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 228 소리 없이 다가와 봄을 알리는 복숭아꽃!

요즈음 아침저녁으로 이어지는 맑은 날씨와 신선한 공기 그리고 높고 티 없이 곱고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에서 겨울이 지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7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면서 전에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을 머리로 알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삶 속에서 피부로 느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맞이하는 봄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주변에 일 년 여 전에 20여 구루의 과실 수를 심었습니다. 작년에도 과실 수에서 꽃이 피고 열매들이 맺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감동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과실 수 중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것은 복숭아였습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복숭아나무는 잎이 다 떨어져 마치 죽은 나무와 같았었습니다. 다른 나무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복숭아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실 수 중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전에는 복숭아꽃이 그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줄 몰랐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복숭아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숭아나무가 잎이 먼저 난 다음에 꽃이 피는 것이 아니고 꽃이 피었다가 지고 난 다음에서야 잎이 나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연분홍 꽃잎의 색이 얼마나 짙고 고운지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나를 너무 행복케 합니다.

복숭아나무가 자리한 곳은 교회당으로 들고 나는 문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좌편으로는 사과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에도 대여섯 번 교회 당 안으로 들고 나면서 대여섯 번 이상 그 꽃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며 어떻게 이렇게 고울 수가 있을까 하면서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혼자 보기에 너무 아까워 사진으로 찍어서 지인들에게 보내기도하고 Facebook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나무의 사명은 살아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실 수의 사명은 때를 따라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며 때를 따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나무의 열매는 하루아침에 맺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 스스로 맺는 것도 아닙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선 먼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뿌리로부터 계속 양분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꽃이 핀다고 그것이 다 열매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꽃의 수보다 열매가 맺히는 것은 적습니다. 그렇다고 작은 열매들이 다 추수 때가지 익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긴 시간 동안 세월과 싸워서 이겨야만 합니다. 여름을 지나면서 계속되는 뜨거운 태양 빛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비와 바람과도 싸워야 합니다. 여러 가지 병충해와도 싸워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살아남아야 비로소 농부들에게 기쁨을 주는 아름다운 과일로 익어가는 것입니다.

시편 1 편에서 복 있는 나무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복이 있는 것은 마르지 않기 때문이며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마르지 아니하는 생명 강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 안에 믿음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철마다 죽은 가지에서 다시 생명이 돋아나듯 우리의 삶에도 희망의 새 순과 꽃이 철마다 피어오르며 아름다운 축복의 열매들이 줄줄이 맺어져 말씀하신대로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꽃이 피어서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물하듯 우리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삶,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웃과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삶의 주인공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우리의 남은 삶이 얼마일지 아는 자가 없습니다만 앞으로 얼마를 더 살던지 지난 삶보다 남은 생애가 하늘의 큰 상급을 쌓으며 자신과 이웃에게도 복이 되는 삶을 사시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21년 2월 6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27 Covid-19 백신 주사를 맞았습니다.

지난 1 월 27일 수요일에 주님의 은혜로 Covid-19 백신 주사를 맞았습니다. 이주일 전인 1 월 13일 저녁 늦은 시간에 65세 이상 고령자와 기저 질환 환자에게 백신 주사를 우선적으로 접종한다는 로칼 정부의 행정 명령이 뉴스를 통하여 보도되자마자 필자의 큰 딸이 즉시 컴퓨터로 예약을 받았습니다.

접종을 받기로 한 장소는 집에서 약 15마일 거리에 있는 Ralphs 마켓 안에 있는 약국이었습니다. 약속 받은 시간은 오후 1시 15분이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릴지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 만일을 대비하여 이른 시간인 두 시간 전에 도착 했습니다. 그런데 대기자가 한 사람도 없이 창구가 한산했습니다.

