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 247 우리 시대 오래도록 기억될 6월 15일!

끝이 보이지 아니할 것 같았던 Covid-19 때문에 지난 15개월 동안 우리는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리 중에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큰 슬픔을 당한 가정이 있는가하면 사업체가 파산 당하여 온 가족이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분들도 계시며 팬데믹 기간 동안 직장을 잃은 분들도 있습니다.

필자의 주변에도 가까운 가족과 이웃들이 어려움 당하지 아니한 분들이 없을 정도로 누구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이 제재와 강한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했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만날 수 없었으며,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수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이 임종하는 때에도 병실 방문이 가족도 허락이 되지 않았었습니다. 필자도 지난 일 년 전에 병원에 11일 동안 수술을 받고 입원을 해 있을 때에 그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을 홀로 힘들게 보내야만 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분은 부모님의 장례식에도 오가는 하늘 길이 막혀 참석치 못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늘 생각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과학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이며 더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은 지구에서 가장 의학적 수준이 높은 국가이기에 이번 사태를 능히 극복하리라 믿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로인하여 우리는 더 큰 충격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 미국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지난 6월 15일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우리 모두를 큰 혼돈과 환란의 깊은 어둠의 공포에서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 자유와 강한 통제를 풀어 코로나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게 한 것입니다.

아!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이었습니까? 그렇게 긴 시간을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놀랍고도 반가운 기다림의 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가 팬데믹 기간 매일의 삶 속에서 불편하고 힘들어 했던 것은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잠간은 쓸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팬데믹이 우리를 힘들게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배운 것이 많습니다. 자유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임을 알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요 8장 31-32절에서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허락하시는 자유는 일시적인 자유가 아닙니다. 세상에서만이 아니라 영원한 자유입니다. 우리의 삶이 통제와 갇힘에서 놓임 받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가고 먹고 싶은 것 원하는 대로 먹고 보고 싶은 사람 만나는 것이 축복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봉쇄령에서 해방을 받은 다음 날 점심은 필자가 35년 째 다니는 단골 식당을 방문했습니다. 15개월 만에 다시 찾은 것입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어려운 시험에서 살아남은 것을 서로 격려하며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다음 날 동창회에서 7월에 모임 장소와 일자를 통보 받았습니다.

점심때만 되면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을까를 염려해야 했었는데 이제는 아무 곳이나 원하는 곳을 방문해서 허기진 배를 채룰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6월 15일, 이 날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오래도록 기억이 될 역사적인 감격의 날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자유와 행복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21년 6월 18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46 “어떻게 하면 좋아요, 기도해 주세요!”

수일 전 한국에 사는 여 동생에게서 급하게 온 전화 내용의 일부입니다. 누구보다도 건강하여 건강에 늘 자신 만만하던 막내 여동생의 남편이 어려운 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것도 남은 생명이 한두 달 이라는 서울의 대학병원 간 전문의사의 말에 환자 본인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큰 충격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필자에게는 4남 5녀의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나는 7번째이고 밑으로는 남동생과 끝으로 여 동생이 있습니다. 남자 형제들 네 명 중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자는 나 혼자이고 4명의 누님과 막내 여동생이 있습니다. 70년을 가까이 살아오면서 그 동안 많은 사건과 사고를 당했지만 이번에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도록 자기 몸에 대해서 알지 못했는가에 대한 안쓰러음이 있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주변의 동역자 중 한 분이 지난 해 간암으로 투병 중 더 이상의 병원 치료와 약으로는 나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서 어려움에 처하여 있을 때 한국에 사는 동생 장로의 간 이식을 받고 살아난 분이 계십니다.

