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 267 고 문성만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존경하는 고 문성만 목사님! 목사님을 이곳 Los Angeles 에서 처음 뵈온지가 벌써 50년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1969년에 미국에 오셨고 저는 4 년 후인 1973년에 이곳에 왔습니다. 당시 이곳은 지금처럼 우리 한인들이 많지 않았었습니다. 공식적인 집계로 남가주 전체 한국인의 숫자가 3천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한국인을 마주치면 반가워 서로 통성명을 나누곤 했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동서남북의 방향을 알기도 전에 목사님을 만난 것은 저에겐 큰 축복이었습니다. 오늘의 제가 목회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주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민 초창기 먹고 사는 문제로 어려워 할 때도 목사님은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지난 50년 동안 늘 목사님을 곁에서 따르며 은혜를 입었습니다.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1970년 초에는 지금처럼 이민교회의 숫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자체 건물을 가진 교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 시절에 Long Beach 시에 아름다운 잔비 밭을 가진 자체 교회당을 구입하셨습니다.

그곳에서 감격스럽게 예배드리던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목사님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특별한 은사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문서 선교로 크게 쓰임 받으셨습니다. 한국에서부터 미국의 선교기관과 문서를 통하여 많은 어려움 당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지금은 미국 비자를 누구나 쉽게 얻습니다.

하지만 70-80년대는 미국비자를 얻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단체가 초청장을 발급해주지 아니하면 여권도, 비자도 받지 못할 때입니다. 그러한 때에 목사님은 초청장을 손수 타이핑해서 만들고 비자를 받는데 필요한 재정실력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통하여 미국행 비자를 받으신 분이 2-300명은 된다고 하셨습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여러분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교회를 개척해서 42년 째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가 만난 목사님들이 많습니다. 그 많은 목사님들 중 제가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은 고 문성만 목사님이셨습니다. 저의 친구 동역자 목사님들께 이 같은 내용을 여러 차례 말해왔었습니다.

정말로 고 문성만 목사님은 산 성자셨습니다. 작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오랜 교제의 시간 동안 한 번도 말에 실수가 없으셨습니다. 한 번도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님의 주변에는 늘 도움을 받으려는 분들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우리 교단인 합동 교단이 미주에 뿌리내릴 때 설립위원으로 수고하셨습니다.

목사님 때문에 그동안 행복했습니다. 목사님 때문에 주변의 많은 사람이 은혜를 입었고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우리 교단의 어른이 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삶의 본, 목자의 모범을 보여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존경하는 목사님을 보내면서 가까운 시일에 주님의 나라에서 기쁨으로 뵈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이상기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66 생활 속에 맴도는 팬데믹의 공포(3)

같은 제목의 칼럼을 연속해서 세 번째 쓰고 있습니다. 그동안 크리스찬투데이에 칼럼을 연재한지가 15년을 넘기고 있습니다. 서인실 편집국장님으로부터 초창기 칼럼을 부탁 받았을 때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사양도 몇 번 해 보았지만 국장님의 강한 이끌림에 지금까지 약 270여 편의 칼럼을 써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렇게 연속해서 세 번 같은 제목으로 칼럼을 쓰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은 1월 16일 이었습니다. 당회가 결정하여 교인 전체 코로나 검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검사를 전문으로 하는 두 분을 초청하여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검사를 받은 날로부터 3일 이후부터 검사한 개인에게 검사결과가 통보되었습니다. 이전 같으면 하루 이틀이면 통보를 받았는데 지금은 검사의 숫자가 너무 많아 시간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검사를 통보 받은 교우님들 중에는 대부분 음성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그 중 한 분이 양성으로 확진 판명이 났습니다.

