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 257 목회자에게 진정한 기쁨이 되는 것!

지난 3년 동안 매일 기도하여 오던 “다은”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3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다은이가 어려운 병에서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매일 기도하던 기도자 명단에서 다은이의 이름을 기쁜 마음으로 지우며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었습니다.

그런데도 늘 나의 마음에 다은이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생활을 하고 있을까? 그 동안 다은이의 근황이 궁금하여 지난 주간에 다은이 어머니에게 안부를 물었습니다. 다은이는 지독하고 어려운 중환자실에서의 긴 투병 중에도 학업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두 번의 골수 이식 수술을 통하여 1년 여 기간 동안 무균실과 중환자실에 머물러야 하기에 학교에서의 정상 수업은 받을 수 없었지만 독학으로 학교 수업을 이어 갔습니다. 그러한 그의 노력이 인정되어 지난 6월에 그녀가 다니던 샌디에고의 고등학교에서 영광스러운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은이를 알게 된 것은 그녀가 14살 되던 때 필자가 앓았던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리고 나서였습니다. 지금은 현대의학의 발달로 자신의 골수와 일치하는 골수 기증자를 만나면 이식을 통하여 생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 외에는 치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골수 이식이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외동딸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던 중 필자의 간증 소식을 인터넷을 통하여 접하고 여러 경로를 통하여 필자와 연결이 된 것입니다. 그 때부터 다은이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느껴져 나를 살리신 주님이 다은이도 살려주시길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다은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다은이가 사는 곳은 필자가 사는 곳에서 자동차로 3시간 이상 달려가야 하는 먼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은이를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다은이의 현재 상태는 이렇습니다. 그동안 중환자실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다리 근육이 생기지 않아서 걷는 것에 많이 불편을 느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정상적인 식사를 하지 못해서 아직도 입맛을 회복하지 못하여 그로인한 식욕 부진으로 애를 먹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그 불편한 몸으로 지난 달 운전 면허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가지고 학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담당의사가 추천하는 간호대학으로 가까운 시일에 옮겨 도움을 받던 다은이가 다른 사람을 돕는 간호사가 되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은이 어머니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건강하고 훌륭한 간호사가 되어서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은이의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행복한 목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행복은 세상이 경험하지 못하는 목회자만이 가지는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행복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런 행복은 기도해본 사람만이 경험하는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다은이를 위해서 나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지면의 칼럼을 통하여 많은 애독자님들이 기도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필자에게 안부를 반복해서 물으셨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로 하나님이 원하시고 이 시대 우리 모두가 필요로 하는 아름다운 백의의 천사가 탄생하게 될 것을 손꼽아 기대해 봅니다.

다은이를 살려주신 주님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다은이를 타인으로 생각지 아니하시고 가족처럼 생각하시고 사랑으로 기도해 동참해 주셨던 모든 분들께 크게 감사드립니다.

2021년 10월 3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56 교회 문제로 상담 드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 45여년 이상 지척의 거리에서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고 계신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신이 섬기시는 교회 문제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누구와 대화를 나눌 수도 없기에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다고 하셨습니다. 상담을 요청하신 분은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선교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의 부인이셨습니다.

L 선교사님 부부가 특별하신 것은 지난 50여 년 동안 고국을 떠나 낮선 이곳에서 이민자로 살아가시는 동안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열심히 일 하시어 사업에 성공을 하신 후 주변의 다른 사람보다 일찍 은퇴하시어 50 후반에 자비량 선교사역을 위해서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시고 목사 안수를 받으셨습니다.