약국 직원에게 예약된 서류를 보여주며 백신 접종을 하는 곳이 맞느냐고 문의를 했더니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종이에 카피된 새로운 장소를 주면서 지금 곧 그리로 가면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15마일 떨어진 곳으로 30여분 자동차로 달려가니 대학교 주차장이었습니다.

자동차에 탄 채로 안내자에게 예약된 서류를 보여주니 저들이 가지고 있는 서류와 대조를 한 후 두 장의 서류를 내어주며 작성해 싸인을 하라고 했습니다. 서류 작성을 마치니 앞에 놓인 두 개의 자동차 노선 가운데 왼쪽 줄로 들어가라고 해서 긴 줄을 따라 가서 순서에 따라 접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백신 접종 초창기라 그런지 생각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몰리지는 않았습니다. 예약된 사람만 접종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차에서 앉은 채로 주사를 맞는 것이 일하시는 간호사분이나, 주사를 맞는 자신도 불편할 것 같아 차에서 내렸더니 담당 간호사분이 다시 차에 오르라고 해서 운적 석에 앉은 채로 왼쪽 팔을 걷어 올리고 백신 주사를 맞을 수 있었습니다. 백신을 맞고서 즉시 백신 접종 카드를 받았습니다. 그런 다음 15 분 동안 기다렸다가 이상이 없으면 가라고 해서 기다렸다가 집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두 주간 동안 이 날을 기다리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오갔습니다.

정말로 예약된 장소와 시간에 백신 주사를 맞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연일 뉴스를 통하여 보도되길 예약된 백신 물량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예약이 취소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신을 맞은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아 안정성에 대한 의문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백신 주사를 맞은 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만일에 있을지 모를 부작용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성도님들 중에는 전문 의료인들이 계셨습니다. 그 분들이 조언해 주는 대로 백신을 맞으러 가는 날 타이레놀을 먹고 갔습니다.

백신을 맞고 하루가 지나고 나니 주사 맞은 곳에 약간 통증을 느끼며 있으며 움직이는데 조금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생각보다 가벼운 것이며 이 정도라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3 주 후에 두 번째 백신 접종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전 세계를 큰 혼돈과 사망의 공포로 떨게 했던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쉬지 아니하고 일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릴 때 시 116편 12절의 말씀이 마음에 크게 와 닿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돈을 내라면 큰돈을 지불하고라도 맞아야 할 백신입니다. 부자라고 먼저 맞는 것이 아닙니다. 권세자라고 먼저 맞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난 사람이라고 먼저 맞는 것도 아닙니다. 가진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평범한 시민을 우대하고 섬기며 대접하는 미국에 사는 것이 특별한 은혜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2021년 1월 29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26 진짜 같은 가짜 뉴스의 놀라운 파급력

지난 1 월 20일은 미 제 46대 대통령 취임식을 갖는 날이었습니다. TV를 통하여 생중계되는 행사를 지켜보고 있는데 전화기에서 카톡 울림이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지인이 보내온 메시지였습니다. 제목에 “한국을 떠나려는 이재용과 삼성,, 옥중서신, 특별회견문”이라고 되어 있어 지체하지 않고 읽어 내려갔습니다.

길지 않은 회견문은 구구절절이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받은 카톡을 주변 지인들에게도 바로 전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루도 지나기도 전에 한국의 일간 신문 사회면에 그 내용이 가짜라는 보도가 실렸습니다. 너무도 진짜 같은 가짜 뉴스였기에 필자도 그 가짜 뉴스에 속아 넘어간 것이었습니다.

가짜 뉴스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 달 여 동안 우리는 미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나서 가짜 뉴스의 바다에 빠진 것 같은 혼돈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정말로 너무도 많은 믿을 수 없는 진짜 같은 가짜 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빠르게 전달되어 한 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기도 했었습니다.