당일 검사 받은 분들 가운데 2명은 검사하기 위해 면봉으로 코에서 채취한 체액이 충분치 못하여 검사를 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검사를 담당한 분에게 양성 판정을 받은 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가 알아야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니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제 삼자에게 검사결과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본인에게만 검사결과를 통보하기에, 결과를 받은 본인이 말하기 전에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확진 판정을 받으면 교회에 그 사실을 말하겠지만 그런 분이 없는 것을 보니 본인도 통보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통보 받은 것은 토요일 저녁 5시였습니다. 사태가 심각함을 알기에 전화로 당회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어떻게 대처할까를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당회원들은 우리가 결정할 것이 아니라 교회 내에 전문 의료인들이 있으니 그 분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그분들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즉시 교인 중 전문 의료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당신들의 결정대로 당회가 행동을 취하겠다고 했습니다. 30분 후 전문 의료인들의 의견이 전달되었습니다. 대면 예배는 당분간 드리지 아니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즉시 교인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통보하고 3주일 동안 대면 예배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팬데믹이 계속된 지난 2년 동안 주변의 교회들이 대면 예배를 중단할 때에도 우리교회는 교역자 중심으로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그러다가 교회 역사상 대면 예배를 중단한 것은 41년 교회 역사에서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교우님들을 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주일 예배시 설교를 녹화하여 주일 오후에 유튜브로 송출하던 것을 오늘 부터는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성도님들이 각 가정에서 11시에 시간을 맞추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방송 팀들이 주일 이른 아침에 교회에 나와서 그날의 설교를 촬영하여 편집해서 11시 예배에 맞추어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팬데믹의 영향이 먼데서부터 점점 가까이 우리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하나 둘 전염이 되더니 이제는 교회 안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코로나의 위기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누구도 이 위기에서 자유롭거나 피하여 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러할 때 우리가 무엇을 어떡케 해야 하나요? 팬데믹을 상대로 우리가 싸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서로 조심하며 당국자들의 지시에 무조건 순종하며 지금의 위기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위기에서 벗어나 이전의 자유와 건강함을 속회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2022년 1월 17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65 생활 속에 맴도는 팬데믹의 공포(2)!

지난 칼럼에 이어 같은 제목의 칼럼을 두 번째 쓰고 있습니다. 멀리 있는 것으로만 알았던 팬데믹의 위기가 이제는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라 바로 내 삶의 주변에 정말로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제일먼저 들려오는 소식은 새해 인사보다도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살고 있는 큰 딸의 가족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이 있은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청정지역으로 불리는 알레스카에 살고 있는 둘째 딸의 가족도 감염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남가주에 살고 있는 큰 딸 가족보다 먼 알라스카에 사는 둘째 딸 가족이 감염되었다는 소식에 더 놀란 이유가 있습니다.

둘째 사위가 심장내과 의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몇 배는 더 건강에 조심하고 특별히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하여 가족들의 건강을 세심하게 살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니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하고 위협적인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지척의 거리에서 가까이 교제를 이어가고 있는 친구 목사님 부부도 감염되어 격리 중에 계시고 다른 목사님 가정도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계십니다. 어느 집사님이 제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이번 팬데믹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목사도, 전문 의료인도 예외가 없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전염병이 전에는 힘 있는 자나 부자, 건강한 사람이나 권세 자들은 피해갈 수 있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로인해 새해가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하는 기도의 내용은 감염된 성도들과 이웃을 위한 기도입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손자녀들이 감염되었다는 소식에 필자는 더 간절하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유는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도 없고, 병원에서도 크게 도움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격리된 한 주일 동안 마음 같아선 달려가 손녀들을 안아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습니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전화로 매일 안부를 묻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처음 감염소식을 듣고 나서 일주일이 지난 1 월 9일은 주일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남가주에 사는 큰 딸의 세 손녀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테스트에서 네거티브 판정을 받았다는 반가운 검사 결과 소식을 받았습니다.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세 손녀들이 이번 팬데믹의 위기에서 모두의 걱정을 단 번에 물리치고 빠르게 회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들 모두가 이미 2차 백신 주사를 맞았기 때문이며 위로는 주님이 베푸신 은혜와 축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아니하는 것이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코로나 백신 예방 주사에 대하여 의심하는 분들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신 주사를 맞으면 종말 시대에 큰 재앙을 만날 것이라며 의도적으로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자신들만 백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운 친구나 이웃에게 백신을 맞지 말 것을 강력하게 종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분도 그런 강력한 권유하는 사람 때문에 당연히 맞아야 할 백신을 맞지 아니하므로 지금 심각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나의 실력과 힘으로 살아 갈 수 있는 평안의 시대가 아닙니다.