그런 다음 주님의 종으로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일까를 찾기 위해서 세계 여러 나라를 선교 여행을 하시다가 정착하신 곳이 우간다로 그곳에 15년 째 머무시면서 여러 개의 교회를 세우시고 초등학교 건물을 자비량으로 건축하시어 지역사회로부터 크게 환영 받으며 큰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고 파송 받은 젊은 후임자를 후계자로 세우고 일선에서 물러나 후임자를 돕고 계시며 가정과 자녀들이 있는 이곳(Los Angeles)과 선교지 우간다를 오가며 일하고 계십니다. 선교사님이 이곳에서 섬기시는 모 교회는 한인 타운 중심에 있는 오랜 역사를 가진 DY 선교교회입니다.

그 교회를 45년 이상 섬기고 계신 한인 타운의 올드타이머 이십니다. 그런데 요즘 이 선교사님 부부에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심각한 문제로 마음의 큰 상처를 받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문제나 선교지의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건강상의 문제도 아니고 자녀들의 문제도 아닙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큰 은혜와 복을 받아왔던 교회 때문입니다. 은혜와 복을 받아야 할 교회가 지금은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주일이 기다려지는 것이 아니라 근심과 걱정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담임목사님파와 장로님파로 나누어 극렬한 분쟁의 소용돌이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교회당 안에서만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안의 분쟁이 세상 법정으로 이어지면서 서로의 치부가 들어나 사람들의 조롱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선교사님 부부가 가슴아파하는 것은 양편이 누구의 말도 듣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안쓰러운 것은 양쪽에서 고용한 변호사를 위한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합니까? 결국 교회 성도들이 바쳐진 헌금이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선교사님 부부가 아파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양편에 오래된 교우들이 갈리어 있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보면 양쪽이 조금만 이해하고 양보하면 얼마든지 화합할 수 있으며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편에서도 그런 모습을 용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선교사님부부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오랜 교우이며 형제 이상으로 친하게 지내 오셨던 분들 가운데 선교사님 부부를 향하여 왜 우리와 같이 행동을 하지 않느냐며 당신도 저쪽이냐고 하는 말을 들을 때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편도 아니고 저 편도 아니라고 하면 양편에서 다 공격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자신들이 어떻게 처신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오랜 친구 선교사님의 고민을 전화로 상담 받으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선교사님! 죄송합니다만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드렸습니다. 아마도 주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이 훗날 저들의 말과 행동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런 때에 선교사님 부부가 하실 일은 주님의 교회의 평안과 이전 교회의 영광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심을 주님이 기뻐하실 겁니다.

2021년 9월 17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55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는데!

지난 주간에 인터넷으로 한국에서 발행되는 일간신문 기사를 읽다가 눈에 띄는 기사가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마가렛 러프레이라고 하는 56세 영국인 여성이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13년 유로밀리언스라는 복권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당첨금은 2700만 파운드(한화로 430억원)였습니다.

복권에 당첨되기 전에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런대로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고액 복권에 당첨 되고나서 그녀의 삶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길 돈이 많으면 행복은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줄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마가렛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물을 자기만을 위하여 사용하지 아니하고 주변의 불행한 이웃과 지역 사회를 위해서 아끼지 아니하고 사용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죽으면 돈을 짊어지고 갈 수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부자의 삶이 얼마나 힘 들었으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는데, 복권이 내 모든 삶을 파괴했다]고 했습니다. 복권에 당첨된 후를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옥이 있다면 난 그 안에 있었다, 그 정도로 나빴다, 가까운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의 돈을 훔쳐 달아났다]고 했습니다.