형을 위한 일이라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당시 한국에서 한 달 이상의 병가를 내고 미국으로 날아온 동생 부부를 초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해 드린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에게 전화로 두 가지를 문의했습니다. 첫째는 왜 몸이 그렇게 망가질 때가지 알지 못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동생의 간 이식을 받고 죽음에서 극적으로 살아나신 목사님이 필자가 질문한 것에 대한 답으로 이렇게 말을 하셨습니다. 간은 한마디로 말해서 “멍청이”라는 것입니다. 멍청이라는 말은 어리석고 정신이 흐릿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 신체 중에서 가장 바보스러운 기관이 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병든 것을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 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양쪽 간에 암 세포가 가득해 이식을 할 수도 없고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새로 개발된 약이 있는데 그것은 시험용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치료비용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현찰로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데 한 달에 사용되는 약값이 한화 500만원이라는 것입니다. 달리 방법이 없기에 가족이 마지막 수단으로 그것이라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경험자이신 목사님은 어떤 권면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간 이식으로 죽음에서 살아난 목사님도 필자가 생각하는 대로 같은 생각의 말을 해 주셨습니다. 간 이식을 받을 수 없도록 암세포가 간에 가득차 있어서 병원에서 조차 치료를 포기한 상태라면 간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주변의 다른 장기에도 전염이 된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극한 상황에선 마지막 남은 시간을 본인이 준비하고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하며 주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환자 본인과 가족 모두가 그 동안 믿음 생활을 충실하게 해 왔습니다.

가족 중 어느 분은 이런 상황을 보면서 “왜 착하게 산 사람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합니까?”라면서 믿음으로 산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면 자신은 차라리 악하게 살아야 갰다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왜 환란을 당해야 할까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이 꼭 저주는 아닙니다. 준비된 자의 죽음은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은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사도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죽어서만 가는 천국을 산몸으로 올라가서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영원한 세계를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방문할 때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명하시길 “네가 본 천국을 책으로 기록하라 명하시며 믿는 자의 죽음이 복됨을 전하라”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남도 나의 의지대로 온 것이 아닌 것처럼 가는 것도 내가 원하는 때와 장소 방법으로 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오기 전 이미 세상이 존재함과 같이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도 우리는 준비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주님이 믿는 자들을 위하여 영원한 세계를 예비하고 우리를 영생토록 복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는 동안 예수를 믿는 것이 가장 귀한 복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귀한 것은 세상이라는 징검다리를 거치지 아니하고는 누구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힘으로도 아니 되고 돈으로도 아니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 의지하면 죽음의 문을 통하여 영광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2021년 6월 10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45 어느 특별한 전통 결혼식을 경험하면서!

지난 6월 5일 토요일 오전 11시에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 어느 특별한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연로하신 목사님 사모님의 손녀가 동부에 사는데 팬데믹으로 결혼식을 할 수가 없어 이곳 Los Angeles로 신랑 신부와 양가 부모님들과 일가친척이 비행기로 날아와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1부 결혼 감사예배를 마치고 교회당 뒷마당에서 축하 파티가 시작되기 전 먼저 폐백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고국을 떠나 이민자로 미국에서 살아온 세월도 반세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두 딸도 여기서 태어나 출가를 시켰지만 폐백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가끔 TV를 통하여 전통예식을 본적은 있어도 실제로 폐백을 드리는 현장을 가까이서 경험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결혼식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불안한 마음과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폐백을 하게 되면 신랑 신부가 맞절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뒷마당은 시멘트 바닥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태어난 2세인 신부와 그리고 이번에 결혼하는 신랑은 우리와는 문화가 다른 백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폐백을 위해서는 전통 한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전통 예식을 돕는 전문 기관이 우리 주변에 있는 것입니다. 이번 결혼식이 있기 전에는 그런 기관이 있는 것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행사를 주관하는 전문 업체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이미 주변에서도 전통 결혼예식을 행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전통 예식을 주관하는 곳에는 폐백을 담당하는 부서와 책임자가 있어서 그 분들에게 행사를 안심하고 의뢰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준비하려던 모든 것을 전문 기관에서 책임 맡은 분들이 행사에 필요한 것들을 완벽하게 준비한 것입니다. 이번에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는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더욱 특별한 것은 신랑은 한국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신부 어른들의 고국인 한국의 결혼 전통 혼례식을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아니하고 기꺼이 따라준 신랑 신부에게 사랑스런 마음과 함께 고마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우리도 지키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한 것들을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결혼식이 필자에게 더욱 특별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곳에 예배 처소를 허락하신지 2 년 만에 처음으로 맞는 결혼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3년 동안 사용해 오던 예배당에서 이곳으로 장소를 옮겨주셨을 때에 교회가 결정한 것이 있었습니다. 교회당을 결혼식 장소로 지역 사회에 오픈하기로 한 것입니다.