지금은 전염병이 창궐한 상황에 있습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좌우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전문 의료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저들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해야 합니다. 저들의 판단에 우리의 삶을 맡겨야 합니다. 저들은 우리의 건강과 생명, 안정과 평안을 위해서 주야로 연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때는 우리 모두가 정부를 평소보다 더 신뢰해야만 합니다.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므로 속히 나라와 인류가 팬데믹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님께 기도하는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2022년 1월 11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64 생활 속에 맴도는 팬데믹의 공포!

지난 12 월 29일 오후 1 시에 추도예배를 준비하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배 순서지와 예배시 사용할 찬송가도 카피를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고인의 따님 댁에서 1 주기 추도예배를 드리기로 했는데 갑자기 모임이 취소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인즉 예배에 참석키로 한 고인의 아드님이 지난 밤 딸네 집을 방문해서 딸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는데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딸의 가족은 3 차 예방 접종까지 마쳤는데 돌파 감염에 걸린 겁니다. 그럼에도 크게 염려하지 않은 것은 딸의 가족이 건강한 젊은이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부스터 샷까지 마쳤기에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밤사이에 몸에 이상 반응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던 끝에 어머니의 추도예배 모임이 있기 30분 전에 급하게 예배 모임을 취소한 것입니다. 격동의 한 많은 세월을 몸으로 싸우며 외롭게 사셨던 어머니셨습니다.

어머니 권사님은 편하게 세상과 타협하며 사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 같은 유혹을 주변으로부터 반복해서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편안한 삶을 길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평생을 마치 전투하시듯 홀로 험한 생활전선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외롭게 사셨습니다.

자녀들도 그러한 어머니의 헌신과 눈물의 삶을 보았기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효심이 남달랐습니다. 그런 효녀, 효자였기에 일 년 동안 준비한 어머니를 위한 최고의 정성으로 바치려고 한 추도 예배를 취소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겁니다. 행여나 자신들로 인해서 가까운 이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과감한 결정을 내려줘 많은 사람이 어려움에 처할 위험을 면하게 해 준 가족들에게 진심어린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경험해 보지 못한 팬데믹의 위기가 발생한지도 벌써 2 년이 지나 갔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세를 불려가고 있습니다.

놀랍게 발전한 현대의학을 조롱하며 비웃기라도 하듯 바이러스의 강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아니하고 더 크게 전파되는 것을 연일 보도되는 뉴를 통하여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팬데믹의 기세가 꺾일 되도 되었을 법 한데 그렇지 아니하고 점점 더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 염려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팬데믹의 공포가 먼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우리의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우리 가족도 예외일 수 없다는 현실적 위험이 주변에서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시 50 : 15절에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라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도 평안한 날이 없습니다. 이는 누두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어른만 환란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도 만납니다. 가난한 자만 환란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도 만납니다. 가난한 자의 환란보다도 부자가 만나는 환란은 더 어렵고 더 극복하기 힘든 큰 환란이 되기도 합니다. 건강한 사람도 환란을 만납니다. 권세자도 만납니다. 어리석은 자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누가 환란에서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까? 누가 깊은 절망의 수렁에서 건지심을 받습니까? 구원하시는 전능하신 분에게 도우심을 받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환란 날에 우리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 누구실까요? 나의 부르심을 외면치 아니하시고 즉시 응답하시는 분은 구원자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축복으로 허락하신 2022년을 힘차게 믿음으로 출발하면서 금년 한 해 동안에도 주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2022년 새해에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63 특별한 식사 대접을 받았습니다.