결국 마가렛은 56세의 나이로 결혼도 하지 아니하고 쓸쓸하게 홀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행복한 사람이었는데 고액복권 당첨이 자신의 행복을 빼앗아 갔다는 것입니다. 행복만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필자가 존경하는 C 장로님이 애틀랜타에 사시는데 서너 달 전에 Los Angeles를 방문하셨을 때 어느 교회서 간증집회를 하시면서 지난 3 월에 플로리다에 사는 한인 제임스 김 집사님이 2억 3540만 달러의 복권에 당첨되신 후 C 장로님께 찾아와 내가 앞으로 무엇을 어떡케 하여야 할까요?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장로님은 고액 당첨 가족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나서 이렇게 권면하셨답니다. 하나님이 큰 재물을 맡기신 것은 특별한 뜻이 있으십니다. 매사에 주의하시면서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시되 먼저는 출석하시는 교회 담임목사를 찾아뵙고 지도를 받으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영국인 마가렛에게 C 장로님과 같은 믿음의 동역자, 큰 혜안을 가지신 분이 계셨다면 고액 당첨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선물임을 알고서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자신도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플로리다의 제임스 김 집사님을 더욱 기대하게 됩니다.
고액복권 당첨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선물이 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재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재물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신 것을 항상 인정하며 자기 생각과 판단대로 사용치 아니하고 주변의 신실한 믿음의 선배들과 머리를 맞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임스 김 집사님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복권에 당첨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김 집사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평소 크게 존경하며 삶과 신앙의 본을 보이신 C 장로님께 찾아가 자신의 거취와 진로에 대해서 구했습니다.

김 집사님을 통한 아름다운 선행이 모두에게 알려지고, 고액 복권이 나와 가정을 더 행복하게 했습니다라는 고백을 듣는 날을 속히 만나길 기대해 봅니다.

2021년 9월 4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54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사고의 순간!

지난 8 월 11일 수요일은 필자가 사는 남가주가 매우 더운 날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땀을 식히기 위해서 목욕실로 들어갔습니다. 그 집에서 산지도 30여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나고 마는 것입니다.

목욕탕에 들어서자마자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면서 비누거품을 몸에 바른 후 다시 찬물로 몸을 씻는 순간 아! 하는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비누거품에 미끄러져 머리는 뒤로 젖혀지고 두 다리는 공중으로 오르는 것을 느끼는 순간 심한 통증과 함께 왼쪽 정강이 벼 아래에 상처가 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급히 탕 밖으로 나와 피가 흐르는 상처의 깊이를 살펴보니 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2-3년 전 심장 혈관에 스탠트를 넣은 후 피를 묽게 하는 약을 매일 먹고 있기에 피가 흐르면 지혈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선 몇 바늘 정도는 꿰매야 할 것 같았습니다.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면서 교우 중 전문 의료인으로 일하시는 분께 전화로 상담을 급하게 했습니다. 응급실로 가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당연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몇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넘어진 머리의 상태와 다리뼈의 상태를 물으셨습니다. 다리뼈에는 통증이 없지만 머리 뒤쪽에 이상증세가 느껴졌습니다.

손으로 더듬어보니 뒷머리 아래쪽이 동그랗게 부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하면 그런 내용을 소상하게 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응급실은 언제나 기다리는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제 앞에도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가 다섯 명이 있었고 엠브란스 자동차가 환자들을 계속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기다린 지 한 시간 여 만에 진료실에 들어섰습니다. 간단한 절차를 마치고 먼저 안내 받아간 곳은 X-ray를 촬영하는 방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상처 난 부위의 뼈 사진을 4 장 촬영한 후 다음으로 간 곳은 Pet-Scan 하는 곳에서 머리 촬영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 진료실로 갔습니다. 치료가 빠르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촬영결과는 1시간 여 만에 나왔습니다. 감사하게도 머리와 다리뼈는 정상으로 판명되어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강이뼈 아래 상처 난 부분만 치료하면 곧 바로 집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치료하는 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정도 상처면 몇 바늘 정도나 꿰멜겁니까?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궤멜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상처 부위에 소독을 하고 치료약을 바른 후 치료용 강력구루를 바르고 상처 부위를 커버할 수 있는 크기의 밴데이지를 바르면 된다고 하면서 그 상태로 상처 부위를 물에 담그지 아니하고 샤워는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응급실에서 3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일로 다시 한 번 미국의 의료제도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특별하게 느낀 것은 병원이 우리의 일상에서 멀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응급실이 존재하는 것은 나의 생명을 위기에서 구하여 내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오래전에 한국에서 여러 병원에 입원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신촌의 세브란스 병원에만 6-7번, 길게 입원해 있었던 때는 40일 동안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 때의 경험으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아니하는 것은 병원에 입원 할 때마다 입원비를 선불해야 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누구하나 입원비를 말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치료비를 말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병원에 들어갈 때도 나갈 때도 돈에 대해서 말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보험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직원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그것은 응급실에 들어가면서 카드에 기록한 내용 때문일 겁니다.