모두가 크게 염려하던 펜데믹 사태가 빠르게 안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가정들이 우리가 예배하는 교회당에서 많이 탄생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확장되길 고대하면서 이번에 새롭게 출발하는 Janice & Alex Mulvenna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길 축복합니다.

2021년 6월 5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44 목회자에게 아픔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주일 밤 8시에 35년 이상 간간히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분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방금 전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님이 장례를 도와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부탁도 없으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오전 11시 유가족과 함께 장의사인 로스 힐을 방문했습니다.

그랬더니 팬데믹으로 장례를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한 달 이상이나 밀려 있어 지금은 고인을 위해서 유가족이나 장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장례절차를 논의할 일자로 3주 후인 6월 16일에 그것도 대면이 아니고 이메일을 통해서 상담할 수 있다는 약속만 받고 돌아왔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천국의 소망으로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는 교인들의 경우는 다시 사랑의 교제를 나누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약간의 슬픔을 느끼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에서의 고단한 삶의 수고와 고통에서 놓임을 받고 주님 안에서 영원한 위로와 평안을 받으시기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고인의 부르심에 대하여 기쁨이 없었습니다. 전화를 받고나서 잠들기 까지, 아니 잠에서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다음 날 유가족을 장의사에서 만나기까지도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무슨 말씀으로 위로를 전할 수 있으며 어떤 설교로 장례를 할 수 있을까?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2주전 남편이 전화로 부인의 장례식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했었습니다. 그 때부터 부인의 상태를 여러번 전화로 물어 보았습니다. 부인과 약간의 대화는 가능하다고 해서 그러면 운명하기 전에 병원을 방문해서 기도를 해드리고 싶다고 강력하게 요청을 여러 번 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받아 드려지지가 않았습니다. 이유를 묻자 부인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0여 일 동안 반복해서 기도 했습니다. 이대로 세상을 떠나면 주님의 복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데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오른 편 강도와 같이 마지막 순간에라도 구원받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제 다시 제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요청이니 부인을 위해서 교회 목사님이 기도하는 것을 허락받아 달라고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마지막 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끝내 허락하지 아니하고 세상을 떠나신 겁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인생은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죽기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중 죽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행복하고 부족함이 없이 살아도 죽음의 복을 받지 못하면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고인의 경우 돈을 버는 일을 위해선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사업을 하셨습니다. 보통 사람보다 세 배 네 배 이상 일을 하셨습니다. 먹는 것도, 때로는 잠자는 것도 억제하며 일을 하셨습니다. 그로인하여 물질적으로는 큰 부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돈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것 같은 세상이지만 돈으로도 되지 아니하는 것이 있습니다. 건강이 그러합니다. 죽음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원치 않는 죽음이지만 돈으로도 오는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피할 수도 없습니다. 도망가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네 목숨을 바꾸겠느냐” 이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세상에서 예수를 믿고 구원 받으면 그 보다 더 귀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자, 성공자,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이 귀하신 구원의 은총을 믿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2021년 5월 24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43 크리스찬투데이 창간 24주년을 축하합니다.

5월 20일은 Los Angeles 시에서 크리스찬투데이가 태어난 지 24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크리스찬투데이가 태동 할 때부터 곁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오늘을 맞게 됨에 남다른 감회를 가지는 것은 욥기 8장 7절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을 이루신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 어느 것도 값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연히 만들어지거나 저절로 되는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고통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중단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먼 훗날을 바라보며 축복의 씨앗을 뿌리는 수고와 기다림 그리고 반복되는 인내와 노력의 결과로 가꾸어지고 다듬어지는 것입니다.