특별히 이름난 유명 인사들이 유튜브를 통하여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내용이기에 쉽게 가짜 뉴스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거에 부정이 있다는 소송 제기에 연방 법원과 대법원에서 연달아 소송을 기각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몇 번의 소송을 경험하면서 미국의 사법제도가 얼마나 정확하고 분명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미국 법원의 판사들이 매우 현명하고 뛰어난 판단력을 가진 분들이라는 것을 재판을 통하여 경험했습니다. 만일 일부에서 주장한 것처럼 선거에 엄청난 부정이 존재했다면 법원이 소송을 기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부터 자극적인 유튜브 방송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족 중에도 가짜 뉴스에 현혹되어 분노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될 뿐 아니라 가까운 지인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셨습니다. 필자의 권유를 들을만한 분들에게는 더 이상 그런 내용으로 화를 보이지 말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염려와 우려 속에 아무런 사고 없이 대통령 취임식 행사가 마쳤습니다. 취임식이 끝나면서 사람들의 모습이 셋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며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바이든을 반대했지만 대통령으로 인정한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절대로 바이든을 자신들의 대통령으로 인정할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불법과 부정으로 표를 훔쳐간 죄인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가슴에 타오르는 화로 분노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냉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새 시대가 되었습니다. 새 대통령이 만인 앞에서 왼손을 성경에 손을 얻고 오른 손으로는 법대로 이 나라와 백성을 통치하겠다고 선서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믿기 싫어도 믿어야 합니다.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미국에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이고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3 장 1 – 2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2021년 1월 21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25 제46대 미 대통령 취임식을 생각하면서!

지난 해 11 월 3 일에 실시된 제 46대 미 대통령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관심 속에 치러졌습니다. 그로인하여 역대 선거중 가장 많은 사람이 투표에 참가하는 이변을 낳았습니다. 선거 과정이 치열했던 것만큼 개표 과정이나 선거 결과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로인하여 이전에 보지 못한 불미스러운 일이 미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모두가 이성을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더 이상의 선거 결과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는 갈라진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치유가 필요한 때입니다.

누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습니까? 진 자는 스스로를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승자가 패자를 이해하고 관용하며 사랑으로 품어줄 때 상대방이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일로 미국의 장래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둘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간이나 형제간, 혹은 부모와 자식 간에 다투기도 합니다. 다툼이 없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삶이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30여 년 전에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을 때 였습니다. 어느 여 학생이 돌발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도 부부 싸움을 하시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때도 아니고 토요일 오후 교회에서 성경 공부하는 시간에 갑작스런 질문에 학생들은 물론이요 필자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을 예사롭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잘못 대답을 하거나 질문한 학생에게 원하는 답변을 주지 못한다면 실망할 것이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학생의 어머니는 난치병으로 생사의 위기에 처해 있었기에 부부간에 사이가 멀어져 있었나 봅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님들이 사이좋게 싸우지 아니하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때 질문하는 여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산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질문한 학생은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습니다. 목사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 말을 듣고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죽은 사람은 가까운 사람과 싸우지 못하지만 산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싸운다고 했습니다. 학생의 부모님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도 가정에서 싸운다고 했습니다.

싸워도 화나는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주님이 보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국가도 가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 가정의 행복은 내가 지키지 아니하면 다른 사람이 지켜주지 못합니다. 미국을 누가 지켜야 합니까? 우리가 지키지 아니하면 나의 행복, 가정의 행복, 자손들의 행복을 보장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편에 있는 사람을 원수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라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상대편에 있는 분들도 나라의 미래와 장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7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은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선거가 이번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4년 마다 다시 투표 합니다. 이번에 이겼다고 다음에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번에 졌다고 다음에도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넓은 마음으로 승자를 축하하고 이긴 편에서는 국민의 절반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주어진 4 년 동안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크게 충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021 년 1 월 15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24 팬데믹 기간에 부름 받으신 권사님을 생각하면서…