응급실에 비치된 신상명세서 카드는 간단했습니다. 1) 이 병원에 오신 적이 있었습니까? Yes
2) 이름과 생년월일 / 3) 주소 / 4) 응급실에 온 이유 / 5) Social secret number 이 내용만으로 응급치료를 받고 3시간 만에 집으로 왔습니다. 치료비에 대한 내용은 Medicare Statement를 통하여 보게 될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미국에 살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더욱 크게 감사하게 됩니다.

2021년 8월 13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53 노회 목사님들에게 큰 감동을 선물한 어느 교회!

지난 7월 20일 정오에 필자가 소속한 노회 원들이 벨리에 위치한 노회 소속 교회의 초청으로 위로 잔치가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팬데믹으로 모두가 힘들어 하는 때에 세상으로부터 받는 위로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로부터 받는 위로이기에 참석한 모든 목사님들에게 큰 기쁨과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같은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에도 같은 초청으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수십 명의 목사님들에게 정성된 최고의 음식과 여러 종류의 선물만 아니라 아름다운 봉투에 정성으로 써내려간 담임 목사님의 인사의 글과 함께 큰 돈을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이민교회를 40여년 섬겨오면서 처음 경험한 일입니다.

나도 다른 목사님에게 그런 큰 사랑을 베풀지 못했지만 다른 목사님에게 그런 사랑을 받아본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목사로 사는 동안 늘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뜻밖의 위로와 기쁨을 선물 받은 것입니다. 이 같은 행사는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마음이 있어도 실제로 행동하기는 어렵습니다. 행사를 위해서 소요되는 예산이 적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욱 감동이 되는 것은 행사를 위해서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행사 당일에는 당회원 장로님들과 교역자들이 주님을 섬기는 정성으로 뜨겁게 섬겨 주셨습니다.

형식적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섬김이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참석한 모든 목사님들의 마음에 진심으로 전달이 되는 깊은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교회를 담임하시는 C 목사님이 우리 중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이런 특별한 행사를 연이어 매년 행하시는 것을 보면서 그 섬김에 대하여 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C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라고 특별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위의 모든 교회들이 팬데믹으로 재정적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시고 더 큰 어려움에 고통당하시는 목사님들을 위로하시는 것은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분에 넘치는 감동과 사랑을 선물하시는 C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예수님은 마 10장 40 – 42절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말씀하신 대로 C 목사님과 섬기시는 교회위에 하늘에서 선지자의 상과, 의인의 상과, 빛나는 면류관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다시 한 번 우리에게 큰 감동으로 사랑을 선물하심을 감사드립니다.

2021년 7월 16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52 다은이를 살리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한 달 전에 다은이 어머니가 딸의 고등학교 졸업사진과 함께 병에서 고침 받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오셨습니다. 샌디에고에 사는 다은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햇수로 3년이 되었습니다. 14잘 때 재생불량성빈혈증이 발견되어 지난 3년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피를 말리는 투병생활로 가족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현대의학이 놀랍게 발달했지만 아직도 치료되지 아니하는 병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은이가 앓고 있었던 병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뼈 안의 골수에서 피를 만들어 내어야 하는데 그 기능이 폐쇄되어 피를 만들지 못하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반복해서 수혈을 받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몸은 타인의 피를 무한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느 순간에 죽임을 당할지 불안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은이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지만 사랑하는 딸이 사망의 어두운 골짜기에서 두려움과 끝없이 이어지는 아픔으로 신음하는 것을 보면서 함께 울어야 했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재생불량성빈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은 필자의 간증기사를 읽고서 여러 경로를 통하여 필자에게 전화가 연결이 되었습니다. 다은이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 순간 잊고 지내온 지난 4-50년 전의 일들이 기억이 되었습니다.