그 동안 몇 번의 경영의 위기 상황을 맞을 때마다 죽으면 죽으리다는 각오로 주님께 매어 달리시며 맡기신 사명을 위하여 몸부림치셨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만 아니라 육신의 문제로도 위기를 맞이하셨던 때도 있으셨습니다. 사방을 들러보아도 도울 자가 보이질 않았었습니다. 이제는 손을 들 수밖에 없다고 하셨던 때도 있으셨습니다.

그런 고난의 강을 건너 지금에 이르셨습니다. 가끔 서종천 회장님과 서인실 사장님을 생각할 때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되는 것은 두 분은 보통 분이 아니시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입니다. 만일 주님이 두 분에게 맡기신 주님의 십자가를 나에게 지게 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생각해 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나는 지금의 두 분처럼 내게 맡기신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년 전에는 꿈에도 그리던 신문사 자체 사옥을 세계적인 명성의 거리 Wilshire Blvd에 허락하시어 모두를 놀라게 하셨습니다. 지역 신문으로 출발해서 지금은 지구촌 전체를 상대로 사역의 경계를 확장해 주셨습니다.

갈수록 이단의 세력이 강하게 사역하는 악한 시대에 주님의 교회를 보호하고 지키는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케 하셨습니다. 기독 신문사로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지나 온 24년의 세월 동안 크리스찬투데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시고 있어야 할 그곳에 주님이 먼저 가 계시어 따라가게 하셨습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크리스찬투데이의 주인이 예수님이셨다는 말씀입니다. 전에도 그러하셨고 이제도 그러하시며 앞으로도 그러하십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찬투데이가 앞으로도 중단 없이 빠르게 전진하고 발전하며 부흥하게 될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전보다 더 빠르게 그리고 더 크게 사역의 범위가 넓어지게 될 것입니다.

창립 30주년을 맞이하게 될 때는 세계 속에 크리스찬투데이의 깃발이 더 힘차게 푸른 하늘에 오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감동과 영광이 있기까지 죽도록 충성하신 서종천 회장님과 서인실 사장님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함께 수고에 동참하신 임직원 모두에게도 힘찬 박수와 함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5월 20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42 106세 권사님의 임종을 준비하는 어느 목사의 아픔!

“저희 교회 K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교회를 담임하시는 친구 목사님이 급하게 기도요청을 부탁하셨습니다. 내용인즉 조금 전 106세 되신 권사님의 임종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K 권사님은 주변의 동역자들도 잘 아는 권사님이십니다. 얼마 전까지도 그 연세에 지팡이를 의지하지 않고 걸으셨습니다.

교회에서 픽업을 가면 Van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 오르고 내리실 정도로 건강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담임 목사님이 권사님의 건강을 걱정해야 했던 것은 언젠가는 그 날을 만나게 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해를 넘길 때마다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여 온대로 긴 수명을 이어오셨습니다.

그런데 수일 전 목욕탕에서 넘어지셔서 뇌졸중을 당하신 겁니다. 그로인하여 왼편의 수족이 마비 증상을 입었으며 뇌에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이라면 수술을 할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수술로 회복을 기대할 수 없어 가족회의로 부르심에 순종하기로 하고 평안히 주님께 가시길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권사님이 특별하신 것은 수십 년을 섬겨 오면서 섬김의 업적을 남기셨기 때문입니다. 권사님은 재정이 넉넉지 못한 교회를 위해서 힘에 지나도록 헌금을 하셨습니다. 언젠가 친구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권사님이 소천하시면 참 기도자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재정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권사님이 헌금하시는 내역을 보면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권사님이 드리는 헌금은 십일조, 감사, 주일, 선교비, 절기헌금, 매월 특별헌금, 건축헌금을 바치십니다. 특별히 건축헌금으로 매월 106세 권사님이 300불을 바치십니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80이 된 딸과 함께 폐품 수집을 하셨습니다.