지난 12 월 30일 밤 10시 30분에 오랜 기간 동안 양로병원에서 입원해 계시던 92세의 L 권사님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 하셨다는 소식을 아들에게서 전화로 듣고 그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를 33년 동안 섬기셨던 아름다운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운명하시는 날 오전에 양로병원 담당자가 아들에게 전화로 오늘을 넘기시지 못하실 것 같다는 전갈을 받고 필자에게 바로 알려와 마음에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구보다도 교회를 남달리 크게 사랑하셨던 권사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의 운명 소식을 전하면서 손자 손녀를 두신 외아들은 임종하시는 어머니를 곁에서 지키지 못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울먹이는 소리로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홀로 고통 가운데 떠나시는 어머니를 지켜주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시면서 장례식날 어머니를 뵈울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문제는 장의사에서 장례 절차를 의논할 때 만나서 물어보자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들은 지난 10개월 동안 팬데믹으로 어머니를 방문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전에 전화로 예약을 하고서 1 시간을 자동차로 달려와야 어머니를 2 층 닫힌 유리창 밖으로 먼발치에서 수인사로 바라만 볼 뿐이었습니다.

다음 날 장의사에 장례절차를 의논하기 위해서 묘지 서류를 준비해 가지고 방문했습니다. 1시간 반에 걸쳐서 장례절차가 서류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유가족이 원하는 날짜에 장례식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많은 사망자가 대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3일장이나 5 일장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장례일정은 장지의 스케줄에 따라서 지정해 주는 날짜라야 가능합니다. 예상되는 날짜는 언제쯤 가능하겠는가고 물었더니 20일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코로나 19로 명을 달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장례식 당일 유가족이 장의사에서 고인을 뵈올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장례식에 많은 조문객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상을 당해도 이웃에게 알리는 것도 부담이 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용하게 가족장으로 장례를 하게 됩니다.

권사님의 장례를 준비하면서 마음에 다가오는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L 권사님은 큰 복을 받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다 효자 효녀시며 손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큰 복을 받아 많은 사람에게 자랑이 되며 칭찬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큰 복을 받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영생을 선물 받은 천국의 시민이 되신 것입니다. 한국에 계실 때는 교회를 모르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이민 오셔서 주님을 만나신 것입니다. 인생이 세상을 사는 동안 가장 귀하고 복된 것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큰 이름을 떨치는 사람이 되어도 주님을 영접하지 아니한 인생은 성공한 것 같으나 실패한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6장에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내가 천국의 사람이 되느냐 못 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L 권사님은 주님의 선택을 받아 이 땅에 오셔서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크게 충성 하시므로 하늘에 빛나는 상을 받게 하셨을 뿐 아니라 주님의 교회와 우리에게 아름다음 믿음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L 권사님을 사랑합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제 다시 질병의 아픔이 없는 주님 안에서 영원한 위로와 평강의 복을 누리심을 믿습니다. 우리도 권사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다시 만날 영광의 만남을 기다리겠습니다.

2021년 1 월 2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23 목회자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성도!

이민 교회를 40년 동안 한 교회만을 섬겨오면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그 동안 필자에게 큰 위로와 끊임없는 감동을 선물한 자랑스럽고 훌륭하신 믿음의 성도님들을 만나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크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족한 종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실력과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다음으로는 부족한 종을 때마다 도우시기 위하여 좋은 교인, 성도님들을 만나게 하시고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다양한 재능이 많아도 교회는 목사 혼자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 교회들에서 이러한 현상을 자주 그리고 많이 보아 왔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할 정도로 탁월한 실력과 재능을 가지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시고 목회 사역에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필자의 주변에는 한국에서 부러움을 살 정도로 교회를 섬기시다가 이민 오셔서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들도 여러분 계십니다.

그 분들이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가끔 하시는 말씀 중 한국과 미국교회는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한국의 교인들은 교회도 잘 섬기고 목사님도 잘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이민 교회는 한국 교회와 같지 않다는 말이며 이민교회 성도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처럼 들려졌습니다.