1972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서울의 몇 대학병원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살려주시어 지금까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서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은이의 소식을 듣고서 부터 지난 3년 동안 매일 기도했습니다. “나를 살려 주신 주님! 다은이도 살려 주시어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증거하게 해주세요”

아직도 다은이를 보지 못했지만 다은이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는 어디에 마땅히 물을 곳도 없기에 수시로 다은이의 상태를 카톡으로 문의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는 물음을 해 왔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은이를 위해서 기도 한 것은 다은이의 아픔이 나의 것으로 느껴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해는 다은이와 골수가 일치하는 기증자가 나타나서 모두가 감사하며 희망을 가지고 골수 이식 수술을 했지만 불행하게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로인하여 더 큰 절망과 수술 후유증으로 몇 개월 동안 너무 힘든 과정을 겪어야만 했었습니다. 다른 치료약이나 방법이 없기에 마지막 수단에 의존하기로 했었습니다.

그것은 다은이 아버지의 골수로 이식하기로 한 것입니다. 한번 하기도 어려운 수술을 두 번 연이어 하게 되었습니다. 1차 수술 때보다 2 차 수술의 성공 확률은 통계적으로 더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위험 부담이 따랐지만 할 수 있는 것이 그 것 밖에 없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수술을 한 것입니다.
의사들이 염려한대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나타나 무균 실에서 4-5개월 동안 위험한 죽음의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고 마침내 기적처럼 다시 생명을 이어받고 병원에서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은이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어려운 투병 생활 중에도 공부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었습니다.

그 힘든 중환자실에서도 의식이 깨어나면 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나 다은이를 돕는 간호사님과 병원 직원들조차 저런 극한 상황에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아니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습니다. 누가 시키거나 권하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할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다은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이 같은 노력을 학교도 인정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믿습니다. 다은이가 자신에게 다가온 사망의 그림자를 싸워 이긴 것처럼 세상을 싸워 승리하여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주님의 사람으로 살 것을 믿습니다.

2021년 7월 14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51 5년 된 직장 상사 분의 묘지를 방문한 어느 부부!

얼마 전 장례식이 있어서 교회 묘지가 있는 로즈힐공원 채플에서 예배를 마치고 장지에서 하관식을 하는데 어느 중년의 부부가 하관식이 마치기까지 한 시간 정도 뜨거운 날씨 임에도 불구하고 기다렸다가 어느 분의 비석 앞에 엎드려 큰 절을 하면서 준비해온 정성된 음식과 잔에 부은 것을 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곳에 뭍인 고인의 유가족을 알고 있는데 두 분의 경우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고인과는 어떤 관계이십니까? 라고 물으면서 나의 신분도 밝혔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인이 5년 전 카탈리나섬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 7 명과 함께 낚시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고인이 된 사장님을 비롯하여 몇 분이 명을 달리했을 때 자신도 그 현장에 함께 있다가 특별한 은혜로 살아남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사고 소식은 미 전국의 뉴스로 크게 보도 되었습니다. 기일이 되어 5 년이 지났지만 찾아뵙고 예를 갖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부에게 사진을 찍어도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유는 고인의 부인이 권사님으로 필자와 교제가 이어지고 있기에 두 분의 사진과 함께 묘지를 다녀가신 것을 알려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받고서 곧 바로 부인 권사님에게 전화를 하면서 사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부인 권사님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 박영준 사장님이 실패한 삶을 살지 않으셨습니다.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에서 옛 직원이 상사의 묘지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번은 올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5 년 동안 반복해서 그 날을 기억하면서 일상을 멈추고 장지에 달려와 정성을 다한 예를 갖추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만일 고인이 잘못 사셨다면 그런 인사와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가족도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의 직원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풀고 감동을 주는 삶을 사셨으면 5년이 지났음에도 기일을 기억할 뿐 아니라 바쁜 생활 속에서 시간을 내어 묘지까지 달려올 수 있습니까?