빈 캔과 신문지를 보아서 건강한 사람도 한 달에 200불을 벌기가 어려운데 고령의 두 권사님(어머니와 딸)이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미친 듯이 주변을 다니면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수거해 월 200불을 모으면 그 돈에 100불을 보태서 바치는 겁니다. 자신들을 위해선 먹는 것까지 줄이고 줄여서 바치십니다.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빈 캔을 수집하는 일에 생명을 걸고 수거하셨습니다. 누가 권하거나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그런 정성으로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내용을 듣기만 해도 감정이 둔한 저 같은 사람도 가슴이 뜨거워지는데 왜 주님이 교회를 향한 모녀 권사님의 이런 헌신과 사랑을 기뻐 받지 않으시겠습니까?

일 년에 한번 바치는 추수감사헌금을 위해선 매월 100불씩 모았다가 11월 추수 감사 때에 매년 1,200불씩 감사헌금을 바칩니다. 얼마 전 정부에서 코로나 구호금으로 개인당 1,400불을 받은 것도 몽땅 헌금으로 바치셨습니다. 그래서 K 권사님이 소천하시면 교회 제정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걱정하신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내용의 카톡을 보내오셨습니다. “평강교회에 김시철 장로님이 계셨다면 저희 교회엔 변함없이 충성하신 김순녀 권사님이 계십니다. 김시철 장로님이 소천하셨을 때에 필자가 낙심하고 아파하셨을 것을 이제서 짐작하게 되었다고 하시며” 권사님이 떠나가시고 나서 있을 교회 형편을 염려하셨습니다.

그에 대한 답장을 보내드렸습니다. “김시철 장로님이 지금도 하늘에서 교회를 위하여 일하고 계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장로님이 소천하시고 나서 기적 같은 일들이 교회에 일어났습니다. 그런 기적이 목사님 교회도 일어날 것을 믿는 것은 권사님이 그곳에서도 교회를 위해서 일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친구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인 줄 믿습니다. 아름다운 성도가 있는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반복되는 시련과 역경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지키며 맡기신 양떼를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시는 목사님이 있는 교회를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목사님! 힘내시기 바랍니다. 목회자의 자랑이 되는 좋은 성도님을 곁에 모시게 된 것은 주님의 은혜가 아닙니까? 목사님은 이 시대 주님이 인정하시는 참 목자십니다. K 권사님이 뿌리신 믿음의 씨앗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열매 맺어 속한 시일에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는 것을 모두가 보게 될 것입니다.

2021년 5월 10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41 조수성 장로님께 받은 위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조수성 장로님은 애틀랜타에 사십니다. 조 장로님을 알게 된 것은 가깝게 지내는 K 목사님을 통해서입니다. 조 장로님과 K 목사님은 같은 고향에서 성장하고 같은 학교의 동문으로 오랜 동안 깊은 우정을 가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 목사님이 사역하시는 이곳을 방문하실 때마다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조수성 장로님은 친구 K 목사님을 만날 때마다 극진한 사랑과 정성으로 귀한 대접을 하십니다. 평생을 목회자로 사셨던 목사님의 아들 장로로서 목회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임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기에 어려운 이민 목회 현장에서 힘들게 사역하시는 친구 목사님을 진심으로 위로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K 목사님은 혼자 대접을 받지 아니하시고 몇 분의 동역자 목사님들과 사모님들도 대접을 받게 하십니다. 당신만 대접 받으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주변의 동역자 부부들을 함께 초청해 위로와 사랑을 받게 하는 것은 장로님이 주의 종들을 섬기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필자도 처음 장로님으로부터 고급스러운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약간의 부담을 느껴야 했습니다. 나는 조 장로님을 알지도 못하고 위해서 해 드린 것이 전혀 없는데 이런 과분한 대접을 하시는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에 넘치는 극진한 대접을 해 주셔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장로님께 받은 사랑의 대접을 이 글을 쓰면서 세어 보았습니다. 장로님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아니하였는데 그 동안 4번의 섬김을 받았습니다. 모두다 이 지역에서 손꼽히는 유명 식당의 최고급 식사였습니다. 그런 유명한 식당이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 돈을 주고는 사서 먹을 수 없었던 고급 요리였습니다.