지난 12 월 14일 일일 평균 강수량으로는 남가주에 133여년 만에 큰 비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이곳에선 그런 비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날 최근 현역에서 은퇴하신 K 목사님이 저와 친구 목사님 4 부부를 식당으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3 년 전에 발간한 필자의 자서전을 읽고서 꼭 만나고 싶다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 목사님들과는 오래전부터 교제가 있어왔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저 이름만 듣고 알 정도여서 가까이 뵙고 대접받는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현역에 있는 저나 친구 가 대접하려 했지만 한사코 거절하셨습니다. 어느 덧 우리도 은퇴를 준비하기에 은퇴하신 선배님들 앞에선 고개가 숙어지게 됩니다.

K 목사님은 식사 중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은퇴 목사의 덕목중 중요한 것은 후배 목회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지갑을 자주 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 7 장 12절에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아는 것을 실행하기가 마음처럼 쉽지가 않은 것은 은퇴자의 지갑이 두둑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시고 우리에게 큰 기쁨을 선사해 주신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본을 보이신 대로 우리도 후배들에게 다가가 지갑을 열 것을 다짐해 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기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원한다고 타인으로부터 존중히 여김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웃을 자기 몸처럼 돌보고 사랑하며 섬기지 아니하고선 절대로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씨앗과 같아서 뿌린 자가 거두는 것과 같습니다.

또 다른 특별한 대접은 다음 날 이었습니다. 이 달에 교회 지붕 공사를 마치고 나서 그 날부터 교회 건물 외부 페인트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공사를 맡은 인부들은 3 명의 멕시칸이었습니다. 첫날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일하는 분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서 교회 인근에 있는 한국식당에 음식을 사러 갔습니다.

음식을 사러 가면서 자신들 것만 사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필자와 교회 공사 책임자 집사님의 점심까지 순두부찌개 5 인분을 주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곁에서 듣고서 우리가 일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점심을 대접해야지 어떻게 대접을 받을 수 있느냐고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에게 점심 대접을 받는 것이 미안해서 다음 날 점심은 우리가 대접하겠다고 했습니다. 3 년 전에 옮겨온 지금의 교회 건물이 90여년의 역사를 가진 건물이고 이전에 30년 이상 사용해 오던 건물도 95년 이상 된 오래된 건물 이었기에 여러 번의 공사를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많은 공사 중에도 이번처럼 일하는 분들에게 식사를 대접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한국음식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김치, 짬뽕, 짜장면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축복 가운데 제일가는 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다음으로 좋은 것은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만나야 할 사람을 정한 때에 만나지 못하면 그로인하여 많은 상처와 아픔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처음도 그러하지만 결과도 아름답습니다. 이번에 교회 지붕 공사를 위해서도 숙련된 일꾼들을 만나게 해 주셨을 뿐 아니라 페인트를 위해서도 선한 일꾼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성탄의 때를 맞추어 주님의 몸 되신 교회를 아름답게 단장해 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고향에서 명절에 색동옷을 입고 좋아했던 때를 연상하면서 우리 주님도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니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1년 12 월 16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62 공동의회를 통하여 받은 은혜!