더구나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엎드려 큰 절을 하는 것은 정말로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켜보는 필자에게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고 박영준 집사님은 멋진 삶을 사셨습니다라고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듣고 부인은 예를 표하는 직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묘지만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기일이 되면 옛 상사의 집을 찾아와 부인 권사님에게 위로의 말씀과 함께 봉투를 건네주고 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사람마다 행한 대로 받는 다고 말을 합니다.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 박영준집사님을 생각하면서 나의 삶도 이웃에게 유익이 되고 감동을 주는 사랑과 섬김의 사람으로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나도 언젠가 부르심을 받을 터인데 과연 누가 얼마나 기억해 주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 잘 갔지, 하면서 나 까닭에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이 없어야 겠습니다.

집사님이 사고를 당했을 때 걱정한 것이 있었습니다. 잘 나가던 사업이 위기를 맞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남은 회사 직원들이 한 마음이 되어 회사를 더 크게 성장케 했습니다. 시 37편 25-26절은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말씀하신대로 고인의 아들과 딸이 넘치는 은혜와 복을 받고 있습니다. 집사님은 가셨어도 믿음 안에서 성실한 사업가로 사셨던 아름다운 삶의 자취가 우리에게 표상이 되어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함을 알려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2021년 7월 2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50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다저스 야구장!

지난 6 월 28일 월요일 저녁에 큰 딸 가족이 아버지의 날 선물로 다저스 야구장으로 초대해오랫만에 무더운 더운 날씨를 피하여 한 여름 밤의 시원함과 스릴 넘치는 멋 진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날의 야구경기가 특별했던 것은 1년 4개월 여 동안 팬데믹으로 경기장에서 관람이 허락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4만 5 천여 명이 모인 야구장에서 큰 딸의 세 손녀, 초 중 고등학생들과 옆 자리에 앉아서 경기를 관람하면서 세월이 빠르게 흘러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마냥 어린 줄로만 알았던 손녀들이 이제는 내가 도움을 주기보다는 도리어 기대고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훌쩍 커버린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날의 경기는 다저스의 앙숙이라고 할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자이언트 이었습니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다저스의 1 번 타자가 첫 번 친 것이 홈런이 되었고 이어서 2 번 타자도 담장을 넘어가는 연속 홈런을 날렸습니다. 오래전에 어느 분이 말하길 야구장에 가서 홈런을 하나만 보아도 티켓 값을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경기에서는 다저스가 3 개의 홈런을 날렸고 자이언트도 2 개의 홈런을 날려 총 5 개의 홈런을 보았으니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특별히 다저스가 일회에 두 개의 홈런을 연속으로 친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기까지 3대 2 로 한 점차 우위를 아슬아슬하게 지켰습니다.

자이언트가 점수를 낼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위기를 잘 극복해 정말로 근래에 보기 드문 타이트한 경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실시간으로 친구 목사님에게 카톡으로 중계를 했더니 요즘 다저스가 자이언트에 밀려 죽을 쑤더니 이 목사가 경기장에 등장하니 이겼다고 말을 해서 함께 웃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집에서 TV로 보는 것과 경기장에서 보는 것의 차이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순간순간 경기 흐름에 따라 하늘을 치솟는 뜨거운 함성과 부르짖음, 어디에서도 느낄 수없고 맛 볼 수 없는 박진감 넘치는 감동과 감격이었습니다. 손녀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일어서서 박수하며 함성을 외쳤습니다.