첫 번 장로님께 대접 받았을 때에 함께 초청 받은 목사님들과 사모님의 수는 타운의 유명한 갈빗집에 50여명이 초청을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해변 횟집과 지난주는 토런스 바닷가에서 10여분이 사랑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 때 저에게 식사 기도를 하라고 해서 이런 기도를 했었습니다.

주님! 이곳에 좋은 식당이 있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좋은 음식이 있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을 올수 없고 가까이 하지 못한 것은 내 돈을 주고 사서 먹을 정도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사랑하시고 크게 축복하시는 조 장로님을 통하여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단순한 대접이 아니라 주님이 장로님의 손길을 통하여 저희를 위로하시고 사랑하심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장로님을 축복하신 주님! 남은 생애를 더 복되게 하시어 더 많은 사람에게 주님의 사랑과 위로를 전하게 하시고 하늘의 큰 상을 예비하시는 장로님과 사업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지난 주일에 조 장로님이 친구 K 목사님 교회에서 예배시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복을 간증하셨습니다. 장로님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시련과 반복되는 고난으로 험한 세상을 살아오시어 이번만 도와주시길 눈물로 기도도 하셨으며 한번만 더 이 위기에서 살려 주시길 구하셨던 것을 고백하셨습니다.

내가 사는 것이 나의 수고와 실력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님이 도우시고 인도하셨기 때문이시기에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주님을 끝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으며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함 같이 주님이 사랑하시는 이웃을 힘을 다하여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을 기쁨으로 살기 원하신다고 간증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크게 사랑하시는 조 장로님을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2021년 5월 4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40 어린이가 없는 어린이 주일을 보내면서!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첫 주일이 어린이 주일이고 둘째 주일은 어머니 주일로 대부분의 교회가 지키고 있습니다. 매년 어린이 주일을 맞을 때마다 설교의 본문을 어린이에 대한 말씀으로 택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맡기신 귀한 생명을 축복 받는 어린이로 키울까에 대한 말씀을 선포해 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어린이 주일에 어린이를 위한 설교를 하지 못하는 때를 만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어린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매년 어린이 주일을 맞을 때는 주일학교 교사님들이 어린이들을 즐겁고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에서 어린이를 위한 행사가 사라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없으므로 주일학교 교사님들도 떠나, 교회에서 아이들이 놀며 크게 소리치던 웃음소리와 울부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로인해 예배당은 조용해졌습니다만 교회의 미래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정 수준의 위치에 오른 교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충분한 예산이 뒷받침되고 좋은 교사님들을 확보한 교회들은 주님이 맡기신 어린이들을 영육 간에 건강하게 양육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주변엔 그렇지 못한 교회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잠자는 주일학교를 다시 깨어나게 해서 주님이 사랑하시는 어린이와 학생 청년을 위한 교회 교육에 힘을 기울이려고 지혜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래서 2년 전부터 계획한 것이 교회 건물을 확장하여 교육 공간을 확보하려고 건축업자를 선정했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교회 증축을 위한 청사진(1만 불 주고)을 만들고 우리교회가 속한 시(South Pasadena)에 교회 증축 허가서를 1년여 전에 3천불을 지불하고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인하여 1년 수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교회 증축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로부터 공사 허가를 받고 공사가 마쳐지기까지는 2년 정도의 기간이면 충분하리라 기대했습니다. 계획한대로 교회 건물 확장 공사가 마무리되면 교회 교육을 위한 공간만 아니라 교회 인근에 거주하는 한인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한 매주 토요일마다 주말학교를 통한 한글학교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뜻을 아직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필자가 섬기는 교회를 크게 축복하시고 33년 동안 사용해 오던 교회당에서 이전보다 좋은 지역으로 예배 처소를 허락하신 것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세대와 자라나는 후 세대들을 교회를 통한 축복의 자녀들로 양육하시기 위함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조용하고 허전한 어린이 주일을 보내면서 주님께 기도드리길 원합니다.