지난 11월 28일은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역사적인 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1년 후가 되는 2023년 1월 첫 주일이 교회설립 42주년이 되면서 설립당시부터 섬겨온 담임목사직에서 제2대 담임목사에게 바통을 물려주고 원로목사로 자리를 옮길 준비를 위한 공동의회를 개최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40여년의 긴 세월을 생각지 못했었는데 시간이 빠르게 흘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전문 산악인의 말에 의하면 높은 산을 오르는 것도 위험하지만 하산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막상 은퇴를 생각하게 되니까? 걱정되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크게 걱정이 되는 것은 후임자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주변의 교회들이 여러 과정을 거쳐서 선정한 후임자에게 교회를 이양하고 나서 생각처럼 순탄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을 자주 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의 일처럼 생각되지 아니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때를 거역하고 담임목사직을 고집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4-5년 전부터 후임자를 위해서 기도하길 시작했습니다. 이양의 복을 주시되 후임자의 복을 허락하시므로 아름다운 승계를 할 수 있도록 구했습니다. 필자가 구한 후임자의 자격은 하나였습니다. 실력보다는 주님을 사랑하는 종이었습니다.

수년 전에 그런 종을 교회로 보내주셨습니다. 당회의 결의로 그 동안 부목사로 섬겨오던 S 목사님을 제2대 담임목사 후보자로 정하고 공동의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공동의회는 이 뿐 아니라 세 분의 장로 후보자와 세 분의 권사 후보자도 투표를 받게 했습니다. 공동의회를 하기 전 날 깊은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행여나 투표 결과가 잘못 나오게 되면 어떡케 하나? 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당회가 원하는 것은 1차 투표마다 2/3 이상의 표를 받기를 원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투표를 받으시는 분들이 마음에 부담과 상처를 받을 것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투표를 하기 전 이런 당부의 말을 했습니다.

당회가 추천한 일곱 분 모두는 교회가 어려움 당할 때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를 희생할 분들이십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죽는 날까지 교회를 지키고 온 마음과 정성으로 충성할 분들이기에 우리가 한 마음이 되어 힘을 모아 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공동의회가 축제의 날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동의 순간이며 축복의 순간으로 우리만 놀라는 것이 아니라 이웃 교회들도 놀라고 세계 모든 교회가 놀랄 투표 결과를 만들어 주시길 부탁하고 투표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제2대 담임목사후보자에 대한투표 결과 1차 투표에서 투표자 전원 찬성으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어, 장로후보 3인도 1차 투표에서 3분 모두 전원 찬성으로 피택 받았으며, 권사후보 3인도 1차 투표에서 같은 선택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섬겨오면서 여러 번의 공동의회를 했었지만 이런 결과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교회도 투표자 전원이 찬성을 받았다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연이은 세 번의 투표 결과가 모두 하나같이 투표자 전원이 찬성을 했다는 것은 세계 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놀라고 온 교우들도 놀랐습니다. 정말로 주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신 축복의 사건이었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으셨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느 목사님이 중국의 시진핑 보다 강하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평강교회의 주인 되시는 주님이 공산당보다 더 강한 교회라는 뜻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42여년의 긴 여정에 위기를 만날 때마다 그 자리에 먼저 가시어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아름답고 귀한 것으로 늘 채워주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크게 감사드립니다.

2021년 12월 18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61 밤중에 만난 반갑지 않은 손님!

지난 11월 26일 금요일 새벽에 기도하러 교회에 갔습니다. 아직 먼동이 트지 않아 사방은 어두웠습니다. 교회당 문을 열고 본당으로 들어가 전기 불을 밝히자 아무도 없어야 하는데 한 사람이 본 당 안에 놀란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키는 필자보다 훨씬커 보이는 건장한 청년의 다른 인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교회당 안에 이 밤중에 들어왔느냐고 했더니 지난밤에 여자 분이 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여자냐고 하면서 아시안이나 스페니시냐 백인이냐고 물었더니 아시안 여인 3명이 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교회 문이 닫혀 있기에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밖으로 나와 교회 근처에 사시는 분에게 전화를 걸어 911에 전화를 걸고 지금 바로 교회당으로 와 달라고 요청을 드렸습니다. 혹시라도 육체적인 충돌이 있을지 모를 일을 대비해서였습니다. 다시 밤손님에게 다가가 핸드폰으로 사진 촬영을 하겠다고 하고서 촬영을 한 후 전화번호와 주소를 달라고 했습니다.