경기장이 아니면 그런 광경을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 경기장에 가면서 만일을 대비해 마스크를 가지고 갔습니다. 다른 사람이 마스크를 썼으면 쓰려고 한 것입니다. 경기장에 입장할 때 마스크를 쓰라고 누가 말을 하든지 아니면 마이크를 통하여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서 마스크를 쓰라고 하면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마스크를 쓰라고 권하는 사람도 없었고, 방송 안내를 통하여 마스크를 쓰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를 보면서 팬데믹에서 해방 받은 것이 확실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안 것이 있습니다. 이제는 경기장에서 현찰이 사용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차를 주차하는 것도 현찰이 통용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사전에 모바일을 통하여 결재하고 받은 영수증을 셀 폰으로 보여주면 됩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먹고 마시는 것을 살 때에도 현찰이 아닌 크레딧카드로만 지불이 됩니다. 이전에 생각지 못한 참으로 신기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큰 손녀가 질문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궁금했는가 봅니다. 이 경기장에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왔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손녀가 생각하기에 한두 번 경기에 온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 모양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보니 다저스 구장을 다시 찾은 것이 20년이 넘었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있었을 때니까 그리 된 것입니다. 그랬더니 왜 그 동안 오지 못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17년 동안 아프셨고 우리 곁을 떠난 지 4 년이 되었다고 했더니 고객을 끄덕이며 말하길 가까운 시일에 다시 방문하자고 했습니다.  1년 후 손녀가 대학을 가게 되면 이런 기회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한 동안 잊고 살았던 삶의 또 다른 활력과 기쁨을 통하여 오늘도 건강한 삶을 꿈꾸게 하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2021년 6월 29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49 목회자로서 힘들어 했던 장례식 경험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에게 사역을 하는 동안 감동과 감격의 순간이 있었는가하면 반대로 고통과 아픔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한 교회만을 섬겨오면서 경험한 감동과 감격의 때는 충성스러운 교인이 어려움 당하여 해결의 방법이 없다가 극적으로 주님의 도우 심을 받았을 때입니다.

최근에는 어느 집사님이 몸에 이상증세를 느껴 병원을 방문해서 CT 촬영을 하였는데 암이 발견되어 더 정확을 기하기 위해 MRI 촬영을 했습니다. 역시 양쪽 유방에 암이 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암이 얼마나 무서운 것임을 아는 경험자들과 가족들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무서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면 순종하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왜 나에게 암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하면서 자신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족과 주님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MRI 촬영결과를 받자마자 조직 검사 일자가 잡혔습니다.

집사님께 사랑과 은혜를 받았던 가족과 친지들과 교우들은 마음을 모아서 기도하길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필자도 초조한 마음으로 애를 태워야 했습니다.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집사님의 전화번호가 찍혔습니다.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를 해야 좋을까?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목사님, 감사합니다. 아니 이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수술 날짜를 통보 받았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어쩌면 좋아요, 어떻게 하지요! 그런 소리를 하실 줄 알았는데 전화기로 들려지는 집사님의 소리는 맑고 고운 그리고 감사의 기쁨 소식이었습니다.

암이 아니랍니다. 물혹이 있었답니다. CT와 MRI에서 암으로 판명이 된 것이 조직 검사결과 물혹으로 나온 것은 처음 들어본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극적인 감동과 감격을 받은 것입니다. 본인과 가족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런가하면 목사로서 가장 절망적이고 힘들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특별히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아픔을 느껴야 했었던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는 40이 넘어서 낳은 아들의 죽음이었습니다. 20살에 미국에 유학 와 2 년 만에 운전하던 차가 사고로 동승자 가운데 독자만 명을 달리했습니다.