주님! 속히 교회 증축 공사가 도우시므로 은혜롭게 마무리되게 하시므로 교회가 계획하는 교육하는 교회, 교회에 맡기시는 어린 양들을 믿음으로 양육하여 저들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확장되게 하시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소금과 빛을 발하여 지역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교회, 세상이 인정하는 주님의 교회가 되게 하시며 이를 위하여 교회가 필요로 하는 좋은 교사님들도 보내 주시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넘치게 채워주시길 살아 계신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어린이들이 사랑하는 교회, 아이들이 몰려드는 교회로 축복하시므로 교회 안에서 언제나 아이들의 찬송과 기도 예배 소리가 밖으로 번져나가는 은혜로운 교회되게 하시어 주님이 영광 받으시는 교회 되게 하여 주옵소서!

2021년 4월 30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39 4·29 폭동 29주년을 생각하면서!

한인 이민사 120여년에서 우리에게 가장 슬프고 큰 아픔을 당해야 했던 4·29폭동 29주년을 맞는 주간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은데도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1991년 4월 29일 오후 5시부터 흑인 밀집 지역에서 시작된 방화와 약탈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업소들은 불행하게도 우리 한인들이었습니다.

당시 폭도들에 의하여 피해를 본 전체 업소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0여개의 업소가 한인 소유였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집사님이 운영하던 대형 마켓이 흑인 지역에 있었는데 한인 업소로는 제일먼저 폭도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피해로 아직도 그 때의 상처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 살아가고 계십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법과 질서가 제일 잘 지켜지는 나라로 알고 살아왔습니만 4·29폭동을 당하면서 우리가 사는 미국이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었던 미국의 법과 공권력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안녕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미국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게 되었습니다.

폭동이 지나고 나서 한두 해 후 교회 인근에 있는 Glendale city college 한인 학생회에서 필자에게 4·29폭동의 회고와 전망에 대한 주제로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당시 교회에 출석하는 학생 중 김은경이라고 하는 여학생이 그 대학의 한인 학생회 회장으로 두 명의 여동생 봉경이와 주연이도 교회를 출석했었습니다.

30여 명이 모인 강연회 장에는 백인 교수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강연했던 내용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미국이 현존하는 한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경제적인 것도 아니고 군사적인 것도 아닌 인종간의 문제로서 흑인과 백인간의 갈등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흑인이 오게 된 것은 우리와 같이 자유의사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웃나라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36년 동안 자유를 박탈당한 채 억압과 고통의 삶을 살아온 것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흑인들은 저들이 살던 곳에서 짐승처럼 결박을 당하고 노예로 이 땅에 끌려와서 대대로 고통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들의 가슴에 백인들을 향한 증오와 미움은 우리가 일본인들의 만행을 미워하는 것 이상으로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이 백인을 향한 분노와 울분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택한 것이 이민제도를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흑인과 백인간의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민자들은 자기의 나라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잘 살기 위해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민자들이 그 나라에서 정착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따릅니다. 그러는 사이에 가난한 이민자들이 이웃에 사는 흑인들과 잦은 충돌이 발생합니다.

그러다보면 백인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줄어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4·29폭동이 일어난 그 장소에서 29년 전에 유대인들이 폭동을 당했습니다. 폭동을 당한 유대인들이 다시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듯이 우리 한국인들도 다시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공간에 어느 민족이 들어가야 합니까? 지구상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유대인들이 당했던 그 장소에 들어갈 민족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 그 자리에 들어간 것도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작은 돈으로 가게를 차릴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생활비용이 적게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 들어가면 힘들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명을 담보하면서까지 살기 위해서 그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폭동 피해당하신 분들은 부자들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이민 올 때 큰돈을 가지고 오신 분들은 안전한 곳에서 사업을 할 수 있어서 폭동의 피해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강연을 마치면서 결론으로 한 말은 이러했습니다. 이제 폭동이 일어난 그 지역에 들어갈 수 있는 민족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사람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 만일 미국이 북한에 이민 문호를 개방한다면 가장 빠르게 그 지역으로 가난한 북한인들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강연에 참석한 백인 교수가 중간 중간 통역하는 한인 학생의 말을 듣고서 연실 고개를 끄덕이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2021년 4 월 24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38 “목사님은 진짜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은 진짜 목사님이십니다. 이 말은 필자가 지난 화요일인(4 월 13일) 어느 모임에서 친구 목사에게 한 말입니다. 그냥 지나는 말로 하는 말이 아니고 진심으로 존중하며 존경하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필자에게는 정기적으로 만나서 모임을 갖으며 오랫동안 교제를 이어오는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그 모임에 참석하시는 목사님 중에 특별한 목사님이 한분 계십니다. 특별하다고 말을 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입니다. 모임에 참석하시는 목사님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으시며 목회 경력이 다른 목사님들보다 월등히 많으시고 이미 오래전에 큰 박수를 받으시고 명예롭게 은퇴하신 K 목사님이십니다.