받은 전화번호로 즉시 전화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는 번호였습니다. 진짜 번호를 달라고 했더니 다른 번호를 주었지만 그것도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경찰차 두 대가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3명의 경관이 본당으로 들어와 낮선 사람에게 다가가 이유도 묻지 않고 즉시 두 손에 수갑을 채웠습니다.

그런 다음 밖으로 데리고 나간 후 3명의 경관 중 한 분이 이 사람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지금 데리고 가서 구금을 하면 판사 앞에 가서 필자가 진술을 해야 한다고 하기에 다른 옵션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만일 교회에 없어진 물건이 없다면 구두로 경고하고 보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경고의 내용은 다시 교회당에 불법으로 침입하면 즉시 구금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밤손님을 그렇게 보낸 후 경찰 책임자가 필자에게 다가와 교회당으로 들어오는 문을 있는 대로 보여 달라고 해서 여러 개의 문을 돌아보는 중 본당 현관문을 보더니 이곳이라고 지적을 하면서 문아래 부분이 파손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밖에서 힘으로 강하게 당기어 문을 고정시키는 아래 부분의 자물쇠가 부서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자물쇠를 사다가 고정시키라고 해서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후 교회에 다시 정문이 심하게 훼손이 되었습니다. 안에서 잠근 자물쇠 때문에 외부인이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습니다.

다시 문을 수리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말연시를 앞두고 각종 범죄 기사가 넘쳐나는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고나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고 누구에게나 당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래전에 가까이 지내던 분이 하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20여 년 전에 큰 지진이 났을 때였습니다. 교회 건물에 약간의 피해가 있는 것을 걱정하고 있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집도 교회 건물도 없어서 지진이 나도 걱정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것도 감사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분의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담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했지만 나무가 무성하면 좋은 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더운 날에는 피할 그늘도 있고, 나무가 과실수이면 철마다 아름다운 결실을 보상받기 때문입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 아닙니다. 양육을 위한 수고보다는 그 일로 받는 위로와 보상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시 127편 3-5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반갑지 않은 밤손님을 보내고 나서 생각해보니 큰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위기를 막아주시고 영혼과 육체를 안전하게 지켜주신 주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직 가야할 사명의 길이 남아 있어서 지켜주신 줄 믿습니다. 부르시는 그 날 까지 순종하겠습니다.

2021년 11월 26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60 국화꽃 향기가 깊어가는 계절

한 해를 마감하는 감사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지난 어느 해 보다도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친 팬데믹으로 모두가 힘들게 살아온 2021년도 이제는 한 달이 지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역사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가는 시간을 누구도 멈추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피조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지나 온 해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묵은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하는 시간의 교차로에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서 지난해를 돌아보니 너무도 답답하고 어두웠던 길고도 먼 긴장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러했지만 교회적으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중 펜데믹으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웠던 분은 아무도 없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중에도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향기 짙은 가을의 국화꽃처럼 우리에게 하늘의 위로와 기쁨을 선물하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의 계절을 느끼게 합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아니하는 K씨 성을 가지신 어느 여성분이 계십니다. 교회 여 집사님과 함께 생활하시는 분이십니다. 지난 4-5개월 전부터 매 주일마다 헌금을 보내오셨습니다. 처음에는 한 두 주일 하고 그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교회 다니지 아니하시는 분이라고 하시기에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데 한 달이 지나고 지금은 5 개월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한 주일도 거르지 아니하고 정성된 헌금을 보내오시는 겁니다. 헌금을 받아 오시는 집사님에게 그분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부탁을 드려도 본인이 원하지 않으신다고 하셔서 아직도 전화 통화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분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교회를 멀리하시는 분으로서 매 주일마다 정성을 다한 헌금을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마 6 장에서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 대한 마음, 주님에 대한 감사가 없으면 절대로 반복해서 헌금을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기에 머지않은 장래에 예배로 만날 날을 소망하며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은 애틀랜타에 거주하시는 이 민 장로님과 그레이스 권사님 부부가 추수감사헌금을 보내오셨습니다. 매년 감사절기마다 특별헌금을 보내시는데 금년에는 평소보다 두 배 반이나 많은 헌금을 보내오셨습니다.