장례식을 위해서 한국에서 날아온 부모님들의 울부짖음이 30년이 지나간 지금도 귓가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12살 된 아들이 1200만 명에 한명 걸린다는 희귀 병으로 수년 동안 병원과 집을 오가며 투병 생활을 하다가 명을 달리했을 때입니다. 그러한 일을 당하면 부모님을 위로할 말이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지난 6 월 30일에 있었던 장례식이었습니다. 운명하신 날은 5 월이었지만 팬데믹으로 장례 일정이 잡히지 않아 37일 만에 장례식을 했습니다. 한 달여 동안 장례식을 기다리는 동안 고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마음에 답답함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고인이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을 때 몇 차례 방문하여 기도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우편 강도가 임종 순간에 주님을 믿고 극적으로 구원 받아 천국에 동행 했던 것처럼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구원의 기회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고인은 누구보다도 세상 적으로는 열심히 사셨습니다. 가정을 위하고 사업을 이루는 일에는 혼신의 힘과 정성으로 부족함이 없는 가정과 사업을 이루셨습니다. 주변으로부터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부러움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세를 위하여 준비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인생은 세상이 다가 아닌 것을 모르셨습니다. 구원 받은 분들의 장례식을 준비할 때는 성령이 주시는 위로가 있습니다. 하늘의 기쁨이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한 분들의 장례식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며 다른 사람에게도 위로와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2021년 6월 30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48 어느 목사님의 천국 환송식 부고를 읽고서!

얼마 전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며 활발하게 활동하시므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셨던 어느 음악 목사님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환송예배를 드린다는 내용의 부고를 일간신문의 광고 지면에 크게 부고된 것을 읽고서 마음에 걸리는 내용이 있어서 며칠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신문에 부고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종 000 음악 목사이시며 저희들의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버지께서 2021년 5 월 21일 향년 76세 일기로 천국으로 이민 가셨기에 천국 환송식 예배를 드립니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부고를 보아왔지만 이런 내용의 부고는 처음 보았습니다.

필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부고의 내용 중 천국으로 이민을 가셨다고 하는 표현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국을 떠나 이민자로 이 땅에 살고 있기에 이민이라는 단어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민이라는 단어의 뜻은 정든 고향을 자의적 의사로 멀리 떠나 나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필자도 이민자로 고국을 떠나 이 땅에서 산지도 반세기가 되어 이곳에서 태어난 큰 딸이 40 중반이 되었고 두 딸을 통하여 태어난 이민 3세들 중에는 벌써 1년여 앞으로 다가온 대학입학을 준비해야 하는 손녀들이 둘이나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이지만 이민은 천국처럼 늘 위로와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민자로 낮선 타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고향에서 경험하지 못한 피 눈물을 흘려야 할 때도 있으며 고국에서의 삶보다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언어적인 문제, 문화적인 충격, 인종간의 갈등도 격어야 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명절이면 고향에서 가족들이 모이던 만남의 행복도 잃었습니다.

보고 싶은 친구, 일가친척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 그리움에 지칠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 중에는 이민의 삶의 뿌리를 안정되게 정착하지 못해 자녀들이 탈선하므로 원하던 이민의 꿈을 잃어버린 분들도 있는가하면 행복하던 가정이 파산 당한 가정도 있습니다. 차라리 이민을 오지 않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탄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민으로 성공하고 꿈을 이룬 가정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은 구원은 세상에서 천국으로 이민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남의 나라가 아닙니다. 천국의 주인은 바로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우리의 본향입니다. 고향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 34절에서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하라” 우리가 세상을 떠나서 가는 곳은 아버지의 나라, 천국입니다. 그 나라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들어갈 때에 이민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상속자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이 내가 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예수님은 계 21장 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지나 갔음이니라”

이민자에게는 눈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망도 있습니다. 아픔도 만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선 영원토록 그런 일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그 나라에서 왕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5절에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천국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까? 왕의 일을 합니다. 얼마동안 왕 노릇을 합니까? 백년이 아닙니다. 천년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왕으로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로 말미암은 구원의 부르심은 이민자로 부르심 받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2021년 6월 20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