K 목사님이 특별하신 이유는 모임에 참석하는 목사님들과 교단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필자와 모임에 참석하는 목사님들 모두 같은 교단에 속한 장로교 목사님이지만 K 목사님은 감리교단에 속한 목사님이십니다. 지금까지 목사로서 살아오면서 다른 교단 목사님과 함께 오랫동안 교제를 이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K 목사님의 경우 수년 동안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말에나 행동에 실수가 있으시거나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는 것이 없으셨다면 지금처럼 우리의 관계는 오래 동안 지속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난 모임은 K 목사님 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목사님의 자녀들이 집을 구입해 부모님께 선물해 지난 달 입주하고서 처음으로 이사 감사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뜨겁게 감사예배를 마치고 나서 준비하신 애찬을 나누며 서로간의 대화가 무르익어 갈 때에 한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사모님! 저희 부부가 정부에서 주는 1400불씩 받았습니다”

그 기념으로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000 식당에서 여러분 모두에게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모임을 가질 때마다 헤어질 때는 식당에서 식사 후 헤어집니다. 우리가 모여서 식사를 할 때는 늘 정해진 식단이 있습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닐 때는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 식사를 대접하시겠다고 하신 목사님은 우리 모두가 원하면서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밖에 가지 못하는 곳으로 초대하시겠다고 해서 모두가 박수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목사님만 1400불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함께한 모두가 다 같은 액수의 돈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필자를 포함한 다른 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다른 목사님이 말을 하셨습니다. 저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돈을 내가 쓰지 않았습니다. 저와 집 사람이 받은 2800불에다 200불을 더하여 3 천불을 만들어 P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의 권사님 중 한 분에게 그 돈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 권사님은 70이 넘으신 권사님으로 오랫동안 교회를 섬겨오셨습니다. 한 때는 부족함 없이 주변으로부터 부러움을 받으며 사시던 때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편을 앞세우시고 홀로 살아오시면서 가정 형편이 기울어 힘들게 살아가고 계십니다. 권사님이 사용하시는 차는 18년 동안 타시는 것입니다.

오래된 차로 보기에도 아름답지 못할 뿐 아니라 잦은 고장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 어떤 어려움을 당하실지 모를 정도로 불안하게 운전하고 계신 것입니다. 권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늘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지만 도울 방법이 없으셨습니다. 권사님의 실력으로는 새 차를 구입하실 수없는 것을 아시기에 목사님과 사모님이 결단하신 것입니다.

목사님도 훌륭하시지만 그에 동조하신 사모님의 결정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결정이 아닌 것은 목사님의 가정도 넉넉하지 못하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기쁜 마음으로 권사님께 전했습니다. 권사님! 이 돈으로 새 차를 사는데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권사님이 그 돈을 받으시고 물으셨습니다.

목사님도 넉넉지 못하신데 어떡케 이 돈을 준비하셨습니까? 이번에 정부에서 우리 부부에게 1400불씩 주는 돈에 200불을 더한 것입니다. 라고 말을 했을 때 권사님은 그 돈을 받으셨다가 다시 목사님께 돌려 드렸습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돌려 드리는 돈을 받지 아니하시면 교회를 떠나겠습니다.

그 말에 목사님과 권사님은 서로 부둥켜 앉고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데 나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는 친구목사님의 손을 잡으며 “목사님은 진짜 목사시며 그 권사님은 진짜 권사님 이십니다”라고 힘주어 말을 한 것입니다.

2021년 4월 14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