섬기시는 교회에 헌금하시기도 바쁘실 터인데 멀리 있는 우리교회까지 특별헌금을 보내주셨습니다. 편지를 받아들고서 멀리서 날아온 가을 국화향기보다 짙은 감사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이 민 장로님이 필자에게 특별한 분이신 것은 매주일 예배로 만나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보내드리는 유튜브 방송설교를 매 주일 애청하시면서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고마운 마음을 늘 전해오십니다. 시대의 변화로 말미암아 이제는 한 지역의 교회 사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 방송설교를 통하여 지구촌 전체가 선교의 대상으로 설교의 범위가 확장되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신기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는데 빠른 문명의 발달로 새로운 시대가 온 것입니다.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필자의 설교를 애청하시는 분들이 멀리는 지구 맨 끝자락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그리고 한국과 기타 여러 지역에서 고정적으로 애청을 해 주시고 계십니다.

팬데믹 기간에도 교회를 지키시고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새해엔 또 어떤 은혜와 복으로 인도하시고 축복하실지 기대하게 됩니다.

2021년 11월 15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59 존경하는 김영옥 변호사의 이별의 글을 읽고서!

지난 10월 29일 금요일 아침 집으로 배달된 미주중앙일보 9면에 전면 광고된 “감사, 그리고 이별의 글을 삼가 올립니다”라는 제목의 긴 김영옥 변호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지난 40여 년 동안 같은 도시 안에서 인연을 맺으며 살아온 김 변호사님과의 아름다운 기억을 추억하면서 감동 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글에서 밝힌 대로 김 변호사님을 필자가 처음 만난 것은 1981년 2-3월로 기억이 됩니다. 김 변호사님이 이민법 전문 변호사 사무실에서 평사원으로 근무하실 때였습니다. 김 변호사님을 만날 때까지 7년 반 동안 서류 미비자로 이곳에서 태어난 두 아이와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김 변호사님이 근무하시는 사무실에서 이민법 전문 변호사를 처음 만나 상담을 한 이후부터 실무적인 일은 김 변호사님이 담당하셨습니다. 그로부터 1년여 만에 4식구가 꿈에도 그리던 영주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그 감동과 감격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쁨으로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

김영옥 변호사님을 필자가 크게 존경하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남가주목사회 총무로 일할 때 목사회에서 아마존에서 선교사역을 하는 양혜란(여자 의사)선교사님을 돕기 위한 캠페인을 24-5년 전에 했었습니다. 그 때 필자를 현지로 파송해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시찰을 하게 했었습니다.

아마존 1차 방문을 하고나서 교계에 선교보고회를 하고서 아마존 원주민 인디오들을 돕기 위한 후원교회와 후원자를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10여개 교회가 동참하여 아마존에 목조교회 건물을 짓는 일에 참여했으며 개인으로는 김영옥 변호사님이 최초의 후원자로 동참하셨었습니다.