한국에서의 목회 경험이 없는 저에게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제 마음에 와 닿지를 않았습니다.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말로 들렸습니다. 왜냐하면 내게는 보배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우시며 귀하고 훌륭한 성도님들이 주위에 여러분 계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민교회를 광야와 같다고 말을 하십니다.

정든 고국을 떠나 낮선 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삶이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마음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피곤한 삶을 사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광야 같은 삶이 나쁘지마는 않습니다. 우리를 정금 같은 신앙인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 하나님이 보내주신 정말로 귀한 성도님 가정이 있으십니다. 코로나 19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보배 같으신 믿음의 사람들이십니다. 코로나 때문에 지난 8개월 동안 예배를 드리지 못해서 힘들어 하시다가 친구의 소개로 현장 예배드리는 교회를 소개받고 출석을 하셨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도 정상적인 예배는 드리지 못하지만 주일 낮 예배는 교역자 중심으로 소수의 제한된 인원만 모여서 예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면 재정을 담당하는 장로님이 계수된 헌금자 명단과 내역, 그리고 헌금봉투에 기록된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필자의 책상에 올리십니다.

그러면 헌금 봉투에 기재된 기도제목을 위하여 기도하고 저들의 가정과 생업 그리고 자손들을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럴 때마다 감동을 받는 때가 있습니다. 형편과 사정을 아는데 힘에 지나칠 정도로 정성된 헌금을 바치는 것이 느껴질 때입니다. 이는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만이 경험하는 특별한 것입니다.

이번에 만난 L 집사님과 권사님을 귀하게 여기고 예배로 만나게 해 주신 은혜를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주일마다 헌금자 명단과 내역을 받을 때마다 교회를 담임하는 필자에게 큰 감동과 감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드려진 헌금이 단순한 헌금이 아니라 생명의 한 부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힘을 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헌금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힘들게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 가운데서 드리는 헌금이기에 더 귀하고 빛이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L 집사님 부부의 믿음을 기쁘게 받으시고 크게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두 분에게 보배로운 믿음을 허락 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2021년 1월 1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22 평강교회 설립 40주년을 기념하면서!

2021년 1월 3일은 필자가 섬기는 평강교회가 설립 40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0년 12 월 31일 고 김시철 장로님 가정에서 교회설립을 위한 기도회 모임을 갖고 교회이름을 평강교회로 정하고 첫 예배를 1981년 1월 4일 오전 11시에 Elysian Park에서 드렸습니다.

첫 예배를 건물이 아닌 야외 공원에서 드린 것은 예배 처소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원하는 예배 처소를 구하지 못해서 어려움 당하고 있지만 당시도 그러했습니다. 두 달 동안 설립자 K 장로님과 매일 예배 처소를 구하기 위해서 많은 미국 교회당의 문을 두드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두 달 동안 공원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 때가 우기인 겨울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차가운 날씨로 일반 사람들이 공원에 모이지 않아 예배드리는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3월 첫 주일부터 흑인 교회당 건물에 입주하여 주일 낮 예배를 오후 1시 30분 예배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장소에서 5년 2개월 동안 오후 1시 반 예배를 드려오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극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구입하고 나서 예배시간을 오전 11시에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장소에서 33년 동안 예배를 드려오다가 2018년 11월 30일에 교회당 건물을 매각하고 지금의 교회당을 2019년 4월 29일 구입했습니다.

