을 양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고추장 복음이나 장조림은 2-3달 먹을 양을 보내오십니다.

그래서 냉장고에는 S 권사님이 보내주신 사랑의 반찬이 늘 자리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권사님이 보내주시는 반찬을 좋아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이번 추석 선물로 늘 하시던 대로 한국 배를 선물로 드리는 것보다는 반찬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필자에게 직접 물어보기가 미안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이웃에 사시는 L 권사님에게 부탁해서 목사님이 무엇을 원하시는 지 알아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전화를 받고서 L 권사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그만 하셔도 됩니다. 그 동안의 사랑의 선물이면 충분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S 권사님의 요즘 건강이 걱정스러울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나이 80을 넘어서면서 그렇게 건강하시던 모습이 매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걸으시는 모습이 힘에 겨워 보이시며 아직은 운전을 하시지만 그 불편한 몸으로 시장을 봐다가 오랜 시간 음식을 준비하려면 건강한 사람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을 전하시는 L 권사님에게 이제는 그만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얼마 전 어느 분이 고추장복음을 만드는 것을 곁에서 우연히 지켜본 일이 있습니다. 두 서너 시간을 불 곁에 서서 계속 나무 주걱으로 쉬지 않고 저어야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건강한 사람도 힘든 것임을 알았습니다. 필자가 권사님의 고추장 복음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추장 복음에 들어가는 특별한 양념 때문입니다. 통깨와 함께 얇게 다져진 소고기 그리고 잣을 듬뿍 넣어 버무려 볶아진 고추장은 맛도 맛이지만 영양도 만점이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지금까지 먹어본 고추장 복음 중에서 이런 것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복음 고추장 한 숟가락에는 잣이 20여 개나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고추장 복음이 아니라 잣 깨소금 소고기 고추장 복음이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10 월 1 일은 추석입니다. 일주일 전 수요일에 S 권사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선물이 준비되었으니 집에 가시는 길에 다녀가시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분에 넘치는 양을 선물 받았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사랑의 선물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새끼감자 조림과 시원한 국물김치를 한 대접 밥도 없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후에는 국수를 삶아서 국물김치에 말아 먹으면서 권사님의 사랑과 정성을 감사하며 크게 행복해 했습니다. S 권사님은 젊어서 교육가로 한국에서 사시다가 중년에 미국에 오셨습니다. 권사님에겐 Nick name이 있습니다.

천사 같은 권사님입니다. 권사님과 30여년을 지내오면서 단 한 번도 남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화난 얼굴도 본 일이 없습니다. 큰 소리로 말을 하는 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조용히 그리고 미소를 담고 계셨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권사님에 대하여 하는 말은 천사 같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삶의 모범을 보이시는 권사님이십니다. S 권사님! 곁에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사님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함을 보여 주시며 기독인의 바른 삶을 가르쳐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남은 생애를 통하여 하늘에 더 큰 상을 예비하시며 더 건강하시고 행복한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9월 30일 2020년
이상기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