처음에는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 변호사님의 인품을 알기에 용기 내어 전화로 만날 날짜를 약속 받았습니다. 약속된 시간에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오늘은 고객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김 변호사님의 도움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도우면 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마존 선교보고 내용을 말씀드리고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그 즉시 앉은 책상의 서랍을 여시더니 하얀 봉투를 주셨습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100불짜리가 30장이 들어있었습니다. 그것을 받아드는 순간 주님이 아마존 선교를 기뻐 받으신다는 감동이 파도와 같이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그 때 그 힘으로 아마존선교에 매진하여 4번의 선교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타운에는 우리가 존경하는 많은 어르신 들이 계십니다. 개중에는 명을 달리하시고 떠나가시는 분이 계신가하면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김 변호사님은 아직도 박수 받으실 일이 많으신 데도 떠나십니다.
떠나시면서 “여러분들 덕분에 그동안 참으로 멋진 삶을 살아왔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이제 변호사로서의 김영옥은 작별의 인사를 드리고 여러분 곁을 떠납니다”는 이별의 글을 읽으면서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움이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곁에 더 머무시게 하고픈 간절한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존경하는 김영옥 변호사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김 변호사님을 본 받아 남은 삶을 진실하게 살겠습니다.

2021년 10월 29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58 LA 한인교회를 대표하는 두 교회의 분쟁을 보면서!

정든 고향을 떠나 낮선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7백여만 한인들이 전 세계 단일도시 가운데 가장 많이 모여서 사는 곳은 Los Angeles 입니다. 이곳에 LA 한인교회를 대표하는 솔로몬 성전의 입구에 세워진 두 개의 놋 기둥 야긴과 보아스와 같은 교회로 동양선교교회와 나성영락교회가 있습니다.

나성영락교회는 1976년에 고 김계용 목사님에 의해서 설립되어 45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동양선교교회는 1970년에 고 임동선 목사님에 의해서 설립되어 51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두 교회는 그 동안 모든 이민교회의 표상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 성장하면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왔습니다.

한 때는 세상 모든 교회가 어려움 당해도 이 두 교회만은 절대로 어려움이 없을 것처럼 생각이 되었었습니다. 마치 만세 반석과 같은 교회로 모든 목사님들이 부러워하며 사모하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교회가 약속이나 한 듯 거의 같은 시기에 교회안의 내분으로 큰 진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교회의 문제가 교회안의 성도들의 문제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많은 한인들의 관심이 되는 것은 교회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 교회에 속한 목회자와 교인들이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없게 되어 교회문제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가족이었던 성도들 간에 이편과 저편으로 나누이는가하면, 교회가 속한 노회와 총회간의 충돌로 서로 사랑하고 섬겨야할 동역자들이 서로를 미워하며 저주해야 하는 형편에 처하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염려와 걱정이 되는 것은 이러한 개 교회의 일로 세상 법정에 소송으로 이어져가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개의 교회중 하나인 어느 교회는 수년전에 법정 소송으로 교회가 지불한 비용만 150만 불을 지불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법정으로 비화된 교회 문제로 교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얼마나 들어갈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말을 필자에게 전해준 분의 말에 의하면 너무 화가 난다고 하셨습니다.

온 힘을 다하여 정성으로 바쳐진 귀한 헌금이 그렇게나 많이 재판 비용으로 지출된 것에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그런 일이 반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필자도 1970년대 후반에 동양선교교회에서 교인으로 섬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교회를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이민의 삶을 통하여 이곳에서 처음 교회를 만났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전에 알지 못하던 영적인 삶을 교회로부터 받았던 은혜와 감동이 밑거름되어 오늘의 내가 되었기에 교회가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안쓰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필자가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고 지금의 교회를 허락받아 내년 1월이면 교회설립 41주년을 기념하게 됩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이민교회를 섬겨오면서 기쁨과 슬픔 낙심과 감격의 순간ㅌ을 경험했습니다. 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는 지금의 축복은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주님의 은혜가 컸습니다.

여러 번의 교회적 위기도 있었습니다. 한 때는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그 교회의 이름이 사라질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나의 힘이나 실력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더 신뢰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교회를 섬겨오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직회나 당회를 할 때도 그랬고 성도간의 문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진리 문제가 아니라면 상대당의 주장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흐르는 물을 역류케 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회의 할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말을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듣는데 귀를 기울이기를 힘썼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대로 나의 주장을 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훗날 주님이 날 심판하실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2021년 10월 17일
이상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