교회 생일 40번째를 맞고 보니 지나온 날들이 기억에서 살아나고 있습니다. 한 해를 지날 때는 그렇게 길고 지루했었는데 막상 40년의 세월을 지나고 나니 그 세월이 길 게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꿈처럼 지나간 짧은 시간처럼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때는 지금 같이 이런 날을 만나리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내일에 대한 비전도 계획도 없었습니다. 그럴 힘도 없었고 재정적인 능력도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진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온 마음과 정성을 모아서 예배 중심의 삶을 힘써 살았습니다. 보이지 아니하지만 인도하시는 주님을 푯대 삼으며 따라 갔더니 오늘의 기쁨과 감격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한 것이 그렇게 긴 세월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섬겨오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끝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 같은 위기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지나고 나서 지나온 날들을 이제서 돌아보니 그 때도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시고 계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주인이 사람이 아닌 주님이심을 확인케 하셨습니다. 우리만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고 아파한 것이 아니라 주님도 교회를 위하여 걱정하시며 쉬지 아니하고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지금 선하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현재의 장소로 예배 처소를 옮길 수 있었으며 이곳에서 또 다른 이민 교회 40년 후를 바라보며 계획하게 하셨습니다. 그 동안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신 많은 분들의 희생과 헌신을 주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축복하시며 하늘에 상급으로 예비하심을 믿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위에 살아가면서 가장 보람되고 의미 있는 것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신 주님을 크게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삶이 주님의 몸 되신 교회와 함께 영원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광야와 같은 이민교회를 처음부터 주님의 손으로 잡으시고 은혜로 인도하시어 지금의 영광과 감사로 충만케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은 시작은 미약하지만 창대케 하심을 믿습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금년보다 내년이, 세상에서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복으로 보상하심을 믿습니다.

또 다른 이민 교회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이전보다 더 교회의 머리 되시고 주인 되시는 주님을 향하여 크게 충성하는 우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2020년 12 월 17일
이상기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21 로즈 퍼레이드를 멈추게 한 코비드19의 위력!

매년 새해 첫 날 이른 아침에 시작되는 파사데나 시에서 주최하는 장미꽃 축제인 132회 로즈 퍼레이드가 2021년 새해엔 개최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코비드19 때문입니다. 로즈 퍼레이드 132년 역사에서 행사가 중단된 때는 세계 2차 대전 중이던 1942년부터 1945까지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었습니다.

로즈 퍼레이드는 남가주에 사는 사람만을 위한 행사가 아닙니다. 미국 전 지역뿐 아니라 세계인이 TV 중계를 통하여 함께 하는 축제입니다. 포즈 퍼레이드가 특별한 것은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축제를 하는 곳에 인접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11월 중순부터 교회로 오고 가는 길은 행사 준비로 늘 분주합니다.

퍼레이드 행사는 2시간에 그치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기간은 두 달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많은 인파가 집중적으로 몰리기 때문에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위한 관람석의 긴 의자를 행사가 진행되는 구간을 따라서 몇 층으로 된 계단의자를 만드는 것은 11월 중순부터 시작 되어 행사 수일 전에 마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즈퍼레이드를 준비하는 동안 그 길은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으므로 교통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런 광경을 특별하게 시간을 내지 아니하고도 교회를 오고가면서 보는 것이 나에게는 즐거움이기도 하고 특별한 은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귀한 행사를 금년엔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중단 없이 계속되어온 행사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바이러스 때문에 연례적인 행사가 중단되므로 행사를 위한 모든 준비도 따라서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하여 요즘 교회로 출퇴근 하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한가하고 조용한 길을 지나면서 코비드19의 대단한 위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로즈 퍼레이드의 유례는 매년 로즈 볼에서 열리는 미식 축구경기를 축하하기 위한 행사로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한 축제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에게 감동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해 첫 날이 주님의 날(주일)이면 행사가 그 다음날인 2일로 행사일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이 다가온 지금 많은 사람이 주일에 대한 생각이 이전 같지 않습니다 400년 전에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영국에서 100여명의 청교도들이 처음 도착해서 마을을 이룬 곳을 20여 전에 방문했었습니다. 그 곳에서 청교도들이 세운 First Church도 가 보았습니다.

청교도들의 예배 시간은 3 – 4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강단에서 설교자가 설교하는 시간만 해도 두 시간 반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오늘날 이런 예배, 이런 설교를 한다면 교회에 남을 성도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토록 사모했습니다. 삶에서 예배를 제일로 여겼습니다.

필자가 로즈 퍼레이드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를 이끌어가는 책임 맡은 분들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새해 첫 날이 예배하는 날이라고 13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인의 축제를 다른 날로 옮긴 전통을 잘 지켜내는 것이 정말로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즈 퍼레이드 행사에서 눈여겨 볼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잘 훈련된 승마 행렬입니다. 백마, 흑마, 갈색의 말입니다. 다음으로는 엄격한 심사를 거처 선정된 규모를 자랑하는 최고 수준의 행진 악대입니다. 다음으로는 수십대로 이러지는 아름다운 꽃차 행렬입니다. 꽃차에 사용되는 꽃은 반드시 생화이어야 합니다.

수백만 장의 꽃잎으로 장식한 꽃차는 보는 이를 감동케 합니다. 특히 행사 주변은 아름다운 꽃향기가 진동을 합니다. 이렇게 장엄하고 기대가 되는 로즈 퍼레이드를 2021년 새해엔 볼 수가 없어 아쉽지만 그래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코로나 19를 극복하고 2022년에는 볼 수 있게 될 것을 기대기 때문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20 성탄 선물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달 중순에 크리스찬투데이가 금년 성탄 선물로 어떤 선물을 받고 싶으십니까? 라는 설문 조사를 인터넷을 통하여 했을 때 그 설문 내용을 보자마자 자동 반사적으로 “나는 이런 선물을 받고 싶습니다”라는 글을 써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의 내용은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고 있는 어려운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나았다고 하는 소식을 듣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2 월 10일 샌디에고에 사는 16살의 다은이 엄마에게서 반가운 소리, 정말로 원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은이를 처음 알았을 때는 14살 이었는데 지금은 2년이 지나서 16살이 되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다은이를 위해서 기도해 왔지만 한 번도 다은이나 그 부모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다은이를 위해서 계속 기도해 온 것은 다은이가 앓고 있는 병이 지난 날 필자가 앓았던 재량불량성빈혈과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병을 앓았던 때는 벌써 50년 전인데도 아직도 그 병을 치료할 약이 없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 의학의 발달로 요즘은 골수 이식을 통하여 치료 받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쉬운 것이 아닌 것은 환자와 일치하는 골수를 원하는 시간에 기증 받는 것이 정말로 어렵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은이의 경우 부모의 간증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일 년 사이에 한 번도 어려운 골수 이식을 두 번이나 받아야 했습니다. 첫 번 골수 이식이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두 번의 골수 이식으로 인한 휴우 증으로 지난 4 개월 동안 피를 말리는 위기의 순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긴 시간 동안 병원 무균실과 중환자실에서 너무 큰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환자 본인만 힘든 것이 아니라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아니하는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다은이 엄마는 필자에게 피를 토하듯 호소했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 것인지, 계속되는 절망의 연속에서 가슴조리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어려움의 순간들을 다 인내하고 극복하여 그무서운 병과 싸워 이겨서 4 개월 만인 12 월 11일에 그토록 원하고 좋아하던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다은이의 퇴원 소식을 듣는 순간 큰 감동과 함께 과연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셨다는 고백과 함께 감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정말로 듣고 싶었던 말이었습니다. 지난 2 년 여 동안 많은 분들이 다은이를 위한 칼럼을 읽고 기도에 동참했었습니다. 지금도 주변에서 가끔 다은이의 소식을 필자에게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은이가 나았다고 하는 소식은 나만의 성탄선물이 아니고 다은이를 위해서 기도에 동참하셨던 모든 분들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면을 통하여 다은이를 위하여 기도해 주신 여러분께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기쁘고 좋을 수가 있을까요? 기도하는 사람 중 한 사람만이라도 나앗으면 좋겠다고 했었습니다.

둘이면 더 좋다고 했습니다. 세 명, 아니 네 명도 좋고 더 많을수록 내게는 좋은 성탄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다은이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나도 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우리 아이가 주님의 은혜로 병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라는 고백이 여기저기서 들려질 것을 믿습니다. 원하는 성탄 선물을 허락하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0년 12 월 10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19 어느 권사님의 장례식에 참석하고서!

지난 12 월 1 일 오랜 인연을 맺어온 H 장로님의 부인 권사님의 장례식이 있어서 장지에 참석 해 대표기도를 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장로님은 아니시지만 제가 아는 교회 밖에서 만나는 장로님들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장로님의 부인 권사님이 오랜 지병으로 고생하시다가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오랜 시간 고인과 관계를 이어오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로인해서 행복했었던 기억들이 생각나 장로님으로부터 권사님이 부르심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 지는 아픔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길고 슬펐던 질병의 사슬을 끊어주신 은혜를 감사드리며 권사님의 영혼을 받아 주심을 기뻐했습니다.

H 장로님을 필자가 크게 존경하는 것은 십 수 년 째 교제를 이어오면서 단 한 번도 말이나 행동에 실수가 없으실 뿐 아니라 매사에 본을 보이시는 삶을 살아오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 하거나 비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할 수만 있으시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높이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장로님을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을 생각케하는 성품을 느끼곤 했습니다. 진실한 주님의 제자요,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장로님을 존경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내가 어려운 병으로 힘들어 할 때 끝까지 곁에서 아내를 위해서 크게 헌신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아내가 그런 병에 걸려야 합니까? 평생 주님을 위하여 충성한  결과가 이게 뭡니까? 하나님을 원망 하실 수 있으십니다. 사람을 원망할 수도 있으십니다. 그러나 장로님은 그 힘든 상황에서도 이웃이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병든 아내를 돌보는 것이 주님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요즘 코로나 19로 병든 아내를 수발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평소보다 몇 배나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로인하여 육신적으로도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웠지만 끝까지 인내로 최선을 다해서 병든 아내를 사랑과 지극한 정성으로 섬겨주시어 곁에서 지켜보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시었습니다.

요즘 코로나 19로 장례 문화가 이전에 생각지 못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번 장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장의사에서 입관예배나 발인예배를 드리지 아니하고 장지에서 한 번의 예배(하관예배)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헌화의 순서가 이어지려고 하는데 한 분이 나타나 잠시 특별한 순서를 가지겠다고 안내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얀 네모난 나무 사장에 담겨진 흰색의 비둘기 20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고인의 딸이 상자안의 갇힌 문을 열고 한 마리의 비둘기를 두 손에 잡고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이어서 비둘기 상자의 문을 열자 나머지 19 마리의 백색의 비들기가 맑고 푸른 하늘을 떼 지어 힘차게 날아올랐습니다.

갇힌 상자 안에서 자유로운 넓은 세계를 향하여 힘차게 날아가는 모습에서 육신의 장막에서 오랜 시간 병으로 고통 받으셨던 고인의 영혼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힘차게 올라가심을 상징하는 것 같아 이를 보는 모두에게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장례식을 보았지만 이런 건 처음이었습니다.

산 물고기를 물가나 바다에서 놓아주는 것은 보았지만 장례식장에서 새장에 갇힌 잘 훈련된 백색의 비둘기를 떼 지어 날려 보내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존경하는 H 장로님! 아내를 보내시는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아프시겠습니까? 세상 누가 장로님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주님만이 장로님을 위로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장로님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이제부터 둘이 아닌 홀로 90을 향하여 외롭고 힘든 삶을 사셔야 하는데 도와주시길 원하며 장로님의 남은 생애가 주 안에서 더 기쁘고 행복하시며 하늘의 상급을 크게 예비하시는 삶이되시길 원합니다. 하늘에서 다시 기쁨으로 만나실 때까지 건강케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2020년 12 월 7일
이상기목사
크리스찬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